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인재를 찾아 동방의 나라로 (2)
* * *
“장조림 졸맛.”
역시 장조림은 메추리 알이랑 꽈리 고추 때문에 먹는단 말이지.
고기?
당연히 먹지.
아니, 없어서 못 먹지.
그래도 난 이상하게 둘이 같이 있으면 이쪽에 더 젓가락이 가네.
어째 몸은 변했는데 입맛은 그대로야.
난 다시 즉석밥 위에 장조림, 꽈리 고추를 올리고 숟가락으로 푹 떠서 한입 가득 입안을 채웠다.
고슬고슬 느껴지는 밥알에 짭조름한 양념이 함께 조화를 이루니 가히 천국의 맛이로다.
터키의 카이막이 천국의 맛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은 이게 천국의 맛이지.
“엄마, 요리 솜씨는 알아줘야 해.”
이런 맛있는 반찬이 내 솜씨일 리가 없잖아?
당연히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반찬들이지.
장조림뿐만 아니라 김치에 계란장, 오징어 볶음, 나물 무침, 콩자반 등등
아, 콩자반은 싫은데........
아무튼 이렇게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로 냉장고는 꽉 차있다.
거기에 처음 이사했을 때는 이틀 간격으로 매일 찾아오셨으니, 그야말로 지극 정성이라 할 수 있겠지.
“참, 원래 혼자 살고 있었는데 무슨 걱정인지.”
외모만 여중생일 뿐, 이제 무슨 일 생기면 무슨 일 저지른 사람을 걱정해야 하는 몸.
걸어 다니는 전략 병기가 바로 나다.
심지어 내구성도 좋아서 오벨리스크 같은 놈한테 짓밟혀도 흠집도 안 나.
뭐, 그래도 어느 부모가 자식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은.
“부모님도 잘 지내고 계시겠지?”
당시 내가 예지의 손을 잡은 날, 가족들이 격렬한 반대를 외쳤지만, 의미는 없었다.
당장 본인들이 조금 전에 한 말 때문에.
자립할 준비만 되면 나가는 걸 말리지 않겠다 라고 직접 말하지 않았는가?
예지도 그 점을 파고들었지.
집? 예지가 줬다.
그러니 내가 여기 살고 있겠지?
오히려 무슨 2층짜리 복합 주택을 주려고 하는 걸, 그건 아닌 거 같아서 난 혼자 산다고, 이딴 거 청소 못 한다고 격렬히 반대했었지.
청소야 당연히 아주머니 맡기면 될 일 아니냐고 하는데, 어안이 벙벙해지더라.
그래서 가까운 자리에 편의점이 있는 곳이 좋다, 나 차 몰아본 적 거의 없다 라고 두 번째 반박을 날렸는데.
그럼 그런 위치에 있는 주택을 준비해주겠다고 하고.
뭐지? 공명의 함정인가?
결국, 내가 그런데 살 만큼 간땡이가 크지 못하다고 글썽거리고 나서야,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제안을 물렸다
거기에 좀 어이가 없는 것이.
아니, 돈 아꼈으면 좋아해야할 것이지 왜 본인이 아쉬워하는데?
아무튼 그렇게 주거지 문제 해결.
그다음 신분인데.
딱 2시간 걸렸다.
신분 재발급 기간이라 쉬운 일이었다고.
그러나 그게 정말 쉬운 일이었으면 아버지가 비장한 표정을 지었을까?
예지의 전화 한 통 > 아버지의 최선을 다한 노력
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이었지.
아버지는 가장의 자존심이 바사삭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무릎 꿇었다.
근데 사실 저것도 많이 봐준 거야.
>게 하나가 아니라 >>>>>> 쯤 붙어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돈
이 역시 예지가 준다.
이걸로 게임 끝, 자립 완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지.
근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나 무슨 기둥각시 같네?
뭐, 딱히 불만은 없지만()
일 안하고 돈 받는 건 꿈의 직장이라구!!
결국, 부모님과 소라와는 그날 작별을 고하고 난 예지가 모는 차를 타 지금의 집으로 도착했는데. 글쎄 이미 건장한 청년들이 반들반들한 새 가구들을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컴퓨터도 최신형으로 설치하고 있고!!
그........드라마 같은데 나오는 재벌 2세 3세들이 돈지랄하면 보통 재수 없게 보이잖아?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응, 아니야.
졸라 멋있어.
개간지.
등짝 간지 따위와는 비교도 안 돼.
