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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19화 (19/116)

〈 19화 〉 뒤끝 가득히 찾아온 평화 (2)

* * *

“크으으......”

용제 카시야스는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에 다시금 가슴을 부여잡았다.

마치 질병처럼 자신을 좀 먹는 저주

당장 본인이 겪고 있은 일이지만 믿어지지 않는다.

“내게 저주라니.......우드득!!”

용은 마법의 종주다.

드래곤 하트라 불리는 심장은 무한히 마력을 생산하는 동력원이고, 그로 인해 몸에 가득한 마력은 높은 항마력을 만드니.

저주는 물론 어지간한 마법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것이 정상.

하물며 그는 용의 정점인데.....

‘대체 그만한 신기를 어디서 구한 거지?’

사실 그 마녀가 사용한 저주 술식 자체는 별거 없었다.

테라에서 보지 못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저 좀 독특했을 뿐. 고위 마법도 아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된 건 사용한 술자와 매개가 되는 무기, 칠흑의 낫.

마치 죽음의 기운 자체를 물질화해서 벼른 듯한 낫은 용의 항마력을 비웃듯 모조리 무시하고 술자의 저주를 몸에 박아넣었다.

테라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물건.

“그것뿐만이 아니었지.”

마녀가 둘렀던 로브도

자신의 군세를 가로막은 거대한 비행 병기도

용왕들을 베어 가른 붉은 전사와 순백의 천사가 든 검과 창, 그리고 오크가 든 도끼도 모두!

소녀가 들고 있던, 아니 무기 자체의 성능으로 따지면 오히려 더 윗줄의 무구들이었다.

이제 마력을 다루기 시작했는 가이아에 테라에서도 기적이 닿아야 탄생한다는 신구가 그렇게 많이 존재하다니.

그중 몇몇은 [용창 ­ 드라고니아]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이니, 아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가?

반드시 그들 모두를 물어 죽여 그들의 시체와 더불어 함께 이 왕홀에 전시하리라 다짐하고 있을 때.

마력의 패스가 연결되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용제, 어떻게? 요양은 잘 하고 게신가?]

남성의 목소리인지 여성의 목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는 마성.

아마, 각자 자신의 이성의 것으로 들릴 테지.

목소리의 주인의 본질은 그런 년이니.

본래라면 용이라 하더라도 남성이라는 성별이 있는 그에게 마찬가지로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야 정상이지만.

쯧, 거슬리고 짜증 나는 소음일 뿐.

애초에 마력 패스로 연결된 소리,

어느 정도 항마력을 갖춘 이들 모두에게 그럴 테지.

“뭐냐?”

카시야스의 답변에는 경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동등한 조건에서 계약을 맺었긴 했지만, 그래 봐야 전부 버러지.

원래 기분과 별개로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하다.

본래라면 이렇게 패스 따위를 연결하는 행위 자체로 찢어 죽여 마땅하지만, 일단 동맹이니 어쩔 수 없이 답해주는 것이다.

그녀도 그런 그의 기분을 알았는지 최대한 목소리에 담긴 매혹의 권능을 억누르며 즉시 간결하게 목적을 전했다.

[불멸의 군주가 당했다.]

“────!!”

반쯤 무시하고 있던 카시야스도 듣는 순간 눈을 크게 뜰 정도로 놀란 정보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물론 죽은 건 아니야. 불멸의 군주잖아? 우리조차도 처치는 가능해도 죽일 수 없는 존재를 가이아의 새싹들이 죽였을 리는 없지.]

“그럼?”

[뭐긴 뭐겠어? 봉인이지. 너의 회복을 돕기 위해 수천 갈래로 쪼개진 대가로 하찮은 수정구에 봉인되었단 말이야.]

나긋나긋하게 들리나 동시에 말에는 뼈가 담겨져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비꼬는 것이다.

다 너 때문이라고.

용제 너 때문에 당한 것이라고.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

“네년이 와서 시간을 끌어라. 뭐가 문제지?”

마치 뭐가 문제냐는 듯한 답변.

비꼼도, 원망도 카시야스의 오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타인의 마음 따위 그의 안중에 없는데 어떻게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당장 카시야스가 놀란 건, 혹여라도 부상 중인 상황에서 자신을 몰아붙인 가이아의 마녀가 문을 넘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지, 불멸의 군주에 대한 미안함이나 걱정 따위가 아니다.

[.........]

“뭐지?”

