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다음을 위한 일상 (完)
* * *
세계 하나와 4명의 대표가 가진 힘을 취한 아리아스타.
가진 봐 힘은 충분했으나, 문제는 그 방법에 있었다.
“힘이라는 게 되돌린다고, 확! 하고 강해지는 건 아니잖아?”
같은 힘을 가진 같은 세계의 사람이라도 재능, 자라온 환경, 문화 등등 수많은 요인들로 인해 그 수준이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난다.
어떤 이는 소드마스터라는 지고의 경지에 오르는 반면
어떤 이는 평범한 기사.
또 어떤 이는 그저 평범한 농부로서 삶을 마무리하지.
“요는 시간이라는 거네.”
“그렇지. 힘을 가져도 그 힘을 활용할 기술, 체계가 갖춰지는 건 순수한 그 안에 살아가는 이들의 몫.”
“하지만, 우리는 시간은 없었지.”
“동화는 멀지 않았고, 수 만년의 세월 동안 쌓아온 테라와 무림의 마력과 내용을 다루는 능력은 솔직히 엄청나. 힘에서 우위를 점해도 지구에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승산이 전무해.”
나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전쟁.
용제는 물론이요, 용왕들이 사용한 마술의 수준은 매우 뛰어났다.
시기적절한 마술의 사용은 항상 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특히나 용제가 인간형일 때 발휘했던 실력.
솔직히 말해, 내가 수준에서는 밀렸다.
그걸 소환수라는 숫자와 스팩으로 커버쳐서 밀어버린 거지.
실제로 결국 도주를 용인했고.
“일본이랑, 미국에 나타난 마왕과 타락 정령, 그들도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마술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마왕이라......누군지 모르겠네. 그쪽은 워낙 자리 싸움이 많아서 내가 알던 마왕이 그대로 있을지 잘 모르겠거든. 그래도 정령 쪽은 알겠네. 델 피아스. 타락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아. 태초의 본질부터가 어둠인 정령왕인데.”
“그 정도 마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어 진 건 아닐 테니까.”
당시를 회상하며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니, 그녀는 도리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그들로 테라와 무림의 마술과 무술의 수준을 판별하면 곤란해.”
“뭐?”
“기교의 극한은 항상 약자에게서 비롯되는 법. 마왕, 용, 괴수. 전부 하나같은 타고난 강자들. 그들에게 마술과 무란 그저 소소한 교양 정도에 지나지 않아. 진짜 정수는 인간들에게 있지.”
뭐, 그렇다고 해도 딱히 인간 본좌를 논하며 인간이 최강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약하니까 더 기교를 갈고 닦았다는 의미지.
이야기하기로 용제는 명실상부 테라 최강.
그 교양으로 쌓은 마술과 무술도 테라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다고 하니, 그 명성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아무튼 그렇기에 난 생각했어. 어떻게 이 간극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지구인들이 동화와 만들어질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기나긴 고심 끝에 선택한 결과가 바로 가상현실 기기였다.
“이터널은 거기서 수십년을 살았기에 나도 잘 알아, 무림과 테라도 제법 안다고 할 수 있고, 그렇기에 난 임시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어.”
우리가 가상현실이라고 불렀던 그곳.
테라를 모방한 판타지아.
무림을 모방한 무검산.
모리아를 모방한 이터널.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그곳에 간 시점에서 우리들의 영혼의 반쪽을 그곳으로 보낸 것이라고 한다.
직접 경험하여 스스로 쌓아올릴 수 있도록, 훗날 변한 자신을 보다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물론 안전 장치는 만들었다.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고, 그 누구도 선뜻 나설 리가 없을 테니.
또한 그렇게 인재를 낭비할 정도로 시간이 넘쳐나지도 않았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만렙. 그게 안전장치야. 모두의 성장에 한계를 두는 것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지.”
“그럼 만렙 찍은 사람은 성장을 못 한다?”
“그럴리가. 예지라고 했지. 그 아이도 이 일이 있고 나서 성장했다고 했잖아. 가상세계 속에서의 이야기야. 실제로 그곳의 모습과 너희가 하나가 된 이후는 다시금 잠재력은 돌아오도록 했어. 물론 다는 힘들지만”
“애써 혼의 반쪽만 보낸 건 그런 의중도 있겠군. 잠재력을 보존하기 위한 것도 생각해 둔 거네.”
