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술래 끝! 이제 역할을 바꿔 봅시다!! (5)
* * *
젖어 들었던 회상에서 난 다시금 눈을 떴다.
불씨가 날리고 잿가루가 하늘에서 눈처럼 떨어지는 현실로 돌아온 나는 천천히 천마, 장 첸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하긴 이상하긴 했어. 나도 중국에서 유학 온 친구가 한 명 있었거든? 근데 가끔 말이 안 통하기는 해도 너희만큼은 아니었단 말이지.”
그.....뭐랄까
나라 자부심이 되게 강하고.
케첩이 알고 보니 중국이 원조라는 걸 알았을 때 하루종일 싱글벙글거리는 정도?
나라에 대한 충성을 교육 받으며 자랐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교육일 뿐이다.
충이라는 마음의 가치를 실제로 기르기는 힘든 법.
그렇기에 충심이 더욱 값지고 빛나는 것이고.
─스륵
기와 난간에서 한쪽 무릎을 당겨 앉은 난 당장이라도 뚫어버릴 기세의 장 첸을 향해 조소를 띄웠다.
“너도 난사람이긴 해. 가진 힘과 무관하게 이런 결정,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잘도 해냈어. 진심으로 이 부분은 존경을 표할 게.”
“........”
용생구자라 불리는 집단의 전신
삼합회, 혹은 흑사회라 불렸으며
정부를 장악한 쿠데타 무력집단.
그게 바로 용생구자의 정체다.
“너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로 보였겠지.”
갑작스럽게 세계 최강 일지도 모르는 무력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찾아온 난세.
우연이 겹치면 그건 이미 필연일지니
이는 이미 천명??
장 첸은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자였다.
“내륙을 휩쓴 사흉. 그로인해 수도 북경이 함락. 쓰촨에서 북경까지 대체 얼마나 망가졌을지는 나도 감이 안 잡힐 정도야. 하지만 그에 비에 너의 기반은 나름 온전했어.”
저들의 주요 활동지는 홍콩과 마카오이고 본진은 상하이, 상해에 있었다.
거기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침공한 괴물들이 마냥 서로 사이가 좋은 게 아니었는데.
그 중 특히 시베리아의 스카디와 사흉은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 있었다 추측된다 미국의 자료는 언급했다.
즉, 그로 인해 사흉의 주요 활동지는 제법 내륙에 향했으니.
어찌 되었든 덕분에 해안에 있는 상해는 재앙을 피해갈 수 있었다.
“슬금슬금 기어오는 정부 주요 인사들과 기득권층. 넌 칼을 뽑았지.”
상해는 수도인 북경에 필적하는 주요 도시 중 하나.
수도를 잃은 정부 인사들이 다음 행선지를 상해로 정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에 나름 안전하다고까지 하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었지
“그게 범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건 줄도 모르고.”
피의 숙청이 시작된다.
조직을 굴릴 최소한의 인사.
아직 죽이기는 버거운 존재 및 협조적인 자들만을 남기고 모조리 참살.
거기에 나름 조직에서 머리를 굴린다는 자들을 투입 시켜 감시에 들어가 반항을 차단, 저들은 정부를 장악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으니, 머리에 피가 너무 쏠렸다는 것.
저들은 그날 피를 너무 많이 보고 말았다.
“기가 차게도, 마피아, 야쿠자 같은 너희 집단이 가장 중요시 하는게 의과 협, 그리고 충이잖아?”
법의 틀에 벗어난 저들에게 위의 세 가지 미덕은 조직의 틀을 유지하는 기둥이다.
그런데 적당히 라는 걸 넘어서 아예 정부 인사들을 말살해 버렸으니, 여기저기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
‘자라 같은 배신이다......’
‘우리가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장 첸는 필요해졌다.
“명분이란 이름의 핑계가”
꽈득!
당시 일을 상기한 것인지 장 첸의 입에서 섬뜩한 이가는 소리가 울린다.
당장이라도 내 면상을 뭉개버리고 싶겠지.
그러나.
─철컥!
어깨에 워해머를 걸치는 듀라한 나이트, 페르난도.
크르르르...
진득한 사기가 풀풀 풍긴 채 안광을 번뜩이는 골룡, 마르가스
마지막으로
─지이이잉!!!
창공에 떠 수십 개의 포문을 정렬.
푸르스름한 빛을 모으며 장 첸과 수하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준비에 착수한 모선까지.
그동안 법보다 가까운 주먹을 휘두른 그이기에, 주먹이 가진 힘을 알기에. 장 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야기를 계속할까? 넌 명분이 필요했어. 조직 사람들에게 할 핑계도 핑계지만, 정치라는 걸 몰랐기에 그렇겠지.”
