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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13화 (13/116)

〈 13화 〉 3주간의 역사 (3)

* * *

화면 너머로 보이는 모습이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한국의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화면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한 나라 원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그지만, 과연 이 정도의 압박은 격이 다르다는 걸까.

마른침이 삼켜지고 덥지도 않은데 등에서는 땀이 흐르는 기분이다.

이런 순간일수록 멋들어지고 자신감 있게 답해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런 것도 준비된 자에게 한정된 이야기일 뿐.

슬프게도 저들이 원하는 사람을 불러줄 수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다.

상징과도 같은 최정상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은 반작용이었는지, 정부의 군대가 본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걸 파악하자마자, 그들은 정부에 대한 관심을 돌리고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자 나섰으니까.

그야말로 국민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는 행위.

하지만, 덕분에 한 나라의 원수인 그가 아는 정보라고는 최전선의 지휘관이 방금 크리스의 입에 올라간 이클립스, 한예지라는 것을 제외하고 전무하게 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고 한국의 대통령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그들은 현재 이 자리에 없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숨길 이유가 없는 걸로 아는데, 한국의 대통령께서는 상당히 비협조적─”

자연스럽게 일그러지는 얼굴들과 함께 여기저기 불만이 쇄도했지만, 아멜리아는 손을 들어 올리며 이들을 제지.

마치 허공의 누군가를 향해 말하 듯 입을 열었다.

“옆에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네?”

“제 방주도 할 수 있는 걸 모선이 못 할 리가 없으니까요. 샨사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듣고 있을 거 아니야? 빨리 들어와, 너희랑 다르게 우린 정말 1분 1초가 급박한 사정에서 겨우 자리를 마련한 거거든?”

반드시 듣고 있을 거란 확신이 담긴 아멜리아의 발언.

만약 아멜리아의 예상이 빗나가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녀에게는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아멜리아의 얼굴에는 오직 확신만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흘러가고

다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모습에 조용히 한숨을 쉬려는 순간 비어있던 화면 하나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찌지직!

전기 소리를 내는 화면에는 이내 한 줄의 문장이 나타나니

[졸라 바쁨. 짧게 끝내 셈]

세계 정상회의를 아무렇지 않게 해킹한 광경에 모든 이들은 감탄하고, 아멜리아는 속으로 괘제를 외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 한 줄의 문장이 뜻하는 바는 바로 하나.

이터널의 1위 샨사스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글자뿐이지만

* * *

“아나, 1분 1초가 아까운 사람이 누군데.......”

몽환적이 분위기의 샹들리에가 장식된 방의 한 가운데.

황금의 옥좌에 앉은 펑퍼짐한 드레스 차림의 금발 소녀는 짜증 난다는 듯이 얼굴을 구겼다.

허공에 뜬 화면 너머로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당장이라도 아멜리아에게 따지고 싶은 그녀였지만, 이쪽이 저쪽 사정에 관심 없듯, 저쪽도 이쪽의 사정에 관심 없으니 저러는 거겠지.

“진짜, 하필이면 이 시간에.....누군 정상회의 무시하고 싶어서 무시한 줄 아나.”

자국을 지키기 위해 뭉친 한국 길드 연합의 수장, 이클립스, 한예지도

한량이나 다름없는 카이엔, 김철수도

아니마의 오크 로드 아저씨, 강찬석도 모두 참여하려고 했다.

세계의 명운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르는 회의를 무시할 정도로 깡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못 들어갔으면 그런 줄 알아야지.

다 이유가 있거늘

“졸라 바쁘단 말이야...”

옥좌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도 못하고 떠오르는 십수 개의 화면을 쉴 틈없이 조작하는 샨사스, 성유리의 목소리에는 작은 노기마저 섞여 있었다.

현재 유리가 위치한 곳은 그녀의 진신 무장.

전천후 침략 요새 모선(??) ­ 에테르나의 지휘실.

뭐, 그녀가 있으니 지휘실 겸 동력부이기도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문제는 밖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안은 조용한 듯 보이나 밖에서는 현재 실시간으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용의 대군에 맞서 수백 명의 사람이 분전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 모습은 한 편의 영화처럼 보인다.

수십 척의 미래형 전투기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오르는 용들에게 빛의 포격을 가하고

어떤 비행체는 전투기에서 마치 사람의 형상을 닮은 로봇으로 외형을 변경.

에너지 소드를 꺼내 용을 양단하고 다시 전투기로 돌아온 후 날아간다.

허나, 이는 약과에 지나지 않으니 그 아래에서는 그야말로 천외천의 전장이 펼쳐지고 있다.

