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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20화 (20/116)

〈 20화 〉 뒤끝 가득히 찾아온 평화 (3)

* * *

우드득 우드득 이를 가는 나, 강시혁.

허탈한 듯 연신 한숨을 내쉬는 한예지.

이런 큰 원형 테이블 처음 본다며 촌티를 팍팍 내는 김철수.

터질 듯한 정장이 너무나 부담스러운 우리 아버지, 강찬석.

그런 아버지를 옆을 지키는 우리 어머니, 윤영희.

테이블 아래로 서로 손을 잡고 쌍으로 지랄을 시전 중인, 김성환과 성유리.

데리고 나온 연희와 함께 여기 나온 이들의 면전을 보고 굳어버린 김민준까지

바로 한국을 전선을 책임지는 연합의 중추들

물론 여기에 몇 분 더 추가해야 하기는 하지만 일단 오늘 모이기로 한 사람들은 모두 모인 것 같다.

그리고 모인 이유야 당연히

“모두 아시겠지만, 3일 전 제주도 게이트가 사라졌습니다. 같은 날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모든 게이트가 사라졌구요.”

예지의 말에 날 제외한 모두는 침음을 삼켰다.

나?

나야 해탈 중이지.

그렇게 벼르고 있었는데 용제가 설마 진짜 제대로 튀어버릴 줄이야.

난 앞으로 그놈을 용제라고 부르지 아니할 것이야.

용 천민, 그래, 용민이라고 부를 것이야!

용민, 용민이......어라? 생각보다 입에 쫙쫙 달라붙는데? 그래 넌 오늘부터 김용민─

“어이 거기, 집중하세요.”

“넵”

예지는 딱 봐도 ‘나 딴 생각 중이요’ 인 내게 가늘게 뜬 눈빛으로 주의를 준 후 본인도 머리 아프다는 듯 머리를 박박 긁으며 회의를 시작했다.

“씁, 아시다시피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외국이 더 심하겠지만, 또 저희 문제도 있구요.”

“문제? 우리 잘 이기고 있었잖아?”

적발적안의 남성, 김철수가 되물었다.

하긴 우리가 이기고 있기는 했지.

용민이는 TT를 시전 했고, 그 외의 나머지 전투도 승승장구 중이었으니까.

거기에 나랑 민준이 연희가 이끄는 북부가 드디어 혼돈을 정리하기까지 했으니 오죽할까.

이제 남은 건 용민이 모가지 떨어뜨리는 일만 남겨둔 파이널 스테이지였다.

공략법까지 모두 마련된

하지만, 그렇게 너무 급하게 달려왔기 때문일까. 우리는 다른 나라가 걱정하지 않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야, 넌 우리가, 연합이 뭔 거 같냐?”

“연합이 뭐냐니...... 용제 쓰러트리고 사람들 구하려고 뭉친 사람들이잖아.”

“그래, 그렇지. 근데 용제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데?”

예지의 말에 철수는 순간 벙찐 얼굴이 되었다.

당연히 연합을 지탱하는 2번째 기둥인 아니마의 수장인 우리 부모님도 근심 가득한 표정이 되었고.

난 테이블에 턱을 괴고 괜스레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말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린 의병이지. 좀 더 유세를 떨면 십자군? 나라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무슨 의무를 지닌 건 더더욱 아니니까.”

의병이든 십자군이든 모두 철저히 희생정신을 기반으로 탄생한 무력 집단이다.

나라에 닥친 위기를 타파하자.

무력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자.

위 두 가지 뜻을 기반으로 용제라는 희대의 초재앙에 맞서 일어선 사람들.

그것이 연합이고 우리의 본질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의무를 지닌 게 아니다.

군인이 아니며 더욱이 국가의 소속조차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오래 버틴 거지.”

슬쩍 손장난을 치는 탁상에서 시선을 들어 모두를 바라보자, 무거운 신음을 삼키며 진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나,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예지와 우리 부모님은 더더욱 심각하네.

연합의 뜻은 고결하다 할 수 있지만, 고결함 만으로 집단이 굴러가는 건 아니지.

대가, 보수, 규칙, 체계

그 무엇도 확실히 잡힌 게 없는 주먹구구식 집단이 이만큼 선전한 건 사실상 엄청난 기적.

