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다음을 위한 일상
* * *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던가.
파란만장했던 나의 중국행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정부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플레이어 통제 법안 발의하라!!”
““발의하라!!””
연신 광장에 모여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마냥 한국에 국한 된 일이 아닌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모습이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아직 언론이 조심스러운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서로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모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
플레이어 통제 법안
조금 정확히 표현한다면 상위 플레이어 통제 법안이겠지.
엄연히 따지자면 너도 나도 모두 플레이어에 속하는 거니까.
사실 지금까지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괴수와의 전쟁.
비록 승리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이 전쟁에서 사람들은 지킨 최고 공로자는 엄연히 전선에서 싸운 플레이어들이었다.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용제를 막지 않았다면?
아니, 단순히 제주도를 봉쇄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못해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절반이 쓸려갔겠지.
인류를 수호한 전쟁 영웅
기타 다른 수식어를 필요지 않는 최고의 명예.
이것이 현 플레이어들의 위상이다.
이런 와중에 플레이어를 통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
물론 나오긴 나왔지.
장 첸이 한 일을 미리 예견한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힘을 얻기에는 당시 플레이어들의 힘과 명성이 너무나 막강했지.
당장에 ‘너가 살아있는 것도 다 플레이어들이 지켜준 덕분인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라는 말을 듣고 입을 뻥끗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거기에 실질적인 통제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
아이템 중에는 플레이어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무검산의 산공독은 내공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고.
판타지아에서도 내 것과 비슷한 저주, 혹은 마력을 제한하는 아티펙트나 약초들이 즐비하며.
특히 이터널의 특수 형무자 구속복은 이미 현대 사회에 존재한 것과 매우 유사하면서 큰 효과를 가지는 도구다.
그러나 그건 어디서 구하는데?
그마저도 다 플레이어의 도구인데 말이지.
더군다나 상위 플레이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산공독 쯤 장 첸의 선에 갈 것도 없이 만렙이라면 다 통하지도 않고, 그 아래라고 해도 금방 해독할 수 있다.
더군다나 내공이 없다고 해도 2차 환골탈태를 거친 무인들은 이미 초인의 영역.
내공이 없어도 맨주먹으로 건물을 때려 부술 수 있다.
판타지아 역시 이하 동문.
이터널의 구속복도 개인 에스퍼 능력자나 구속하는 도구일 뿐, 유리 같은 외부 무장의 소유자에게는 의미가 없다.
설마 지금 군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겠지?
군대가 못 막아서 나선 게 플레이어인데.
더군다나 마력과 같은 힘의 물리력 무시는 괴수에게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마력을 몸에 두르는 건 이제 레벨이 어느 정도 되는 일반인도 차츰 익히고 있는 수준.
지나가는 사람의 3할 정도가 가벼운 권총 정도는 막을 수 있는 세상에서 순수한 냉병기 따위 진작에 쓰레기 더미 속에 처박힌 지 오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외면했다.
사회 뒷편에서 플레이어가 일으키고 있는 문제.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
공권력을 무시하는 폭력.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에서 고개를 돌렸다.
아마 정부가 마저 손을 놓은 게 영향이 컸겠지.
그로 인해 매스컴까지 눈을 감았으니, 그 심각성이 사람들 사이로 퍼지지도 못했고.
그러나 정부를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고른 것이니, 플레이어의 힘은 미래를 위해서도 그리고 현재를 위해서도 필수 불가결.
플레이어를 통제해도 플레이어가 하고.
훗날 전쟁을 대비할 존재도 결국 플레이어다.
이 와중에 그나마 최선을 다해 공권력의 겉모습이라도 유지했기에 그나마 일상의 형태라도 보존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지.
나라는 존재와 장 첸이라는 존재로부터.
비록 모선의 필터 덕분에 내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 뿐.
진실성을 위해 모선이 행한 전투, 그리고 나의 소환수가 했던 전투의 일부는 적당히 사람들 사이로 송출되었다.
천지를 울리는 격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우주 대전.
