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50화 (50/116)

〈 50화 〉 다크 엘프의 숲 (4)

* * *

흔히 나이가 들면 생각의 시야가 넓어진다고들 한다.

경험한 것들이 많아지면서 같은 이야기나 상황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지는 눈이 생긴다고 하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면

우리 모두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들어봤을 용사 이야기.

마왕에게 납치당한 공주님을 구하기 위한 소년의 여정은 꼬꼬마 시절 우리들의 동심이자, 가슴 벅차오르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의구심이 들지?

사천왕은 왜 최약체부터 나오는 건지.

대체 용사는 왜 공주님을 구하려고 하는지.

파티원들은 무슨 콩꼬물을 따먹으려고 용사 파티에 참여한 건지 등등

구멍 투성이에 개연성은 밥 말아 먹은 내용에 코웃음이 터져 나올 터.

특히나 제국 사람들은 더할 껄?

현 마왕은 무려 색욕의 군주의 좌에 앉은 자.

그녀는 역대급 재능이라 칭송받던 전전대 용사의 목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떨어뜨린 희대의 모략가이자 마녀니까.

이미 음유시인 사이에서도 유명한 노래.

용사와 성녀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시작되는 전주곡

그리고 이를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둘이 있으니.

파티의 듬직한 방패, 전사와 언제나 든든한 지원이었던 여마술사.

점점 절정으로 달려가는 노래는 감미로운 음정 속에 비극을 암시하는 가사가 녹아들고.

최후에는 싸늘한 시체가 된 채 전사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는 성녀

절망으로 물든 용사의 잘린 머리를 든 채 폭소하는 여마술사로 마무리된다.

음......사설이 조금 길어졌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천왕 중 최약체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이처럼 이제 우리들에게는 식상한 전개다.

응당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건 아니냐고?!!”

“대전사님!!”

“우리 오늘 살아서 돌아갈 수 있으려나?”

라그나는 눈앞에 보이는 장관에 할 말을 잃었다,

뒤따라온 셀피네와 셀라, 그리고 다른 일족의 전사들도 마찬가지.

부하들의 부름에 서둘러 달려와 보니, 설마 사막이 용암이 되어 요동치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지만, 정도를 넘어도 한 참 넘어버렸다.

하물며 저 가운데 있는 존재는

“아크 리치.....”

“아크 리치?!!”

“대.....대전사! 저게 정말 아크 리치란 말입니까?!!”

압도적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의 열기가 압축된 소태양을 머리 위에 띄운 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 위에 선 죽음의 마술사.

라그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일행들의 표정에 절망이 스쳐간다.

아크 리치

그냥 리치도 아니고 아크 리치라니!

“어....언니. 그거 마왕 후보...”

“그냥 후보도 아니고, 유력 후보야 유력 후보!! 역대 43명의 마왕 위 중에서 아크 리치만 6명이 있다구!!”

“야, 우리가 잡은 조사대 중에 무슨 저 나라 공주님이라도 있었냐?”

“전부 남자던데요?”

“그럼 왕자라도!! 아니, 무슨 아무리 최약체부터 가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해도, 조사대 다음으로 오는 게 아크 리치는 아니잖아?!!”

“애초에 공주님을 구하러 마왕이 오는 것부터가......”

단계를 생략해도 너무 생략한 것이 아닌가?

좀 과장된 비유로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햇병아리에게 마왕이 찾아온 격.

아니, 과장이 아닐지도.....

상대는 엄연히 진짜 마왕 후보니까.

소란스럽게 떠드는 부하들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걸 아는 라그나지만, 그는 그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릴 뿐.

그 이유는 차마 뒤에 하려던 말을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저건 단순한 아크 리치가 아니야.’

대전사로서 가장 연장자인 그는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나빴던 건지 아크 리치를 실물로 목격한 경험이 있다.

당시, 현 색욕의 군주가 아직 군주의 좌도 마왕의 위도 오르지 못한 시절, 있었던 마왕 쟁탈전.

아까 셀피네의 말처럼 그 유력 후보군에 아크 리치가 있었으니까.

보통이라면 마계 영역 내부에서 끝나 구경할 일이 없을 터이지만. 그 아크 리치는 시체를 지배하던 네크로멘서.

세력권이 축소된 그는 보다 신선하고 좋은 시체, 그리고 마력의 풍부한 소재를 찾아 알브헤임의 세계수를 향해 침공을 감행했다.

그때, 알브헤임이 자신들의 일족을 통째로 고용하는 초강수를 뒀었지.

덕분에 어렵지 않게 마왕의 후보를 물러가게는 할 수 있었지만, 라그나의 뇌리 깊숙이 아크 리치의 존재가 각인된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라그나는 확신한다.

‘최소 최상위 아크 리치, 어쩌면 엘더.....초월의 경지를 목전에 둔 진짜 마왕이다!’

엘더

종족의 한계점을 돌파한 괴물 중에 괴물에게만 부여된다는 칭호.

어지간한 마왕 후보들은 전부 엘더의 칭호를 달고 있다.

하지만 종족의 한계점은 각 종족마다 엄연히 차이가 있는 법.