당연히 이 수순이면 연합이 해체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당장 그러기에는 용제의 위험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용제가 다시 돌아오면? 그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일시적 후퇴에 지나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렇게만 생각하면 전선을 물릴 수 없어.”

“하지만 사실이잖아.”

“희생과 봉사를 당연시해서는 안 되는 것 또한 사실이지.”

역시

상당히 의견이 분분하다.

하물며 양측 모두 일리가 있으니 더더욱 좁혀질 기미가 없다.

이게 타국에 비해 안전하면서도 우리가 봉착한 문제.

다른 나라야 전시라는 이유를 들었거나 아니면 최소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상황이기에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할 이유가 없지.

물론 덕분에 희생이 줄었는 건 감사할 일이지만 덕분에 나라를 지탱하는 전선과 정부가 동떨어진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사태가 발생했다.

듣기로는 미국은 여전히 전선을 유지 중이라고 하는데.

중국, 인도, 일본, 유럽도 모두 매한가지고.

세세한 방식은 달라도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플레이어들에게 약속하며 돌아올지 모르는 위기를 경계하는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용제를 위해 뭉쳤기에 용제가 사라지니 있을 뭉칠 이유 또한 한 번에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너무 앞서갔어.”

“앞서가지 않을 수는 없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나라의 협조를 구하면 되지 않을까요?”

민준이 가장 이상적인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에 대한 예지의 답변은 허탈한 한숨이 나오기 충분했다.

“꿈 깨. 이제 겨우 기능을 복구했는데 무슨.”

“기능 복구했으면 끝 아니에요? 당연한 일이잖아요?”

국가를 지킨 국민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명예와 보상을

그리고 이후의 미래와 안전을 대비하기 위해 협조를 구하는 건 확실히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풀렸으면 우리가 헬조선이라고 불릴 일도 없었다.

“그 승냥이들에게 뭘 바라니.”

예지는 표정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전에 국회가 복구되고 연합의 대표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정부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줄곧 저 상태다.

대체 뭘 보고 나왔는지 묻기조차 두려워진다.

가라앉은 얼굴로 앞머리를 긁적이던 예지는 잠깐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모두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갈아엎으면 안 될까?”

“너무 갔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역시 모두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책임의 무게겠지.

그럴싸한 이유야 물론 있다.

정치는 뭐 아무나 하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들이 나라를 이끌어 갔던 이들 아니냐.

못난 모습 보여도 은근히 외교는 좀 한다는 말이 있더라

등등

대안이 없다.

어쩔 수 없다 라는 이야기.

하지만 그 뿌리에는 이미 많을 짐은 진 등에 더 무게를 늘리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실상 정치란 누가 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

공명정대한 이상적인 정치란 말 그대로 이상일 뿐.

내가 하면 저것보다는 났겠다라 다들 한번씩 이야기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건 조금만 생각이 있다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렇기에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초심을 잃고 변심하는 걸지도 모르지.

예지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 회의의 결말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모두 할 수 있는 만큼만 합시다.”

“그래야겠지?”

“쩝........”

아버지의 ‘할 수 있는 만큼’라는 말.

이것이 의미하는 건 현상 유지.

결국, 이렇게 모인 우리들 역시 그저 어쩌다보니 사람들을 대표했을 뿐이지, 연합의 개개인을 구속할 자격은 없다.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다독이며 전선을 유지하되, 그럼에도 나가는 이들은 잡지 않고 보내준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다.

아마 모래성처럼 무너지겠지.

이탈자가 속출할 것이다.

허나 어차피 급하게 쌓은 모래성.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저 용제를 타파라는 마침표를 찍지 못해 아쉬고 또 불안한 것이지

급조된 집단의 결말이란 으레 무너지든지 아니면 타락하여 떨어지던지 둘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 법이다.

우리는 차마 떨어질 수는 없었기에 무너지는 길을 선택했다.

적들이 일시적으로 물러난 것이라면 부디 우리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다시 와주길 바랄 수 밖에.

적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

이 사실이 난 제법 묘하게 다가왔다.

* * *

“그렇게 걱정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터벅터벅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거리를 걷는 난 주변을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벌써 며칠이 지났더라?

