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인재를 찾아 동방의 나라로 (4)
* * *
“저기요?”
“아, 미안. 잠깐 딴 생각을 좀.”
레벨 관련 이야기 때문인지, 순간 융합 마술에 신경이 팔려버렸다.
하긴 지금은 내 마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
융합 마술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날 부르는 예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난 다시 본래 주제로 돌아왔다.
“아무튼 우리 정부가 뻘짓 중이라는 거지?”
“꼭 그렇게 말할 정도는 아니에요. 애초에 상대가 작정하고 덤비는데 저희가 버틸 재간이 있나요.”
전 세계가 원하고 있는 것이다.
수준 높은 한국 플레이어의 모든 것을
나라의 위기를 위해 스스로 일어났던 애국심
산처럼 쌓인 용의 산물
가장 격렬한 전장을 겪으며 얻은 경험까지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 대비한 자국의 방패로써, 그리고 검으로써
쓱쓱 손으로 화면을 넘기는 예지는 새로운 통계 자료를 보여주며 대화를 지속했다.
“우선 플레이어 일탈의 최고 원인은 미국이죠.”
미국의 주력 무기는 압도적 자본
예로부터 돈지랄은 미국의 최고 필살기 중의 하나였다.
흔히 천조국이라고 하지 않는가?
국방비에 무려 1천조에 달하는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생긴 별명 아닌 별명이지.
그런 미국이 작정하고 한국의 플레이어들을 포함해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까지 모으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당장 한국 플레이어들의 일탈률이 설명하고 있지.
“매우 공격적이에요. 정치인들에게 하는 짓은 애교 수준. 한 개 예를 들려드릴까요?”
말하는 본인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녀는 헛웃음을 삼키며 미국이 한국의 한 무검산 출신 랭커를 영입하는 과정을 풀어갔다.
우선 첫 번째 개인적인 접촉.
기본이다.
막대한 금전을 약속하며 미국의 영웅이 되어달라고 하는 것이지.
그러나 그 랭커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저 한 번 튕긴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한국에 남고자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뒤로도 그는 여러차례 제안을 거절했다고.
결국, 미국은 수단을 변경 타깃을 대상의 가족, 친구, 동료 등등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지는 사회 범위의 전부를 앗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친구가 사라지고, 동료가 떠나가며, 가족이 미국으로의 이민을 끊임없지 종용하게 만든다.
최종적으로는 대상자가 한국에 남아있을 이유를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방식으로.
난 그것을 들으며 순간 피부에 닭살이 돋아났다.
“이런 미친........이게 가능하다고?”
“불가능할 건 뭔가요? 한 사람당 한 100억 쯤 쓰면 다 넘어올걸요?”
한 개인이 가지는 인간관계란 넓은 듯 하면서도 좁다.
아는 사이랑 친한 사이는 분명히 다르니까.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주로 연락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늘 대부분 거의 비슷한 사람 뿐.
대략 친한 지인 10명 잡으면 되려나?
1000억 정도를 타켓의 지인들 휘어잡는데 쓰고, 또 1000억 정도를 가족들을 회유하는데 사용.
마지막으로 플레이어에게는 5000억 정도 쓰면 약 7000억으로 랭커 하나를 미국에 데려갈 수 있다.
“7000억이 애들 장난입니까?”
“제 추측인데 이건 돈 많이 아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뭐?”
“랭커는 개인별 1조 쯤 계산하고 있지 않을까요? 한국 랭커 많다고 해도 겨우 300 남짓. 300조에 좀 더해서 500조 정도로 모든 힘을 흡수, 거기에 게임하는 이들의 지인도 대부분 게임하는 사람들이니, 딸려오는 병력도 잔뜩. 이정도면 남는 장사다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
“이런 도른자들을 봤나.”
이미 뒷골이 당겨오는 와중에 다음으로 이어지는 건 중국.
이쪽은 더 미쳤다.
“얘들은 지위, 권력을 교섭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어요.”
중국이 돈이 많다고 하지만, 머니 게임으로 미국과 붙을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중국은 작정하고 막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레벨에 따른 플레이어의 차별을 실행하고 권력을 집중하는 중이라고.
말만 꺼내지 않았을 뿐, 신분제도를 부활시키는 중이라고 하니 대체 내가 듣고 있는 게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거기에 웃기는 건 이게 은근히 먹힌다는 사실.
금전에 대한 욕심도 욕심이지만, 과시욕, 권력욕, 지배욕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중 하나다.
갑질이라는 사태가 왜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겠는가?
그 또한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
인터넷이 가져다준 환경 때문에, 타인에 지탄이 무서워 못하는 것일 뿐, 인간은 항상 그러한 욕구를 품에 안고 있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별로 통하지 않지만, 자국의 플레이어를 잡아두는 것에는 탁월하다고 하는 군요. 거기에 범죄자 쪽 플레이어들을 흡수하는 것에서도”
“하긴, 우린 당한 게 있으니, 나 같아도 차라리 미국을 가고 말지 중국은 안 간다.”
“유럽이나 인도는 딱히 국가적 공세는 약한 편이에요. 뭐, 정확히는 미국에 묻히는 느낌? 대신에 그 나라들에서는 개인 부호들의 움직임이 강하죠.”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인도에는 손에 꼽히는 갑부들이 상당히 많이 포진하고 있다.
흔히 자신의 왕국을 구축한 왕, 나라를 흔드는 큰 손이라 불리는 거부들이.
그들은 개인의 안위를 위해 플레이어들을 탐색하고 빨아들이는 중이라고.
아까 미국이 개인별 1조를 계산했다고 했지?
그들은 더 큰 돈을 쓴다.
