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다크 엘프의 숲 (5)
* * *
속전속결로 시작된 우리들의 회담.
저들 측 대표는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듬직해 보이는 남성.
이름이 라그나라고 하던가?
그리고 우리 측은 성환이다.
단지, 서로 밑밥을 깔고 시작했는데, 서로 똑같이 스스로를 임시 대표라 소개했다는 점.
라그나는 자기 위로 대족장이라는 분이 계시고 자신이 받은 명령은 우리들을 그분께 안내하는 것이라 말했고.
성환이 역시 자신 또한 이번 사신단에 대표를 맡았을 뿐, 우리들은 수평적 관계이며 이 사신단을 꾸린 발할라의 대표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대족장이라는 분께 찾아가는 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시겠죠?”
“이해합니다.”
단호한 성환이의 말에 라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넘자마자 내가 시몬을 데리고 생쇼를 한 이유가 뭐겠는가?
저놈들이 여차할 경우를 대비해서 언제든지 돌아 수 있도록 길을 터둔 거지.
지금 이쪽에서 게이트를 넘으면 반대편에 바로 예지와 유리를 필두로 훨씬 더 많은 병력들이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쳐둔 상태다.
생쥐는 고양이를 이기기 위해 뒤를 절벽으로 둔다고 하지만, 우린 생쥐가 아니니, 뒤를 챙겨두는 것이 기본 상식이니.
돌아갈 길인 게이트를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그나 역시 그를 이해하는 듯 보였다.
물론, 그런 정신나간 행위를 보일 줄은 몰랐지만....
“날짜를 다시 정하도록 합시다. 더불어 위치도.”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단계가 아니니, 장소와 시간을 다시 잡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차피 급박하게 전한 전언었다나?
사로잡은 자를 풀어줘 말을 전하기는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들이 정확히 자신들의 의지를 대변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렇기에 이런 경계도 이해한다 라그나는 말하며 다시금 좀 더 유익한 새로운 자리를 권했다.
“그래서 장소와 시간을 따로 잡자?”
“저희는 적대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미리 말했습니다. 구금했던 조사대에게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며, 오늘 내로 전부 돌려보낼 것을 약속합니다.”
화친(??)을 원하는 자세.
더불어 저들은 조금 더 양보하였으니, 회담의 장소와 시간 또한 우리들이 정해도 좋다 말했다.
단지, 두 가지 조건을 붙였는데......
“장소는 여기 테라에 한정합니다. 여기 세우신 진지와 저희 쪽 방향 사이에서 정해주시길 바랍니다.”
“저희에게 여긴 미지의 세계인데, 그렇게 하자는 건 무리가 아닐지.”
“이 근방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사막의 땅. 직접 조사하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땅의 주인을 자처할 자들은 저희 밖에 없으니. 저희는 간섭하지 않을 터이니, 미리 조사를 하시고 먼저 자리를 잡으시면 안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다음은?”
“당신들의 우두머리를 만나고 싶습니다.”
과연
말이 바뀌기를 원하진 않는다는 건가?
이런 저런 대화를 잔뜩 주고받고 았는데, 알고 보니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였다는 건 방지하고 싶은 셈.
실용성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진 상대를 원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성환이 역시 라그나처럼 침묵을 지키다가, 역으로 한 가지 조건부로 승락하기로 했다.
“저희 역시 당신들의 대표를 만나고 싶군요. 그 대족장이라는 분을 말입니다.”
뒤의 라그나를 따라온 이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에 대족장이 저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는 있는 지표겠지.
가벼운 언사에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최소 왕의 준하는 위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라그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렇게 하고 장소와 시간을 전해주시길.”
“연락은 어떻게?”
“여기 진지를 구추하셨으니, 그래도 조사를 위해 1주일은 필요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쯤 저희측에서 인원을 보내지요.”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을 마무리 되었다.
* * *
대화가 끝나 저녁이 되어 임시 막사로 돌아온 나와 성환이, 그리고 민준이와 연희.
가장 먼저 의문을 표하면 운을 땐 건 민준이였다.
“의외로 싱겁게 끝났네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 대족장이라는 사람 누굴지 궁금하네.”
“뭘 1주일이나 기다려?”
“네? 1주일 뒤에 연락 온다면서요? 그때까지 오늘처럼 여기 근방 조사하는 거 아닙니까?”
