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문화 교류 (깽판)
* * *
툭툭툭
정적이 감도는 회의실에서 울려 퍼지는 탁상 두드리는 소리.
신경이 거슬릴 만도 하지만, 딱히 뭐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이번 사안이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함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어려운 문제에요.”
“그렇지.”
“하필이면 땅이라니......”
예지도, 오랜만에 뵙는 아버지도, 직접 알리샤와 대면했던 성환이도 모두 한마음이 되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크 엘프의 대족장, 알리샤가 긴밀할 협력을 대가로 요청한 건 재화도, 마도구도 우리 측에 대한 정보도 아닌 땅이였으니까.
그것도 그냥 영토가 아니다.
대수림.
풀숲과 나무가 우거진, 다크 엘프들이 충분히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땅을 저들은 원했다.
“이건 우리가 해결할 선을 넘었다.”
“그건 그렇죠.”
“일본 측에서 마련하는 건 무리려나?”
“당연하지, 크기도 크기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영토 문제야.”
“그것도 있지만, 아마 쟤들도 거절할 껄? 대수림이라잖아. 대수림. 일본에 대수림이 있나? 있어도 어차피 섬나라라 좀만 이동하면 바다라서 싫다고 할 거 같은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한 아버지와 그에 답하는 예지.
성환이는 혹시나 싶어 일본을 언급하지만 나와 예지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일본은 만에 하나 저들과 거래를 트게 될 경우 그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했었다.
허나 그것도 지킬 선이 있는 법.
영토는 마지노선을 통과해도 한 참 통과해 아에 뚫어버린 거지.
그렇기에 우리가 아예 일본에게 이 사실 자체를 전달하지 않은 것이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건 없지 않아?”
“““뭐?”””
내 말에 한순간에 모이는 시선을 바라보며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아니, 어디까지나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투로 이야기 한 거니까. 당장 뭘 하기로 한 건 아니잖아?.”
다들 심각한 표정들 짓고 있는데, 오해하지 말자.
알리샤와 한 회담은 정말이지 성공적이었다.
이미 힘의 확인이 끝났기에 알리샤는 우리를 무시하지 않았고, 우리 또한 예의를 지키면서 유의미한 대화를 주고받은 시간이었지.
특히 우리 세계에 일어났던 군주들의 침략
이를 조사대로부터 들었던 알리샤는 군주에 관한 건 자신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니 서로에 대한 정보 교환와 협력을 약조하기도 했었다.
난 이를 강조하며 뭘 그리 걱정하냐는 투로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땅, 그 문제는 앞으로 서로 친해지면, 서로 정말 돈독한 신뢰가 쌓였을 때의 이야기잖아. 대충 ‘저희의 최종적 바람은 이런 것입니다’ 하고 얘기해 준 거지.”
오히려 더 자신들을 신뢰해주길 바라며 말해준 것이나 다름 없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호의를 배푸는 자를 믿을 수는 없으니.
우린 이런 목적이 있어서 당신들과 친해지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준 격.
“당장 뭐, 우리가 아마존에 땅이라도 구해서 쟤들보고 오라고 하면 올 거 같아? 우리가 슬금슬금 간 보는 만큼 쟤들도 우리 간 보고 있어. 처음에는 서로 왕래하면서 신뢰부터 쌓을 일이지.”
우리가 테라를 알아가는 만큼 저들도 우리의 세계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은 교류부터 시작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회담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기본적인 협력. 군주에 대한 정보의 거래를 성사했고.
마주한 문제에 관한 사안
우리측에서는 테라와 우리 세계에 대한 연결의 준비.
저들은 그런 우리들과의 관계 체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으며
최종적인 목표
침략자에 대한 보복, 군주 말살
이세계의 대수림을 향한 일족의 이주
라는 걸 서로 확인한 상황.
“오히려 기분 나쁠 정도로 일이 잘 풀리는 거 같은데?”
“그건 그렇지만.....”
