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술래 끝! 이제 역할을 바꿔 봅시다!! (4)
* * *
“.......”
“.......”
차디찬 냉기가 풀풀 풍기는 지금
나와 성환, 유리 그리고 맞은 편의 애단과 미쉘은 자리에 앉아 각자의 앞에 놓인 음료를 바라보고 있다.
“뭐해요? 안 들고. 준비한 사람 무안하게 시리.”
“아.....예.....”
“자...잘마시겠습니다.”
내 말에 애단과 미쉘은 어렵사리 잔을 들어 올리지만, 딱히 마시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다가 맞겠지.
현관문이 날아가 있을 때 쌔 한 느낌이 들기는 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두 사람은 알아챘다.
특히 예상 외의 너무나 큰 복병이 있었으니
‘왜 성유리와 김성환이 여기 있는 거지?’
저들을 담당하는 에이전트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성유리는 미국의 제1 영입 대상이다.
그 덕에 담당자가 아니라도 둘에 대한 프로필은 이미 머리가 달도록 외운 상태.
그러나 그중에서는 릴리와 이들이 만났다는 정보는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하군. 여기 세 명 모두 전쟁에서 함께 활동했을 터이니.’
특히나 정상회담에서 유리는 직접 릴리를 언급했다는 말이 있었지.
처음에는 그에 관한 연결 고리를 못 찾았었는데 지금에 와서 릴리라는 존재의 실물이 밝혀져 최근에서야 맞춰진 퍼즐이라 그만 떠올리는 게 늦었다.
어떻게든 현재 상황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애단과 미쉘
난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생각했다.
‘어떻게 이것들 한테서 정보를 뜯어낼까.....’
당장 샤오린의 일을 밝혀도 좋겠지만, 그러면 아예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판단할 수도 있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는 요원한 일.
아마 또 다시 정보를 통해 자신과 중국 사이를 조율하는 행동을 할 게 분명하겠지.
어차피 한바탕 싸울 거 이리나 저러나 상관없을 수도 있겠지만, 더 놀아나는 건 사절이다.
당한만큼 돌려주기도 해야하고.
난 가벼운 영업용 미소를 그리며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애단 윌리엄 씨, 미쉘 라이트 씨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만.”
“미국으로 절 영입하고 싶다고 하셨고.”
“영입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군요, 저희는 그저 릴리 님을 저희 미국으로 모시고 싶을 뿐, 딱히 어딘가에 소속되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듣기는 너무 좋네.
귀가 녹아내릴 정도야.
난 앞서 그들이 내민 계약서를 다시 보며 헛바람을 삼켰다.
30조.
우연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에게 제시했다던 금액과 동일한 금액이 계약서에 적혀 있었다.
내가 할 일은 방금 저들이 말한 것처럼 오직 하나.
국적과 주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 뿐.
그것만 지키면 바로 난 이 어마무시한 돈을 손에 쥐고, 남들은 그렇게 얻기 힘들고 오래 걸린다는 미국 시민권을 단 수 초만에 획득한 채 미국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떵떵 거리며 살 수 있다.
그 밖에 세금, 정부 지원 혜택 또한 줄줄이 이어지고
심지어 보여주기식일 뿐이겠지만, 대통령 선거에 대한 참여권도 특별법으로 보장한다고 한다.
시민권이 있어도 대통령 출마는 오로지 자연 출생 미국인에 한에서만 인정하는 게 미국의 선거법인데, 이런 특례를 허용할 정도로 당신들을 대접한다는 뜻이겠지.
“정말 어지간히 좋은 조건이야. 우리 국회의원 혜택보다 좋은 거 아니냐?”
“야.......진짜 싸인하는 거 아니지?”
“살짝 흔들리는데?”
“어이!”
바로 찌릿찌릿한 눈총을 내게 쏘아대는 성환이와 유리의 모습에 피식 작은 웃음을 터트리며 난 애단과 미쉘 측의 반응을 살폈다.
음, 갈피를 못 잡고 있네.
하긴 날 말린다는 뜻은 반쯤 미국의 제안을 뿌리쳤다는 반증이니.
그렇다고 여기서 따지고 들기에는 유리의 몸집이 너무 크고.