도착한 가구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일하는 분들한테 오늘부터 써야 하니 마무리 청소까지 잘 부탁한다고, 시간이 늦었으니 끝나고 회식이라고 하라면서 카드를 주고 나오는데, 후광이 한 세배쯤 커지더라.
눈이 부셔 바라볼 수가 없어요.
“재벌이겠지?”
재벌이리라.
그것도 무개념 막장 재벌이 아니라 엄청 유능한 재벌
연합 때부터 평범한 사람이 아닐 거란 건 짐작하고 있었다.
비록 의미는 없었지만, 정부와의 커넥션을 유지하던 것도 예지였고, 각종 작전 수립과정에서의 사람의 배치, 의견의 조율 등등 연합장이라는 부분에서부터 중요한 곳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으니까.
거기에 외국의 상황까지 파악하는 치밀함까지 보였지.
예지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중국이 한 행동을 모른 채 그저 운이 나빴다는 소리만 지껄이고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범인(凡人)은 아니리라.
─띠리리링~~ 띠리리링~~~
새로 뚫은 스마트폰에서 기본 벨 소리가 울리자, 난 그것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딱히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요즘은 혼자 하는 생각도 말로 치나 보네.
난 후다닥 남은 밥을 싹싹 긁어 입안에 넣으면서 전화를 집었다.
* * *
밤의 야경이 드리우는 저녁 시간
예지의 연락을 받고 난 오랜만에 사람 만나는 외출을 감행했다.
목적지는 서울 동호로의 매우 유명한 한국의 대표 호텔.
딱히 호텔에 묵으로 온 건 아니고 여기 호텔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위함이다.
택시에서 내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 도착한 건물을 바라보자, 난 나도 모르게 저절로 감탄을 내뱉었다.
“으리으리하네.”
튜브로 음식 리뷰하는 사람들이 방문한 건 몇 번 봤지만, 역시 실물은 급이 다르다.
우뚝 솟아오른 빌딩에 야경의 거리와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조명은 늦은 시간에서 선명한 원색을 뽐내고 있으며.
동시에 방문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상치 않다.
다들 세련된 정장과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
몇몇 소수는 그렇지않은 이들도 있지만, 그들 모두 잡지에 실려도 문제없을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복장이다.
난 뭔가 부끄러운 마음에 치맛자락을 매만지며 내 복장을 바라봤다.
“크.....괜찮겠지?”
입구 컷 당하면 쪽팔린데.......
사실 호텔 식당이다 보니 드레스 코드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또 튜브에서 본 리뷰어도 평범한 옷으로 식사를 다녀온 걸 알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오니 쉽지 않다.
분위기, 공기의 질이 다른 느낌.
일단 내 복장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완전 여성복, 마녀 드레스.
전체적으로는 검은색 원피스에 팔꿈치까지 오는 소매가 넓고, 끝자락에 프릴이 조금 장식된 복장이다.
거기에 딱 중학생 소녀에게 어울릴 굽이 낮은 구두.
평소 모습에서 로브랑 모자만 안 쓴 상태지.
“철수야 미안하다.”
맨날 촌놈 티 낸다고 놀렸는데, 지금은 내가 딱 그 꼴이야....
차라리 철수처럼 자신감이라도 넘치면 몰라, 이렇게 어깨를 좁히고 있으니 더 촌티나는 거 같잖아.
당당하게
당당하게 가자.
내가 무슨 부끄러울 게 ─
“릴리 고객님 맞으십니까?”
“넵!!!”
뭐지?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물에 들어오니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내게 다가와 내 이름을 묻고 있다.
역시 최고급 호텔이라 얼굴만 보고 고객 신상 정보를 파악하는 신기술을.......가졌을 리가 없잖아?!!
난 빠르게 경계 태세에 돌입하고 직원을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대체 당신은 무슨 수로 제 이름을 아는 것입니까? 하는 눈빛.
직원 여성은 그런 내 반응에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왜 그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사람 편안한 미소를 선보이며 말했다.
“한예지 님께서 미리 언질을 주셨습니다. 백발의 소녀로 보이는 분께서 방문하시면 안내해 달라고.”
“아....”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이리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절도있는 동작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직원은 그렇게 날 사람들이 있는 곳과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처음에는 바로 엘리베이터로 가지 왜 이럴까 싶었는데, 도착한 곳에 또 다른 엘리베이터가 존재했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 엘리베이터가 있나 싶었는데, 그녀는 내 생각을 읽고는 매우 특별한 고객님들을 위해 마련한 엘리베이터라고 말했다.
