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32화 (32/116)

〈 32화 〉 술래 끝! 이제 역할을 바꿔 봅시다!! (3)

* * *

“경치 좋네~~~~”

누가 들으면 싸이코 같은 년이라고 욕하려나?

확실히 그럴지도.

변명은 못 하겠네.

지금 광경을 보면서 이딴 소리나 지껄였으니 당연히 그렇게 보이겠지.

작열하는 건물들

아니 건물이라기 보다는 궁전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윤기마저 흐르는 듯한 붉은 기와에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음각이 새겨진 용.

새하얀 외벽과 여기저기 의미를 모를 동상들까지.

누가 보아도 여기 서 있는 건물들은 단순한 건물 따위와는 격을 달리하니.

중국의 전통양식과 현대의 문화와 기술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하나의 예술, 그 자체.

눈으로 본 것에 돈을 내라고 한다면, 솔직히 넋 놓고 있으며 진짜 줄지 모를 정도다.

그런 궁전이 지금

“잘~~~탄다.”

타닥타닥 들려오는 불씨 소리.

쓰러져 가는 기둥과 내려앉는 천장.

마치 전쟁에 불타오르는 마지막 피날레 같다.

당장이라도 소방차가 달려와야 할 상황이지만 그러기도 힘드니.

이유는 저 아래.

“싸워라!!!”

“기껏해야 한 마리야!! 용두께, 용생구자의 긍지를 보여라!!”

“““와아아아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달려는 상대는 목 없는 기사.

내가 지닌 3명의 기사 중 카녹스가 방어력.

플루라가 스피드라면

저 존재가 바로 공격력을 상징하는 파괴의 대행자.

마치 파성추를 연상케 하는 흉포한 갑주와 틈 사이로 피어오르는 보랏빛 불꽃.

머리 위 역시 그저 도깨비불처럼 작은 불씨가 피어오를 뿐인 존재.

듀라한 나이트 페르난도.

잔뜩 가시가 돋아난 거대한 워해머를 양손으로 쥐며 그는 거침없이 바닥을 내리친다.

─콰아아아아앙!!!!

피어오르는 먼지와 가라앉는 대지.

거의 터져나간다고 봐도 무방한 땅의 울림에 달려든 이의 9할이 튕겨나고, 남은 자들은 그나마 억지로 검을 내지르지만, 오히려 그게 명을 단축하고 말았다.

─부웅!!

카녹스에게 조차 밀리는 속도지만, 그거야 속도에 관한 상태 평가가 그렇다는 거지 느리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 같은 괴속.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힘은 더 잔인하다.

섬뜩한 가시의 워해머가 지나간 궤적 뒤에 남는 건 누군가 주인이 있었던 하반신과 흩날리는 피보라 뿐

눈 깜짝할 사이에 강한 이의 선별과 처형을 마무리한다.

남은 이들은 두려움에 떨여 혼비백산, 도망치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이곳을 나가지는 않으니.

또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전투에 강한 이가 있으면 끼어드는 모습에 난 어이없은 웃음을 터트렸다.

“의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목숨이 소중하면 도망칠 것이고, 의리가 소중하다면 마지막까지 달려들 텐데, 대체 저게 뭔 꼴인지.

난 페르난도에게 다시 주변의 파괴와 유린을 지시했다.

어차피 이곳에 민간인은 없다.

여긴 그런 곳이니까.

그러니 나도 거리낌을 느낄 필요 없고.

거침없이 타오르는 건물을 향해 휘둘러진 페르난도의 워해머에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며 쓰러져 가던 건물을 흔적도 없이 지워낸다.

허공에 날리는 파편들 속에서 운 좋게 명패 하나가 모양을 온존하지만.

─파직!!

목 없는 기사는 그저 사뿐히 그려 밟아 마무리를 장식하고 다음 일 터로 향한다.

이를 바라본 이들 모두가 분통함을 표출하지만, 또 웃기는 것은 아무도 감정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저 거대한 해머를 등에 진 기사와 날 향해 원망을 눈빛을 쏟아낼 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

첫 번째로 하늘에 뜬 거대한 모선과 모선이 쏟아내며 다가오는 모든 이터널 유저를 유린하는 장관 이유일 것이고.

두 번째는 페르난도.

목 없는 기사, 듀라한답게 묵묵히 휘두르는 저 잔혹한 워해머에 자비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며.

마지막.

크르르르.....

내 뒤.

가장 중앙의 궁전을 몸으로 휘감은 거대한 골룡, 마르가스

용용이의 압도적 위용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래 봐야 뼈 밖에 안 남은 용가리라며 달려든 이가 있었지만.

