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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55화 (55/116)

〈 55화 〉 문화 교류 (깽판) (3)

* * *

사람은 실수를 하면 말이 많아진다고들 한다.

딱 지금이 그짝.

단 한 마디.

아무런 결과물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거면 끝날 이야기를 참으로 길게 풀어서 그는 설명했다.

마치 이번 일이 순전히 자신의 무능 때문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통 사람이라면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을 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태자는 그런 수하를 향해 다그치지도 그렇다고 호통을 치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

흡사 누가보면 자는 게 아닌가 싶은 모습이지만, 당연히 그런 건 아니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수하가 샤말리아에 가서 어떤 소리를 들었으며, 어떤 것들을 보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길게 늘어지는 말은 하나라도 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그 상황을 자세히 나타내니까.

그래도 일단 그가 하는 말 자체가 일종의 변명이니,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이상한 부분은 나름의 논리로 추측을 더해야 하지만.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진 수하의 보고는 끝이 났다.

진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지켜보는 자신이 안쓰러울 지경.

하기사, 아무 반응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상사 앞에 혼자가 이야기하기는 여간 진이 빠지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고했다.”

“예......”

짧은 치하의 말.

그 이상은 없었다.

오랜 준비와 거친 길을 다녀온 그에게 참으로 야속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수하는 만족했다.

저런 말을 해준 것 자체가 실패에 대한 벌을 묻진 않겠다는 의미이니.

태자는 잠시 턱을 짚은 체 고민에 빠지고는 이내 눈을 뜨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 알브 헤임 쪽으로 넘어간 건 아니란 말인데.......”

이번 무림의 준동

결코 곱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제국은, 태자는 그리고 각 황자, 황녀들 모두 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필사적으로 협력 세력을 긁어모으는 것이지.

더군다나 제국은 무림 황실의 제 1 목표가 틀림 없을 터.

세계수를 중심 삼아 진지 방어에 들어가면 사실상 답이 보이지 않는 알브 헤임이나, 먹어봐야 결국 잔가지에 지나지 않을 왕국들 따위보다는 제국을 노릴 것은 자명한 일이니까.

그렇기에 다크 엘프는 놓치기에는 너무나 배가 아픈 자원이다.

제국을 위해서도, 그리고 태자 자신을 위해서도.

탁상을 두드리며 고민하던 결국 태자는 윗옷을 정돈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가지. 다시 사신단을 준비하도록.”

아쉬운 부탁을 하는 쪽이 이미 진 것이다.

이렇게 점잔 빼고 있어봐야, 뭐가 바뀌는 것도 없을 테니, 자신들은 엘프들이 절대 하지 않을 것을 해야만 저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제아무리 알브 헤임이 아쉬운 소리를 해도 순혈주의로 가득찬 머리로 하이엘프가 발걸음을 할리는 없으니, 제국의 황태자인 자신이 직접 움직인다면 나름의 진심과 성의를 알아줄 터.

그는 빠르게 오늘치 서류들을 확인하며 당장 급한 것들부터 처리하기 시작, 수하들을 향해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출발했으면 좋겠네. 이번은 알브 헤임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했으니, 다음은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지.”

“저....전하?”

“지금 그게 무슨......”

수하들을 귀를 의심했다.

아니, 지금 저게 무슨 말이냐는 듯.

그냥 황자도 아니고 황태자에 자리에 앉은 그가, 내부나 외부 모두 말이 아닌 시국에 제국을 비우다니.

순간적으로 벙찐 표정을 짓던 그들은 이내 고개를 흔들며 그의 앞에 다가와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아니될 말씀이십니다!!”

“태자 전하께서 제국을 비우다니요?!!”

“저희가 다시 갈 터이니─”

“다시 가서 완벽하게 성공해올 자신은 있나?”

한 손은 여전히 분주하게 팬을 움직이며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그의 말에 수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파견되었던 그는 가장 유능한 인재였으니

실패했다고 해도 벌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니까.

그런데 지금에 와서 자신들이 다시 간다고 한들 뭐가 바뀔 꺼라 보기는 힘들지.

“그......그래도....”

“전하 너무 위험하옵니다.”

사막의 횡단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길잡이도 연속적인 행군에 다시 동참해 줄지 모르는 상황이고.

또 마땅히 사신단.

그것도 제국의 황태자가 직접 움직이는 사신단이라면 그에 따른 외관이나 준비도 잔뜩....

“결국 돈 문제 아니냐. 내 사비에서 적당히 꺼내 써.”

시국이 시국인데 무슨 걱정을 하는 건지.

그거 좀 아끼겠다고 알리샤를 놓치란 말인가?

제국의 4기사라 목을 뻣뻣하게 세우는 이들 중에 그녀와 비빌 수 있는 건 부동의 제 1검 뿐인데.

그런 인재가 고작 진지 방어나 고수할 알브 헤임으로 가는 꼴은 도저히 배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또 그래야 그동안 타종족에 관한 친화 정책을 고수한 자신의 입지가 살고.

“오늘 따라 서류가 눈에 잘 들어오는군. 일이 빨리 끝나겠어.”

