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다음을 위한 일상 (2)
* * *
“하하, 소라가 그렇게 이야기했니? 얘도 참.”
“예?”
“우리도 예지 씨한테 이야기 다 들었단다. 뭐, 걱정은 엄청 했지. 그래도 이번에 네가 한 일이 사고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너무 과격한 감은 없지 않아 있지만.”
나름 한바탕 잔소리를 각오하고 건 전화였는데, 들려온 어머니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듣자 하니, 이미 사건의 전말은 다 들어 알고 있다고.
아니, 당장 호텔 테러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리웨이의 추격에 나서고 있는 사람 중에 어머니랑 아버지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왜 소라를 내 집에 보냈냐고 물으니.
“괘씸한 벌이야. 그런 이야기를 내가 예지 씨한테 들어야겠어? 그리고 일 벌이기 전에 엄마한테 귀뜸 정도는 해줄 서 없었니?”
“아~~쫌!!”
“하여튼 간에, 걱정하는 부모 마음 알았으면 최소한 돌아오자마자 연락을 줬어야지.”
“잘못했습니다!!! 부디 자비를!!”
“딸 좋아하는 말 있지? 응. 꺼져”
뭐, 이건 적당히 주고받는 농담 같은 거고, 사실 소라를 우리 집에 보낸 건 내게 부탁할 게 것이 있어서라고 한다.
듣자 하니 소라도 내 자립을 보고 독립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나?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부모님과 소라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겨버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소라는 진작에 독립해도 문제가 없었다.
생활력이라던가 이런저런 자립에 필요한 요건들이 있겠지만, 그거야 살다 보면 어련히 갖춰지는 덕목들.
뭐니 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건 돈과 직장.
솔직히 요즘 시대에 자립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학에 가면서 어쩔 수 없이 자취를 하고.
직장을 구하다 보니 집과 부모님을 떠나게 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나 같은 백수와 다르게 소라는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어였한 직업이 있다.
그것도 소속사 계약을 체결하고 편집자와 일러스터까지 고용한 번듯한 방송인이지.
물론 주력 콘텐츠가 판타지아 게임 방송이었다 보니 지금은 타격이 좀 크지만 변화한 외모 덕분에 오히려 이미지 자체는 사람들에게 더 익숙해져 빠르게 적응 중이라고.
전에 나도 찾아봤는데 인기가 떨어지기는 커녕 조금 늘었었나?
작금의 시기를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지.
재능이 있다.
본인도 좋아하는 일이고.
하지만 여기서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VR게임기만 있으면 됐던 저번 환경과 다르게 지금은 리얼.
소라와 부모님 간의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로서로 양보도 하고 부모님께서 배려를 많이 해주신 덕분에 넘어가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소라는 방송인으로서의 꿈과 욕심이 있었으니.
그로인해 콘텐츠 확장과 더불어 독립의 필요성을 느꼈다.
“음......애매하네요.”
“우리도 소라에게 미안해. 너랑 비슷하게 꿈을 막게 하는 거 같아서. 하지만 조건이 다르잖니?”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확실히 조건이 다르다.
부모님이 내 독립을 허락한 건 마냥 내게 미안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니까.
내가 강했기 때문이지.
흔히들 하는 말이. 요즘 밖에 다니기 무섭다라고 하는데.....사실이다.
사회 뒷편,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와 사건 사고.
멀리 볼 것도 없다.
만약, 나와 샤오린의 충돌에서 내가 카녹스를 써 전장을 한정하지 않았다면?
그로 인해 여파가 아파트 단지 전체로 퍼져나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 같은가?
겨우 기사 몇 줄, 경찰 조사 몇 번이 끝이다.
힘이 없으면, 지금 시대에는 이렇게 되는 것.
나의 경우는 부모님이 오히려 지켜질 것을 알았기에 놓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방해일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소환수.
상시 방심 따위 하지 않고 부모님보다도 더 잘 날 지켜주는 존재가 내 곁에 있었기에 부모님은 떨리는 손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라는?
“소라도 강해요.”
“알지.”
“전 세계에 따져도 지금 소라를 해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죠.”
“그것도 알아.”
“하이엘프잖아요? 독이 통할리도 없고, 마력저항력도 높으니까. 저주가 통할리도 거의 없고.”