거기에 고용주가 직접 움직이는 성의까지.
상상해보라,
TV, 인터넷,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회장님들이 직접 나와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식사를 가지면서 인자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우아하면서 호화로운 식사
들어본 적도 없는 값비싼 와인은 덤이다.
오프너로 탕! 하고 열리 와인병이 회장님의 손을 거쳐 당신의 술잔에 따라지는 순간 자존감이 하늘을 모를 정도로 오르겠지.
금전을 넘어 이 자체에 만족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예지가 날 이렇게 직접 대해주는 것 또한 이 일환이니까.
물론 우리가 친한 사이인 건 맞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렇게 PPT까지 준비하는 성의와 내 취향을 맞춰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는 노력은 아무에게나 할 수 없다.
그만큼 예지가 정말 날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겠지.
“서론이 길었네.”
“그런가요?”
“이제 그만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난 처음 꺼냈던 발할라에 대한 계약서로 화면을 넘긴 후, 그를 다시 예지에게 돌려주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는 손에 깍지를 낀 채 기대감이 가득 찬 눈으로 예지를 응시하며 말했다.
“발할라, 전사들의 천국이라. 들어보자구. 뭐하는 곳인지, 네가 뭘 바라는지, 그리고 내게 무슨 이득이 되는지.”
“.........미리 말하지만 머니게임은 자신 없어요.”
“나도 알아. 근데 관심 없어. 1조? 지랄. 관리하기도 귀찮아. 은행에서 전화가 얼마나 오겠냐?”
“푸흡! 하하하! 그걸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어라? 이것 보게.
얘가 은행 전화를 우습게 아네.
야, 니가 질리도록 문자가 와서 차단하고 싶은데, 괜히 찜찜해서 참는 기분을 아냐?
하여간 갑부들이란.
내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으니 웃음을 터트린 예지는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하긴 집 문제로 그럴 때 알긴 했지. 아무튼 중국 같은 신분도 드릴 수도 없을 거예요.”
“줘도 안 받는다.”
손사래를 치는 날 보며 예지는 조금 안심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릴리라는 인물이 어떤 이인지 알기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듣는 건 또 다르니까.
불안했지.
만약 릴리가 ‘난 돈의 화신이다’ ‘너희들을 무릎 꿇리고 싶다’ 같은 소리를 했으면 이번 자리가 의미가 없어지니.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잠시 뜸을 들인 예지는 결의의 찬 눈빛으로 돌아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 싸울 겁니다. 하지만, 전 두 번 다시 희생으로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희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결과를 보라.
우리는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으니, 그녀는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전에 민준이 말했었지.
‘희생하여 나라를 지킨 이들에게 마땅한 보상과 명예를’ 이라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을 위해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연합이 뭉칠 수 있었던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순수한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아닌 사람을 지키고자 함이었다.
닿을 수 없다 할지라도 인간이란 존재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니.
그녀는 이익을 위해, 목적을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 많은 것도 아니고 더 적은 것도 아닌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명예롭게 싸울 수 있기 위해 전 노력할 겁니다.”
예지는 다시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신 연합, 발할라를 위해 힘을 빌려주세요. 릴리 아스트레아스.”
* * *
“하~~~움, 시간이 무슨. 저녁 한 끼치고는 좀 길었네.”
예지와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마치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나가 버렸다.
예지는 호텔에서 묵고 가라고 했지만, 딱히 그럴 필요까지야.
나 은근히 배게 바뀌면 잠 잘 안오는 타입이고.
결국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호텔에서 나와 이렇게 텍시를 타고 집에 가는 중이다.
“발할라라......”
흔들리는 차 안에서 밖의 야경을 보며 중얼거린 단어. 발할라.
미안하지만 도장을 찍어주지는 않았다.
예지는 믿을만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싸인을 하기에는 아직 성급한 감이 있으니까.
신 연합을 말하기에는 연합이 완전히 해체된 것도, 연합이 남겨둔 문제를 해결한 것도 아니다.
당장 부산물 문제부터 해결을 봐야지.
“생각보다 아쉬워하지는 않았단 말이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나?”
오히려 관심을 가져준 것 자체에 만족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발할라의 향후 계획, 목표, 구 연합이 가졌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등을 상세히 어필했었지.
덕분에 알지 못했던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어 나야 좋았지만, 예지에게는 너무 손해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대체 어디까지 보고 내게 그런 정보를 서슴없이 주었을까?
‘하지만......나쁘지는 않았어.’
관심을 보였던 건 정보를 더 받기 위함도 있었지만, 실제로 관심이 있기도 했다.
연합에서의 싸움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예지가 말한대로 명예가 있는 싸움이었다.
단지 이익이 없었을 뿐.
신 연합이 구 연합의 의지를 이으면서 동시에 호구 짓만 하지 않는다면 난 한팔 거들어 줄 의향은 충분히 있다.
“그래, 인류를 위해 싸워도 받을 건 받아가며 싸워야지.”
천하에 길이 남을 악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는 이가 되고 싶다.
천하에 길이 남을 성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꼴은 못 본다.
난 히어로도 히로인도 아니니까.
TS 장르 주인공이야. 왜 이래?
“내꺼 챙기면서 가자. 그 과정에서 좀 착한 일도 하고.”
“응, 손님?”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요즘 혼잣말이 좀 늘었네.
하여간 양쪽 다 섞이니 이상해졌어.
난 재빨리 택시 기사님에게 손사래를 치며 다시 창문 밖을 바라봤다.
나, 릴리 아스트레아스, 착한 마녀님입니다.
그래도 마녀니까 성향은 혼돈 · 선!! 으로 결정
─ 탕! 탕! 탕!
이론은 가끔만 받는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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