“정답”
어차피 그런 성장의 마지노선을 그어두어도 강자는 나타난다.
성장의 한계를 장비로.
직업으로.
스킬의 습득과 타고난 실력으로 극복한 이들.
그들이 철수와 아버지, 예리를 비롯한 랭커.
거기에 다시금 성장 한계선이 풀리고 재능이 돌아온 그들은 다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터.
“그럼 난?”
“후배님은........특이점이야. 후배님 같은 경우에는 특이점 중에 특이점. 내가 마련한 조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지구에게도 특별한 수단이 있어야 하잖아? 결국 내가 한 것을 모방에 불과하니까.”
그녀는 특별한 재능을 보유한 자들에게 위 3개의 가상세계와 무관한 힘을 따로 부여했다고 한다.
최대한 각자가 가진 재능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수단을.
일종의 변수 창조다.
수많은 전쟁을 지켜본 그녀는 전쟁이란 것이 단순히 힘의 우열로 결판나지 않는 걸 알기에 행한 조치.
“철수라고 했나? 그 아이도 특이점 중 하나야.”
“어쩐지 심상치 않은 컨셉이더라.”
“이게 꼭 힘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뭐......특이점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아이들이니 곧 두각을 드러내겠지. 아직 발아가 끝난 것도 아니니까. 스스로는 알거야. 상태창에 특별한 부분이 있으니까. 내 소환수 목록처럼”
“그럼 나도 그 특이점?”
“후배님은 조금 달라. 특이점이라고 하면 특이점이겠지만.”
많은 노력을 거쳐 지구에게 힘을 돌려준 그녀.
특히나 많은 힘의 지분을 소유한 이터널의 힘을 통해 시스템을 설계하고 안전 장치까지 마련해 시간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배분
순수했던 지구의 힘.
이 힘은 무슨 수를 써서도 지구에 환속될 수 없었다.
“지구가 내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어.........”
마치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처럼.
지구는 마지막까지 거부했다.
허나 탈취한 힘을 통해 성장의 성장을 거듭한 지구의 힘은 더 이상 나약했던 시절과 달랐으니, 돌리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
이 힘을 합쳐질 테라와 무림에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날 대신할 존재가 필요했어.”
“그래서 날 골랐다?”
“응.......더렵혀진 저주를 씻어내고 남은 그릇에 가장 적합한 이. 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골랐는데. 후배님이 남더라.”
“성별이 다른데 왜 내가 남아!”
“나도 그게 의문이기는 했어. 성별은 의외로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는데......뭐, 결론은 그걸 씹어먹을 정도로 후배 님과 내 그릇의 적합률이 높았다는 거겠지.”
한쪽 눈으로 슬쩍 날 흘겨본 아리아스트는 혼자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속에서 보았던 그녀의 재능.
‘아마 내가 마녀가 된 영향이겠지.’
남자가 마녀의 재능을 그 누구보다도 높게 갖췄다는 것이 사실 넌센스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눈앞의 후배가 압도적인 마술, 특히나 마녀로서의 재능을 가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발아될 일이 없을 재능이 기회를 잡았은 것일 테지.
뭐, 성 정체성에 혼란을 준 건 좀 미안하다 생각하지만.
“그럼 내 성격은?”
“그건 원래 후배님 성격으로 돌아가는 것도 있고, 내 몸의 잔향과 하나가 되면서 뒤틀린 것도 좀 있어. 뭐, 양쪽 모두 극단적으로 갈리는 건 아니니.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결국 나도 너한테 따로 영혼이 불려가지 않았으면 한 또라이 했다는 의미구나.”
“그럴지도? 역으로 학문에 미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을 수도 있겠지. 마녀란 그런 성격도 가지니까.”
조용한 사람이 화내면 오히려 무섭다고.
그녀도 원래는 조용한 성격이다.
대표와의 전투.
이터널에서의 일들을 겪으면서 그녀도 지금의 모습처럼 만만치 않게 뒤틀린 것.
그 뒤틀림에 또 다른 혼이 섞여 탄생한 것이 지금의 릴리다.
“야.......씻어 낸 찌꺼기 어디 있냐?”