아크 리치는 엘터의 칭호를 받을 필요도 없이 그 자체로 마왕의 후보라는 점에서 엘더 아크 리치는 이제까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아마, 색욕의 군주처럼 마왕을 넘어 군주의 좌를 노려봄 직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승산이 없어.’

대족장이 계신다면 어떻게든 될까?

당시의 아크 리치를 막아서셨던 대족장께서는 상대적으로 어린 시절이셨으니, 지금이라면.....

아니, 말도 안 되지.

대족장께서 넘치는 재능을 꽃피웠다고 해도 저건 다르다.

이미 맞서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두두두두두!!!

“이건?!!”

“하필 이때 지진?!!”

“멍청아, 이 지진이 왜 일어났겠냐? 당연히 저 마왕이 한 짓이지!!”

들끓던 용암을 혹한의 바람으로 식혀 검은 대지가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콰아아아!!!

솟아오르는 거대한 해골의 벽.

사람의 형상을 한 것들을 엮어 만든 그 벽이 등장하자, 결국 전사들은 차마 이제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꼈다.

아아.....죽음이구나.

누가봐도 선전포고.

단순한 선전포고도 아니다.

절멸

그 어떠한 타협도, 용서도 받아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담긴 절망과 죽음을 상징하는 벽에 전사들은 추태라는 사실도 망각한 체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로지 라그나가 데려온 소수 인원만이 자리에 서있을 뿐.

그러나 그마저도 얼굴빛은 파란색을 넘어 기분 나쁜 알브헤임의 엘프들처럼 하얗게 질리고 있으니,

발목을 잡는 공포로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라그나는 입술을 질근 깨물며 모두를 향해 명령했다.

“귀환. 모두 철수하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복귀.”

“네?”

“지금 그게 무슨....”

“나 혼자 가겠다. 셀피네, 넌 대족장께 지금 눈에 담은 것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보고하도록, 벽을 세웠다는 건 진지를 구축한다는 뜻. 침공이 바로 오진 않을 것이다. 내가 시간을 벌어보겠다.”

라그나의 말에 모두는 순간 벙찐 얼굴이 되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

그러나 이내 그가 천천히 한 걸음씩 벽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고서 드디어 정신을 차린 부하들은 그를 뜯어 말리기 시작했다.

“저...저기 가면 틀림없이 죽습니다!!”

“저희 일족의 규율을 잊으셨습니까?! 살아남아라!! 어떻게든 살아남아 살아가라!!”

기나긴 용병 생활로 다져진 일족의 규율 중 가장 위에 있는 사항

살아남는 것.

용병이란 살아남으면 어떻게든 되는 존재라는 의미.

많은 악습을 폐지했던 대족장께서도 유일하게 손대지 않으셨던 규율이지,

소중하고 숭고한, 가장 자랑스러운 규율이라고.....

하지만, 그렇기에 라그나는 소리쳤다.

“그러니 너희들은 살아남기 위해 달려라.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 대족장께 너희가 눈에 담은 것들을 말하도록! 그 분께서 분명 답을 찾아주실 것이다.”

그게 도망이어도 좋다.

어딘가에 지원을 부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차라리 도망이 났겠지.

대족장께서 분명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실 터.

어쩌면 최악의 경우 일족 전체가 다시 뿔뿔히 흩어지는 역사를 반복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게 어디인가?

여기 셀피네와 셀라처럼 어리고 유망한 일족들이 남아있으면, 언젠가 얄리샤님과 같은 대족장이 되어 다시금 일족을 뭉치면 될 일.

어차피 가장 나그나스님의 품에 가까운 그이다.

가는 것은 자신 혼자로도 충분.

그러나 부하들은 생각보다 많이 어리석은 가보다.

“어차피 겨우 너 혼자냐면서 바로 목이나 잘리시겠죠.”

“시간 벌기는 무슨. 개죽음입니다 개죽음,”

“뭐, 저희도 따라가면 구색 맞추기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 둘 씩 무거운 족쇄를 들며 일어서는 발걸음

라그나는 피식 웃음을 삼켰다.

이에 셀피네와 셀라 등의 어린 상대적으로 어린 전사들도 일어서려했지만, 다른 이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다른 부하들을 통솔해서 돌아가라.”

“너희까지 죽을 곳은 아니야.”

“그치만!!”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하는 그들이었지만, 어른들은 그저 그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것을 끝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너희도 차례가 오겠지. 그때 지금처럼 행동하면 충분하다.”

불길 속으로 날아가는 나방처럼

가시밭 길 위를 걸으려는 순교자처럼

나아가는 전사들을 바라보는 남은 이들.

그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사막의 모래 바닥을 내려쳤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형태로 살아남을 줄이야.

그 분함에 가슴이 찢어진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이대로 저들의 죽음을 쓸모없게 만들 수는 없는 법.

각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들을 배웅하고 자신들은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그렇게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우르르르르....

“엥?”

“어?”

“뭐?”

“응?”

해골 벽이 우르르 무너진다.

방금 전 위엄은 어디가고 더 없이 허무하게....

어....... 뼈다귀 하나가 실수로 빠졌나?

