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깐프? 아니죠. 애로프? 아닙니다. 엘프, 귀족(쓰래기) 엘프에요!!
* * *
앞으로 찾아올 호갱 분들에 대한 소개를 좀 해볼까?
엘프
어디 나 좀 판타지 한다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것이 더 힘든 이 단어.
뾰족한 귀
늘씬한 몸매
아름다운 얼굴
마지막으로 그 찌릿찌릿한 성격과 눈매까지
감히 말하건데 드래곤 다음가는 판타지의 대표 주자 중 하나라고 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소개할 필요도 없지.
테라, 아니 조금 정확히 알브 헤임의 엘프들는 지금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엘프의 이미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니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뭐랄까.........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드네. 귀족이야 귀족. 리얼 귀족 종족이지. 테라 사람들도 그렇게 부르잖아?”
“엄마가 느낀 거? 음.....글쌔, 일단 엄마랑 소라가 간 솔람버는 엘프 분들이 있긴 했어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단다. 그래서 확단할 순 없지만, 만났던 분들은 모두 예의바른 분들이었어. 가끔 뭔가 대화가 막히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앞으로 엘프 맞이에 들어가야 할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소라와 어머니를 비롯한 엘프들을 직접 조사했던 사람들을 만나며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들었던 엘프에 대한 인상은 다크 엘프에게 들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대체적으로 별 문제는 없었다는 의견.
어느 정도 막히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문화의 차이, 가지고 있는 상식의 차이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였다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무릇 의견이란 여러 방향에서 들어봐야 하는 것
.
알리샤로부터 의미심장한 소리를 들었던 만큼 난 다른 사람을 찾았다.
“짜증나는 놈들입니다.”
“왕재수!”
“지들 잘난 맛에 사는 것들이죠.”
“돈만 아니었으면 그것들이랑은 일 안합니다.”
“해도 딱딱할 일 나눠서 할 것만 끝내고 해어지는 게 기본이에요. 우리도 우리지만 그치들도 매 한 가지죠.”
마침 라그나와 셀라를 비롯한 노련한 다크 엘프 일족들이 돌아왔다고 하길레, 난 셀피네에게 부탁해 그들을 만나 제대로된 다크 엘프가 느끼는 엘프를 물었다.
서류로 받아본 것과 실제로 오랜 기간 용병활동을 해온 그들이 느낀 건은 차이가 있을 테니.
결과는 역시나 였다.
오히려 서류 상으로 들었던 것보다 더 격하다고나 할까?
우리가 흔히 아는 엘프의 이미지 중, 안 좋은 부분의 전형적인 군상이 그들의 입에서 나왔다.
격앙된 어조 속에 감정이 많이 녹아든 터라 이걸 수순히 받아들이기는 곤란했기에, 걸러 들을 필요가 있었지만, 이것도 어찌보면 하나의 의견이니 일단 기억해 두긴 했다.
왜 이렇게 의견이 갈린 것인가?
이유야 뻔하지.
어머니와 소라.
라그나를 비롯한 다크 엘프 전사들의 차이가 뭐겠는가?
종족.
같은 엘프를 쓰나 동시에 다른 엘프로 받아들여지는 구별
하이 엘프와 다크 엘프
일단 어머니와 소라는 스스로를 하이 엘프라 소개하진 않았다.
듣자하니 하이 엘프는 알브 헤임에서 거의 황족과 동등한 지휘를 지닌다고 하여 그리 흔히 돌아다닐 위치의 존재가 아니라고.
하이 엘프와 엘프 사이에 귀모양을 비롯해 구별할 수 있는 차이가 있어 이 부분을 숨긴 체 스스로를 그냥 엘프라고 소개하며 활동하긴 했지만 딱히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야 인간과는 다르게 하이 엘프는 특유의 풍모가 있으니까.
유이치가 판을 업었던 당시 고깃집에서도 어머니와 소라는 늘어진 머리로 귀를 가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이치란 놈은 좀 두리번 거리는 걸로 두 사람이 하이 엘프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지.
둘이 만났던 엘프들도 하이 엘프가 정체를 숨기고 나들이를 나왔다, 혹은 어머니와 소라를 굉장히 순도 높은 혈족의 일원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에 내가 찾아간 건 그나마 가장 중립 기어를 박을 수 있는 존재.
“하하, 이리 찾아와 주시니 영광입니다.”
“개수작 부리지 말랬지?”