우리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확인하고, 날 미끼로 저들을 낚겠다는 심보로 추측된다.
좋아,
아주 좋아.
아직 우릴 적으로 본 건 아니야.
아직 우릴 영입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잡고 있어.
그럼 여기서 살짝 매운맛을 더해 볼까?
“한국은 어떻게. 지낼만 한가요?”
“네?”
“미국 도시 풍경이랑 저희 도시 풍경 어느 쪽이 좋으세요?”
둘은 갑자기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의문을 띄웠다.
그러나 이내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
“밤 산책을 좋아하시는 거 같아 보여서요. 저도 산책 무지 좋아하거든요. 같은 산책 마니아로서 의견을 좀 구하고 싶은데...... 새벽에 두 분이 가졌던 코스는 어떤가 해서.”
““─────!!””
둘의 표정이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속도로 빠르게 어두워 진다.
새벽
밤산책
단 둘이
콕콕 찔리는 게 있겠지.
아니 없을 수가 없지.
‘훗! 저기 눈 돌아가는 거 봐라.’
생각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기분이다.
어떻게 알았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하는 상념의 소용돌이가 요동치고 있을 터.
대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옆의 성환과 유리는 그게 무슨 이야기냐며 내게 물었지만, 난 일부러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별거 아니야. 내가 어제....는 아니고 새벽에 산책을 조금 했는데, 저기 두 사람이 나란히 있는 걸 봤거든.”
유리는 아하~~하며 이해했다는 모습을 보이고, 성환은 여전히 애가 이럴 놈이 아닌데 같은 반응을 했지만, 둘은 그 이상으로 더욱 얼굴빛이 파래졌다.
그나마 유지하던 포커페이스가 눈에 띄게 흔들릴 정도로.
확실한 시간에 대한 언급
오늘 새벽
여기서 이제 알아차렸겠지.
다 들켰다는 걸.
이제는 고민할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 들켰는지
중얼거린 대화를 전부 들었는 건지, 그저 지켜보았다는 걸 말하는 것인지.
동시에 빠르게 다시금 눈동자가 돌아가 성환과 유리를 살피는 두 사람.
이 반응 덕분에 난 또 하나의 확신을 쥐었다.
‘역시 너희들도 요 앙꼬부부가 습격당한 걸 알고 있었구나.’
왜 유리를 그리고 성환이를 지금 살피겠는가?
단순한 이유지.
내가 자신들이 샤오린에게 정보를 팔았다는 걸 들었는지 그리고 그걸 성환과 유리에게 전달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거다.
변명할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새벽에 이야기했겠지만, 그거야 단독으로 움직이는 날 상대로 일 뿐.
지금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둘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오히려 지금에 한정하면 역린, 그 자체
이건 영입 실패는 고사하고 아예 적대관계로까지 번질지도 모르지
나중에 해명을 해도 당장 여기서 성환에게 칼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레벨이니까.
‘가끔 미국 정보부가 뻘 짓을 좀 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보네.’
그러길래 기다렸어야지.
어차피 충돌할 거라고 정보를 넘기는 짓이나 하니까 이렇게 자충수로 돌아오는 거 아닌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자신하더니, 무슨.
어리석은 자만의 대가라는 거지.
‘자~~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예상가는 반응은 두 가지.
우리 모두에 대한 영입을 포기한다.
그냥 돌아서는 것.
그러나 그러기에는 손에 놓는 게 너무 아깝고, 이렇게 단순히 칼로 무 자르듯 끊어내는 관계는 훗날 독이 되어 돌아울 수 있다.
거기에 성환과 유리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눈치이니, 내가 말하지 않는 것도 알겠지.
그럼 여기서 한 번 더 고민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럴까?
대체 무슨 목적일까? 싶겠지.
‘여기서는 우리 연합을 위한 개X끼가 되어볼까?’
살짝 목을 가다듬은 후 난 둘을 흘겨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 정부가 바쁘더라고요. 마정석 일을 대체 언제 처리해 줄련지 참....”
“크윽!”
첫 번째, 정부 상대로 이상한 짓 그만해라. 귀찮다.
“하아~~~ 근데 마정석 받아도 세금 왕창 떼이겠죠?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피 튀기면서 얻는 마정석 뺏기는 건 좀 그런데......누가 도와주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정부에 힘 좀 쓸 수 있은 사람이 말이에요.”