범죄 집단의 수장은 민심의 중요성을 몰랐다를 것 같다, 미국이 보내온 자료는 설명했다.
아니 대비를 하긴 했지.
제법 쓸만한 자들을 살려두기는 했으니까.
적당한 언론 플레이면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을 터.
하지만, 시국이 전쟁 중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들 말고도 힘을 쥔 자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는 게 발목을 잡고 말았다.
“뭐가 좋을까나~~ 어떻게 입을 나불거려야. 사람들이 내 편에 들어주려나~~~ 아! 그게 있네?”
썩어 빠진 정부 인사들을 숙청했다고 하는 거야!
수도를 버리고 도망친 정치인!
최고의 명분이잖아?
하지만.....
“부족했지.”
전쟁 중이야.
누가 봐도 쿠데타.
성공을 해도 쿠데타야.....
거기에 난 범죄집단의 우두머리니까 더더욱 좋게 볼 수 없겠지.
잠깐?
그러면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껍질만 벗으면......
“넌 범죄자에서 영웅으로 탈바꿈하기로 했어. 난세, 혼란의 시기에 영웅이 탄생하는 건 어찌보면 필연이니”
적들은 넘친다.
아무리 피를 봐도 전혀 흠이 잡히지 않을 괴물이란 이름의 적들이.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발생했으니.
사흉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사흉을 잡아야 했지. 최소한 맞서 싸울 필요가 있었어. 하지만 그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지.”
조직이 반파 당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무력으로 이룬 자리.
다시 무력으로 내려갈 게 뻔했다.
그러나 여기서 기회가 찾아왔으니.
전 정부 인사들이 사흉을 한반도로 몰아간 것!
“책임 따위는 불필요. 어차피 네가 한 게 아니니까.”
“........우린 그럴 계획이 아니었다.”
“알아, 정상회의 하는 거 나도 오는 길에 다시보고 왔으니까. 확실히 거짓으로 화낸 건 아닌 거 같더라”
솔직히 그럴 필요도 없었겠지.
장 첸의 무력이면 부하들을 이끌고 사흉 하나 쯤은 토벌할 수 있으니까.
물론 실제로는 하나를 무찔러도 다시 돌아오는 꼴에 뒷목을 잡았겠지만, 그래도 보여주기 식으로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건 사실이잖아?”
중화사상에 대한 주장을 강조했던 건 이쯤이라고 미국이 보내온 자료는 설명했다.
어차피 소국이다.
이런 범 세계급 위기에 우리가 비로서 인류!
기둥을 확실히 잡아야 해!
단단히 뭉쳐야 한다!!
저 한국이 우리에게 입은 은혜가 얼만데 이참에 갚아야지.
옛날부터 우리 신하의 나라였다고 하던데?
그래? 그럼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거네.
등등
샤오린이 내 앞에서 했던 지껄였던 말들......
“여기서 조금 더 멋진 미명으로 살짝 간을 맞추면?”
훗날 우리가 수복하는 거다.
세계 일통.
더더욱 빛날 우리 중화의 품으로 들어오니 좋지 않겠는가?
우리는 버린 게 아니다.
떠넘긴 것도 아니고.
전략적 전술이야.
사흉을 토벌하고 우리가 저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니. 미래를 보아라.
이런 말들을 적극적으로 선전했다.
“미X 새끼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이야기에 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연스럽게 마력을 방출했다.
─고오오오오!!!
진득하고 농밀한.
그리고 적의가 잔뜩 담긴 마력을.
장 첸은 물론 함께 온 수하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가는 것도 모자라, 모선을 향해 날아가는 이터널의 병기들 마저 감지되는 압도적 에너지에 움직임을 멈출 정도.
특히나 장 첸의 경우에는 표정이 압권.
내 개인의 무력이 이 정도일 것이라 예상 못했기에 계획이 틀어진 얼굴이다.
아마, 아무리 소환수가 강해도 결국 주체인 나만 잡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겠지.
그 꼴에 우스워 오히려 화가 가라앉을 정도네. 훗!
난 과장된 몸짓으로 팔을 넓게 벌리며 이야기의 반전을 노래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한국이 이겨버렸네에에에?!!!”
대 중화의 자존심이 바닥까지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흉을
우리는 다 망가져 가며 떠넘긴 사흉을 이겨버리다니!!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푸흡!! 최소한 공멸일 줄 알았을 텐데? 이거 어떡하나~~? 이겨버렸네~~♬ 그것도 전선이 밀리지도 않은 채 말이지”
“크흑!!”
