〈 61화 〉 깐프? 아니죠. 애로프? 아닙니다. 엘프, 귀족(쓰래기) 엘프에요!! (3)
* * *
용용이의 머리 위 뿔에 기대 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 인간들은 뭘 그리 바득바득 달려드는 건지.”
하마터면 사고 날 뻔했잖아.
아버지의 도끼날과 카녹스가 충돌한 순간.
진짜 십년감수 했네
엄연히 내 소환수는 각자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
말도 없고 심령에 의해 전해지는 내 의지를 가장 중요시하기에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게 전투 중이 되면 살짝 문제가 생기거든.
심령 즉, 심리 상태
나는 물론이요, 소환수들까지 주변의 환경이나 겪고 있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소환수들의 자아가 드러난다.
대체적으로 평소에는 내 이성, 상황이 급해지면 소환수들의 본능으로
물론 기본적으로는 난 이것을 장점이라고 여긴다.
그도 그럴 게 초단위를 다투는 전투 중에 전혀 내가 생각지 못한 적의 공격에 대응하고, 또 알아서 변수 창조와 같은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니까.
내가 용제 전에서 각각의 이유로 카녹스와 시몬을 동승시켰던 이유지.
하지만 역으로 이번과 같은 특정한 임무에서는 단점이 두드러지는데.
만약 타이밍이 놓쳐, 내가 카녹스가 겪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 해 말리는 게 늦었다면, 그 자리에 있던 일행들 전원의 팔다리가 하나씩은 떨어졌을 것이다.
뭐, 예지가 있으니, 팔다리 하나쯤 뭔 대수냐 싶을 수도 있지만, 가족이 내 소환수에게 그런 꼴을 당하는 게 썩 달가운 경험일 순 없지.
“하여간 다들 고집하고는, 카녹스를 보냈으면 곱게 집에 들어가야하는 걸 알텐데도.”
“그만큼 당신을 걱정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다 큰 딸내미가 이 나이되서도 걱정 받아야겠냐? 내가 꿀릴 게 어디 있다고.”
“자식 하나 없는 제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부모 마음이 그렇지 않다 하더군요.”
용용이의 머리 한 가운데, 엄연히 내 특등석에서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의 주인.
내가 친히 수고를 들여 납치하신 제국의 황태자, 데지르 님 되시겠다.
일단 납치긴 납치라서 손을 뒤로 묶어두긴 했는데, 깡이 얼마나 좋은 건지 하등 신경 쓰지도 않고, 특등석에서 눈 앞에 펼쳐지는 경치를 감상 중이다.
“좋군요.”
“응?”
“제국에도 에더크로우라는 비행정이 있긴 한데, 속도감도 떨어지고, 높이도 이것보다 낮아서, 지금 바라보는 경치가 무척 새롭습니다. 릴리 씨는 이런 경치를 매일 보실 수 있으시니......”
“하! 이거 어이없는 인간 일세.”
평소와는 다른 게 바람을 만끽하며 상쾌한 표정을 짓는 데지르.
그 모습에 나도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뭐, 그럴 수도 있으려나?
우리가 조사한 것만 봐도 황태자라는 위치 때문에 자리 싸움, 정치 싸움이 치열한데, 이 인간은 배경도 딱히 다른 황자, 황녀들에 비해서 좋은 편이 아니니까.
내 예상보다는 몇 배로 피곤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당장, 지금의 복장부터가 그렇지.
새벽 시간 급습해서 데려왔는데, 입고 있는 건 가볍고 얇은 재질의 수련복.
당연히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뻗어 있을 거라 예상하고 한 개돌이었는데, 그는 새벽 시간을 쪼개서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 딱 마치고 돌아오는 걸 발견해 보쌈할 수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뻔 했다.
괜히 장난끼가 돈 난 용용이 정수리 앞으로 걸어가 그를 툭툭 발로 밀면서 말했다.
“감히 내 특등석을 차지한 고얀 놈 같으니라고. 님 마녀, 그것도 초 마녀 한테 납치된 건 알간? 솥단지에 다 넣고 사골로 우려벼리는 수가 있다?”
“그.......보통 마녀 솥단지는 사골용이 아니지 않나요?”
“동물 넣고 끓이면 그게 사골이지. 야, 백숙 삶을 때도, 닭만 넣는 게 아니라 인삼이니 대추이니 하는 별의 별 거를 다 옵션으로 쑤셔 박거든? 특히 참쌀이 졸맛탱이지.”
“릴리 씨 고향 음식인 거 같군요. 좋아하시는 걸 보니, 저도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바로는 안 돼. 외국인은 오면 일단 치느님부터 영접하는 게 국룰이야.”
그렇게 쓰잘때기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난 그의 옆에 앉았다.
일단 이렇게 데려온 죄가 있어 특등석을 양보했지만, 옆자리 일등석까지는 안 되지.
떨썩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나란히 앉은 우리는 떠오르는 태양을 함께 바라보기 시작했다.
확실이 나도 오랜 만에 이렇게 아침을 보네.