“영토는 예민한 문제야. 일단 우리가 이 문제를 거론할 자격이 없는 게 문제잖아.”
“발할라는 국가가 아니니.”
아무래도 모두는 가지고 있지도 않은 패를 가지고 거래를 트는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네.
하기사, 그럴만도 한 게 발할라는 집단일 뿐, 말 그대로 국가가 아니니까.
아무리 우리가 돈이면 만사 오케이인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고, 또 요즘 겪었던 전쟁 때문에 헐값으로 떨어진 땅이 많다고는 하지만, 영토는 다른 문제이니.
막상 저들이 땅을 원할 때 우리가 어떻게 구해다 주냐는 거지.
그러나 난 그 문제를 굳이 지금 고민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다들 너무 멀리보는 거 아니야? 그때 되면 또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 운 좋게 쟤들이 테라에서 숲을 구해서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야, 니가 너무 무대포인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거래를 틀 때 서로 물건 확인 정도는 하는 게 기본인데, 우리가 사실 ‘당신들 살 땅 구할 능력이 없어요’ 라고 하면 쟤들이 어떻게 나오겠냐?”
“뭘, 그것도 그렇네.......쩝, 내가 해결할까?”
순식간에 회의에 참석한 모두의 눈이 크게 확장된다.
거, 잘못하며 눈이 튀어나오겠네.
대충 말은 안해도 ‘니가 어떻게?’라고 묻는 모습이다.
허허, 사람을 뭘로 보고....
“다들 대충 아마존 같은 먼 곳만 찾는 거 같은데, 우리 좋은 거 있잖아?”
난 슬쩍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어 하나의 물건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 모두에게 보여줬다.
영롱한 빛깔이 감도는 구슬.
존재 자체가 기밀이지만, 여기 이게 뭔지 모르는 인간은 없으니까.
예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꺼낸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장 첸 영혼 아니에요?”
“응”
“그걸로 어떻게 땅을......설마?!”
“어, 중국한테 이거랑 땅이랑 좀 바꾸자고 하면 되잖아.”
대수림이라는 말과 다크 엘프가 보여준 부족민 같은 이미지에 다들 아마존만 떠올리는데, 살기 좋은 숲은 오히려 중국에 많지.
적당한 관광명소만 떠올려 봐라.
그 장관.
그 경치.
대자연의 숨결이 멀리 있는 게 아니지.
하지만 성환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거 주면 장 첸 다시 풀려나잖아?!”
“우찌라고. 다시 덤비면 그땐 진짜 죽여버리면 되지.”
그리고 사실 그게 목적이야.
데스 나이트에 제작에 관한 이론 연구는 모두 마쳤거든.
영혼 추출이 성공한 이후 진행했던 뻘짓 아닌 뻘짓이 드디어 소정의 성과를 거둔 셈이지.
이제 남은 건 실험 밖에 없다.
단지......여기서 문제가 좀 있는 게 시체가 필요해.
단순한 시체가 아니라 데스나이트 제작에 사용될 영혼 본인의 시체가.
소재를 활용한 그릇을 만들어 대체할 수도 있지만, 10할의 성능이 나오진 않더라고.
뭐, 역으로 술자 본인의 시체를 가지고 이런 저런 가공 처리를 하며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도 있으니 꼭 아쉬움만 따르는 건 아니지만.
때굴때굴 무슨 구슬치기용 구슬마냥 손가락으로 장 첸의 혼을 굴리는 내 모습에 예지는 혀를 내둘렀다.
“애지중지하던 걸 그렇게 다루는 걸 보니, 한다는 연구가 다 끝난 모양이네요.”
“뭐다 끝난 건 아니야. 혼이라는 게 심오한 부분이 많더라고. 그래도 이걸로 뽑을 만큼 뽑아먹은 건 사실이지만.”
툭!
테이블 위에 구슬을 내려놓은 나.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조금 문제가 있지 않냐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렇게 뒤에서 작업하는 건 미국 때문 아니냐? 중국에서 다크 엘프들이 거주할 땅을 구해도 괜찮을지.....”