“동아시아의 패권부터 잡겠다는 야망이 여기서 삐끗! 어이쿠야!! 미안해서 어쩌나~~”
특히나 천마라는 위신이 많이 깎여버린 게 컸지.
무검산 1위라는 건 그만큼 거대한 이명이니까.
“성환이를 영입하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겠지. 신분제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의 눈을 돌려야 한다.
우선 신분제라는 파격적인 제도로.
문제는 없다.
어차피 세상 어디서나 돈만 있으면 사실상 백작이고 공작인 세상인데. 뭔 상관이란 말인가?
우선 깎여 나간 명분을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리지 않도록 해야해.
거기에 사흉과 맞서 싸웠던 성환이를 영입해 영웅으로 추대하면서 다시 명분을 바로 세우는 거야.
용생구자......모든 무검산 랭커를 모은다.
비록 다시 올 전쟁에서 이터널 유저 없이 힘들지도 모르지만, 인간 상대라면 무검산이 단연 최강.
나중에.....시간이 지나 나중에 이터널 유저는 무력으로라도 흡수하면 돼.
일단 미국의 대항마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거기에 한국이 깎여나가야 하지.”
동아시아 최강을 놓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한국의 위신을 내려야 한다.
흡수해야 해.
아니면 미국이 가져가 버리기라도 하란 말이야!!
“유리를 습격한 것도 사실 미국을 돕기 위해서고. 내심 빨리 한국을 뜨길 바랬으니까.”
처음부터 우리 생각과는 우선순위가 달랐다.
저들은 인재를 영입하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인재가 빠져나가길 바랬던 것.
저들의 행태를 비웃으며 폭소를 터트린 나를 보며 장 첸은 소리쳤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네년이, 모선의 주인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게 용납된다고 생각하나? 이건 테러, 국가적 전쟁 선포라는 걸 알 텐데?”
설마 정론인가?
대단하네.
확실히 그렇지,
대뜸 모선을 끌고와서 용생구자의 본진을 박살을 내놓았으니, 어찌되었든 현 용생구자의 중국의 위치를 고려할 때 이는 전쟁 선포 내지, 테러다.
그것도 명분도 없는 범죄.
“와~~~ 너희 입에서 테러라는 말이 나오는 거야?”
“뭔가 문제로 있나? 지금 전 세계가 이 상황을 중계하고 있을 텐데. 너희는 테러범이고 너희의 나라가 이를 옹호한다면 전쟁이다.”
한국에 용생구자의 일원을 무려 5명이나 보냈으면서도 저런 소리라니.
그러나 장 첸은 자신만만했다.
저게 집단의 우두머리.
사람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자의 모습이겠지.
십대 고수가 잡힐 일도 없겠거니와 잡힌다 하더라도 잘라내면 그만이라는 심보다.
‘하긴 무검산은 상대적으로 스팩 맞추기가 쉬운 편이니,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이란 의미인가?’
장첸의 양 옆에 마치 궁중 시녀처럼 자리를 지키는 쌍둥이.
비단결 같은 흑발을 늘어트린 두 사람의 모습을 미국이 보내온 주요 인사 프로필에서 본 기억이 있다.
‘리 아이링, 리 샤오링이라고 했나?’
나란히 십대 고수의 반열에 들지도 않았으면서 장 첸이 가장 신뢰하는 존재들.
자료에는 그저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된다라고만 적혀 있었는데.....
“흠....”
소라보다 나을 지도?
아무래도 무검산은 재능을 더더욱 많이 타는 느낌이네.
십대 고수, 아니 정확히 잡기 힘들다.
솔직히 성환이 저 장 첸을 이겼다는 시점에서 무검산은 특히나 스팩이란 것에 영향을 덜 받는 거 같으니까.
강해도 질 수 있고, 약해도 이길 수 있는 게 무검산의 무인들.
이터널의 병기처럼 자로 줄긋는 듯이 강함을 측정할 수 없다.
‘내공의 양은 딱히 부족하지 않아.’
어쩐지 십대 고수를 왕창 아낌없이 보냈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네.
뭐, 그래봐야.
“상관없지만.”
“뭐?”
“야, 명분? 명분을 또 말해야 하냐?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했는데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던 그는 이내 옆에서 다가온 부하가 전하는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이 주저리 주저리 긴 대화를 내가 이렇게 각본까지 준비해 가면서 했겠냐고? 응?”
품에서 새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떨어 뜨리며 난 치마 엉덩이를 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전 세계에 보도 중이지.
대 뉴스 제목
중국의 비밀 범죄 집단, 흑사회의 토벌에 발 벗고 나선 모선의 대 활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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