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술래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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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내려 기지개를 켠 난 늦은 시간까지 운전해 주신 기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차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이상하게 뻐근한 어깨를 톡톡 셀프로 두드리며 아파트 단지, 내 둥지로 출발.
어두운 거리를 걸으며 나아갔다.
“으......밥 먹고 이야기 좀 나누고 온 건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아싸 종특인가?
고작 대화 몇 마디 주고받은 정도로 이 몸이 피곤할 리는 없으니, 원인은 분명 정신 쪽일 텐데.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나름 전선에서 여러 사람을 사귀면서 아싸 티는 벗었다 생각했는데, 몸에 깊게 새겨진 잔향이 남아 있는 듯 싶었다.
피식.
괜히 흘러나오는 자조적 웃음에 미소짓고는 그렇게 내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터벅터벅.
구두와 바닥이 만나며 울리는 소리.
집이 3층이라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을 선택했는데, 유독 울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고요한 침묵과 가라앉은 어둠이 만든 확성기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원인은 이 자연의 확성기만은 아닌 거 같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마치 두 개의 같은 소리가 동시에 겹치는 것같은 울림.
처음과 다르게 이제는 고의적으로 타이밍을 어긋나게 하여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음산한 분위기까지 합쳐지니 평범한 소녀라며 여기서 울음을 터트리고 경찰을 찾았을 정도.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 평범한 소녀의 얘기고, 난 그저 다 귀찮다는 듯 무시하며 묵묵히 계단을 밟았다.
그러한 내 행동에 놀란 건지, 순간 소리가 멈췄지만, 이내 오기가 생긴 건지 더더욱 노골적으로 발소리를 키우며 내 뒤에서 기세를 날 콕콕 찌르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내가 마지막까지 묵묵히 발을 옮기고 도어락 비밀번호에 손을 올리고 나서서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강단이 좋은 건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근나근하게 늘어지는 여성의 음성.
살짝 상대를 내려보는 듯한 어투.
이제서야 입을 여는 상대의 행태에 나도 그렇지만 상대도 한 고집하는 걸 느끼며 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뭐, 후자가 아닐까?”
“어라? 그런 거 치고는 상당히 경계가 허술한 듯 보입니다만? 모르시는 거 같은데, 저희 꽤 오래전부터 따라붙고 있었는 거 아시나 몰라?”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솟아나기 시작하는 검은 인영들.
마치 이만한 수가 널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알긴 알았다는 묻는 모습이다.
확실히 난 나타난 인영들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흘리긴 흘렸다.
물론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뭐야, 닌자? 시노비? 아, 같은 말이구나.’
아니, 그런 거 치고는 복장이 다들 개성이 넘치신데.....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라는 건 비슷하지만, 통일된 부분이라고는 입을 막을 천을 제외하고 없다시피 하고.
시노비 대표 상징물 쿠나이를 든 인간도 없고.
음.......요세 유행한다는 인술이라고 사기 치는 마법사 시노비들인가?
‘워매~~~ 몇 명이여?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아, 다음 세는 법 까먹었다. 졸라 많네.’
심지어 개성 넘치는 복장답게 대가리 숫자만 채운 것도 아닌 듯 보인다.
한놈 한놈 나름 기세도 있고.
아무래도 조용히 넘어가기는 글렀기에 하는 수 없이 몸을 틀어 내게 말을 걸었던 대장으로 보이는 여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시간에 찾아오는 건 어느 나라 예절이냐?”
자정이야 자정.
엄마가 너무 늦게 남의 집 방문하지 말라는 건 만국 공통 기본 상식일 텐데 말이지.
그렇게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하는 나.
하지만 돌아온 건 코웃음이었다.
“대국이 소국에게 차릴 예의가 어디있다고.”
대국
소국
여기서 소국은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것일 터.
그리고 우리를 소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야 뻔하고.
난 헛웃음을 내뱉으며 저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버렸다.
이렇게까지 해도 모르면 이상하지.
그렇게 때문일까.
내 목소리에는 은은하게 조롱과 짜증이 녹아나 있었다.
“짱깨들이구나. 미안 내가 배려가 부족했네. 니들이 예의 같은 걸 배웠을 리가 없는데. 어디, 지금이라도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쩌적
바로 조금 전까지 함께 날 비웃던 웃음은 어디 가고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는다.
