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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40화 (40/116)

〈 40화 〉 다음을 위한 일상 (4)

* * *

‘누구지?’

매혹적인 자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

자색의 눈동자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백색의 머릿결

하지만.....

‘달라’

내가 왜 저 여인을 보고 ‘릴리’라고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다르다.

당장 나이만 보더라도 저쪽은 최소 성인 연령.

어딜 어떻게 뜯어보아도 중학생 이상으로 쳐줄 수 없는 릴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그럼 릴리가 성인이 된 모습일까?

그럴듯 하지만........그것도 아닌 듯 하다.

평소 거울에서 보던 것처럼 아름다운 외견에 특유의 이모구비가 살아있기는 하지만, 인상이라고 해야할까.......아무튼 분위기의 색이 너무나 다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각.

따지자면 자매, 혹은 부모?

아니, 그러면 난 왜 저 여인을 보자마자, 릴리를 떠올린 거지?

이러한 내 생각을 읽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단아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내 볼에 손을 가져갔다.

“우리 후배 님이 생각이 많아 보이네.”

“넌 누구야.”

처음도 그렇게 지금도 그렇고 날 후배라 부르는 이유가 뭘까.

본능과 이성의 반발.

한쪽은 받아들이라고, 한쪽은 미지의 존재를 경계하라고 한다.

이에 나도 모르게 날이 세워진 목소리로 답해자, 그녀는 하등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내 앞에 다가와 말했다.

“아리아스타라는 이름이 있긴 하지만, 이게 궁금한 건 아닐 테고 어떻게 설명하면 좋은까? 음........지구의 대표? 지구의 어머니? 뭐라, 설명이 힘드네.”

“지구 엄마? 니가 그럼 창조주라고?”

설마 내 앞에 계신 분이 전능하신 그분 인가 싶었지만, 역시나 그건 아닌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솔직히 그 칭호는 좀 어폐가 있거든. 나도 지구가 만든 존재인데. 근데 지구가 나를 어미로 만든 걸 어쩌겠니?”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당최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에 난 짜증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말이 전부 무가치한 건 아니었으니.

내 귓가에 맴도는 그녀의 이름, 아리아스타

본인은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 듯 말했지만, 내게는 무시할 수 없다.

상태창에 적혀 있던 나의, 정확히는 릴리의 국적.

아리아스타 하트

최소한 저 존재와 릴리라는 존재가 무언가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해진 것이다.

“아무튼 딱히 내게 해를 끼치러 온 건 아니니 걱정 하지마. 애초에 그럴 수도 없어. 이건 일종의 사념 같은 거거든. 특정한 시기가 되면 자동으로 후배 님에게 경고를 주려고 만든 편지라고나 할까?”

“경고? 뭐, 용제가 다시 오기라도 해?”

“뭐?”

지금까지 평온하던 그녀의 표정이 용제라는 단어가 들린 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마치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듯한 얼굴

아까까지 보인 여유는 몽땅 사라지고 그녀는 어느새 내 어깨를 잡은 체 역으로 따지듯이 묻기 시작했다.

“후배님이 지금 용제를 어떻게 알아? 아니지. 미안, 잠깐 기억 좀 볼게.”

“기억? 야. 그게 무슨 ─”

기억을 읽는다는 소리에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그럴 틈도 없이 그녀는 어느새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움직임.

그러나 이상하리 만치 난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살짝 따스한 손길이 내 머리를 집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후 살짝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입을 벌리며 경악하기도 하더니, 마침내 굳은 얼굴로 내 머리에서 손을 내리고 감았던 눈을 떴다.

“설마 동화 전에 공격이 들어올 줄이야.......”

예상 못 했다 중얼거리며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모습에는 작은 노기가 묻어났다.

뭐라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지금 분위기에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 그녀는 이내 체념한 듯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 기억 읽는 건 거부감이 좀 있을 텐데. 악의는 없어. 어떻게든 상황을 알 필요가 있었거든”

“그럼 설명이나 좀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들러 온 게 아니라면.”