멀리서 보면 내 소환수도 얼핏 보면 사람이니, 사람과 사람이 부딪쳐 그 여파로 건물들이 갈려나가고
하늘에 빗발치는 비행선들과 이를 더 가볍게 묵살하는 모선의 포격이 생중계되어 퍼져나갔다.
이를 본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와함께 방송된 장 첸의 만행은 사람들의 잠시동안 정의에 불타오르게 했을 뿐.
열기가 식고, 서서히 냉철함을 되찾은 대중들은 드디어 자각했다.
‘아.....저게 플레이어란 존재구나.’
‘저런 폭력이 존재한다니.....’
‘만약 저 힘이 날 향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백날 입으로 떠들어도 외면하던 현실을 직시시키는 강력한 시각 효과.
세계는 다시금 또 다른 이유로 타오른다.
* * *
“세계가 타오르든지 말든지......”
지금 내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일상을 위협하는 최악의 침략자가 찾아오고 말았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강소라 입니다!!”
“꺼져!”
─쾅!!!
슬쩍 현관문 사이로 찰랑거리는 은발이 보이자마자 난 거침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저년이 왜 와?
아니 오는 거야, 엄마 등짝 스메시를 피해 가끔 오니 이상할 건 없는데, 방금 오른손에 들린 검은 상자.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 캐리어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고 캐리어를 끌고 찾아온 적은 없었는데....
슬금슬금 불안한 느낌이 엄습하는 가운데 엄지손톱을 물어뜯고 있자, 문 밖에서 다시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쾅! 쾅! 쾅!
“모시모시!! 오라버니!! 문 열어줘~~!!”
“아나, 꺼지라고!!”
“으에에에? 설마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밖에서 재울 생각이야? 귀축?”
“이게 쳐 돌았나?”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뭐? 사랑스러운 여동생?
그러나 이는 소악마 같은 년의 함정이었으니
내가 분노에 눈이 멀어 바로 문을 열자, 소라는 그 틈을 타 잽싸게 날 피해 집안으로 직행했다.
심지어 신발 뒤축을 미리 벗어두는 치밀함까지!
후다닥 집안으로 달려간 소라는 바로 소파 위로 점프!
헤실헤실 늘어지는 얼굴로 소파 쿠션에 얼굴을 비볐다.
“히잉~~~ 최고당~~ 우리 집 쿠션 쓰렉”
“아씨! 어제 빨래했는데!! 야 안 나와?!!”
“히히! 데헷!”
진화한 외모와 노련한 방송인의 노하우가 담긴 깜찍한 미소......가 아니지.
이게 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난 문답무용으로 소파에 드러누은 녀석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내기 시작했다.
“으에엥~~?!”
“으에엥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빨리 나와 이년아!!”
질질 끌려 나는 소라는 소파 끄트머리를 잡고 안간힘을 다해 견뎠지만, 결국 힘의 대결에서 패배.
마치 친자식이랑 생이별이라도 하는 것마냥 글썽거리는 얼굴로 소파에서 떨어졌다,
난 그대로 소라를 끌고 베란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응?!”
“너도 랭커지? 어차피 3층이니까, 머리부터 떨어져도 안 죽으리라 믿는다.”
“아....아니! 잠깐!! 아무리 그래도 여동생을 베란다에서 던지는 건 아니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넌 지금 내 여동생이 아니여.”
손에 저 흉물스러운 캐리어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만 니가 내 여동생이지,
저걸 들고 온 시점에서 소라는 이미 침략자.
내 둥지를 위협하는 적이다.
적에게 자비를 보일 이유는 없으니.
난 망설임 없이 베란다 창물을 열어젖혔다.
따뜻한 실내 공기를 파고드는 찬 바람에 소라는 내가 진심인 걸 깨달았은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아니!! 잠깐 일단 말 좀.”
“나가서 이야기해, 창문 닫고 들어줄테니까.”
“아니! 창문 닫는 건 들어줄 생각 없다는 거잖아!!”
“어차피 결과가 같으니까 상관없음.”
그렇게 베란다 난간에 올라서서 소라를 뒤덜미를 내민 난 마치막으로 소라를 향해 말했다.
