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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57화 (57/116)

〈 57화 〉 문화 교류 (깽판) (5)

* * *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번 제국과 알브 헤임의 재방문은 순전히 내 트롤짓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직 우리는 테라라는 세계에 지구의 존재를 밝힌 생각이 없었으니까.

무림 때문에 민감한 시기라는 알리샤의 조언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준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포로 나선다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도 아니고, 미국의 문제도 예지가 어찌저찌 해결봤다고 하니 급할 것도 없는 상황.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고, 시기까지 고려해 지구의 존재를 더불어 발할라를 테라에 각인시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뭐, 무림의 경우를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가 늘어날 테니 의미 없을 수는 있지만, 그럼 그 시간만이라도 준비를 하고자 했었다.

실제로 모두는 잘 하고 있었다.

셀피네의 말처럼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조로웠지.

다크 엘프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했지만, 그만큼 모두가 노력했기 때문이겠지.

이를 망친 건 순전히 내 죄, 내 잘못

실수라는 말로 변명할 순 없다.

난 엄연히 대표로 이곳에 왔으니, 잘하는 사람들 돕지는 못할 망정 계획을 파토 내버렸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을 수 있을까.

처음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이후 난 고개를 숙였다.

특히 민준이와 돌아오신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확실하게.

세 사람은 모두 각각, 제국, 오크 부락지, 알브 헤임의 위성도시로 파견 나가 가장 고생하며 정보를 모으고 준비를 하던 이들이었으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지.

이런 내 모습에 오히려 괜찮다면, 그동안 한 일이 의미 없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마왕과 색욕의 군주와의 관계는 알아야 했을 거란 말로 위로를 해주었지만, 난 그런 그들의 말에 더더욱 머리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러니 이번에는 확실하게 하자.

대표답게

넓게는 처음으로 테라에 첫발을 내미는 지구인으로서, 조금 좁게는 발할라의 대표하는 얼굴로서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이자, 이렇게 다짐했다.

사신단이 찾아오기까지의 수일.

매일매일 다크 엘프들과 민준이, 어머니가 가져오신 정보를 머릿속에 주입하는 것은 기본에.

예지가 항상 가난한 단벌 소녀라고 놀리는 내 드레스 취향도 처음으로 곱게 접어 내려놓은 체, 침을 꼴깍 삼키며 스스로 바비인형을 자처했다.

아.......지금 생각해도 끔찍했던 그 시간이여.

그저 ‘옷을 고른다’라는 단순한 작업이 어떻게 수 시간이나 이어질 수 있는지.....

전 세계 드레스 디자이너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으니.

지구에서 넘어온 재앙이 나를 찾아오고야 말았었다.

“어라? 이게 웬 일이레? 당신이 어쩌다 딴 옷을 찾나요?”

방문을 열며 깜짝 등장한 은발의 여인

미국과 중국의 일을 마무리 짓고 테라로 넘어온 우리 성녀. 예지님이다.

성녀의 기운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샤말리아 정도는 아무 문제 없기에,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구경 겸, 점검차 테라를 방문했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지.

“헤에~~~”

사건의 전말을 들은 예지는 소악마 같은 미소를 입에 머금으며, 마치 탐스러운 과실을 보는 듯한 시선을 내게 던졌다.

“날 제대로 잡혔다 이거지?”

“사....살려주세염.....”

“제가 항상 하는 말 있죠? 다~~~ 경험이라고. 넌 뒤졌어”

나중에 알고 보니 예지도 고생이 많았다 하더라고.

가장 강대한 무력을 휘두르는 게 나인데, 앞에 나서고자 하지는 않으니, 여간 피곤한 일이 적지 않았다고 후에 그녀는 말했다.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새로운 전두 지휘자의 등장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이 리셋.

촌티나 다음

지나치게 화려해 다음

프릴이 너무 많다 다음

어울리기는 하는데, 이번은 외교선상이잖아? 깔끔한 맛이 부족해. 다음

이어지는 다음, 다음 다음..........

그동안 잘 참아왔던 난 처음으로 곡소리를 내뱉었다.

“너가 하면 되잖아?!!”

“성녀의 힘 때문에 테라에서 활동 못 하는 거 알잖아요?”

“내......내가 어떻게든 할 게!! 어차피 결국 밝혀야 하는 거잖아!!”

“뭐래? 인형이 더럽게 시끄럽네. 자자, 계속 갑니다~~~”

“안 돼────!!!”

탈곡기에 털리는 곡물처럼 탈탈 영혼이 털리고만 나.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축 늘어진 내가 다음으로 끌려간 곳은 다름 아닌 화장대.

그래

난 지금까지 난 그냥 옷을 고른 것뿐.

아직 단장은 시작하지도 않았었다.

