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술래 끝! 이제 역할을 바꿔 봅시다!! (6)
* * *
장 첸은 현명했다.
전 세계에 본인의 만행이.
용생구자의 실체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즉시 한 행동은 나를 행해 권강을 내지른 것.
누가 보면 그저 이성을 잃고 날뛴 게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천만의 말씀.
그의 행동은 합리적이면서 높은 확률로 현제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사실상 내가 한 짓은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운 것뿐.
장 첸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범죄자라도 그를 처벌하는 방식이 똑같은 범죄가 될 수는 없는 법.
썩어 빠진 정부를 뜯어 고치겠다는 이유로 정부 인사를 말살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장 첸.
악의 무리를 섬멸하고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그래도 일단 정부 기관의 용생구자의 건물을 쓸어버린 나.
오십보백보지 뭐.
과거의 상식으로는 우리 모두 손잡고 깜방으로 직행해야 하는 똑같은 범죄자일 뿐이다.
그러나 세상이 요 모양 요 꼴이잖아?
어차피 최상위 랭커급 플레이어는 반쯤 치외법권이다.
타국이라고 장 첸이 한 짓을 몰랐을 거 같은가?
애초에 내 정보의 출처가 미국인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장 첸도 용생구자도 다시금 전쟁이 다가오면 인류의 최전선에서 싸울 용사.
하등 이익도 되지 않을 일 때문에 장 첸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
그렇기에 지금의 장 첸과 나의 문제 또한 그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
양쪽 모두 지지할 이유가 있다.
양쪽 모두 지탄할 이유도 있다.
대립하는 나와 장 첸
세상 사람들이 한쪽을 고른다면 어느 쪽을 고르겠는가?
장 첸은 이걸 알았기에 날 향해 권강을 내질렀다.
스스로 강자임을 증명해 세상 사람들이 내가 아닌 자신을 고르도록 하기 위해서.
겸사겸사 하늘에 뜬 유리를 떨어뜨릴 미끼 역할도 필요했을 거고.
또 오는 길에 다른 곳에 소환수가 뿌려져 있던 것도 감지했을 테니, 그들이 오기 전에 정리하려는 심보도 있었겠지.
단지, 그의 실수는 두 가지 사실을 몰랐다는 점.
그 첫 번째
─푸욱!!
“으으윽!!!”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전신이 상처로 도배되어 만친상이가 된 장 첸.
그는 마치 쓰러진 주인공처럼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땅을 기었지만, 연신 바닥을 구를 뿐.
팔도 몸도 그의 의지를 따라주지 못했다.
절망적일 정도의 격차.
대체 어떻게 무검산 1위인 자신과 이런 차이를 낼 수 있는 건가에 끊임없는 의문을 품으며 그는 이를 갈았다.
“크으으.....어째서!!”
그러나 난 그런 장 첸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로 그를 치하했으니,
짝짝짝
“미안 널 오해했어. 굉장한데?”
랭킹 1위면서 4위인 성환이에게 졌다고 했길래, 그저 장비 스팩 믿고 나대는 컨셉충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충분한 실력,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절로 감탄을 자아낼 임기응변
타고난 센스에 마지막까지 비장의 수를 감춰두는 치밀함까지.
그는 충분히 선전했다.
단지, 상대가 나빴을 뿐.
“샤오린 같은 년과는 격이 다르구나.”
모양새만 보면 장 첸 역시 샤오린처럼 페르난도 한 명에게 패배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 동일하지 않으니.
그건 지금 페르난도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전신을 감싼 채 흉폭한 기운을 내뿜는 적색 안개.
처음의 모습은 찾을 수 없는 뒤틀린 갑주
사라진 마르가스와 함께 어느새 형태가 변한 워해머.
혈마술을 통한 내 최강의 소환수 강화기
[붉은 질주]
거기에 유일 무기를 제작하기 위해 연구하던 도중 융합 마술 속에서 탄생한 소환수의 장비화까지.
사실상 장 첸은 소환수 둘, 그것도 상당한 강화를 거친 둘을 꺼냈어야만 제압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가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있을까.
“크으윽!!!”