“결국, ‘거의’라는 거 잖니.”
평행선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무엇보다 소라 자신이 느끼기에는 과보호일 것이다.
당장 소라도 제주 전선에서 활약한 용사.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데, 234위의 말석 랭커 따위가 아니다.
오로지 300위 권 랭커만이 모인 그 전장에서 소라는 제 몫 이상의 성과를 거둔 강자였지.
더군다나 공방 일체의 만능형 직업에 하이엘프라는 희대의 사기 종족이 만나, 독도 통하지 않고 높은 마력저항력으로 어지간한 함정은 정면에서 돌파.
더욱이 격했던 전장을 넘어 성장을 거듭했으며.
뛰어난 재능까지 만나 아직도 날개짓을 이어가는 중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체 어디가 보호가 필요하냐고 묻겠지.
대체 지금 이 세상에 소라를 해할 사람이 몇이냐 되느냐며.
그러나 그건 남들 생각일 뿐.
부모가 어떻게 남들처럼 자식을 대할 수 있냔 말인가.
당장 어머니, 아버지 모두 소라보다 강하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 만나고 다니는 예지, 철수, 성환, 유리는 물론 자기 혼자 X밥이라며 투덜거리는 민준이 마저 소라 쯤은 한 손으로 찜쪄먹을 텐데.
그나마 지금이면 민준이가 문주로 있는 별무문의 부문주, 연희랑 붙으면 선전하지 않을까?
아, 물론 패배는 확정이다.
어디까지나 선전.
‘뭐, 이 정도도 뛰어난 걸 넘는 비상이지만.’
부모님 마음도 이해되고 소라 마음도 이해가 간다.
서로 왜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거냐는 상황에 안타까움도 느낀다.
하지만 부모님은 지금 더더욱 불안할 것이다.
당장 본인들이 추격하고 있다는 리웨이도 소라 정도는 가볍게 이길 테고.
나와 장 첸의 사건으로 인해 세상은 더더욱 혼란에 휩싸이는 중이니까.
깊은 한숨을 쉰 난 부모님의 의중을 깨달았다.
“그래서 저한테 선택권을 넘긴 거에요?”
“그래, 내가 보고 판단해 주렴. 우리도 그때 일을 많이 반성하는 중이야. 그래서 소라에게 그저 안 된다고만 할 수는 없겠구나.”
“제가 독립시키면 진짜 허락하긴 할 거에요?”
“그래, 그이도 동의했어. 최소한 나랑 그의 보단 객관적으로 판단해 주걸 믿으니까.”
“소라는 알고요?”
“후훗, 아니까. 그런 장난을 쳤지 않겠니? 너한테 한참 을로 들어가야 하니 불안한 거지. ‘나도 무기 하나 쥐고 있다!’ 라고 꼬리 세우는 거려나?”
“에휴~~~~”
이 전화만 끝나면 그대로 조져버리겠다 다짐하고 있는데, 하여간 눈치는 좋은 건지, 어느새 저기 부엌에서 라면 끓이면서 헤실헤실 나를 향해 광대뼈를 올리고 있었다.
옆에 식은 땀이 흐르는 걸 보니 제 운명을 알긴 아나보네.
그러나 부모님은 소라가 말한 것도 그리 틀린 건 아니라고 했다.
나도 너무 과격했다고.
자신들과 예지,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사람들과 좀 더 이야기를 주고 받은 후에 행동했어도 좋았지 않냐는 것이다.
나도 확실히 그때는 기세에 올라 너무 급하게 대충 일을 처리한 자각은 있고.
얼굴 마담이라고 해도, 민중이랑 연희를 비롯해, 별무문 사람이라도 데려갔었다면.
아니 예지를 데려갔었다면 혼란이 훨씬 적었을 것이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지금의 일도 예견하고 준비도 했겠지.
그 점을 지적하며 어머니는 말했다.
“너도 신중하게 판단하렴. 만약 네가 소라 독립시켰는데, 소라가 다치면......”
“예이! 판결권을 미뤘는데 저한테 책임을 지우시면 곤란합니다.”
“........그건 그렇지. 대신 엄마가 매일매일 너 찾아갈 거야!”
“아......그....그건 반칙이지!!”