“그렇지? 음.....장소가 별로 네. 내 소중한 후배님이랑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이런 곳일 수는 없지. 장소를 좀 옮길까?”

─타각!

가볍게 튕기는 손가락.

단순한 동작이고 흔한 동작이지만, 이상하리 만치 평소의 내 모습과 겹쳐 보이는 모습.

아무것도 없던 공간은 서서히 덧칠해져 간다.

마치 새로운 그림을 그리듯 변해가는 공간.

난 어느새 하늘하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에 앉아있고, 그녀 역시 내 맞은편에 있었다.

단지 다른 점은 복장이 변한 정도.

아까 날 보고 후배라고 칭한 건 이런 의미였을까

꼬마 코스프레 마녀인 나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진정한 정통 마녀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 심지어 손끝에 이르기까지 한 줌의 피부도 드러내지 않은 순흑의 복장.

유일한 예외는 그늘진 미소가 자리 잡은 얼굴 뿐.

로브 대신 까마귀의 깃털을 엮어 만든 망토를 두르고 그녀는 내 앞에 앉았다.

“야, 지구 엄마라메. 엄마가 마녀야? 어쩐지 세상이 막장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구만.”

“마법 쓰는 여자가 마녀지 뭐. 나도 원래 이런 복장은 아니었다구? 처음에는 여신으로 불리고 서서히 마녀라고 불린 거지.”

“식상한 설정이 또 나오는구나. 대충 예상은 가네. 신이라는 거지?”

“그에 가장 가깝겠지?”

“내가 변한 거, 사람들이 변한 거 당신 작품이고.”

“그렇지.”

당연하다는 듯이 시원하게 긍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난 인상을 찌뿌렸다.

지금 이것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혼란을 겪었는데.

하지만 직후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난 그만 입을 다물었다.

“뭘 그리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건지......”

“당당해도 괜찮지 않을까?”

살며시 들었던 찻잔을 내리며 살며시 손을 모으는 그녀.

“그 덕에 살았잖아?”

“.......”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변했기에 전쟁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찜찜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만약 게이트까지 그녀의 작품이라면 천하의 악신이라는 의미일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게이트라고 부르는 건 나도 예상하지 못한 거야. 애초에 변화도 이런 급격한 변화를 바란 게 아니었어. 좀 더 차츰, 서서히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놨는데.”

“그럼 그건.”

“침략. 아무래도 테라 측에서 프로텍터를 뚫는데 성공했다는 의미겠지. 테라의 신이 썩 곱게 죽어주진 않은 모양이네.”

“단어에 설명이 필요한데, 아니 잠깜만.......뭐가 죽어?”

“테라의 신, 아루마, 내가 죽인 테라의 대표.”

“.......”

“이해가 안 될 테니. 처음부터 설명해줄 게.”

“설정충은 예지인데....”

“아, 네가 그 성녀님이라고 부르는 아이? 후훗, 확실히 그 아이라면 좋아할 이야기겠네.”

방금 읽은 기억이 상대한 것인지, 그녀는 내가 아는 예지에 대한 지식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잠시 작게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가 쓰는 마력, 내공, 에테르 그건 세계의 백혈구 같은 거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힘.”

“진부한 설정이네.”

“그렇지? 그럼 문제. 지구에는 왜 그런 게 없었을까?”

“픽션을 리얼에서 찾으면 안 되니까.”

“음.......그게 픽션이면 지금 너희는?”

“......사람 말문 막히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네.”

확실히 그럼 왜 지구에는 그동안 그런 신비의 힘이 없었을까?

그저 모르고 산 걸까?

이에 대한 그녀의 답은 충격적이면서 심플했다.

“그 전부가 나거든. 내가 지구의 백혈구였고, 어미였고, 수호자였어. 지구는 살아가는 이들과 자신에게 힘을 뿌리는 대신 나라는 존재를 만든 거야.”

지구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고 한다.

어렸기에.

탄생한 이후 주변에는 이미 강대한 세상이 너무나 많았다고 한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세계들이.

동등하게 시작하기에는 이미 출발선이 한참 늦었다는 것.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

“몰빵이라고?.”