이빨을 커녕, 손이나 날개조차 쓸 필요도 없이 자리에 앉은 그대로 휘두른 꼬리에 무참히 찢겨 나가는 꼴을 보고 지금은 아무도 내게 달려들지 않았다.

난 타오르는 궁전의 난간에서 다리를 바꿔 앉으며 말했다.

“도망쳐. 그러면 살 수 있으니까.”

“뭐?”

“니들도 눈이 있으면 보고 있을 거 아니야? 난 도망치는 놈 일일이 잡아 죽일 생각 없으니까 도망치라고, 여기 없으면 살 수 있어.”

“““........”””

저들도 눈이 있으면 알 것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학습도 했을 것이고.

내가 덤비지 않는 자를 굳이 죽이지 않는다는 걸.

그저 이곳을 파괴하기만 할 뿐이라는 걸.

도망치면, 아니 최소한 이렇게 나대지 말고 구석에 숨어있으면 자기 명줄은 보전할 수 있다는 걸 여기 있는 모두가 안다.

그러나

“왜? 죽고 싶어?”

“크......”

다들 그저 손에 쥔 무기를 부들부들 떨 뿐,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다.

난 그런 그들의 모순을 비웃으며 조롱했다.

“와~~~ 엄청난 충성심이네. 중화 인민의 열사가 되려는 그 모습, 존경심이 피어오를 지경이야. 그래서 누가 먼저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반열에 오를레? 첫 번째로 나오는 사람은 내 친히 위대한 잔 다르크처럼 불길 속에 몸을 던질 영광을 줄 게.”

역시 용용이

센스 좋게 용용이는 타이밍에 맞춰 이빨 사이로 잿빛 불길을 뿜어내며 분위기를 고조한다.

이에 저들은 다시 뒷걸음.

과연 왜 저럴까?

두려우면 도망치면 될 것을.

뭐,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두려움이란 원초적 본능이지만, 충성심 또한 매우 위대한 마음이니.

충심을 다해 불판의 위를 걸을 수는 있어도 그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저들이 모두 그런 심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일까?

“웃기네.”

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으나 동시에 그것은 날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육과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 살인마가 아닌 걸 아니까.

날 상대로면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왜일까?

“저 자식이 그렇게 무섭냐?”

난 피식 콧방귀를 끼며 유유히 자리에 앉아 저 멀리 다가오는 이를 바라봤다.

마치 사극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위풍당당하게 타오르는 궁전을 가로지르는 남자.

이미 무인 따위를 넘어 왕의 기상.

뭐, 무서울 만 하네.

사실 사람들이 천마라고 부른다기에 그놈도 컨셉 잡고 노는 줄 알았는데.....

음, 천마

어울리는 이명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간에 말이지.

“........”

“........”

그렇게 타오르는 궁전의 중앙에서 서로를 마주본 우리.

난 그를 웃으며 내려봤고.

그는 진중하나 동시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올려본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건의 발단은 몇 시간 전으로.

* * *

성환, 유리 예비 부부가 날 찾아온 이유.

뻔하면서도 동시에 놀라운 원인이 있었으니.

날 찾았으니 내 힘, 혹은 마술이나 소환수가 목적일 것을 예상했고, 또 실제로도 그랬지만 찾는 이유는 내 뒷꼴을 당기게 만들기 충분했다.

유리가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납치 따위가 아닌 진짜 암살을 전제로 한 습격을.

“죽을 뻔했지.”

“상대가 방심했기에 살았다. 아니었으며 진짜 큰일 날 뻔했어.”

당시를 회상한 두 사람을 몸을 부르르 떨며 연신 운이 좋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야 운이 좋을 만 하지.

얼추 성환이가 견적 내기를 습격자는 무검산에서 랭커 말석 쯤으로 보인다고 했었는데, 말이 랭커 말석이지 무검산이다.

그 칼이랑 몸 하나로 먹고 사는 무검산.

동렙 기준 신체 능력과 신체 능력 활용도의 측면에서 무검산은 단연 최강.

거기에 상대가 괴물이 아닌 인간이라면 더더욱 위력이 상승한다.

무검산도 요마나 괴수와의 전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최종 컨텐츠는 어디까지나 천하제일, 인간과의 대련이고, 또 무공의 컨셉 자체가 사람과의 승부를 전체로 만들어졌으니.

“그래도 진짜 어떻게 살았냐?”

“헤헤, 요즘 취미 생활의 성과, 이거 봐라!!”

의기양양하게 웃는 유리는 손바닥을 쫙 펴더니 갑자기 손에 힘을 집중하기 시작.

일렁거리는 에테르가 내 눈에 감지되는 순간 저 멀리 있던 식기들이 일제히 허공에 부상한다.

“오~~~ 염력?”

“그렇지, 우리도 게임이란 틀을 벗어서 각자 가진 에테르를 다른 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거든, 뭐, 지금 수준에서는 이 정도 염력이 한계지만.”

