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지휘관! 사랑과 정의, 하렘의 이름으로 (2)
* * *
눈치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넌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
요즘 눈치가 장난이 아니다.
눈치만 있어도 반은 간다
등등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은 단어 눈치.
영어로는 센스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상황, 혹은 분위기를 읽는 감각을 뜻하는 단어.
너무 눈치를 보고 살아도 좋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눈치가 삶의 필수품이란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6성 확률 2% 개해자 게임이라고 해서 콧노래까지 부르며 뽑기를 돌렸지만, 기어이 천장까지 가서야 2티어 짜리 캐릭을 뽑은 나,
반쯤 해탈한 상태로 고개를 젖히고 있는 내게 2뽑 만에 0티어 캐릭을 뽑았다면서 방송 중에 달려오는 우리 사랑스러운 소라를 보라.
저렇게 살면 힘들지.
결국, 방송 중에 마운트 당한 채로 가드 올려고 처맞는 지경까지 오지 않았는가.
위 예시에서 알 수 있듯
눈치가 없으면 나도 너도 모두 피곤하기 그지없다.
말이 눈치지, 어찌보면 서로를 위한 배려니까.
하지만 그......가끔 있잖아.
눈치가 더럽게 없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인간들.
아, 저 새끼 나라 말로는 공기를 못 읽는다라고 하던가?
나는 오늘 그 종결자를 마주했다.
“너희들이 한국 플레이어들이구나. 실물로 보니 나쁘지 않은 걸?”
지글지글 구워지는 불판을 둘러싸고 담소를 나누는 우리들 사이로 난입한 검은 머리의 남성.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헤실 웃는 그는 스스로를 지휘관 유이치라 소개했다.
솔직히 알빠는 아닌데, 하도 인상 깊은 등장이라 뇌리에 자동으로 박히네.
참고로 옆자리 미인 파티에 작업 걸로 온 불쌍한 중생이 아닌가 오해하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는데, 여기 프라이빗 룸이다.
그니까 저놈은 그 프라이빗 룸의 문을 대뜸 열어젖히고 들어온 거고.
‘개념 밥 말아 먹은 X끼인가?’
처음에는 혹시나 방을 잘못 온 사람인가 싶었는데 하는 행태가 심상치 않아.
여기 들어온 것 자체로도 바로 고개 숙여 사죄할 무례인데, 마치 품평이라도 하는 시선.
흥미롭다는 눈으로 우리를 훑은 그는 어디서 주워 온지 모를 지휘봉을 꺼내 손에 올리며 말했다.
“영광으로 생각해도 좋아, 인류를 구원할 내 파티에 내가 이렇게 직접 권유한 건 시즈네랑 에리카 이후로는 너희가 처음이니까. 한 명 빼고는 다들 합격점이네.”
얼씨구?
방금 그 한 명이라 할 때 보는 게 나네?
하도 어이가 없으니 이젠 궁금해질 지경이다.
대체 저 주둥이에서 어떤 씨부림이 튀어나올지.
모두는 넋이 나가 아무 말도 못하고, 난 아예 똑같이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식탁에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니 반응 또한 걸작.
“으음! 다들 많이 놀란 눈빛이네. 뭐, 놀라는 게 당연하지. 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놀랄 건 없어. 너희 실력은 귀에 닳도록 들었으니까.”
이후 그는 주절주절 자기가 왜 우리들을 찾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라......이걸 듣고 있는 우리도 레전드이기는 하지만, 하도 골 때리다보니 스턴에 걸린 시간이 좀 길었거든.
이해하길 바란다.
“사실 너희 수준이야 크게 관심 없었어.”
와우!
초반부터 쌔게 나오는데?
“솔직히 나만 있으면 다른 사람이야 누가 오든 최강이거든.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파티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정부가 어찌나 시끄럽던지, 계속 너희 이야기를 하는거야. 현 세계 최강이라나 뭐라나. 오히려 반감이 갈 정도였다니까?”
그렇게 해서 찾아보게된 정보.
정확히는 받아본 정보지만, 그 안에 나온 기록은 유이치도 충분히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아, 물론 업적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를 놀라게 만들어 이곳으로 이끈 건 두 가지.
바로 성녀와 모선
“마침 파티에 힐러가 공석이긴 했거든. 거기에 성녀면 왕도 중에 왕도 태크니. 괜찮겠다 싶었지. 거기에 너, 성녀면서 세라핌의 수장. 그리고 지금은 발할라라는 잘 나가는 집단 수장이라면서? 성녀가 보통 권력자 히로인 포지션이니까.”