설마 이거 끝날 때까지 여기 있는 건 아니겠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한 수하들은 결국 얼굴을 감싸쥐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가려는 찰나.

문이 반대편에서 활짝 열렸다.

“저....전하!!!”

무례하기도 그지없게 황태자의 집무실을 열고 들어온 이는 태자의 측근이며 동시에 비서관인 여인.

아무리 그가 잘 대해준다고 해도 너무나 예의없는 행위에 태자도 이제 막 밖으로 나가려는 그들도 눈살을 찌푸리려는 찰나

“지금 마계 쪽에서 속보가!!”

그녀가 가져온 소식.

이는 새파랗게 질렸던 수하들의 얼굴을 아에 검은 그림자로 뒤덮고

급한 일 정도는 끝내고 출발하려는 태자가 서류를 집어 던지게 만들었다.

“최대한 빨리가 아니라, 무조건 오늘 중으로 출발한다! 서둘러!!”

이젠 다크 엘프를 잡지 못하면 배가 아픈 게 아니라 오장육보가 뒤틀리게 생겼다.

* * *

안녕하세요.

전 셀피네라고 합니다.

라그나 대전사님과 함께 이방인 분들을 마중갔던 쌍둥이 다크 엘프 중 언니 되는 쪽이에요.

마중이라고 해도 괜찮겠죠?

아무튼.

요즘 전 고민이 있답니다.

첫번째로는 제 동생 셀라와 라그나 대전사님에 관한 거예요.

셀라와 라그나님을 대표로 일족의 어른 분들과 어린 신세대들이 지금 이방인 분들의 세계로 넘어가서 교류를 진행 중이에요.

뭐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이방인 분들의 성녀님이 곤란하다고 하셨는데, 어찌저찌 해결을 봤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문화 교류, 서로에 대한 정보 탐색, 그리고 대족장님께서 계획 중이신 이주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후로 셀라가 이상해요.....

한 번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니 저보고 글쌔.

“언니, 우리 숲에서 꼭 살아야 할까?”

“응?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꼭 숲에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서.....”

저희의 숙원이 숲의 터전을 잡는 건데, 대체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철이 좀 없는 동생이기는 해도 그런 부분은 똑부러졌었는데.

라그나님께 여쭤봐도 자꾸 제 머리만 쓰다듬으시고.

뭔가 이방인 분들의 세계가 무서워졌어요.

저희 정말 가도 괜찮은 걸까요?

그 다음 고민으로는 바로 어린 마녀님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들이 오시기 전에는 전 라그나님의 부사수로 마계 전선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세간에서는 암흑의 땅이라고 부르는 저희의 사막은 마계와 경계가 되는 곳이라 서북부 마계 전선은 넓으면서도 항상 예의주시해야 하는 곳이거든요.

좀 피곤한 일이지만 중요한 일인 만큼 자부심을 가지며 임무에 임하고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사수이신 라그나님도 가버리셔서 임무가 변했는데, 바로 꼬마 마녀님의 호위!

헤헤, 사실 호위가 필요 없으신 건 저도 알아요.

아크 리치. 카오스 엘프.......그 모습을 어떻게 잊을까요.

거기에 그들 뿐만이 아니라, 무시무시해 보이는 듀라한도 있고, 평범한 드래곤과 다르게 생긴 스컬 드래곤도 있고.

호위는 무슨

처음에는 오돌오돌 떨려 몸이 움직이지 않아 오히려 마녀님이 저보고 괜찮냐며 걱정해주셨지요.

아마 안내인 같은 역할이 아닐까요?

그렇게 잔뜩 긴장한 채로 그분을 따라다니며 샤말리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가 눈치도 없이 그만, 절 보고 오늘도 꼬마 마녀님과 산책이냐고 하시더리니까요?

번개처럼 달려가 아저씨 입을 막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꼬마 마녀라니!!

그만한 경지에 오른 마녀님이 나이가 어릴 리가 없잖아요?!!

대체 이 아저씨는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엄청 기분 나쁘셨을 텐데.....

오돌오돌 떨면서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는데, 앞에서는 아무 말도 없고...

눈물까지 찔끔 흘렸답니다.

근데, 아니 글쎄 그분은 전 뒤로하고 뒤에서 아저씨랑 대화를 나누고 계시더라구요.

어제 받은 빵 맛있더라. 잼도. 그거 뭐냐, 더 주면 안 되냐?

잼은 제국에서 사온 거라 더 없다. 대신 빵은 내가 만든 거니 더 줄 수 있다. 근데 나도 그 홍차라는 거 맛있던데 좀 주면 안 되냐?

등등

알고 보니 혼자 돌아다니시면서 이미 만난 사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좀 의문이 들어 물어봤죠.

“꼬마 마녀라는 말이 기분 나쁘시긴 않으신가요?”

“뭘, 친숙하고 좋기만 하구만. 그리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야. 너희들에 비하면 내가 나이가 많은 게 아니거든.”

나만 몰랐는데, 이미 일대에선 인기인이셨습니다.