“네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지. 내가 원하는 말을 말해봐”
“사....사랑해?”
그 대답에 난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에 소라는 얼굴은 태양처럼 해맑은 미소로 번져갔지만.
“틀렸어, 이년아!!”
참고로 정답은 없었다.
* * *
“아야.... 진짜로 던졌어. 오빠 맞아?”
놓은 것도 아니고 설마 바닥을 향해 내 던질 줄은 몰랐으니, 머리를 만지작 거리는 소라는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오빠 아니거든?”
“흥치뽕이다! 언니라고 해도 똑같이 말할 거면서!”
“알긴 아네.”
“히잉~~ 혹이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혹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엄연히 저렇게 보여도 랭커.
그것도 전선에 참여한 대한민국의 랭커다.
제주 전선에서 구를 대로 구른 나름 알아주는 강자.
더군다나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제주도 전투 덕분에 다들 레벨이 오른 편이고, 소라는 그 중에서도 재능이 매우 뛰어난 편이라 더 많이 오른 캐이스이니.
지금 순위를 평가할 수 있다면 전 보다 훨씬 윗줄에 놓일 수 있다.
그런 육체가 고작 떨어진 정도로 혹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떨어진 게 아니라 내던졌잖아!”
“아~~ 몰라. 왜 왔어? 참고로 자고 간다 같은 멍멍이 소리를 하면 다시 던져버린다.”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린 내게 소라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이내 캐리어로 다가가 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미안하지만, 자고 가는 거 맞는데? 그것도 오랬동안.”
“어이쿠! 요새 팔 운동을 안했더니만, 근손실이 일어나네. 여동생 투환이라고 할까?”
“그.....그런다고 내가 쫄 줄 아나?”
하는 말에 비해 잔뜩 쫄기는 쫄았는지, 후다닥 나와 거리를 벌린 소라는 방금 꺼낸 종이를 내밀며 소리쳤다.
“계약 위반은 오빠가 먼저 했지!!”
“계약 위반?”
“그래!! 독립할 때 마지막 조건 기억 안 나?”
“뭔 소리─ 어? 그러고 보니...”
소라의 말에 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가 예지의 도움으로 독립이 결정되고 집들이를 끝내고 가족들이 돌아가는 시점.
어머니와 나의 대화.
‘약속하나만 해 주렴.’
‘약속?’
‘우리 딸 강한 건 이제 엄마도 아는데, 사고 치지는 말기. 솔직히 모습이 변한 후에 너 싸울 때 성격이 변한 느낌이라 엄마가 걱정이야.’
오벨리스크도 그렇고 전선에서 싸운 내 모습을 보았던 어머니의 걱정은 타당했다.
나도 사실 자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부정하지 못했던 말.
‘아, 확실히 그런 경향이 좀 있긴 있지만......’
‘엄마도 많이 바라는 건 아니야. 소라처럼 철이 안 든 것도 아니고, 다 큰 자식 계속 잔소리할 수는 없으니까. 너도 네 길이 있겠지. 그래도 엄마, 아빠 걱정할 일만 만들지 말아줘. 약속 할 수 있지?’
‘뭐....그정도야. 나도 시끄럽게 살 생각 없어.’
‘그럼 딸, 엄마는 믿고 갈 게. 약속 꼭 지키렴.’
의미 없다면 없고, 있다면 큰 의미가 있을 마지막 손가락 걸이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난 회상을 마치고 현실로 귀환했다.
“아, 사고.....”
그제서야 지금의 난 내 상황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바라본 어머니의 심정 또한
딱딱하게 굳은 목을 움직여 소라를 향해자, 그곳에는 방금 전 쫄았던 모습은 온대 간데 사라진 소라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자리잡고 있었다.
“계약 위반자! 오라를 받으라!!”
“아니...잠깐만, 잠깐만요! 설마?”
“후훗!! 나 암행어사 강소라!! 죄인 강시혁을 감시하러 찾아온 판관이니라!!”
세상이 타오르는 걸 신경 쓸 때가 아니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