이때 난 여자란 생물에 존경심과 두려움을 함께 느꼈지.

수 시간에 걸친 단장.

문제는 이게 내가 자처한 리허설이라는 점.

옷이야 골랐으니 상관없는데, 단장은 실전에서 다시 해야 해......

이후 자세, 어투, 억양 등등

별의 별 나를 기다리는 수업들까지.

하아........

비록 이렇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지만, 성과는 충분했다.

덕분에 지금의 난 그야말로 준비 만전!

그 어떠한 상황에도 문제없다 확신한다.

이미 얼굴부터 압살인데 무슨.

내가 거울보면서 감탄했다니까?

생얼로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역시 여자는 메타몽이라고 제대로 꾸미니까 그냥 사람이 달라졌어.

관련된 정보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반복해서 공부했고. 예의범절도 알리샤의 도움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레벨.

비록 제국 예법은 정보가 부족해 흠이 있지만 이는 지구 쪽으로 어떻게든 커버 쳤다.

그렇기에 난 조금도 두렵지 않다.

이번에 오는 이가 무려 제국의 제 1황자, 그것도 황태자 자리에 오른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뭐 어쩌라고?

황제가 온다 하더라도 상관없는데.

그 어떠한 질문, 반응에도 완벽에 가까운 대처를 보여주어 문명 지구인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테라에 널리 알려─

“저와 결혼해 주십시요.”

“뒤져라. 패도필리아 자식아.”

정의의 철권(발)이 황태자의 안면에 작열했다.

* * *

내가 황태자란 양반의 면상에 싸커킥을 날린 이후 회의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다행히 최소한의 개념은 탑재한 인간이었기에, 사고를 친 건 1차 회의가 끝난 이후.

나의 대한, 정확히는 지구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 발할라의 이야기를 전한 후 그는 그렇다면 발할라와 제국의 동맹을 위해, 더 나아가 지구와 테라의 교류를 위한 혼인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벌어진 것이 지금의 사태

“어찌 전하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는 제국에 대한 모욕입니다!!”

“절대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요!”

당연히 제국 측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냥 황자도 아니고 황태자의 얼굴을 걷어차다니, 그것만으로도 3족을 멸할 대역죄인데,

난 그걸 넘어서 그를 휭~~~하고 복도 끝까지 날려, 벽을 뚫고 밖에 떨어지게 만들었으니,

그나마 황태자란 그 인간도 한가닥 하는 소드 맛스타라고 하여, 기절하는 선에서 끝나긴 했지만,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다름없다.

“뭐해 연장 챙겨!”

“3족을 멸해? 미친 놈들. 그럼 우린 제국 자체를 멸해주마.”

“이것들이 살살 나가주니까. 우리가 등신인 줄 아냐?”

물론 우리 쪽 사람들도 난리가 났다.

특히나 흉신악귀처럼 일그러진 어버지의 표정이 압권.

당장이라도 기절한 황태자에게 피니셔를 치겠다 소리치는 사람들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뚫을 정도였지.

뭔가, 내가 나름 인망은 있는 듯 싶어 기쁘면서도 동시에 혼돈의 카오스로 향하는 현 상황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에휴~~~ 미안. 내가 좀 참았어야 했는데. 너만 고생이다.”

“........알아주니 그나마 고맙군.”

평소라면 괜찮다라 말할 알리샤지만 차마 지금은 그렇지는 못 하는지 알아줘서 고맙다라고 답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이를 중재하는 알리샤만 죽어나가는 판국.

그나마 그녀가 강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니 사단이 나도 진작에 났다.

“일단 그대의 일에 유감을 표하네. 그대도 황태자의 말에 기분이 많이 나빴을 거야.”

“아니.....뭐, 기분 나쁘기는 한데. 내가 심했다는 자각은 있어.”

싸커킥은 좀 너무했지.

사실 무례하긴 했어도 페도필리아 소리 들을 건 아니거든?

내가 일단 날 마녀라고 소개한 게 실수 중 하나.

마녀잖아 마녀.

나이를 안 먹는 불로의 종족.

어려보여도 실제로는 나이가 많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단 말이야.

그러니 황태자가 그런 행동을 보여도 사실 전혀 이상할 게 없지.

또 어린 것도 지구 기준일 뿐이든.

내 외관상 나이가 대충 15세 정도인데, 이 나이면 테라에서는 이미 성인이야.

결혼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나이지.

거기에 좀 자뻑 한스푼만 넣으면 내 외모도 장난 아니었으니까.

평소에도 잘 나간다 자부하는데, 그때는 미친듯이 가꾸기까지 했으니 오죽하겠냐고

내가 거울 봐도 한 3초간 넋을 잃을 수준인데.

한국에서도 흔하잖아?