그리고 동시에 서서히 각자의 무기 손잡이로 올려지는 손.
난 저런 그들의 행태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본인들이 이쪽을 소국이라고 부르는 건 괜찮고, 이쪽이 너희들 짱깨라고 부르는 건 싫냐?
내로남불의 모범 사례가 여기있군.
난 그들의 행태에 비웃음을 보였지만, 대장으로 보이는 붉은 장포를 두른 여성은 정말로 이런 내 행동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까부터 생각하는 건데요. 분위기 파악할 줄 모르세요?”
“아, 기분 나빴구나. 미안, 혼돈 하나 처리 못 해서 찡찡거린 니들이 대국 어쩌고 하는 꼴이 하도 같잖아서 나도 모르게....... 사과할 게. 무개념 짱깨처럼 이 시간에 찾아온 무례로 서로 퉁 치는 게 어때?”
“““..........”””
─샤아아악!!!
과연 이번에는 못 참는단 건가?
바로 즉시 나의 급소를 향해 사방에서 칼날이 쇄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쫘아아악!!!
“누가 멋대로 나서라고 그랬지?”
허공에 달린 실을 움켜쥐며 그들을 막은 건 바로 눈앞의 붉은 장포의 여성
나야 설마 대장인 그녀가 손수 부하를 막을 줄은 몰랐기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지금 펼쳐지니
─샤락!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그녀는 내 바로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내 눈에는 보일지니, 저건 순간이동 따위가 아니다.
작은 발걸음으로 전투의 흐름을 잡는 경신술, 무검산의 산물인 보법.
북부전선에서 실컷 봤지.
하지만 수준은 확실히 보았던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니, 상대가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반증이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죠?”
“뭐가?”
“상황파악이 안 되냔 말입니다.”
지금 상황이 장난 같냐는
아니며 우리가 인사나 나누러 온 밤 손님인 거 같냐는 듯한 물음.
그러나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너 같으면 되겠냐?”
니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왜 찾아왔는지도 모르는데 상황파악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난 오히려 팔짱을 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짱깨, 짱깨 소리 듣기 싫으면 자기소개나 하지?”
“당신 따위가 저희를 알 자격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직 이 나라에서 소란을 일으키기 싫으니 혼천석이나 내놓으시죠. 이미 당신이 가지고 있다는 정보는 확인하고 왔으니까”
혼천석?
딱봐도 무검산 출신 놈들이니 잡템 혼천석은 있을 테고, 지금 말하는 건 혼돈이 봉인된 혼천석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의문이 있으니.
저것들은 내가 그걸 가지고 있는 걸 알면서 왜 저렇게 당당하단 말인가.
어떻게 혼천석이 내 손에 있는지 알았는 건 뒤로하고, 그러면 왜 내가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는 말이야?
허......참......
뒤에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더더욱 내 추측에 확인 도장을 찍었다.
“설마 창고 역할로 이런 소녀를 지정해 둘 줄은 몰랐는데......보기보다 인맥이 있나보군요. 근대 지금 그 인맥이 당신을 지켜줄 거 같아요?”
“......안 주면?”
“글쌔......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사지가 잘려나가는 걸 감상해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뭐, 이미 팔다리 하나씩은 받아갈 생각이니, 좀 더 버티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제 여흥을 위해서.”
이미 중화를, 자신들을 모욕했으니 당연한 조치라는 듯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드는 그들의 행동에 난 기도 안 찬다는 듯 헛바람을 삼켰다.
미친놈들.
아니, 진짜 또라이들인가?
다짜고짜 찾아와서 자기소개도 없이 뭐? 혼천석?
손가락부터 사지 절단?
“니들 정체는 나중에 내가 따로 알아보련다. [나의 부름에 응하라, 카녹스, 플루라]”
─타각!
들끓어 오르는 짜증에 난 어느새 손가락을 튕기며 언령을 읊고 있었다.
그렇게 그림자는 소용돌이를, 그리고 소용돌이는 이내 폭풍으로.
갑작스러운 이변 현상에 저들 모두는 일단 거리를 벌렸다.