“............”
예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헛웃음 조차 삼키지 않은 체 마치 그대로 얼어붙은 모습.
그러나 난 맹렬히 그녀의 몸을 돌기 시작하는 신성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자. 여기서 끝이면 섭섭하지!
그 다음 유이치가 가리킨 건 유리.
“모선 쪽은.......미안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야. 로리는 좀 그렇거든.”
그래 뭐, 로리는 아웃이긴 하지.
정상적인 성적 취향이다.
유리나 나나 크게 쳐줘야 고1, 보통은 중학생으로 보이니 그럴 순 있지.
근데 그건 아냐?
지금 니가 가리키는 그 여자가 유부녀인 거.
넌 안사람 있는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에 취향이 아니다나 뭐다나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고.
굳은 얼굴로 있던 유리의 표정에 쩌억! 거대한 금이 갔다.
하지만 밑에는 더 깊은 바닥이 있다고 그의 발언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모선만 가져갈 순 없을까? 너도 위험한 일 하고 싶지는 않지? 영광스러운 길이기는 해도 많은 위험이 따르는 건 사실이니까. 너도 손해는 아닐 꺼야. 우리가 모선을 타고 다니면서 다들 네 이름을 입에 올릴 테니. 엄청 유명해질 껄?”
마치 어린이를 달래는 듯한 어투
난 나도 모르게 터져나올 뻔한 웃음을 참았다.
‘니 앞의 그 여자를 그딴 걱정할 필요도 없이 존나 유명한 여자야. 이 또라이야.’
이터널 1위, 침략요새 모선의 주인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더군다나 성환이와의 혼인으로 세계 최강의 부부 타이틀까지 획득하신 분이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넘이 유명세를 걸고 넘어지는구나.
‘아.......유리 엄청 화났네.’
가게 밖에서 에테르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뒤틀림이 느껴진다.
공간의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모선의 부분 무장 [백익]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우리 이외의 사람들을 상기시켜 바로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기세만은 이미 가게 체로 유이치와 함께 여길 날려버릴 모습.
이미 그늘진 얼굴로 유이치를 응시하는 유리의 눈빛은 평소 소심했던 그녀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끝은 조금 더 남았으니.
여기 들어온 이후로 가장 들뜬 얼굴로 변한 유이치는 소라와 어머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이엘프.....자매지? 딱 보면 알겠어.”
알긴 뭘 알아?
모녀거든?
“하이엘프, 엘프만 하더라도 많이 보진 못했는데, 설마 하이엘프를 그것도 자매로 여기서 볼 줄이야. 나도 너희도 엄청 행운이네. 이쯤 되면 거의 운명이 아닐까?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힘에 이런 운까지 겹치면 운명이지.”
““..........””
“너희는 선택받은 거야. 날 따라 인류를 구원할 운명인 거지. 걱정마 둘 다 공평하게 대해 줄테니까. 재능의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둘 모두 하이엘프인 시점에서 충분하겠지. 뭐, 내가 있으니 문제없어.”
결국, 어머니가 가장 먼저 폭발했다.
─파아아아!!
연녹빛이 온몸을 감싸면서 폭풍치는 바람의 마력.
어느새 나타나 어머니의 한쪽 어깨에 내려앉는 송골매.
인벤토리 다루는 게 아직 어설프다 말씀하신 게 얼마 전인데,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벤토리에서 스테프를 꺼내 바닥에 내려찍었다.
“최대한 참아보려고 했는데......”
대체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나는 두 자식과 함께 보내는 시간인데.
그래서 최대한 말로 조용히 끝내보려고 했는데.
결국 상대가 도를 넘어버렸다.
“지...지금 이게 무슨─”
“개소리도 오래 들었다.”
“아주머니가 안 하시면 내가 상반신이랑 하반신을 분리해 버릴 거예요.”
“엄마, 내가 손가락 몇 개만 자르면 안 돼?”
어머니의 폭발을 시발점으로 세 명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다들 폭발치가 턱 바로 아래까지 진작에 올라온 상태였지만, 자리에 연장자가 있으니 참은 거지.
“너희들!! 이게 무슨 짓이야!! 지휘관에게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내 파티에서 쫒겨나고 ─”
“뭐라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예지 언니 이거 알아요? 듣기로는 뭐 되는 거 같은데.”
“몰라 듣보잡이야.”
“예지 씨. 내가 하면 안 될까? 일단 사지를 비틀어 버리고.”
“고문 같은 건 릴리가 잘하지 않아?”