“그래도 나름 쓸만해. 알다시피 결국 근간은 에테르잖아? 에테르 양이 받쳐주니 위력도 나름 괜찮게 나오거든.”

이걸 활용해서 틈을 만들어 도주했다고 한다.

다행히 성환도 멀리 있지 않았기에 금방 구출하러 왔고.

아무튼 그렇다 할지라도 운이 좋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대충 봐도 위력이 무검산 랭커를 상대할 정도는 결코 아니니까.

상대가 방심했다는 게 사실인 것 같았다.

이를 미뤄 짐작한 부부의 목적.

“그래서 와이프 좀 맡아달라고?”

“그렇지, 계속 모선 내부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만의 하나라도 모선에 침입이라도 하면 그때는 진짜 위험하고.”

“이런 부탁해서 미안해.”

“아니,아니 그건 괜찮지.......”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는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돌려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들어보면 딱 봐도 중국이다.

당장 내가 어제 받은 습격부터 그쪽이었으니까.

‘샤오린 그 계집애를 살려 보내는 게 아니었어.’

후회가 밀려온다.

나만 목적이 아니었다는 의미인가.

아니 그건 그럴 수 있어도 너무 과격해.......

성환이 바보도 아니고 죽인 방식을 보면 분명 무검산 플레이어의 소행임일 알 테고, 거기에 이딴 짓을 할 곳이 중국 뿐이란 것 또한 안다.

모선의 존재를 탐탁지 않게 보는 곳,

유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곳,

사심을 전부 배제하고 평등한 눈으로 바라보더라도 소거법을 통해 남는 곳이 한 곳, 중국밖에 없으니까.

“저.....저기.....”

“어흠.....우리가 좀 미안한 부탁을 하기는 했는데, 딱 한 번만 우리 사정을 봐서라도...”

“아! 미안, 잠깐 딴 생각을 한 거야.”

아무래도 내 침묵이 무언의 거절로 보였나 보네.

목소리를 떠는 둘에게 난 아니라는 듯이 손사래를 치고는 조금 고민하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도와주랴? 그냥 호위?”

지켜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어찌 보면 난 세계 최고 품질의 호위니까.

24시간 잠도 식사도 없이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소환수에 방해되지 않도록 그림자에 들어가 있는 옵션까지.

비밀스러운 호위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최고겠지.

늘 받고 있는 입장이라 장담한다구.

물론 거리에 따라서 마력이 많이 소모되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1마리

지구 반대편에라도 가지 않는 이상 문제는 없다.

그러나 둘은 그것조차도 신경 쓰였는지 조금 다른대안을 제시했다.

“요 근처에 방 하나 잡을 게, 당분간만 부탁해.”

“이런 말해서 미안하기는 한데. 사실 네 소환수라도 이기는 게 힘들지, 피해서 누구 하나 죽이고 빠지는 건 다른 문제니까.”

“음.....”

조금 자존심 상하기는 했지만, 난 성환의 말을 이해했다.

확실히 강한 것과 잘 지키는 건 서로 다른 이야기지.

특히나 무검산.

사람 죽이는 데 이골이 난 놈들이다.

자기보다 강한 자를 죽이는 것도 연구는 물론 지금처럼 강한 자를 뚫고 목표를 죽이는 것도 어찌보면 흔한 일이니.

“최소 두 마리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라는 뜻이구나.”

“도움받는 주제에 염치도 없이 미안하다.”

“뭐, 나도 도와주고 일이 잘못되면 찜찜하니까 상관은 없는데....”

와이프 지키려는 남자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내 고민은 다른 곳에 있다.

“그렇게 했다 치자. 그 다음? 주구장창 기다리려고?”

“그럴 리가, 민준이한테는 우선 연락했어. 예지한테도 연락할 생각이고.”

성환이는 그늘이 진 굳은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다 죽여버려야지.”

처음 보는 성환의 모습

사흉에게 죽을 뻔 했을 때도 저러지는 않았는데, 지금의 그는 원색적인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저쪽이 역린을 건드렸나 보네.

옆에서 유리가 손을 잡아 주지만, 그것도 잠깐 미소로 돌아올 뿐.

금방 다시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음......뭔가 수가 없으려나?’

나도 한 팔 거들기 위해 팔짱을 끼고 고민에 들어갔다.

좋은 수가 없으려나?

한국에 들어온 중국 놈들을 일망타진할 최고의 비기가......

그리고 이때 들려온 소리

“저기~~~”

“릴리 님, 제안드릴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남성과 여성의 음성.

익숙하지만, 동시에 면식은 없는 둘.

유리 대신 날아갔어야 할 진짜 양키들이 찾아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