“뭐지?!!”
“무슨 잔재주를!!”
폭풍이란 알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건 내 최고의 기사들.
하나는 묵직한 대검을 바닥에 세운 해골의 군단장,
다른 하나는 검은 안개로 된 몸에 묵빛의 갑주를 두른 죽음의 여기사.
스켈레톤 킹 카녹스
어비스나이트 플루라.
둘은 등장과 함께 주인의 앞에 선 적들을 푸른 안광으로 응시하며 내 명령을 기다렸다.
“이건 뭐죠?”
붉은 장포의 여인은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피부에서 돋아나는 닭살아 알려주는 공포감
무력감.
그저 혼천석을 임시로 맏고 있는 여인에 불과하다고 알았는데 이건 대체...........
그녀는 이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니.
소녀는 그런 그를 향해 차가운 조소를 줄 뿐이었다.
“알려 줄 이유 있냐? 자기소개도 안 하는 강도들에게?”
“강도? 우리 물건을 우리가 가져가겠다는 게 무슨 문제가 있죠?”
“와~~~ 골 때리네. 왜 니들 껀지 이유나 들어보자, 설마, 혼돈이 너희 땅에 나왔으니까. 그렇다 하는 개소리는 아니지? 그렇지? 설마 그런 식상하고 뻔하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대국이란 분들이 할 리가 없잖아?”
“““............”””
무언은 긍정.
어이가 없네.
그딴 이유로 혼천석을 바라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정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저들의 사상이 더더욱 어이가 없다.
“카녹스, 플루라”
드디어 떨어진 주인의 부름
둘은 다시금 안광을 번쩍이며, 카녹스는 바닥에 둔 거대한 대검을 꺼내 고쳐잡고, 플루라는 손에 검은 기류를 생성해 한손에는 철퇴를 다른 손에는 도끼를 쥐었다.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퍼져나가는 내 소환수의 힘의 파동에 나머지 놈들도 시퍼렇게 질리기 시작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반 죽이고 반만 죽여.”
반 죽이고
반만 죽여라.
두 마디를 남기고 상종하기 싫다는 양, 손을 털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내가 본 것은 내 명령을 착실히 수행 중인 내 수하의 모습이었다.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그들의 비명은 내 귀에 닿지 않았다.
* * *
“음, 아무래도 정보가 사실인 듯 하네.”
“그렇군요.......”
저 멀리 보이는 광경을 응시하는 남녀, 애단과 미쉘은 침을 꼴깍 삼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수십의 암살자들과 두 죽음의 기사가 그리는 화려한 춤.
그러나 이는 서로 어울리는 듀엣이 아닌, 그저 두 기사의 솔로일 뿐이다.
“유린.....그 자체네요.”
“그렇군.”
거대한 대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대기가 갈라지며 궤적을 따르는 모든 것이 양단된다.
나름 몇몇은 속도를 살려 해골의 왕에게 검을 가져가기는 하지만, 의미는 없다.
모든 것을 튕겨내며 하찮은 칼날 따위 자신에게 닿지 않음을 다시 말한 후 대검의 칼날을 선사할 뿐.
그러나 그조차 옆에서 보이는 것에 비하면 약과.
“으아아아아!!!!”
“이.....이건 아니야....이건 ─ 쿠엑!!”
─콰직!!
사실 묵직한 해골의 왕은 자리를 지킬 뿐이다.
주인의 보금자리에 저들의 더러움이 묻지 않도록.
진정으로 지금의 참상을 만드는 건 바로 저 검은 여기사.
질풍처럼 한 손의 메이스로 적을 분쇄하고 도끼로 적을 사정없이 토막 낸다.
다가가는 건 죽음이요. 다가오는 것 또한 죽음이니.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손속에 자비가 없을 수 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
거기에 문제는 압도적인 속도에 있다.
후발선제 따위를 넘어, 저항을 떠올리는 순간 이미 끝
방금 전 주인에게 한 무례의 보복을 가하는 건지, 도끼로 사지를 절단하고 메이스로 두개골을 터트린다.
그러나 계속될 것만 같았던 학살에 재동이 걸리니
─채앵!!!
“크윽!!”
붉은 장포의 여인이 여기사의 앞을 막아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