어떻게든 쓰러진 상태에서 바닥을 집고 일어서려는 장 첸
정말 주인공이 따로 없네.
단지, 눈빛이 좀 심상치 않은데.
얼추 보면 ‘난 절대 포기할 수 없어!!’ 라는 열혈형 주인공의 눈이 아닌.
‘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같은 복수형 주인공의 눈이라는 거.
이해는 한다.
그야.
“아이링!! 샤오링!!”
진짜 배신 당했으니까.
정확히는 외면인가?
이게 바로 장 첸의 두 번째 실수.
나와 장 첸의 전투가 시작된 직후부터, 장 첸이 피범벅이 되어 도망칠 시간을 벌라며 고함치는 순간까지 그의 뒤에 서 있던 리 아이링과 리 샤오링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뿐이냐.
다가서려는 모든 부하를 제지.
오히려 전장에서 더 떨어지기만 했다.
나야 상관없으니 그냥 두기는 했는데 막상 끝나니 궁금하긴 해서 그녀들을 행해 물었다.
“너희들 장 첸이 가장 신뢰하는 부하라고 들었는데.....아님?”
“장 첸은 저희를 가장 신뢰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뢰가 꼭 충성과 믿음에서 오는 건 아니지요. 특히나 배신에 몸을 맞긴 이에게는”
나긋나긋 단아하게 들려온 목소리에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뭔가 약점 같은 게 잡혀서 장 첸을 따랐다는 건가?
그래서 지금 통수를 친 거고?
실제로 장 첸이 이를 증명하듯 뒤에서 목이 떨어져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너희 부모에 심긴 고독의 약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잊─”
─꽈득!
뭐, 그리 시끄럽게 떠드냐는 듯 그대로 장 첸의 정수리를 짓밟는 페르난도.
당연히 내가 시킨 거다.
“대강 무슨 소린지 알것 같아서 잘랐는데, 혹시 뒷 내용 있어?”
“아뇨 없습니다.”
“듣기 싫은 소음을 막아주신 배려, 감사드립니다.”
완전 무표정.
뒷에 대사에는 나름 뼈가 담긴 듯 보이지만, 여전히 어조의 높낮이도 목소리의 떨림도 없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아까 부모님 어쩌고 한 거 같은데.....
그러나 둘은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치가 그렇게 알고 있는 것 뿐,”
“실제로는 무관하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와.......너네 뭐냐?”
그니까 장 첸은 부모랍시고 잡고 있었는데 사실은 완전 남남이다?
그런데 미국이 조사해서 가장 신뢰할 정도로 붙어있었고?
절로 경계가 서는 내용에, 내가 낫을 바로 잡고, 페르난도가 움직일 준비를 하자,
두 여인은 이번에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경계하실 필요없습니다.”
“저희는 당신과 척을 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요. 증명은 조금이나마 했다고 봅니다.”
“장 첸과의 싸움에 안 낀 거? 부족한데? 너희들이 끼어들어도 바뀌는 게 없으니 그런 걸 수도 있잖아?”
소라보다났다는 거지, 그래 봐야 겨우 그 정도란 의미다.
장 첸과 페르난도의 싸움에 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능력.
겨우 일회용 고기 방패 수준이려나?
실제로도 둘은 쿨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예, 그렇지요.”
“실제로 저희가 달려들었다면, 장 첸과 다르게 저희는 망설임 없이 죽이셨을 터이니”
‘장 첸과 다르게 라.....’
“마치 내가 장 첸을 안 죽일 거처럼 말한다?”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둘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감히, 귀빈의 의중을 읽자면.”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비록 저희 경지가 초라하나 알 수 있습니다.”
“죽이셨을 거라면 이미 장 첸의 시신이 남아 있지 않을 거란 걸”
이 정도 격차
이 정도 압살이다.
마무리를 지으려면 진작에 했을 터.
아무리 그녀 자신들이 싸움을 따라가지 못해도 눈이 있기에 페르난도가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닌 제압이 목적이란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둘의 대답에 잠시 뜸을 드리고 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장 첸을 죽일 목적이 아니었다고 치자. 그럼 왜 살렸을까?”