길거리에서 고백하는 거.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뭐, 요즘은 그것도 하나의 큰 무례로 들어가는 만큼, 내가 화를 내는 건 정당했지만, 대응이 심했던 것도 인정하는 부분이지.

“알고 있으니 다행이군.”

“솔직히 우리 쪽 사람들이야, 내가 말리면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제국은 어떻게 하지? 걔들은 진짜 큰 일이잖아? 물러설 것 같지 않은데......”

“황태자의 얼굴을 걷어찬 일이다. 그리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긴 하지.”

3족을 멸한다고 하는데. 이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제국의 법이 그렇다.

황족에 대한 능멸이니, 반역죄로 취급해야 할 사안.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황태자가 깨어날 때까진 기다려보자고.”

“그가 현명한 선택을 내리길 바래야겠군. 여차하면 곧 찾아올 알브 헤임의 사신단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무엇보다 그대는 강하니까.”

“쩝, 이번에는 대표답게 처리하고 싶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이렇게 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것인지.

일단 나와 알리샤는 여기서 이야기를 마쳤다.

제국도 황태자가 깨어나기 전에 뭘 할 생각은 없을테니.

황태자.....

알리샤의 말처럼 그가 부디 현명한 수를 골라주길 바랄 뿐이다.

너희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말이지.

* * *

“무례를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혼인 이야기는 부디 잊어 주십시요.”

깨어나자마자 만류하는 수하들을 뚫고 나를 찾아온 황태자의 첫 마디다.

싱거운 결말이라 아쉬운가?

근데 이게 베스트야.

우리에게도, 저들에게도 말이지.

얼굴을 보아하니 저번처럼 얼빠진 면상은 아니었다.

즉, 이성을 찾고 계산도 끝났다는 소리.

“이번 일은 서로 없던 걸로 하는 게 어떠신가요?”

“동의하는 바입니다. 서로 마음이 맞으니 다행이군요.”

“이상한 개수작은 하지말고.”

“하......하하. 보기와는 다르게 입담이 걸걸하시군요.”

야, 니가 그래봐야 내가 언빠라서 기분만 더럽거든?

어디서 지저분한 꽃미남 면상을 들이대는 건지.

뭐, 그래도 서로 의견이 같아 다행인 건 동의한다.

우리로서도 괜한 피를 볼 필요 없어서 좋고, 원래 계획과 최대한 비슷하게 갈 수 있어서 환영할 일이니까.

황태자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다.

이게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할 이야긴 아니잖아?

황태자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거지.

또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의 인물에게 죄를 묻는 리스크도 계산에 넣었을 테고.

무엇보다 제국은 현재 하나의 세력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니.

실제로 황태자는 약간에 대화를 주고받은 후 바로 내게 말했다.

“지구, 발할라........많은 관심이 갑니다. 이미 테라에서 어느 정도 활동을 하신 듯 한데. 무림의 일을 알고 계십니까?”

“물론.”

“이야기가 편하겠군요. 여러분들의 소식이 제국에 전달되면 그리 달가운 반응이 돌아오진 않을 겁니다. 무림 때 저희가 좀 많이 데였거든요.”

“그것도 잘 압니다. 근데......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게 아닌지?”

“........여러모로 조사를 많이 하신 듯 하군요.”

“제국 내부의 상황도 제법 조사했죠. 으음......구체적으로 당신 자리가 이번에 위태롭다는 거? 배다른 형제자매들 때문에 고생이 많아 유감입니다.”

씩 입꼬리를 말아올리는 내 말에 황태자는 말없이 굳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잠깐이었을 뿐, 그는 도리어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음을 보였다.

“저흰 할 이야기가 많은 거 같습니다.”

“우리도 상대가 황태자면 편하죠.”

“그렇겠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하니 다음 만남은 즐거울 듯 싶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황태자는 돌아갔다.

이번에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우리와 알브 헤임의 사이가 어떻게 흘러갈지 본 후에 행동할 모양이네.

뭐, 상관은 없지만.

“아......그 저기.”

“응? 더 할 말 있나요?”

돌아가다가 갑자기 몸을 멈춘 그는 이내 볼살을 긁적이며 발을 멈췄다.

이내 부끄럽다는 어조로 말을 더듬거리고는 살짝 고개를 틀며 말했다.

“테라와 지구나 발할라와 제국 같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첫눈에 반해서 한 말입니다. 부디, 기분 나빠하진 말아주시길. 그럼.”

그후 마치 도망이라도 가듯 떠나가는 황태자 나으리

순간 벙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난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고는 입가에 상큼한 미소를 지은 체 가버린 그에게 가운데 중지를 세우는 것과 함께 답했다.

“씨X 그래서 더 기분 나쁘다고.”

나 언빠라고 언빠.

꺼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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