이게 왜 이러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 진지하고....또 뜨겁고......감동적인 분위기 였을텐데......

“““이게 뭐야?!!!!”””

* * *

엘라임이 세운 벽에 다가오는 일련의 무리들

난 바로 가시나무의 성벽 위로 올라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어이~~~ 거기 스톱! 딱 너희들만 받는다. 나머지는 대기.”

거대한 가시 줄기로 선두에 서서 다가오는 무리와 뒤에 대기하던 자들과 구분 짓자,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날 올려봤다.

움직이는 가시에 조금 당황한 기색.

대뜸 손에 든 창이라도 날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얌전하네?

뭔 일 있었나?

거기에 표정들은 왜 저래?

뭔가. 엄청 실망이라도 한 듯한 얼굴들이잖아.

음.....역시 가시나무제 벽으로는 포스가 부족했나?

우선 엘라임에게 지시를 내려 문을 만든 난, 다시금 성벽 아래로 내려와 성환이와 민준, 그리고 연희와 함께 그들을 마중했다.

당연히 뒤에 별무문 사람들을 잔뜩 세워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야, 니가 팔짱 껴봐야 귀엽기만 하거든? 카녹스나 부르고 뒤로 빠지지?”

“이 크고 아름다운 낫이 안 보이냐?!!”

“어, 그거까지 포함해서 졸라 귀여우니까.”

성환이에게 침몰당한 난 결국 뒤로 쫄레쫄레 물러가고 나 대신 시몬과 엘라임이 성환의 한쪽 옆에 자리했다.

치이.....

나중에 유리한테 니가 나한테 꼬리친다고 꼰질러야지!

그러는 사이 마주한 두 무리의 사람들

가장 앞에 섰던 성환이와 저들의 대표로 보이는 듬직한 아저씨가 앞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 뒤 이어진 성환의 말은 우리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으니.

“엘프?”

남성들까지 매우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과 장식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귀가 처음으로 들어났다.

뽀족한 삼각형의 귀.

설마 싶어 나도 얼른 고개를 틀어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얼굴에 뒤집어 쓴 장신구과 늘어진 머릿결 때문에 보이지 않던 귀가 눈에 들어왔다.

단지, 상대는 얼굴을 엄청 찌푸리며 굉장히 기분 나쁜 듯한 모습.

이에 성환은 조금 의문을 느끼며 그들을 향해 물었다.

“엘프 아니십니까?”

“우린 자랑스러운 다크 엘프 일족. 같은 혈통이니 똑같이 취급해도 할 말은 없으나, 엄연히 다르다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선두에 선 듬직한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조금 감탄했다.

입에서 나온 말이 존대라는 점.

아직 확신하기에는 이르지만, 상대도 우호적으로 나오는 것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대화를 원한다는 건 사실인가 보네.

하지만 나와 함께 뒤어섰던 별무문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듯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쟤들 왜 저렇게 떠냐?”

“어? 너도 그렇게 느꼈어? 나도”

“음......릴리 씨가 여기 식히면서 빙결 마술 썼다 했잖아. 그 혹한의 바람. 그거 때문에 추워서 그러는 거 아님?”

“전혀 안 추운데? 오히려 점점 더워지는 기분이구만. 역시 사막은 사막이여. 이계라고 해도 자연의 이치는 변하지 않구나.”

“아니 쟤들은 맨날 여기 살 거 아니냐. 느끼는 기준이 다르겠지.”

따라온 일행들의 말에 난 혹시 정말 추워서 저러나 싶었지만, 딱히 그건 아닌 거 같았다.

나도 그렇고 우리랑 쟤들도 그렇겠지만, 힘에 크기에 따라 강대해진 몸은 고작 이런 온도 차 따위에 연연할 정도는 아니니까.

거기에 저걸 보라.

눈동자 굴러가는 거.

시몬? 그리고 엘라임도 보고 있네?

아! 같은 엘프라서!!

“엘라임이 드디어 물을 만났구나!! 크윽.....역시 같은 오리지널 엘프니까 엘라임이 예쁜 걸 알아주는 거지!!”

그동안 사람들에게 무섭다며 기피받던 엘라임의 진가가 여기서 드러나는 게 틀림없다.

심지어 피부도 좀 비슷하지 않아?

뭐? 시퍼런 시체 피부랑 건강미 넘치는 구리 피부랑 어떻게 비슷하냐고?

둘 다 사람 피부 아닌 걸로 비슷하잖아.

오히려 이게 반전미로 먹히는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눈동자를 굴려가며 엘라임을 보겠냐고.

시몬을 보는 건......뭐, 보석이 예뻐서겠지.

딱 보니까 보석 같은 거랑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니까.

거기에 저기 여자 얘들도 어려보이는데, 화려한 거에 관심이 많을 나이잖아.

옛날에 나였으면 시몬에게 하나 빼달라고 하는데, 지금의 난 시몬이 여자 백명보다 소중해서 그럴 수 없다.

나중에 친교를 다지게 되면 수출하는 방향으로.

“음......다크 엘프는 보석을 좋아하고, 취향은엘라임 같은 타입.”

첫 시작 정보 조사가 나쁘지 않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