“그런 실수는 하지 않습니다. 어서 들어와 앉으시죠.”
시종을 써도 괜찮을 텐데 손수 방문을 열며 날 환대하는 잘생긴 남성.
내가 찾은 인물은 아직 샤말리아를 떠나지 않은 황태자, 데지르였다.
그는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내게 자리를 권하고는 사람을 시켜 얼른 차와 다과를 내오라 말했다.
책상에 안경이 올려진 것을 보니, 여기까지 와서도 업무에서 손을 놓고 있지 않은 모양인데, 이부분은 인간적으로 대단하다 생각한다.
“참 너도 엄친아야 엄친아.”
“엄친아?”
“겁나게 잘났다고. 너희 스타일로는 동화 속에 나오는 백마탄 왕자님 정도려나?”
“하하, 칭찬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황자, 그것도 황태자라서 왕자랑 나부랭이랑 비교하시면 곤란합니다.”
“이런 미친.......”
골 때리는 데, 또 사실이라서 할 말이 없네.
뭐,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고 가벼운 농담이다.
회담을 진행하면서 안밖으로 여러번 만나기도 했고, 머리에 뿔난 사람들 달래느라 같이 머리 싸매며 고민하고 춤도 추고 하다 보니 이 정도 죠크는 주고받을 정도는 되었다는 거지.
그렇다고 해도 신분이 신분이고 위치가 위치인 만큼 거리는 두고 있지만.
“에휴~~ 널 찾아오는 게 맞는 짓인지는 모르겠다.”
“고민이 있으면 함께 나누라 하지 않았습니까?”
“배다른 형제들이랑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난리도 아닌 니가 할 소리냐?”
“그리 말하면 할 말은 또 없네요.”
엄연히 그는 제국 측 인사.
객관적으로 판단한 정보를 내게 줄리가 없다.
알브 헤임과 우리 사이가 틀어져야 그의 입장에서는 베스트일 테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왔으니 말을 할까. 아니면 좀 더 생각해볼까 고민하며 난 시종이 가져온 차를 들었다.
“응? 이거....”
차의 향에서 좀 익숙하다 싶었더니, 설마.
“야, 니들이 어디서 홍차를 구했냐?”
“여러분들이 여기 많이 가져오셔서 풀었지 않습니까? 저도 좀 구해봤죠. 요즘 자주 마시고 있습니다, 아직 제 입에는 좀 써서, 밀크티라고 하는 방법으로 달게 마시고 있지만.”
“아니, 홍차도 가져오긴 했는데, 그것보단 샤말리아에서 커피가 잘 나가잖아. 이거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
“여기 좋아하는 분이 한 분 계시니 친해질 겸 해서. 또 새로운 건 일단 해보자는 주의입니다. 커피도 즐겨 마셔고 있습니다.”
“이게 또 개수작을 부리네. 사커킥 한 방 더 필요하냐?”
“그건 좀......”
무슨 마녀가 힘이 그렇게 좋냐면서 질색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그때 면상이 걷어차인 건 효과가 있었나 보다.
그는 절대 사절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아무리 첫눈에 반했다니 뭐다 해도 면상이 그렇게 걷어 차였는데, 진작에 마음은 접었겠지.
“흐음......”
싫어한다는 거 치고는 이상하게 홍차를 음미하는 데지르
저.....저 시끼 진짜 마음 접은 거 맞지?
난 뭔가 등꼴이 쌔해지는 걸 느끼면서 난 일단 이곳에 방문한 이유를 밝혔다.
이를 듣는 그는 경청이 최고의 화법이라는 걸 증명하듯 내 말을 전부 들은 후 입을 열었다.
“과연 그런 이유라면 절 찾아오는 게 조심스러우실만 합니다.”
그는 황태자다
그리고 제국을 대표해 발할라와 거래한 대표이며, 그 사이에 개인적인 거래까지 주고받은 사이.
이미 회담이 오간 뒤라고 해도, 무림 때문에 시국이 어지러운 지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알브 헤임까지 사이가 좋아지는 걸 달가워할 입장은 아니지.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분하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전 다크 엘프를 동정하며 동시에 알브 헤임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입니다.”
“뭐?”
“누가 봐도 질릴 정도의 타 종족에 대한 차별과 특히 다크 엘프를 멸시하는 풍습. 순혈주의가 탄생한 배경. 힘이 있음에도 아크 리치의 침략에 다크 엘프를 불렀던 것. 그 모든 사실의 중심에는 한 명의 엘프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제는 잊혀 진 먼 과거의 이야기.