이젠 어디까지 가나 궁금해져 콧방귀를 끼며 묻자 둘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귀찮으실테니까요.””
“.......”
너무 단답형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뒤로 그녀들은 조금 첨언은 더했다.
“모선이 송출한 방송은 귀빈께 싸울 명분을 주었지만, 동시에 족쇄를 걸었습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와중, 아무리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무검산의 정상에 앉은 자를 죽을 수는 없는 법.”
“장 첸은 아니던 거 같던데.....”
“여유란 강자에게 허락된 권리.”
“장 첸에게는 없었지만, 귀빈께는 그 여유가 있으셨지요.”
온몸에 불이 붙어 바닥을 구르고 바다에라도 몸을 던져야 했던 장 첸과는 다르다.
넌 그저 옷 소매에 작은 불씨조각이 앉았을 뿐
언제든 툴툴 털어버려 끌수 있는 작은 불씨.
그런 하찮은 것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멀리 보지 못하는 자는 없다
아이링과 샤오링을 그리 말하고 있었다.
팔짱을 낀 체 눈을 감은 난 잠시 고민했다.
그래, 틀린 말은 없지.
역으로 따지면 장 첸만 아니면 상관없다.
이미 장 첸이 오기 전에 죽인 자들도 있는 마당에 무슨.
내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둘은 그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너희는 누군데?”
“모두가 장 첸을 따르는 건 아니다....라고 하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아니.”
““........””
내가 호구인 줄 아나.
이제와서 장 첸에게 반하는 사람들?
뭐, 사실 알고는 있다.
흑사회는 소수고 그 밖에 중국 플레이어들이 모인 모임이 있다는 정보는 익히 들었으니.
저렇게 부모까지 속여 잠입한 거 보면 못 믿어 줄 건 없지.
근데, 그게 어쩌라고?
“왜? 너희에게 이름이라도 빌려줘서, 명분을 바로 세우라고? 필요없어. 어차피 장 첸이 저꼴 난 시점에서 게임 끝이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제 장 첸을 한물간 배로 보고 자신들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가 한 일에 대한 걸 옹호하는 기사와 뉴스를 쏟아낼 것이고.
그 어디에서도 우리와 적대관계에 놓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
이미 다 끝난 일이다.
“그래, 장 첸을 죽일 수는 없어. 하지만 내 나름대로 눌러둘 방법은 있으니까. 이 짓을 한 거야.”
─타각!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모여드는 새하얀 안개
그 속에서 소복을 차려입은 순백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으로 이뤄진 듯한 자태
둘을 처음으로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엘더 밴시, 멜라티스
그녀는 자신의 몸과 상반되는 칠흑빛으로 물든 눈동자를 꺼내 두 여인을 응시하며, 섬뜩한 미소로 가벼운 인사를 전했다.
“저주라고 들어는 봤나 모르겠네?”
내 저주는 용제에게도 통한 보증 수표
하물며 고작 장 첸 정도는 가뿐하다.
“장담하는데 저놈은 평생 내 앞에 나타날 일이 없을 거다. 뭐, 너희 말이 사실이라면 너희도 나쁠 건 없잖아? 안 그래?”
만약 저들이 정말 장 첸에 기세에 눌려 숨은 반대파라고 한다면 장 첸이 온전하길 바라지 않을 터.
이대로 장 첸만 사라진다면 분명 흑사회, 용생구자는 공중분해가 확정된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아이링과 샤오링은 내 앞을 막아섰다.
“.......무슨 짓?”
“저희 소개를 다시 하겠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소속 리 샤오링.”
“리 아이링이라고 합니다.”
마지못해 인벤토리에서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꺼내 보이는 두 사람.
국가안전부
중국의 CIA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중국의 대표 정보기관
어쩐지 두루뭉술하게 말할 때나 저 포커페이스 보고 심상치 않은 자들이라 짐작하긴 했지.
“저런 남자라고 해도 중국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인재입니다.”
“부디 제고를”
거의 90도에 가깝게 고개를 숙이는 두 사람을 보며 난 뒷처리가 골치아프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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