두 번째, 시간 끌린 대금은 받아야겠다.
우리는 마정석과 부산물이 최대한 온전히 연합 손에 떨어지길 바란다.
너희가 그 정도 압력을 넣었으니 이것도 가능하겠지?
자, 마지막.
“요즘 중국 소식 들으셨나요? 막, 신분제도도 부활시키고 했다고 하는데, 뭘 아는 게 있어야지. 영입하러 오신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양쪽을 비교해봐야 하는데.......아시는 것 좀 가르쳐주실레요? 구체적으로 그 용상구자라는 사람들이 어디서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한데. 미국 만한 곳이 또 없잖아요?”
중국이 하는 짓.
샤오린의 위치도
한국에 들어온 용생구자가 또 누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디서 뭘하는 지
지금 계획하는 것들 모두.
그리고 왜 이렇게 저들이 과격하게 나오는지 너희는 대충 파악하고 있잖아?
“제가 입이 가벼운데, 약속은 또 잘 지키거든요? 어떻게 생각 있으신지?”
누가 그러던가 훌륭한 협상가는 협상하지 않는다고.
난 오늘 아주 조금이지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 * *
“과연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 정보 최강 사기케,”
미리 빅데이터라도 준비해 두었는지 떠나간 그들은 매우 빠르게 우리가 원하는 중국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 보내주었다.
단지, 아쉬운 건 용생구자란 인간들이 무려 5명이나 한국에 들어왔고, 인재 영입과 동시에 주요인물 암살 및 마정석과 용의 부산물 회수가 목적이란 정보만 있지, 그 밖의 것은 없었다는 점.
미국도 최대한 조사했다고 나오는데 결국은 불가능했다.
정보 자체가 없는게, 투입된 석좌들 스스로가 작전을 구상하여 임무를 완수한다는 얼탱이가 빠지는 방식 때문.
계획이 데이터도 문서로도 없으니 미국이라고 별 수 있나?
“음.......서울에서 활동 중이란 건 알겠는데. 주거도 계속 변경 중이고. 추적은 좀 힘드려나?”
서류를 뒤적이며 난 아쉬움을 토로했다.
성환도 이제 적진을 알아내 일망 타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무산되어 혀를 찼는데, 이때 유리가 갑자기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와......어쩐지.”
“응?”
“뭐가?”
“이것 봐. 왜 그렇게 날뛰는지 이유가 여기 있네.”
나와 성환은 바로 유리에게 다가가 그녀가 읽은 부분을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건,
“마....마피아?!!”
“미국에서 부르는 이름이 마피아지. 중국 쪽은 삼합회나, 흑사회로 부르는 걸로 알고 있어.”
“아....아니 그럼 쟤들 지금 상태가.”
“그렇지, 정부가 아니었어. 듣기로는 정상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지.”
내가 그게 무슨 말인가 묻자, 유리는 장 첸이란 자가 정상회의에서 중국측의 대표를 밀어내고 스스로 자리에 앉았었다고 가르쳐줬다.
좀 더 자세히 글들을 읽어 내려가는 우리는 서서히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니.
대체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분제라는 어이없는 제도를 부활 시킨 이유
이런 무리한 강경책의 목적
마지막으로 용생구자란 집단
하지만 이 모든 걸 읽은 후 난 오히려 기꺼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야, 갑자기 왜 그래?”
“이걸 보고 대체 뭐가 좋다고. 지금 심각한 일이야.”
“심각한 건 맞지, 근데”
근데 이거....
내가 본진 털이해도 될 명분이 생겨버렸는데?
이후 난 유리와 성환에게 내가 생각한 계획을 전했다.
성환이는 미친 짓이라며 결사 반대를 외쳤지만,
은근히 쌓인 게 많았던 유리는 결국 내 손을 잡았으니.
“모선 콜싸인이 그거였지?”
“정화한다.”
“가자, 정화하러.”
현 대한민국의 가장 위험한 두 여자가 함께 중국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정의를 구현하고 악의 무리를 무찌르기 위하여
사심은 딱 3스푼만 넣었다.
대신 숟가락이 좀 크긴 하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