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술래 끝! 이제 역할을 바꿔 봅시다!! (2)
* * *
“아........역시 힘이 부치네.”
거대한 폭발을 단신으로 누른 반동.
현재 철수의 몸은 한동안 미룬 집 안 청소를 끝낸 걸레나 다름없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비릿한 혈향 때문에 헛구역질이 나오며 코가 썩을 것 같은 기분이고.
몸을 움직이는 내내 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
그나마 예지가 응급처치 정도는 해줬지만, 지금 펼쳐진 대규모 범위 회복 마술 [해븐즈 생츄어리]의 효과가 철수에 거의 미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높은 레벨의 보유자는 레벨에 걸맞은 강력한 신성 마술을 필요로 한다.
물론 예지가 그런 마술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다.
성녀.
가장 완벽한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데 그 정도를 못 할 리가 없잖아?
그러나 예지도 진천뢰에 충격을 완전히 피해간 게 아니기에, 철수를 완전 회복시켰다면 지금과 같은 호텔 전체를 구원하는 신위를 펼칠 수 없었기에 철수 스스로가 거절한 것이다.
자신은 아프고 말지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하...... 힘이 안 난다. 역시 객기 부리지 말고 예지한테 조금 더 치료해달라고 했어야 했나? 어떻게 생각해?”
“제기랄!!!”
─서걱!
오! 완벽한 반갈죽!
정수리부터 다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검격과 함께 세로로 갈라지는 적을 보며 철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니들 상대하기는 충분한 듯 보이지만, 딱 이 정도가 매너전이려나?”
그리고는 다시금 쌍룡검을 고쳐잡고 연격.
─샤아아악!!!!
거대한 거환도의 궤적을 따라 몰아치는 물보라는 제2, 제3의 칼날이 되어 사방을 도륙하기 시작한다.
철수를 포위하던 적들은 재빨리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니, 5명의 이미 물의 칼날 지옥에 명을 달리한 후였다.
“우리는 한국─”
“쫑알쫑알 졸라 시끄럽네. 앵무새냐? 뭘 같은 말을 계속 떠들고 있어? 니들 나한테 죽기 싫었으면 여기 오기 전에 저 테러범들 등에 칼이라도 박아서 무죄를 증명했어야지.”
“아.....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을!!”
“니들도 지랄 났다. 오히려 니들이 더 귀찮거든? 그냥 곱게 죽어서 오늘 돌아가신 사람들에게 대가리 박고 사죄해라.”
어쩐지 더럽게 눈치 좋은 놈들이 절반 정도 끼어 있더라니, 설마 같은 한국인일 줄은 철수도 몰랐다.
하지만 방금 한 말처럼 귀찮기만 할 뿐. 철수는 검에 차별도 망설임도 두지 않았다.
예지가 어떻게든 서두르기는 했지만, 결국 사람이 죽었다.
호텔의 하늘에 펼쳐진 건 어디까지나 기적처럼 보이는 마술이지 기적이 아니니까.
이미 죽은 사람은 살릴 수는 없다.
“착각하지 마, 내가 죽이는 건 테러범이지 중국인이 아니까. [역풍역수?風??] 몰아쳐라.”
철수의 주위를 맴돌며 수십의 적들과 용생구자의 세 고수를 상대하던 12마리의 용들이 그의 목소리에 호응하듯 포효를 터트린다.
쿠오오오────!!!!
그와 함께 마치 얼음 조각상처럼 매끈하던 수룡들의 형상이 거대한 용오름으로 변환.
폭풍이 된 용들은 적들을 휘저으며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동시에 바람을 통해 벌려 재정비에 들어가려는 순간
─채엥!!
“쯧, 꼴의 무검산 10대 고수라 이건가?”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용오름을 가르며 다가온 검격.
치밀하면서도 정밀하게 목젓을 노리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튕겨내며 철수는 혀를 찼다.