“하하, 그렇게 말해도 부정은 못 하겠네. 뭐, 조금 좋게 포장하면 어린 아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찌보면 나약한 선택.

스스로 일어서 싸우기보다는 원한 거다.

자신을 지켜주고 따뜻하게 보살펴줄 존재, 어머니를

그렇기에 본래 세상에 퍼트렸어야 할 힘이 한 존재를 빚어내는 데 사용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그녀.

“어쩌면 그렇기에 내가 여성형인 걸지도 모르지, 모성애의 바람 속에 탄생했으니”

“그래, 네가 지구의....그 뭐다. 몰빵이라고 치자. 그래서?”

“지구를 노리던 세상은 총 세 개가 있었어.”

“세 개?......설마.”

“너희가 판타지아, 무검산, 이터널이라 부르는 곳들이지”

* * *

“삼국지 알지? 지구가 딱 거기 한가운데 박힌 소국이라고 보면 돼. 그것도 아주 탐스러운 땅을 가진”

현상적으로는 동화

마치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과정이 일어난다.

세계의 의지가 제 살을 불리기 위해 격돌하는 전쟁.

나약한 지구는 보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단지,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이 3명이고 지들끼리 싸우다가 우리 명줄이 좀 길어진 거지.”

“가만히 기다렸으면 공멸하는 거 아냐? 단순 싸움도 아니고 세계 단위로 부딪치면 무조건 그렇게 될 거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나 말했지? 한쪽이 한쪽을 잡아먹는 과정이라고. 결국 힘은 사라지지 않아. 특히 별이 정한 대표는 더더욱.”

살아가는 존재의 9할이 갈려 나간다고 해도 승리만 한다면 상관없다고 한다.

그 이후 힘을 흡수한 세계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힘을 부여해 더욱 강한 존재로 승화시켜 수호자로 삼은 후 새로운 세대를 잉태하니,

결국, 세계는 강해진다.

그리고 그 힘으로 또 다른 세계를 잡아먹는 것.

“누가 이기든 상관은 없는데, 결국 우리는 죽지.”

비록 주체에 의해 형태가 다를지라도 다가올 적은 최소 3개 세계의 힘이 합쳐진 곳.

승산 따위는 전무했다.

솔직히 셋은 커녕 하나만 하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니까.

“어쩌겠니. 그럼 선수를 쳐야지.”

다행히 면역 작용을 하는 차원의 벽은 격돌로 인해 약해진 상태.

그녀는 생각보다 힘을 온존한 채 그들의 전장에 참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얼마나 지구를 약하게 봤던 건지 관심조차 없었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모리아, 너희가 이터널로 아는 세계. 그 별의 대표부터 죽였어. 일단 제일 약했거든”

일종의 비율의 차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한 세계가 가진 힘이 100이라면

이를 살아가는 존재들 즉, 스스로에게 부여한 힘이 75, 대표에게 부여한 힘이 25

그에 비해 지구는 가진 힘이 고작 30밖에 없지만, 그 30을 온전히 대표에게 모두 부여한 상황

“전장이 지구였다면 아마 세계가 박살 났겠지만.”

다행히 전장은 이미 옮긴 지 오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계가 부서지는 격돌이 있었지만, 그녀는 승리를 젱취했다.

그렇게 손에 쥔 모리아의 대표의 힘.

그럼 이제 뭐가 문제냐고 난 물었지만, 그녀는 문제가 아주 많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님이 최강 아님?”

“아니지. 이런 꼼수가 통했으면 세계는 바보니? 다 대표에게 힘을 몰빵하지.”

물론 그것만은 이유가 아니라고 한다.

대표라는 존재 자체가 리스크가 큰 방법이라고.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에게 부여된 힘은 죽음과 함께 다시 환수되는 반면 대표처럼 직접 빗은 존재는 환수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그녀는 모리아의 대표의 힘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그로를 끌었으면 대가를 치르는 법.

어린아이라고 무시했던 소녀의 손에 무지막지한 칼이 들려있음을 알고.

그것도 모자라 그 소녀가 사람 하나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어른은 어떻게 반응할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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