“문주가 대가리가 좀 딸려서 그래요.”
얼굴에 손을 집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연희의 모습에 민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성환이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바보고 쟤들이 바보냐? 거기에 처음 각자 재량이 없다고 미리 말했는데, 대뜸 대통령급 인사가 방문할 거라는 건 어떻게 약속해?”
“얼마든지 대타를 세울 수 있으니까 그렇지. 우리도 그렇고. 진지하게 한 대화가 아니란 말이에요.”
“어음.....그게 그렇게 되나?”
뒷머리를 긁적이는 민준
여전히 알쏭달쏭하단 표정이다.
그리 깊게 생각할 게 없는데 말이지.
말 그대로다.
서로 대화의 서두를 ‘전 껍데기 바지 사장입니다’ 라고 말했는데, 진짜 대주주께서 위험천만한 현장에 방문할 거라고 확신하며 약속한 거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거다.
저쪽도 그렇고, 그걸 넙죽 받아먹은 우리도.
물론 저쪽이나 우리 모두 말은 전하겠지.
당장 나도 예지한테 일단 상황을 전달하기는 했으니까.
그러나 실상 하등 진지함과 알맹이는 없었던 대화였던 셈.
“아니, 그럼 어떻게 하게요? 예지 누님 대타 뛸 사람 구해요?”
“뭐, 그래도 좋긴 한데.....”
“우린 시간이 없잖아? 1주일을 어떻게 기다리냐?”
어깨를 으쓱거리는 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멀리 정보 먼치킨 미국 느님께서 눈에 불을 켜고 전 세계를 감시 중이신데 잘도 1주일이나 여유롭게 기다리겠다.
가뜩이나 우리가 일본으로 움직였으니 더더욱 일본을 주시할텐데.
멀든 빠르든 간에 금방 이 테라로의 게이트는 들킨다.
그럼 사실상 대화는 물 건너간 거지.
우리의 예상으로는 약 1주일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그건 딱 1주일을 말하는 것이니, 실상 우리들은 더 빨리 이번 방문에 기본적인 마침표를 찍어 성과를 내야 한다.
이를 상기한 성환과 연희는 나를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이, 치트 마술사. 잘 하고 있지?”
“어”
조용히 눈을 감으며 심령으로 연결된 시야를 공유하는 나.
이미 사역마는 붙여두었다.
요는 저들의 진영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는 것과 얼만큼의 전력이 있는지만 알면 그만.
아리아스타로부터 간접적이나마 용제의 위상을 들었으니, 필시 선을 넘는 막대한 무력이 존재하지는 않을 터.
“잘 추적 중이야. 전혀 모르던 눈치인데?”
“나도 몰랐는데 어련할까?”
“예?!! 누님도 사역마 같은 거 다룰 수 있었어요?!!”
“........시팔, 내가 네크로맨서 진화판 네메시스인데 그걸 못하겠냐?!! 연희야 저 새끼 잡아!!”
“넵!!”
“아...아니!! 지금까지 안 썼─ 쿠에엑!!!”
연희에게 뒤를 잡힌 민준의 배에 작렬하는 정의의 철권
역시나 발이다.
아니, 이번 사신단에서 마술사가 나 뿐인게, 내가 그만큼 하니까 그런 거지 무슨 사역마 하나 못 다루는 빙신으로 보고 있어?
거기에 내가 엄연히 그런 사역마의 전문가 네크로맨서인데 말이야!
“맨날 낫질만 하니까 그걸 어떻─ 쿠엑!!”
“뒤져라!!”
매를 더 벌고자 하는 그의 언사에 난 아예 마운트 잡았다.
그리고는 바로 가드를 올린 민준이에게 연타를 시작.
뭔 콩트 쇼를 펼치는 거냐며 한숨을 쉬는 성환이와 ‘릴리 이겨라! 문주 뒤져라!’ 같은 살벌한 응원가를 부른 연희는 관중이다.
“머...멈춰!!”
“멈춰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tv에서 이러면 멈춘다고 했는데?!!”
한참이나 뚜까 패고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난 난, 자리에 털썩 앉으며 눈을 감았다.
“아무튼 잘 추격 중이야. 이 시끼들 체력 만렙인지, 쉬지도 않고 계속 달리네.”
“그래?”
“어? 이제야 도착했다!!”