역시 통상 모습과 다르게 용기류로 변한 [역풍역수?風??]는 넒은 범위를 가지는 장점이 있지만, 그로 인해 방어 자체에는 틈이 생긴다.
어차피 노릴 수 있는 건 한줌의 일부 밖에 없기에 큰 단점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그 일부가 무려 3명이나 있으니까.
“역시 넌 오늘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겠다.”
“누가 죽어 준다냐?!”
검의 주인은 리웨이.
즉각적으로 검을 튕겨낸 철수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이렇게 가볍지?’
만전도 아닌 자신.
그에 비해 순위는 좀 낮아도 몸과 검 하나로 먹고사는 무검산 랭커.
너무 가벼운 그의 검에 의문을 자아낸 순간 철수는 그제서야 방금 검에 의해 용기류의 일부 갈라졌음을 깨달았다.
“젠장!!”
본인은 허수라 이건가?
스스로를 용기류를 뚫을 길잡이로 썼다.
그로인해 생긴 틈으로 튕켜 나가는 리웨이를 지나쳐 왕위와 메이가 각자의 무기를 내질려 온다.
“충무공, 죽어라”
“우리 앞을 가로막지 마!”
“지랄났다.”
날아오는 창과 두 자루의 소검.
과연 고수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 서로가 서로의 허와 실이 되어주는 완벽한 합격술이다.
서둘러 즉각적인 대응을 시도하지만, 순간
‘큭!! 아나, 타이밍 거지 같네!!’
운이 나빴던 것인지 진천뢰를 막은 반동이 다시 찾아왔다.
움찔거리며 찾아온 격통과 멈춘 몸.
십대 고수 둘을 상대로 한 박자나 내주다니.....
결국 그는 전부 막아내는 걸 포기했다.
그러나 이럴때 쓰라고 그 고생을 해서 만들어준 장비 아닌가.
철수는 빠르게 한 자루의 창과 두 자루의 소검이 지나갈 궤적을 눈으로 그리고 막아낼 것과 방어구의 성능에 맞길 걸 구분했다.
그렇게해서 선택한 건 우선 창.
“남정네한테는 맞아주기 싫거든.”
거환도를 크게 반월형으로 휘두르며 왕위의 창을 막아내면서 동시에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메이에게 거환도를 겨눈다.
그러나 창까지 쳐내 힘 빠진 검을 겨눈다고 막아 질 소냐.
역시 예상한 대로 메이는 가볍게 소검 한 자루로 거환도를 치워내며 남은 한 자루를 철수의 가슴을 향해 찔러 넣었다.
“어이쿠!”
“뭐?”
하지만 다음 행동은 메이를 놀라게 만들었으니, 철수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무기를 그대로 장애물로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겨우 백스텝에 성공.
메이는 당연히 생긴 작은 틈으로 검을 피하리라 예상했지만, 도리어 그는 짧은 거리를 이용해 피하지 않고 왼팔을 방패로 세워 앞으로 돌진을 감행했다.
“이 갑옷 유일 무장이다 이거야!!”
“그걸 모를 거 같아? 내 검도 마찬가지거든?!!”
그대로 팔과 함께 심장까지 꿰뚫어버리겠다는 기세의 메이.
돌진은 오히려 실수였다며 메이의 눈빛은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지만, 철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제서야 메이는 그가 왜 굳이 돌진을 감행했는지 깨달았다.
몸싸움을 예상했으나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으로 시야를 가리고 팔을 뚫고 심장 앞까지 적의 검을 허용해 판단을 흐린 것.
그사이 철수의 오른손은 방금 놓았던 거환도를 향하고 있었다.
“죽어버려!!”
메이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철수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어차피 그래봐야 이미 반대 손에 검을 쥐고 있던 자신이 빠르니까.
칼을 잡든 말든 그 전에 죽이면 아무 소용─
“남의 몸에 이상한 거 쑤셔 넣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와락!!