듣자 하니 자칭 황금손이라고 했나?

저희는 싸울 줄 아는 주술사는 제법 있어도 정통 마술사는 굉장히 드문 편이거든요.

탑의 지부 같은 곳도 여긴 없고.

덕분에 생활에 쓰는 마도구의 수리는 정말 힘든 일인데.

그분이 지나가 손가락을 튕기면 무슨 마도구든 새것처럼!

제가 봐도 인기가 없을 수가 없더러구요.

그때부터 였을까요?

그분이 조금 무서워지지 않기 시작했어요.

다들 꼬마 마녀님 꼬마 마녀님 하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두려움이라는 가림망을 벗고 보니 굉장히 배려심도 많으신 분이더라구요.

오히려 그동안 알 게 모르게 절 많이 생각해주셨는데, 전 그것도 모르고....

그런 그분이 고민에 빠지셨으니 저도 고민인 거죠.

“나 요즘 뭐하냐?”

“네?”

“아니, 뭔가 하는 일이 없는 거 같아서.”

하는 일이 없으시다니.

어제는 알리샤님 부탁으로 전선에 사용하는 마도구 점검까지 해주셨는데, 왜 그러시는 걸 까요?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지금도 손에 들고 계신 거 관측용 마도구 아니신가요? 그거 탑에 보내도 수리에 한달은 걸리는 건데.”

“아니, 마도구 수리는 친교를 다질 겸 취미로 하는 건데, 난 특사로 온 거란 말이야. 예지가 제국이랑 알브 헤임 조사도 신경써서 하라고 했고.”

“그거 이미 손을 떠났다고 하셨잖아요?”

제국에는 별무문 사람들을 일부 심어두어 거점 마련에 성공.

차근차근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고.

알브 헤임 같은 경우에는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작업에 난항을 겪는 중이라고 하셨죠.

뭐, 알브 헤임 엘프들이 꽉 막힌 건 저희들이 더 잘 알기도 하고.

마녀님의 세계에서 오신 하이엘프 님들이 차근차근 공략 중이라고 저번에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굉장히 놀랐었어요.

거의 새로운 세계에서 처음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이렇게 순조롭게 잘 풀릴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잘 하고 계시면서.

“샤말리아 말고, 다른 도시로 가보시겠나요?”

사막에 자리잡은 저희는 당연히 샤말리아 말고도 많은 도시가 있습니다.

하긴 슬슬 샤말리아는 다 둘러보셨을 테고, 친교를 쌓는다는 점에서는 최고이시니, 다른 곳에 관심이 가시는 건가 싶어 전 물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저으시는 군요.

“아냐, 거기 가봐야 여기랑 크게 다를 건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러고 보니 전에 들었는데, 색욕의 군주가 마왕이었다고 하던데. 군주랑 마왕이랑 달라?”

“네. 마왕은 마계의 7명의 왕이죠. 마계인의 자격을 가진자가 찬탈하는 상징적인 자리같은 거에요. 찬탈이라는 과정없이 공석이 되면 마왕 쟁탈전이라는 전쟁이 벌어지죠.”

“군주는?”

“그건 잘.......얼핏 들었는데, 어떠한 조건을 맞추면 오를 수 있는 일종의 경지? 자격? 같은 거라고 하던데. 거의 전설로 취급되는 거라 아는 사람이 없을 거에요. 그래도 군주가 마왕의 위에 있는 건 확실하지만.”

일단 마왕처럼 단순한 상징성만 가지는 건 아닐 겁니다.

당장 색욕의 군주가 군주의 좌에 오른 후, 테라의 모든 존재가 자연스럽게 그걸 자각했다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지요.

일단 최대한 아는 것들을 풀어서 마녀님께 말씀드렸는데, 그분은 침대에 누워 잠시 고민하시더니 이내 다리를 번쩍 들어 반동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네? 그럼 저도 준비를”

“아냐, 넌 따라오지마, 대신 알리샤랑 민준이 한테 말 좀 전해주라.”

“어디 가시게요?”

어깨를 풀며 창문 밖으로 거대한 스컬 드래곤을 부르시는 마녀님.

전 이때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 후 스컬 드래곤이 모든 모습을 보이고 마녀님이 탈 수 있게 고개를 숙이면서 그분은 절보며 무슨 산책이라고 하는 것 마냥 말했지요.

“마계에 좀 다녀 올게.”

“.........네?”

“아니, 마왕이란 놈이 7명이나 있다면서? 색욕의 군주라는 놈도 마왕에서 군주가 됐으니 뭐 아는 게 있지 않겠어?”

“지금 그게 무슨....”

전 눈을 크게 떠 깜박깜박 거렸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마왕을 만나러 가신단 말씀일까요?

벙찐 얼굴로 넋이 나가 있으니, 그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귀걸이를 꺼내 제게 던지셨습니다.

“뭔 일 있으면 그걸로 연락하라고 하고 마왕들 주둥이 좀 비틀고 올 게.”

─펄럭!!

거대한 피막의 날개가 움직이며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스컬 드래곤

전 이날 그분을 꼭 막았어야 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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