“아부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십니까?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언제 미국 눈치를 봤다고”
“요즘은 좀 많이 보잖아. 누구누구 때문에 아주 그냥 개박살이 나서.”
“헤헤! 뭘, 부끄럽게 시리.”
“이런 미친.....”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이후 회의를 진행하면서 마지막까지 이것보다 좋은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전 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중국만큼 미국의 눈이 닿지 않은 곳도 없고.
또 아까 말대로 눈치를 보지 않는 나라도 중국 말고는 없으니까.
지금은 기세가 죽었다고 하지만, 요는 힘이 딸리는 게 문제이니, 우리가 적당히 등만 밀어줘도 어깨에 뽕이라도 찬 것 마냥 바로 달려들게 중국.
미국을 상대로 이만한 특효약이 또 없지.
물론 미국과는 잘못하면 완전히 갈라설지도 모를 일이지만, 요즘 그 치들 하는 꼴을 보면 동맹국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니까.
전에 인재 약탈에 대한 작은 복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땅 문제는 당신이 하드캐리 해버렸네요.”
“나도 염치가 있는 사람인데 그동안 받은 게 많은 만큼 밥값은 해야지.”
“존재 자체로 밥값은 해서 딱히 상관은 없었는데.”
피식.
입가에 미소를 피운 예지는 기왕 하는 거 하나 더 부탁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땅을 받아도 당신 땅인 거잖아요? 다크 엘프와의 거래 문제는 당신이 해줄래요? 중국 쪽에 이야기는 제가 하고 있을 테니까.”
“어......나 대가리 쓰는 거 잘못하는데?”
“대가리 쓸 일이 뭐가 있다고, 아까 당신 말대로 아직은 교류 관계이니 그냥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단계에요. 거기에 당신만큼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신뢰도 때문이지?”
“그거 플러스 무력. 한 비율은 1대 99정도?”
“야........”
“뭐, 신뢰가 없다는 게 아니라가, 그만큼 힘이 대단하다는 칭찬이에요. 칭찬”
하나도 칭찬으로 들리지 않습니다만?
뭐, 그래도 어차피 내가 갈 계획이긴 했다.
안 보냈으면 오히려 보내주면 안 되냐 하려고 했으니 오히려 좋은 셈.
군주라 불리는 그 씹쌔들을 찾기도 찾아야 하니까.
특히 용제 개XX는 뒤졌어.
“제국이랑 알브 헤임이라고 했나요? 거기 나라들.”
“옆에 붙은 제일 큰나라가 그런 이름이라고 하긴 했지.”
“그 두 나라에 대한 조사만 조금 신경써서 해주세요. 충돌할 일이 있으면 재량 껏 하시고.”
“어? 그래도 됨?”
“어차피 당신이 저희 필살기에요. 이번 일 보고 알았잖아요? 대화도 먼저 주먹을 보이고 나서 하는 거란 걸. 대신 깽판 칠 꺼면 확실하게 치고 와요. 누구도 저희 못 건드릴 정도로 확실하게, 장 첸 때처럼 적당히 할 필요 없으니까.”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소리.
장 첸과의 전투를 적당히라고 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들었으면 말이 되냐 물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지.
겨우 쓴 소환수는 2마리 였을 뿐이니.
거기에 난 움직이지도 않았고.
더군다니......
[융합마술] 4 LV
“헤에~~~ 뭔가 즐거운 시간이 될 거 같네.”
“뭐지, 갑자기 등이 쌔한데....”
갑자기 닭살이 돋기라도 했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예지를 보며 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이후 알리샤와 우리는 약 3차례에 걸친 회담을 더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성환이에 어머니가 참여한 자리.
하이엘프에 등장에 당황한 모습을 보인 알리샤였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이를 잘 대응했다.
사실 떠본 거기도 하지.
딱봐도 엘프와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닌 모양이었으니, 우리 측에 엘프가 있단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나올지 반응을 살핀 것.