박힌 팔과 그녀의 손에 쥔 소검을 비틀어 버리는 철수.
칼날에 살을 찢겨 지고 관통한 뼈가 부러지면서 끔찍한 고통이 엄습하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 메이의 몸의 균형을 무너트리면서 다시 거환도를 손에 쥐는 데 성공한다.
“나처럼 검을 놨어야지. 띨빵한 년아.”
“너어어!!”
“조용히 뒤져”
─샤아악!!
함께 바닥을 구르면서 목에 칼을 먼저 가져간 철수는 그대로 칼등을 팔꿈치로 눌러 그녀의 목을 베어버린다.
목에서 주체할 줄 모르고 흐르는 피를 손으로 틀어 막지만, 결국 메이의 눈동자는 점점 빛을 잃어가더니 이내 툭 하고 실이 끊어진 것처럼 쓰러졌다.
“우선 하나.”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팔에 박힌 검을 뽑아낼 시간도 없다.
저 멀리서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남자, 왕위.
그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흩뿌리며 모든 것을 뚫어버릴 듯이 창을 앞세우고 날아왔다.
“너 이 자식!!!”
동시에 뒤에서도
“인류의 기둥 중 하나를 죽이다니,”
양방향에서 달려드는 십대 고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철수는 헛웃음을 삼키며 어느 마녀가 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튕긴다.
“너네 내로남불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쟤가 기둥이면 난 뭔데? 그리고 늦었어 븅신들아. [산명수려山???]”
─타각!
항상 손가락을 튕기면서 승리를 불렀던 그 마녀처럼 철수도 손가락을 튕기며 승리를 부른다.
─화아아아아!!!!
돌아오는 역풍의 바람
13척의 배로 133척을 물리쳤던 그 날의 승리도 역풍의 바람과 파도로 시작되었으니.
“이건?!!”
“[역풍역수?風??], 비록 기적이 바꾼 바람과 파도라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법이지, 명량해전에서도 승리가 끝난 후 다시 파도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뭐, 난 돌아오는 바람과 파도 덕분에 이기는 거니, 아무래도 어설픈 짝퉁 충무공이 확실한 듯 하네.”
용기류의 모습으로 변해 적들을 물리쳤던 수룡들이 다시 돌아온다.
주인을 지키기 위해.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서서히 다시 수룡의 형태로 돌아오는 모습은 흡사 안개의 용과 닮았으니.
이들은 철수의 검에 모이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압축을 시작한다.
“왕위 빠져라!!!”
“그전에 죽여버리면 그만이야!!!”
리웨이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하고 급히 자리를 피했지만, 왕위는 뭐가 나오기 전에 꿰뚤어 버리면 그만이라며 오히려 창을 가속.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패착으로 이어진다.
“[만경창파????]”
─콰아아아아!!!
검을 중심으로 폭발하는 거대한 수증기 폭풍.
“으아아아아!!!! 죽여버리겠다!!!”
폭풍이라고 해봤자, 검을 중심으로 한 반원형 전방위.
힘이 집중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비록 상대가 전설적 충무공이라고 해도 한점에 집중한 자신의 창이라면 능히 뚫을 수 있을 터.
그러나.
“이건 바람도 안개도 아니야. 처음 본 본질을 잊으면 안 되지.”
수룡
주인의 의지를 빌린 충무공의 수호신이자 갑옷이며 무기인 존재.
반원형이었던 바람은 점점 왕위를 향해 뭉치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는 벽의 두께는 더더욱 두꺼워져 간다.
흔들리는 창끝을 바라보며 왕위는 다시금 내공을 집중하려 하지만.
“아까 그 여자도 먼저 죽이면 된다고 하면서 갔는 거 아냐?”
“너어어어!!!!”
“마지막에 하는 소리까지 똑같네. 저승에 만나서 사이좋게 놀아라.”
─부웅!!