날짜를 세는 것도 귀찮네.

아무튼 용제는 오지 않았고,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평화가 찾아왔다.

뒤끝 가득한 평화가.

아직도 여기저기서는 ‘종말이 돌아올 것이다.’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이 많지만,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다

사이비 종말론자를 입으로 설득할 자신도 없으며 또 설득할 재료도 마땅치 않으니까.

놈들이 쟤 발로 물러난 건 사실이니.

돌아오려면 돌아올 수도 있겠지

“오히려 바빠서 무시하는 걸 수도 있으려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빠르게.

당장 이 거리를 보라.

내가 매일 나와 산책하는 거리지만, 동시에 바라보는 풍경이 매일 달라지고 있으니.

잔해로 가득했던 거리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고.

무너졌던 건물은 새롭게 지어지며, 겨우 한두 명 보였던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도 지금은 고개를 들며 5명이 기본.

날 수 없는 사람들이나 무인들은 건물 지붕을 횡단하며 다니고 있다.

더 높은 하늘 위에는 오토바이가 날아다니네.

이터널 쪽 플레이어겠지.

“쬐끄만 하네.”

사실 멋있는 건 아는데, 전선에서 매일 건X이나 함선 같은 미친놈들만 보다 보니 눈높이가 이상해졌다.

무장 있기는 하겠지?

우린 이터널 유저는 1당 100 아니면 사람 취급 안 했는데, 저 오토바이가 1 대 100을 할 수 있을 걸로는 좀 보이지 않는다.

그 밖에 거리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판타지아, 무검산, 이터널 모두 각자의 고유한 힘 마력, 내공, 에테르가 있는데 슬쩍 느껴지는 기운을 살피면 사실상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평균 레벨이 높은 국가라고 하던데........구라 아냐?

아니면 내 기준이 이상한가?

하기사 매일 보던 사람 죄다 랭커였으니 그럴 만도 하네.

잡념과 함께 산책 코스를 마치고 적당한 편의점을 찾은 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음료수 하나를 집은 후 자리에 앉았다.

“어디 어디, 오늘은 별일 없나?”

감개무량이다.

설마 튜브 서핑만 즐기던 내가 이렇게 손수 아침 뉴스를 확인하는 날이 올 줄이야.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라고 물으면 어쩌기 어쩌다야.

용제......가 아니라 용민이 때문에 언제 다시 나갈지 몰라 매일 확인하던 게 버릇이 된 거지.

사실 이제 확인할 필요도 없다.

제주 전선은 철수한 지 오래.

마지막까지 남아준 고마운 이들이 있었지만, 결국 정부가 제주도를 특급 위험 지역으로 선정하면서 통제에 들어가자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몇몇은 불안하다며 남겠다 주장했는데, 특히나 제주도에서 지인을 잃은 랭커들이 심했었지.

그들은 아직도 가족의, 지인의 죽음을 되세기고 있었다.

예지는 그런 그들을 직접 찾아가 한 명 한 명 설득했다.

그 마음 너무도 고맙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당신들은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큰 희생을 치러주었다.

떠나간 이들을 위해서라도 남은 시간은 그들을 추모하며 슬픔을 이겨내자고 했었지.

“정말 성녀일지도?”

나도 은근히 릴리의 영향을 받은 게 느껴지는데 예지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날만큼은 정말로 난 예지가 성녀님으로 보였으니까.

과거를 떠올리며 회상에 젖어있던 난 문뜩 편의점 밖의 한 상가를 바라봤다.

“공사중.....식당인가?”

아직 리모델링 중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새로 들어가는 거대한 냉장고에 올라가는 가게 간판까지.

용사식당?

네이밍 센스 지리네, 드래곤 고기 가진 거 좀 있는데 가져다 팔면 되나?

식당 사장님으로 보이는 남자인지 여자인 잘 구별이 안 가는 사람이었다.

실눈에 옷을 펑버짐하게 입어서 그런가?

옆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여자인 걸 보면 여자 같기는 한데.......아무리 그래도 바스트 사이즈가 앗! 이건 자폭이구나.........

“일상이네.”

일상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으며

또 미증유의 위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도.

일상은 일상이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비록 뒤끝이 많이 남기는 했지만, 평화로운 일상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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