좁은 공간에 모르는 이들과 같이 있기 곤란한 분들이 계시다고.
‘아니 그런 엘리베이터에 왜 날 안내하는 겨?’
저.....전 특별하지도, 남들이랑 붙어있어도 상관없는데요?
물론 직원은 이런 생각 따위는 일부러 읽지 않았는지 여전히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문은 즉시 열렸는데.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온다고 미리 준비한 것인지 이미 1층에 대기한 상태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 짧은 시간이 지나자 나와 안내하는 직원은 레스토랑에 도착.
거기서 안내하는 사람이 교체되고 이번에는 웨이터로 보이는 남성 직원이 날 안내해, 어느 방안으로 데려갔다.
“음? 일찍 왔네요? 아직 시간 좀 남았는데.”
서울의 밤이 한눈에 보이는 룸에서 날 반기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니.
그곳에는 내가 알던 사람이지만, 동시에 다른 모습이 여인이 와인을 홀짝이며 터치팬을 손가락에 끼운 채 테블릿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항상 입던 성녀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나올 거 짐작하고 있었지만.....
“님 그게 뭐임?”
“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음표를 띄우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저게 뭐여?
성녀님의 비밀스러운 사생활, 밤의 일탈, 이제는 성녀 관둡니다. 이런 거냐?
위로부터 요상한 알파벳이 그려진 야구모자에 비스듬히 한 쪽 방향으로 묶어 올린 은발.
빈티지 스타일에 껌 좀 씹을 거 같은 체크무늬 셔츠
다리 라인이 확 드러나는 찢어진 흰색 청바지.
마지막 화룡점정, 반쯤 내려 쓴 선글라스까지
그동안 보았던 모습과의 괴리감에 어질어질할 정도다.
여기 오는 동안의 긴장감을 한 방에 날려주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야, 인간적으로 성녀가 그런 모습 해도 되냐?”
“뭐래? 당신은 단벌 소녀에요? 맨날 그 옷인 거 같은데. 막 같은 옷 여러 벌 있는 그런 건 아니죠?”
“........마력으로 만든 거거든?”
“와.....더 심하네. 여러 벌이 아니라 무한이야? 이 언니가 옷 좀 사줘?”
“꺼져,”
내 대답에 피식 웃음을 지은 예지는 가볍게 손짓으로 날 안내했던 웨이터에게 음식을 가져오라 말한 뒤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보다 일찍 나오셨네?”
“이미 나와 있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닌데?”
“저야, 버릇 같은 거에요. 계약이나 중요한 사람 만나는 날에는 항상 미리 가서 준비한 걸 확인해야 안심이 되거든요. 하물며 오늘은 그 두 가지 모두 해당하니 진작에 나왔죠.”
“내가 중요한 사람이지는 모르겠고, 계약? 처음 듣는 소리인데?”
“무얼, 지금 우리 관계를 정립하자는 거지 다른 의미는 없으니 걱정하지 마요.”
예지는 방금전까지 만지고 있던 태블릿와 터치팬을 내게 건넸다.
“읽어보고 싸인해요. 이상한 사기는 안 쳤으니까. 안심하고”
“우리 어머니가 싸인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하던데?”
“제가 어머니 대신 용돈 드리고 있으니 함부로는 아니지 않을까요?”
이게 씨게 나오는구만.
태블릿에 적히 내용은 단순했다.
일종의 고용 계약서와 비슷한데 단지 조금 의문인 건 계약의 제안자, 고용주에 해당하는 명칭.
뭔가 예상하던 것과는 다른 이름의 난 의문을 가지고 예지에게 물었다.
“발할라? 세라핌이 아니라?”
“전사들의 낙원을 의미하는 말이죠. 좀 흔한 단어이기는 한데, 본래 집단의 명칭은 단순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게 좋은 거니까.”
“아니 내가 묻는 건 그게 아니잖아?”
예지는 성녀다.
비록 판타지아 내에서 일이기는 해도 셀레스티얼 교단의 성녀라는 위치에 있으며 그로 인해 세라핌이라는 한국 유력 길드의 수장을 담당하고 있는 자.
그런 그녀가 왜 이런 짓을
“너 이거 무슨 의미야?”
대체 발할라가 의미하는 게 뭐냐는 내 물음.
예지는 잠시 웨이터가 가져온 와인을 홀짝이고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 부모는 이야기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아니마도 사정이 말이 아닐 텐데.”
“뭐?”
“무너지고 있는 건 연합만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