간만에 여유를 가진 거 같아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우리는 한동안 그 모습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불어오는 바람을 소리만이 우리 귓가에 맴도는 시간이 지나고.
데지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국의 황태자를 납치한 겁니다. 이게 보통 큰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겠죠?”
“물론”
“당신 개인이나 지구 측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샤말리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니 다른 형제자매들이 설쳐도 그럴까?”
“제가 없어지만 좋아할 이들이긴 해도, 이는 엄연히 황태자라는 자리의 권위와 연결된 사건입니다. 제가 죽는 건 죽는 거고, 샤말리아가 대가를 치르는 건 치르는 것이죠.”
내심 환호할 자들이라고 해도 자기가 앞으로 차지할 자리의 값어치 없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으니, 복수는 할 것이란 의미.
알고 있다.
그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모지리는 아니니까.
그러나 내가 누구냐?
초 자가 들어가는 강릴리, 초 마녀님 아니시더냐!
어깨를 으쓱거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난 그를 향해 말했다.
“상관없어.”
“예?”
“상관없다고. 충동적으로 뛰쳐나온 건 처음 뿐이지. 다시 돌아가 니들 진형에 대가리 박은 건 다 생각이 있어서 한 거니까. EMP라고 들어는 봤냐?.”
“E......MP?”
물론 실제 EMP는 아니지.
고철로 만드는 건 전기 제품이 아니라 마도구니까.
그래도 난 이게 금방 EMP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고 본다.
테라는 물론이고 지구도 시시각각 모든 것들을 마력 동력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니까.
자랑스럽게 팔짱을 끼고 데지르에게 EMP ver 강릴리표 전화기 파괴기에 대해 늘어놓자.
그는 황당하다는 걸 넘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따지듯 묻기 시작했다.
“아....아니!! 그게 가능한 겁니까?!! 세상 대체 무슨 그딴 사기 마도구가 있어요?!!”
“하하!! 마도구는 아니야. 나 뭐 만드는 제주는 없으니까. 고치는 건 꽤 해도. 암튼 마술이야 마술. 그니까 내가 친히 니들 집에 방문한 거 아니겠냐.”
“그게 더 대단한 거에요!!”
“그런가?”
“그렇지!!”
마도구면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릴 거고 도구라는 형태를 가지니, 어찌저찌 막기라도 하지.
마술이면 어떻게 하라고?
진형 내부에 있는 모든 마술사를 의심할 수도 없잖아?
대체 이 무슨 전략급 마술의 탄생이냐며, 데지르는 뭐라뭐라. 통신이 날라갈 거고, 마도 병기도 모조리 작살날 거라며 중얼거리기 시작.
거기에 겸사겸사 질문 하나를 하니
“골렘도?”
“어브 콜쓰!!! 골렘은 뭐 마력 안 쓰디?”
“........이런 미친.”
시원하게 긍정을 박아버리는 내 모습에 좌절했다.
“짜식, 쫄기는. 어차피 나나 쓰는 거지. 효율 개 더러워서 아무도 안 써. 걱정말랑께.”
“........마력이 부족한 건 채울 방법 많잖아. 마력진도 있고, 포션도 있고. 당장 마술사들 평소에 준비한다고 하는 게 그거인데......이 마녀야! 니가 마녀면서 그런 소릴 하면 어떻하냐고?!!”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쓰읍!! 평소에 마력이 딸려본 적이 거의 없어서 까먹었다.”
손벽을 딱 치고는 뒤통수를 긁적이는 날 보며 데지르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미 반쯤 영혼이 나처럼 탈주한 모습.
그래도 겨우겨우 황태자의 의지를 짜내 비틀거리는 머리를 세운 데지르는 절대 그 마술을 발설하지 말라 신신당부 했지만......
“어......님이랑 저 일단 진형이 다른데? 그리 말씀하셔도.”
“X됐다.”
“오~~~ 역시나 황태자!! 역시나 문화교류는 십원짜리 욕부터 시작하는 거지!!”
“이걸 대체 어찌해야......”
“걱정마! 제국이랑 싸울 때는 이런 자잘한 매직 볼트 같은 기술이 아니라. 시몬이랑 엘라임이랑 합작해서 사용하는 초 특급 전략 마술로 불도저처럼 밀어버릴 테니까!! 딱히 대처법 같은 건 생각할 필요 없음!”
“그게 위로야 협박이야?”
“둘 다지!”
아무튼 그렇게 내 전화기 파괴기.........
“그딴 걸 통신 마도구 부순다고 만들지 말라고......”
“거, 학생. 이제 설명 좀 해야 하는데.”
“뭔, 설명? 통신 도구 작살 났으니까. 제국에 이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 사막이라 말도 못 타고, 탄다 해도 편도만 최소 10일인 거리인데. 거기다 내가 기다리다 알브 헤임 사신단 지나가고 돌아간다 했으니. 제국 본토에서 의심도 안 할 테고. 당신은 그 틈에 일을 끝내겠단 거겠지.”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학생이네!! 설명 감사!”
그런 소리다.