정말 한 줌의 다른 뜻도 없이, 왜 그게 문제냐는 듯한 카시야스의 대답에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알고 있었지만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름 동등한 계약이라며 자기 입으로 지껄여 놓고서 이런 행태라니.

테라에서 용은 힘의 상징이며 동시에 하나의 죄악을 상징하니 그것은 바로 오만.

과연 그는 오만의 군주였다.

오만하고 또 불손하다.

그래서 였을까.

[내가 왜?]

돌려주는 그녀의 대답은 결코 곱지 못했다.

일부러 그와 똑같은 어조로 답을 돌려주니, 카시야스의 인중에 주름이 잡히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네년, 미쳤나?』”

폭발하듯 요동치는 마력과 함께 용안, 용익, 용의 뿔과 꼬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발동되는 용언(??)

마력 패스로부터 카시야스의 의지가 전해진다.

꿇어 복종하라는 그의 의지가

평소라면 그렇데 답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고 해도 여기서 적당히 물러났을 것이다.

그게 현명한 대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쩌라고? 오만의 군주, 나 역시 그대와 같은 죄악의 업을 짊어진 군주의 좌의 앉은 자. 언제까지 내가 그대의 장단에 놀아줄 거라 본 거지?』

마찬가리로 마기가 담긴 그녀의 목소리가 용언을 맞받아치니.

떨어진 둘의 사이를 연결하고 있던 패스가 불타오르며 서로가 선 공간이 크게 진동한다.

“..........”

[왜? 벌레가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걸 처음 배웠나? 그럼 오늘 잘 배워둬.]

이젠 대놓고 신경질적인 어투를 사용하는 그녀의 모습에 카시야스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제까지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는 그의 기준에서도 현명한 축에 드는 존재.

지금까지 자신에게 거역하고 살아남은 이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 대체 왜.

설마 군주의 좌에 앉았다고, 동맹이라는 사실을 믿고 저러는 건가?

그딴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는 계약을 믿고?

하지만, 상대는 오히려 그런 계약 따위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역으로 먼저 계약 파기 및 수정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계약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래서?”

[계약을 체결한 12군주 절반의 동의가 있을 경우 계약의 파기 및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 그 내용을 이행하려고 한다.]

“감히 누구 마음대로─”

[누구 마음대로 긴? 방금 말했잖아? 12군주의 절반이라고. 네놈 때문에 사라진 불멸을 제외하고, 또 이번 전쟁에서 죽은 침묵의 군주를 뺀, 남은 10군주 중 7인이 동의했다.]

벙찐 표정을 한 카시야스를 향해 그녀는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우리는 동맹을 유지한 채 문을 닫고 테라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 다음 침공은 테라와 가이아의 융화가 진행된 후.]

“어리석은!! 융화가 우리에게만 이로울 거라 생각하나?!! 가이아의 녀석들은 이제 막 발아한 상태다! 놈들은 더 강해진단 말이다!! 거기에 테라의 버러지들과 힘을 합치면 우리가 별의 심장을 얻을 확률은 더더욱 낮아질 것이 자명한데!”

[말은 똑바로 해야겠지. 우리가 아니라 ‘너’ 겠지? 안 그래?]

“무슨 차이가 있지? 가장 강한 군주인 내가 심장을 얻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계약서를 그대가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

분명 침공에서 서로 불가침의 조건 하에 각자의 기량으로 심장을 찾아 손에 넣는 것일 텐데.

그의 머릿속에는 대체 그 문장이 어떻게 받아들여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이제 대화조차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젓으며 마지막 통보를 날렸다.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면 계약을 파기하고 나가. 어차피 널 제외한 우리 모두 이번 침공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으니까.]

“앞을 읽지도 못하는 건가?”

[아니지, 앞을 읽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현재의 상황도. 테라의 주민과 가아아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내기할래? 정말 그렇게 되는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는 너보다 내가 훨씬 잘 알아.]

같은 종족임에도 서로 문화가, 나라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칼을 겨누는 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이제는 종족마저 달라지고,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주민들을 마주할 터인데 동맹을 맺는다니.

그녀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괴변.

오히려 그녀는 처음부터 이번 침공이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억지로 문을 연 것부터 힘을 소비했는데 거기에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이렇게 적이 일심동체로 뭉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는가?

물론 카시야스의 주장대로 테라의 주민들보다 선취점을 취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여 별의 심장을 먼저 탈취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최강이라는 용제는 지금 병상에

불멸의 군주는 반토막

침묵의 군주는 아예 사망.