“역시 눈치가 빠른 걸?”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좋게 들으면 내가 지금 지구의 대표라고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럴리가 없다.
들었던 그녀의 힘을 고려하면 난 지구를 박살낼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내가 아무리 강해도 그 정도는 아니니까.
즉, 지금의 나는 정수가 빠진 그릇.
지구의 힘은 다른 곳에 있다.
“아리아스타 하트. 나의 심장.”
“내 안에 있다고?”
“아니, 그건 일종의 지침표. 하나의 세계를 잡아먹고 신이라 추앙받는 절대자들마저 먹어치워 성장한 지구의 힘은 고작 어떤 물건, 어떤 것으로 남을 정도가 아니야.”
11년 동안 내 혼의 일부.
릴리라는 나와 아리아스타의 그릇이 성장한 그 세계.
“그곳이 지구의 정수야.”
“그럼....”
“내가 네게 나타났다는 건 프로텍터가 기능을 다하고, 동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뜻이야. 곧 있으면 테라라는 세계와 무림이라는 곳이 합쳐진 세계가 지구와 뒤섞이기 시작하겠지.”
“다시 전쟁이구나.”
“아니, 그렇지 않아. 대표를 이미 잃어버린 저들과 너희는 동등한 존재. 이번 동화는 어떤 의미에서 진짜 동화라 할 수 있어. 그동안은 대표에 의해 서로 전멸에 가까운 전쟁을 치를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정말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그녀가 취한 조치는 그 새로운 세계에서 지구가 도태되지 않도록 한 조치.
또한 힘의 정수를 남겨둠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대표 자리를 지구에 존재에게 남겨두려했었는데.......
그녀는 질근 입술을 깨물었다.
“침공이 있었다는 건 내 힘의 정수가 따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는 거겠지. 누군가 저쪽 세계에 있어. 세계의 대표들의 전쟁을 알아차린 누군가가.”
“아루마인지 무신인지 하는 것들은?”
“아루마가 무신을 살려두었을리 없고, 나 역시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었어. 하지만.......지금에 와서는 그마저도 확실치 않아. 프로텍터를 뚫을 수 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닐텐데......”
아리아스타의 형상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원근감이 강조되는 듯이 멀어지는 그녀.
난 우리의 대화의 끝이 다가옴을 깨달았다.
“곧 테라와 무림이 하나가 된 세계와 동화가 시작될 거야. 다가오는 이들은 적일 수도, 아군일 수도 있겠지. 허나, 명심해.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어.”
“.......”
“침공의 이유가 별의 심장, 나의, 지구의 정수라면 널 노릴 거야. 네 심장은 그곳으로 향하는 열쇠이며 나침반일 테니.”
“결국 똥이란 똥은 내가 다 치우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하하, 그건 그러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줘. 산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죽은 사람 소원도 한 번쯤 들어줄 수도 있잖아?”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어디 라노벨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손을 모으는 그녀의 모습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넉살하고는, 그 특이점이란 놈들도 불안해 죽겠구만. 아무튼 다음에 또 볼 수 있냐?”
지금도 정체를 들어내지 않는다는 건 자각이 없거나 숨어있다는 뜻.
얼추 들어보니 테라도 무림도 썩 통일된 건 아닌 듯 하니 우리도 피차일반이지만, 아무튼 상당히 큰 혼란이 올 건 기정사실이다.
문화만 달라도 같이 살면 여기저기서 부디치는데, 하물며 세계가 달랐던 놈들이 서로 같이 살아야 하니 참.....
“오~~~ 나름 정이라도 든 거야? 요 잠깐 사이에?”
“아니, 다음에 못 보면 여기서 죽탱이 한 대 갈기고 가게. 똥 치우는 사람으로서 그정도는 받아야겠다.”
“너무하네. 나도 최선을 다한 결과인데. 뭐, 네가 심장에 도달한다면 한 번 쯤 다시 보겠지. 내가 어떤 모습 일지는 모르지만.”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게 손을 내밀며 굳은 표정으로 경고했다.
“내가 만들었다고 하지만. 시스템을 신뢰하지마, 침공 자체가 이미 무언가 잘못된 걸 의미해.”
“어련히 잘 하겠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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