10일이란 말에 좀 간당간당할지 모른다 싶었지만, 이거야 강행군을 달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예정에 변경은 없어도 될 듯 싶어 고개를 끄덕이니 그제서야 황태자는 가장 중요한 건 물었다.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절 이렇게 납치해서까지 하려는 게 뭐죠?”
“왜? 이제 흥미가 좀 도냐?”
아까까지는 여유로웠던 주제에 지금에 와서야 묻는 그를 보며 낸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그의 굳은 눈동자은 아무 변함없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생각 없는 여인이 아니란 걸 압니다. 필시 나름의 계획이 있기에 벌인 일이겠죠. 그 과정에서 전화기 파괴......이렇게 부르진 맙시다. EMP, 그래 EMP 때문에 놀라서 그렇지. 아직도 당신은 믿고 있어요. 왜 절 데려온 겁니까?”
“글쎄........뭐, 황태자 사골국을 끓이는 게 목적은 아니긴한데.”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며 난 용용이에게 고도를 낮출 것을 지시했다.
데지르는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지상의 경치를 잠시 바라보고서는 이내 입을 다물지 못 하니.
용용이가 향하는 방향은 마계.
다시금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 데지르에게 난 말했다.
“부캐를 하나 파려고 해.”
“부....캐? 그게 무슨 의미죠?”
“이중 신분이라고나 할까? 니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거든. 난 알브 헤임과 공존할 수 없다는 걸.”
“당신 소환수 중에 카오스 엘프가 있단 건 저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방인!! 그정도 쯤은 어떻게든─”
“말 잘라서 미안한데........안 돼. 엘라임이 쓰는 게 죄악의 가시거든.”
“죄악의 가시든 뭐든......네? 죄악의 가시?”
아무 생각도 없이 엘라임의 능력이라고 보고 있던 검은 나무의 줄기들.
내가 데지르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놀랐던 것이며
동시에 엘라임이 나그나스를 빗대어 만들어졌다고 추측하는 이유,
그리고 내가 알브 헤임과 공존할 수 없는 원인....
“그래, 내가 세계수의 타락한 줄기를 가지고 있다고 이 양반아. 알브 헤임이 가만히 있겠냐?”
이미 신앙의 영역에 존재하는 신과 같은 나무, 세계수.
엘라임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그 신앙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증거물이다.
내 말에 안색이 파랗게 질린 데지르
그는 여유도 굳건한 모습도 잃은 체. 동요에 가득찬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향해 물었다.
“.........그.......그게 대체 어떻게 당신 손에.”
“사정이 있어. 우리들에게 힘을 주신 분께서 사정이 급하다 보니 이것저것 모방해서 힘의 형태를 만들었거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 하필 딸려와도 이런 게 딸려와서.”
“오늘처럼 혼란스러운 말을 많인 듣긴 처음인 거 같습니다. 황태자 즉위식 때 들었던 연설도 이보다는 이해하기 편하겠군요.”
“대충 흘려들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요는 내 존재가 알브 헤임의 주적이라는 거. 그리고 니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있잖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더라고.”
“이상하다니... 대체 뭐가 이상한 거죠?”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긴 했지만, 나그나스의 이야기. 다크 엘프와 알브 헤임의 과거는 나름 짜임세 있고 신빙성 있는 이야기였다.
동화처럼 개연성이 없지도 앞뒤가 다르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데지르를 향해 난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그리며 양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거야 니들 기준이지. 어지간한 삼류 웹소설보다 개연성 없는 개뼉다구 같은 이야기였는데 뭘 잘난 듯이 떠들고 있는지......야, 넌 알지?”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세계수 말이야. 세계수. 그리고 나그나스도. 갑자기 그년은 왜 일족 전체에게 가호를 빼앗아 다크 엘프라는 오명 속에 살게 한 건지. 그리고 하이 엘프는 왜 저렇게 순혈에 집착하며 세계수를 싸고 도는 지. 넌 제국의 황태자니까 알 거 아니야?”
“........”
“주절주절 이런 저런 이야기 많이 했으니. 숨기는 것도 좀 털어놔봐. 우리........친구잖아?”
나름 내 앞에서 솔직 담백하게, 마치 순수하게 날 돕겠다는 듯 나그나스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는 분명 숨기는 것이 있었다.
“내가 널 데려온 이유를 물었지? 뭐, 가장 중요한 건 아까 말한 데로 부캐를 파는 거야. 거기에 네 도움이 좀 필요하거든. 둘째는 진실이지.”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과거의 낡아빠진 이야기일 뿐. 제가 그리 말한 건, 그 부분만이 현재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에요.”
“알아, 네가 나쁜 의도가 있어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근데, 내가 한 소설하거든? 기분이 쌔~~~해. 그 세계수란 거 심상치 않단 말이지. 그니까 말해봐.”
세계수가 뭔지.
또 나그나스는 왜 일족에게서 세계수의 가호를 뺏었는지.
무엇 때문에 신앙이나 다름 없는 세계수의 줄기를 훔쳐 마계로 들어가 카오스 엘프가 되었는지.
전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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