절대적 신앙처럼 세계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엘프들에게는 인정할 수 없는 진실.
버림받은 다크 엘프의 증오스러운 과거
“최초의 카오스 엘프, 나그나스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 * *
“언빠, 거기서 청승맞게 뭐하고 있어?”
침대 위에서 앉은다리에 팔짱까지 끼고 있는 나를 보며 소라가 말했다.
제국 사람들이 머무는 건물에 다녀온 이후 하루 종일 저런 자세.
소라는 장난스럽게 혹시 또 무슨 사고라도 계획하고 있냐며 농담을 던졌지만, 아무래도 좀 진지한 고민인지, 요지부동이다.
“아~~~ 나도 좀 알자! 고민도 같이 하라고 하잖아!!”
“어디 사는 황자랑 같은 소릴 하는구나.”
“황자? 그 미친넘? 아씨 그 인간 얘기는 또 왜......설마 그 새끼 만나고 온 거야? 역시─”
“그때 ‘쳐’맞은 걸로 부족하냐?”
조용히 난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소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한다.
역시 사람은 이렇게 복습을 시켜주지 않으면 기억을 못 한다니까.
이 참에 오늘 복날을 제대로 잡아서 여동생 닭죽이라도 만들어야─
“살려줌매!! 인간적으로 그건 아니지. 폭력 반대! 내가 때릴 곳이 어디있다고.”
“졸라 많지.”
“아...그건 인정. 내가 좀 때릴 곳이 많긴 하지. 그.......그래도 X나 아프다고!! 뭔 놈의 마녀가 힘은 더럽게 쌔가지고!”
“또 어디 사는 황자랑 같은 소릴 하네.”
조금 긴 한숨을 내쉬며 난 침대에 걸터 앉는 것으로 자세를 바꾸며 소라를 바라봤다.
어느새 방구석으로 도망친 모습이 흡사 은신처에 숨은 햄스터나 다름없다.
괜히 눈에 띄는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보며 난 피식 웃음이 터진 난 조금 기분이 풀려 고민하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하긴,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다 지나간 일 끄집어 낼 필요는 없다는 의미지. 아무튼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래, 지금 문제는 지나간 과거 따위가 아니다.
알리샤가 딱히 그걸 모를 것 같지도 않고.
거기에 나그나스는 이미 뿌리 깊게 박힌 다크 엘프의 신앙이다.
마치 다크 엘프를 멸시하는 알브 헤임의 엘프처럼.
이걸 내가 뭐라 한다고 고쳐질 것도 아니고, 고칠 이유도 없으니, 이 부분은 무시하는 게 답.
시급한 건 따로 있지 않은가?
‘카오스 엘프......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알브 헤임 놈들한테 걸리면 지랄을 해도 제대로 할 것 같데.’
아니 이걸 지랄이라 표현할 수 있는 레벨일까?
최악의 경우 알브 헤임과의 전쟁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아리아스타가 무림과 테라를 모방해서 가상현실을 구현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내 소환수들도 마찬가지 일지도 모른다.
당장 아크 리치, 스켈레톤 킹, 어비스나이트 전부 테라에 있을 법한 존재니까.
카오스 엘프도 다크 엘프들은 알고 있었고.
단지, 문제는 내 엘라임이 어쩌면 그 망할 놈의 나그나스라는 년을 그대로 따와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점.
“야, 너 하이 엘프지?”
“세삼스럽게 이제와서?”
“지금 나한테서 뭐 기분 나쁜 거 느껴지냐?”
“놉!”
그야 지금은 그렇겠지.
난 소라 몰래 조용히 엘라임을 불렀다.
등장은 금물,
일단 그림자 속에서 나오지마.
기운도 최대치까지 눌러.
털끝 하나도 남기지 말고 소라 몰래─
“어라? 갑자기 분위기가 쌔한데.......뭐지?”
“씨팔......X됐다.”
이렇게까지 눌렀는데, 이 둔감탱이까지 알아차리다니.
어쩐지 우리 앨라임을 유독 엘프들이 기분 나빠하더니 이런 썅,,,,,,
“아나, 왜 난 맨날 이 모양이냐고~~~?”
어쩌면 이번 회담
제대로 끝짱 날지도 모르겠단 느낌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