흉흉한 기운을 방출하며 한 걸음씩 다가가는 여인들
그러나 그 순간 무언가 유이치의 뒤에서 나타나 그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예지, 어머니, 소라, 유리 모두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다 예상했다는 반응
하기사 믿는 구석도 없이 저런 미친 짓을 할 수는 없으니.
그러나 조금 이상한 구석이 보였는데, 당사자 또한 전혀 몰랐다는 눈치.
더군다나 저건.......
“이...이건 뭐지? 아...그래!! 각성!!”
당황했던 유이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는 순식간에 기세를 회복했다.
새로운 힘에 눈이라도 떴다는 듯한 표정
아까까지 물러났던 거짓말이였다는 듯 이젠 아예 앞으로 다가가기까지
불그락푸르락하던 그는 잠시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지휘봉을 앞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너희들! 절대로 용서 안 해!! 감히 지휘관에게 반항을 하다니!!”
“““.........”””
“하! 내 새로운 힘에 말도 안 나와?! 마지막 기회를 줄 게, 지금이라도 바닥에 머리를 박고 용서를 빌면 봐줄 수 있어.”
“““.........”””
“너희들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빨리 도개자..... 너희들 지금 어딜 보는”
유이치는 그제서야 여인들의 눈이 날 향하는 걸 발견했다.
그야 당연한 것이.
“언빠, 저거 뭐야?”
그야 유이치의 뒤에 나타난 건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우리들의 친구.
카녹스였으니까.
“릴리, 우리 열불 터지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아니, 저거 뭐 뒷배 있는 거 적정하는 거 같은데. 제가 책임질 테니까. 빨리 카녹스 치워요!! 화통 뒤집어 질거 같으니까”
격렬한 반응이 돌아오는 가운데 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야, 나도 개소리 한사발 들어나 보자. 아까 보니까 나만 불합격이라잖아?”
이걸 모르고 집에 가면 침대에서 하루 종일 생각날 게 틀림없다고.
피식 웃는 난 자리에서 일어나 유이치의 앞으로 다가갔다.
“야, 씨부려 봐.”
“무...뭐라는”
─콰앙!!
말을 끝맺기도 코앞에 떨어지는 거대한 대검
딱 한뼘의 간격으로 몸이 두동강 날 뻔한 그는 바로 뒤로 넘어지려 했지만, 누구랑 다르게 눈치 좋은 카녹스는 부드럽게 그의 몸을 받아주었다.
뭐, 사실은 도망치지 못하게 잡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만.
“아, 빨리. 감질맛 나잖아. 빨리 씨부려 보라고. 졸라 궁금하네. 로리? 아님 뭐. 면상이 니 취향이 아니냐?”
아까 보니 로리가 별로라고 하니 이게 유력하겠지?
면상이야, 나름 자신있다고.
전 남자로서 확신해.
좀 피부가 창백하긴 해도 또 이게 매력아니겠어?
그러나 돌아온 답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너...넌!! 비겁한 청탁자잖아?!!”
“오~~ 청탁. 뭔가 심상치 않은 게 튀어나왔어.”
어차피 개소리겠지만, 이게 은근 듣는 묘미가 있네.
어쩐지 심상치 않은 말빨이다 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진작에 우리가 테클이라도 걸었을 텐데. 뭔가 빨려들어가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하나.
뭐, 덕분에 폐드립 급 폭풍욕설에서 능지처참까지 형벌이 올랐으니 재 입장에서는 불쌍하지만.
아무튼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그는 재빨리 상황을 살피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저.....정부에서 얼마나 너 얘기를 떠들던지!! 뭐가 최강이야?!! 진짜 최강이 이렇게 있는데!! 시즈네도 에리카도 하루 종일 너 이야기만 하고! 그.....그래도 이번에 날 도와주면 파티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긴 할 게.”
“미안, 무슨 쌉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고 싶다는 건 알겠네.
눈치가 아예 없는 줄 알았는데, 생존 본능으로 각성한 건가?
아까 각성했다 뭐다 하더니 생존 본능이었구나.
“시즈네라는 년이 누구인지, 에라카라는 년은 또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일본 정부 한테 듣고 왔다고?”
“그.....그러니까..”
“뭐 한국 정부도 이제 다 아는데, 일본 정부도 알겠지. 아.....개소리 한 사발 얼큰하다.”
난 눈빛이 이글거리는 여인들에게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유이치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올린 카녹스.
바둥바둥 거리는 게 잡힌 물고기 같아.
뭐, 비슷한 운명인가?
“이거 회칠 사람. 손.”
바로 4개의 손이 올라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