진짜 목표를 잊은 채 보이지 않는 벽에 고정된 왕위의 눈.
언제나 적을 바라보라는 기본도 잊은 놈에게 줄 건 죽음 말고는 없다.
그렇게 왕위의 얼굴을 사선으로 그어버린 철수는 이제서야 검을 내려놓고 큰 숨을 몰아 내쉬었다.
“두 명이요!!! 아! 뒤질 거 같다~~~!!”
밥도 못 먹고 이게 무슨 고생인지.
너덜너덜해진 팔을 늘어트리며 바닥에 칼을 꽂아 지지대로 세운 철수는 이 일이 끝나면 반드시 삼겹살 집에서 지갑이 거덜날 정도로 먹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다시금 흐릿해진 시야로 마지막 1명
리웨이를 응시하며 검을 뽑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와서 오라를 받으라, 이 테러범 녀석아.”
“.......”
눈앞의 피투성이인 철수를 바라보며 리웨이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 치고 말았다.
분명 아직도 유리한 상황이다.
부하들이 다시금 갈려나갔지만, 아직 20명 남짓 살아 있고, 적은 이미 만신창의 아닌가?
뼈를 관통해 뒤튼 검 때문에 왼팔은 쓸 수도 없을 테고, 진천뢰의 반동을 받은 상태에서 큰 기술을 연발했으니 마력도 체력도 바닥일 터.
그를 증명하듯 그의 주위를 맴도는 수룡들은 처음과 같은 기세가 없고 아직 안개에서 돌아오지도 못하고 있지 않는가.
그저 흐릿하게 안개로 형상을 잡아 자신들을 노려볼 뿐.
허세
허세에 불과할 터인데.....
“야? 뭐하냐? 안 와? 이 꼴인 내가 가리?”
조금 전처럼 철수가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똑같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리웨이.
이미 기세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다.
“각하......”
“크으으으!!!!”
이미 두려움에 가득 찬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의 모습에 리웨이는 이를 갈며, 나지막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러난다.”
“어이쿠 누가 보내줍니까?”
“허세 부리지 마라. 너도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닐 터.”
“그럼 와. 걸레 짝 꼴키퍼가 무서워서 튀는 주제에 왜 그렇게 주둥이가 길어?”
“크으으!! 오늘 일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거다........우리는 피를 잊지 않는다.”
그 말을 끝으로 리웨이와 남은 부하들은 탑의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철수는 그런 그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보며 수룡들을 움직였다.
“사람 말을 안 듣네. 누가 보내준다고 했냐고?”
그나마 형상이 복구된 용들이 4마리가 거대한 입을 벌린다.
이빨 사이로 생성되는 푸른 구체, 압축되는 용의 숨결
“사람 치고 같으면 사과를 해야지. 안 그러냐 이것들아.”
최소한 리웨이 저놈 면상은 날려버리리라 다짐하는 순간,
[야, 보내줘]
귀가에 들려오는 전음.
목소리의 주인은 지금 머리 위 무너지는 호텔 옥상에 있을 예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철수가 반문하자, 예지는 다시금 그를 만류했다.
“뭐?”
[보내주라고. 거기서 한 방 더 쏘면 그 다음에는 진짜 어떻게 싸울 건데?]
“그래서 그냥 보내주라고? 아니, 그래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이어지는 예지의 이야기.
철수는 순간 귀를 의심하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서둘러 인벤토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찾았다.
기사도 아닌 실시간으로 보도 중인 뉴스 화면에서는 거대한 비행물체를 가리키며 보도하는 기사.
너무나 익숙한 물체임을 뒤로하고 문제는 기자의 뒤에 있는 간판들.
한글이 아니다.
영어는 더더욱 아니고.
한문.
오로지 한문 일색.
이 상황에 철수는 그만 이마에 손을 올리고 허탈하면서도 개운한 웃음을 지었다.
“얘들 진짜 사고 쳤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