뭔가 이게?

찾고자 하는 별의 심장은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이 꼴이다.

만약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다 테라의 주민들이 넘어오면 어떡하라고.

약해질 때로 약해지고 군대를 소모한 자신들만 피를 보고 테라의 주민들이 어부지리를 취하겠지.

[우리는 결정을 내렸다.]

“네년도 우리라는 말을 가당치도 않게 쓰는구나. 그 간사한 혀에 놀아난 것일 테지.”

[그 간사한 혀에 지금 너도 놀아날 처지지. 안 그런가?]

“.........내가 계약을 파기하고 널 죽이러 갈 수도 있다. 모르는가?”

하!

말빨이 딸리니 이제는 협박이라......

귀엽네.

그녀는 콧방귀를 끼며 그를 향해 조소를 내뱉었다.

[그러든가. 대신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너 따위가 내게 대가를 치르게 해?”

[뭐, 지금 그대의 몸에 새겨진 저주와 같은 비수를 박을 수는 없겠지. 대신.]

할짝.

혀로 입술을 핥는 듯한 야릇한 소리와 함께 그녀는 가리켰다.

[그대가 선 왕홀 정도라면 파괴할 수 있을 거 같은데......어때? 나쁘지 않지?]

“네년!!!”

─쾅!!

카시야스는 팔받이에 주먹을 내려치며 옆에 떠 있던 드라고니아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앞에도 없는 이에게는 그저 딴 세상 이야기일 뿐.

그녀는 더욱더 도발적인 목소리로 카시야스를 향해 말했다.

[그대라면 왕홀의 보조 없이도 한 10년? 아니 안정을 취하면 5년 안에 저주를 말끔히 밀어내겠지. 뭐, 겨우 5년이네. 무한한 용의 수명에 비하면 하찮은 시간, 감수하고 날 죽이러 오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야.]

이 역시나 비꼬는 이야기다.

확실히 용의 무한한 수명에 비하면 5년 정도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5년.

곳 일어날 테라와 가이아의 융화가 모두 완료되고도 어느 정도 지난 시기일 터.

필시 그 기간 내에 별의 심장은 나타날 것이고.

심장를 둘러싼 싸움이 일어날 터.

가뜩이나 저주를 짊어진 몸에 그녀와의 전투가 더해지고 거기에 더 격렬할지도 모르는 전장......

“크으윽”

정말 별의 심장을 얻고 싶으면 물러나라는 의미다.

[그럼 우리는 먼저 돌아가지. 넌 오고 싶을 때 돌아와. 뭐, 혼자 남아 분전해서 그 저주를 새긴 녀석과 공멸해주면 더더욱 고맙고.]

그렇게 분통을 삼키는 카시야스의 반응을 보며 그녀는 소리없는 비웃음을 전하며, 마지막 전언을 끝으로 패스를 끊어버렸다.

* * *

카시야스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은 묘령의 여인은 나선으로 휘어진 두 자루의 창을 옆에 세우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쩌면 오늘 일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용제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아닌가.

훗날 그가 모든 힘을 회복하면 자신의 목부터 노리고 오겠지.

하지만.

“용제, 기억해. 독보적인 강자는 독보적일 때만 의미가 있는 거야.”

지금까지는 대적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숙이고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모두가 배신했다.

내가 간사한 혀로 농락해?

웃기는 소리, 네놈이 그렇게 된 순간 이미 결정 난 일이었어.

난 그저 시기를 조금 조정했을 뿐.

“후훗, 가이아의 마녀 씨. 걱정마, 내가 네 비원을 들어줄 게.”

허공의 뜬 수정구 속에 비치는 백발의 소녀를 바라보며 그녀는 나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용제에 대한 살의를 불태워줘.

내가 너라는 비수를 용제의 앞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그리고 그를 심장을 뚫고

“함께 부러져줘.”

드라고니아를 든 전심전력의 용제와 가이아가 만든 최강의 마녀의 결투.

몇 가지 조정만 거치면 필시 동귀어진에 가까운 결과로 유도할 수 있겠지.

지금은 마녀 쪽에 승기가 기울어져 있는 만큼 아직 용제가 싸워서는 곤란하기에 무리해서라도 용제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용제의 회복과 마녀의 전력을 손 본다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그림이 완성된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테라.......”

그들은 분명 최고의 붓이 되어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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