“청소 안 돼 있으면 엄청 구박하고, 저번처럼 콩자반만 남겨놔도 잔소리 폭탄이다!!! 며느리 시집살이가 뭔지 내가 다 가르쳐 줄 거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머니!!”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린 어머니.
난 소라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미워졌다.
* * *
“소라야.”
“응.”
“라면이 짜구나.”
“라면이 원래 짜지 뭔 개─ 가! 아니라......무....물 좀 탈까요?”
거실에 앉아 소라가 끓여온 라면을 나눠 먹는 나와 소라.
확실히 내 눈치를 보는 건지, 계란을 풀지 않고 수란형식으로 끓은 라면이다.
뭐, 그래도 점수는 80점
사람이 2명인데 계란은 최소 5개는 넣어야지.
“미쳤어? 어떤 인간이 라면 두 개 끓이는데 계란을 5개나 넣어?!”
“어? 독립하기 싫다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네?”
“으아아앙~~~ 오빠, 아니 언니 나 좀 봐주라!!”
어느새 내 치마 끝자락을 잡고 글썽거리는 소라를 보며 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길래 어디서 허세를.
뭐, 완전 허세가 아니기에 나도 좀 어깨가 무겁긴 하다만.
들고 있는 패의 무게가 다르다.
이슬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는 소라를 보며 난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야”
“넵!”
“솔직히 난 니가 지금 독립해도 상관없을 거 같거든? 엄마 아빠는 뭐라 할지 모르겠는데, 밖에 나돌아다니는 사람 중에 너만한 사람 없는 건 사실이니까.”
객관적으로 보라고 하셨는데, 그 말부터 어폐가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미 이야기 끝난 거지.
부모님들도 인정했지 않은가?
소라 강한 거.
“근데, 부모님 마음도 이해는 가. 나도 제법 불안하기는 하거든.”
가족 마음이라는 거겠지.
남들이 어떻게 보건 간에 불안한 걸 어쩌라고.
그러나 동시에 소라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다.
장 첸의 일을 서둘러 처리해 혼란을 가중 시킨 건 어느 정도 내 몫도 있긴 하니까.
그렇기에 난 작은 한숨과 함께 이해한다는 듯이 소라에게 말했다.
“집이 답답해서 그랬지?”
“응......”
“그럴만하지. 게임기 하나 있으면 산천초목 어디든지 돌아다니면서 너 마음대로 방송했을 텐데. 부모님이 아무리 배려해준다 한들 만족스럽겠냐. 눈치도 보일 테고.”
으래 부모님에게 보이고 싶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거니까.
특히 방송하다보면 아무리 우리 부모님이 개방적이고 잘 받아준다고 해도 말 못할 일이라는 게 있을 거다.
나도 방송을 보는 시청자 중 한 명으로서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도 봤고, 그걸 참고 넘기는 방송인은 더더욱 많이 봤다.
그런 걸 보이고 싶지 않겠지.
그렇다고 하지 않기도 싫고.
내 말에 소라는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훌쩍! 어.....언니.....”
조금씩조금씩 다가오는 소라를 못이기는 척 받아주며 난 소라의 머리에 손을 작은 미소를 지었다.
“합의를 보자고. 부모님보다야 내가 편할 테니까. 그냥 우리 집에서 방송해. 정공간이 딸리면 내가 내일 옆집이랑 이야기해서 비워볼 테니까.”
“저.....정말?!!”
“뭐, 전에 샤오린이랑 싸운 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집값이 좀 떨어졌다고 하니까. 웃돈 좀 올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자금도 문제없다.
애단과 미쉘에게 한 협박이 먹혀들었는지. 마정석과 부산물에 관한 것도 거의 마무리에 접어들고 있으니까.
서서히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는 거 보면 돈이야 걱정할 필요 없겠지.
내가 잡은 게 얼마인데.
“그러다가 좀 덜 시끄러워지고 나서 부모님한테 말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여간 너도 눈치가 없어. 야, 지금 상위 플레이어 법안이다 뭐다 시끄러워 죽겠는데, 타이밍이라는 걸 좀 재고 이야기해라.”
“으아아앙~~~!! 언빠!!”
“둘이 막 교차해서 쓰더니만 이제 아예 신조로 합성했군. 가서 물이나 가져와!!”
안겨드는 소라를 뻥 차리며 난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뭐, 요즘 적적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