망막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난 쾌재를 외쳤다.
처음 저들이 설치했던 천막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 규모의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나름 한 가닥하는 놈이 그리 급하게 달려갔으니 페이크일 확률 또한 매우 낮다.
이정도면 급하게 만든 페이크일 확률도 거의 제로.
뭐, 나름 한 가닥 한다는 놈들이 그리 불철주야 뛰어간 곳이 페이크일 순 없었지.
하지만, 방심은 근물.
성환이는 좀 더 자세히 조사할 것을 부탁했다.
“규모나 위치 같은 거 잘 확인하면서 그 라그나란 놈 따라가봐. 아니....그보다 우린 니가 보는 거 못 봐?”
“아...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뒤적뒤적
전에 마녀의 도시에서 현주 책상 위에 있던 거 하나 쎼벼왔는데......
아, 찾았다.
그렇게 인벤토리에서 꺼낸 건 마녀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
“짜잔!! 이것봐라. 이게 바로 마녀용 수정구다 이거야.”
“사이비 마녀, 코스프레 용품이 늘어났어.”
“마녀 구슬...... 점집에서나 봤었는데,”
“근데, 저 하트 표시는 뭐냐?”
“몰러, 현주 책상 위에 있던 거 훔쳐온 건데?”
방에 핑크색이 유독 많은 걸 보니, 취향이겠지.
그래도 성능에는 문제 없다,
바로 난 바로 마력의 패스를 연결하고, 우리들은 구슬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구슬 너머로 보이는 광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와우!”
“장난이 아닌데....”
“이거 몇 명이에요?”
구슬에 비치는 광경에 모두 자동으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했는데, 딱 그 소리가 나올 상황이네.
사실 일족이니 뭐니 하고, 몸에 걸친 장비나 그런 걸 봤을 때는 원주민 같은 생활상을 떠올렸는데, 거의 도시나 다름 없다.
어두운 사막의 밤임에도 불구하고 밝은 조명.
여기저기 바위를 깎거나 벽돌을 쌓아 만든 집과 건축물들
거기에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시끌 벅적한 다크 엘프들의 모습까지.
옷 또한 평범하다.
아무래도 전사란 자들 특유의 복장이 이상했던 거 같네.
“음.....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오히려 문화 레벨이 떨어지는 느낌인데?”
“그러게요? 건물만 줄줄히 있다가 웬 다시 천막이지?”
그러나 라그나가 들어가는 뱡향으로 갈 수록 오히려 건물은 사라지고, 천막들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물론 천막 자체는 굉장히 튼실하게 지은 모습이지만, 그래도 솔직히 나름 벽돌로 건물을 쌓아올리며 사는데, 천막이라니.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야, 저것들 전부 마도구야.”
“네?”
“저 라그나가 향하는 제일 크고 화려한 천막있잖아. 거의 우리 진지급 전술마술로 도배가 되있는데? 외형만 천막이지 거의 성벽이야.”
“이런 씹.....”
“헐.....”
장식처럼 그려진 천막의 문양 하나하나 마력이 흐른다.
심지어 문지기로 포진한 자들 역시 라그나와 비슷한 레벨
거기에 지금까지 프리 패스로 달려온 라그나가 여기서는 무기까지 맡기고 검문을 받고 있으니, 저 안에 든 자리한 자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대족장이겠지?”
“뭐, 우리 나라도 돈 있고 잘사는 사람이 은근히 전통 가옥을 찾잖아, 그런 거겠지.”
“아니면, 비싸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마도구가 여기서 얼마나 하는진 모르지만, 저런 전사들도 별로 몇개 두른 게 없으면 좀 비싸지 않을까?”
“으음.....라그나란 사람, 아니 다크 엘프는 몇 개나 가지고 있었는데요?”
“무기, 귀걸이, 각반....한 5개? 우리가 장비로 온 몸을 도배한 거에 비하면 좀 그렇지. 수준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고.”
“모두 조용히 하고 이것 좀 보자.”
성환의 말에 다시금 수정구에 시선을 모으는 우리.
그러나
콰득!!
순식간에 꺼지는 시야.
그러나 우리 모두 고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희들 방금 봤지.”
“네”
“예”
“그건.....”
순식간에 다가와 사역마를 간파하고 낚아 첸 그것은...
분명 한 여인의 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