하지만 연륜이라고나 할까.
알리샤는 조금 몸을 멈칫했을 뿐, 오히려 우리의 의중을 알았는지 하이엘프든 엘프든 예의를 갖추기만 하면 딱히 상관없다고 잘 설명해주셨다.
뭐, 처음에는 당황할 수 있겠지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만나는 게 용병.
자신들이 엘프를 싫어하는 건 모욕적인 언사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아니라고.
오히려 회의 마지막에는 하이엘프와 이렇게 대화를 나눈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며, 역대 족장 가운데서도 이런 일을 해낸 건 자신 뿐일 거라 약간 들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다음은 예지가 참석한 자리.
의외로 이때가 더 반응이 격했는데. 이어진 알리샤의 중얼거림을 통해 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성녀.....”
대체 어떻게 예지가 성녀인지 알았냐는 물음에, 알리샤는 성녀 특유의 기운이 있다고 할 뿐이었다.
단지, 문제라면 이건 알리샤가 특수한 것이 아닌 아마 일정 경지에 접어든 누구라도 예지를 성녀로 볼 거라는 점.
예지의 테라행은 계획에 없었으니 당장 문제될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훗날 예지가 테라로 오는 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성녀란 테라에서 어떤 위치인가요?”
“신의 대리자. 교황보다도 높은 위치를 가진다. 단지, 그대는 테라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천신의 사도와도 닮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군. 새로운 사도의 증거 혹은 양립할 수 없는 절대적 이단. 이 극명한 두 가지 중 하나가 그대를 바라보는 교단의 시각일 가능성이 높다.”
듣자하니 현재 테라에 존재하는 성녀는 총 3명.
각자 모두 신을 섬기는 대천사의 모습과 흡사한 능력과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한다.
정령은 아니지만 정령과 굉장히 흡사한 힘이라고 했나?
아무튼 예지가 다루는 힘은 종류는 성력, 빛
이건 대천사의 능력이 아니라고 한다.
“조심하시게. 그대는 어쩌면 테라에 유례가 없는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
어머니와의 만남과 다르게 예지를 보내는 알리샤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마지막 만남은 본격적인 특사로 확정된 인물들이 그저 잠깐 다크 엘프의 도시를 둘러보는 정도였지.
뭐, 맴버를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헤헤, 우리 가족 전부 소풍이다!!”
“미친년”
그래 일단 우리 가족 전부가 해당하긴 하지.
뭔 개소리냐 할 수 있는데,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 오해하지 말도록.
종족 때문이다.
당장 내가 마녀
뭐, 초?가 붙는 마녀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마녀다.
알리샤에게 우연히 들었는데, 알고 보니 테라에 이미 마녀가 있다고 하더라고.
심지어 인간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존중받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모양이다.
영원한 삶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미.
뛰어난 마술 실력과 그에 따른 재력.
팔방미인이 따로 없는 종족이라고들 한단다.
심지어 엘프처럼 자존감에 쩔어 사는 것도 아니고, 사근사근하면서 친근하게 인간들 사이에 녹아 살아간다고 하니.
엘프 미녀보다 마녀와 결혼하는 남자가 인생의 승리자라나 뭐라나.....
단지, 옥의 티가 하나 있다면 괴짜가 상당히 많다고.
“뭐여? 왜 다들 날 그런 눈을 보는 거야?”
“역시 종족 영향이 좀 커서.....”
“현주씨도 그렇고 역시 그렇겠지?”
“그래도 팔방미인 소리 들으니, 누가 데려갈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네.”
아무튼 그리하여 난 마녀 포지션.
그 다음 아버지는 오크 로드
어머니와 소라는 하이엘프.
알고 보니 우리 가족 중에 인간이 없구나......
뭐 아무튼 이런 넓은 종족 바리에이션.
뛰어난 실력에 종족에 구분 없이 서로를 신뢰하는 가족 관계란 점에서 우리 가족이 모두 특사로 발탁된 것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