적발에 조선 시대 용린갑을 두른 청년은 거대한 대태도로 흑색의 고룡을 양단하고

붉은 뇌전을 동반하는 배틀 엑스를 내려치는 오크는 용의 무리를 부수며

성창을 세우며 아리아의 노래를 부르는 순백의 성녀는 사람들에게 가호를 내리면서 동시에 본인도 수백의 용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한국의 존재하는 3대 게임의 300위권 랭커의 7할이 참여 중인 전장.

세계급 병력이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도로 지금의 광경은 웅장하지만, 그건 제 3자의 관점일 뿐.

전장에 선 당사자에게는 실시간으로 바싹바싹 피가 타들어 가는 기분이다.

[베리어 38% 손상]

[함장, 후퇴를 권고합니다.]

“내가 후퇴하면 쟤들 다 죽으라고? 사랑하는 모선아, 내가 널 너무 곱게 키운 거 같아.”

지상에서 미친 듯이 고룡들을 유린하는 전장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들이 저렇게 싸울 수 있는 배경에는 유리의 모선이, 그리고 이터널의 랭커들이 이끄는 함선과 전투기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강대한 플레이어라도 수의 폭력은 쉽게 이겨낼 수 없는 법.

잔챙이 같은 놈이야 얼마든지 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곳은 입구 컷이 300위 권 랭커라는 경악스러운 장소다.

가장 약한 놈조차 일단은 드래곤인 전장.

새끼 해츨링도 없어.

기본이 용, 다음이 고룡, 그 다음이 유색의 용, 그 다음이 유색의 고룡.......

곧 있으면 용왕도 뜨겠지.

용제는 나오지 마라.

우리 마이 무우따 아이가.

뭐, 사실 ‘그녀’와의 첫 전투의 피해 때문에 나오기도 힘들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VR에서조차 겪어보지 못한 광경을 현실에서 겪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돌아버릴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살려면 싸워야지.

─위이이이잉!!!!

[경고!]

[경고!]

[베리어 손상 속도 급상승]

[SSS급 개체의 출현을 확인]

“경고는 무슨, 모선아 엄살 부리지 말자. 내가 너 금지옥엽 애기 다루듯 아끼는 시절이 있기는 했는데, 이제는 좀 맞아가면서 클 시간이야.”

SSS급이라고 해봐야 겨우 유색 고룡일 뿐. 용왕도 아니다.

애초에 용왕이었으면 철수랑 예지, 찬석 아저씨가 놓칠 리가 없지.

유리는 화면의 패널을 조작해 붉은 용을 향해 조준을 완료.

화력을 집중시키자 수십 갈래의 빛줄기가 하늘을 배회하는 적룡을 향해 날아가고 이내 존재 자체를 말끔히 지워버린다.

그래도 과연 적룡이라는 이름값은 있는지, 브레스 한 방에 베리어의 손실률이 1.5%나 된다.

1.5% 밖에 안 되는데 무슨 엄살이냐고?

절래절래

다른 것도 아니고 모선 체력을 한 방에 1.5%나 떨군 것이다.

비록 죽었지만, 저 적룡은 유색 고룡의 힘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후~~~ 아, 당 떨어지는 거 같아”

쓸데없는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유리는 다시금 열심히 하늘을 배회하는 용들에게 포신들을 겨누고 푸른 빛의 세례를 선사했다.

이런 전장이다.

이런 숨 막히는 전장이라고.

말할 힘도 없을 것 같은데, 왜 하필이면 지금 자신을 찾고 난리인데?!

[샨사스? 샨사스!!]

“아쫌~~!! 나 좀 봐주면 안 돼?!!”

가뜩이나 나 소심해서 부탁받으면 거절도 못 하는 성격이라 무시도 못 한다고~~~!!

이러는 사이에도 화면에서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샨사스를 부르니 미치고 팔짱 뛸 노릇이다.

* * *

[3분 줌. 졸라 빨리 묻고 끝내 셈]

“3....3분?!!”

“아니, 이게 무슨!!”

“한국 대통령 이게 지금 무슨 소리입니까?! 이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런 무례는 처음 들었습니다!!”

여기저기 쏟아지는 원성에 한국 대통령도 미칠 것 같지만, 지금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책임도 질 수 없기에.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나라를 지켜주는 국민들을 믿는 것뿐이니까.

짧게 떨어진 샨사스의 통보에 화면 너머로 눈치를 주고받은 장첸과 아멜리아,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나라 인간들 빨리빨리는 유명한 일이니.

제일 먼저 아멜리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회의 내용은 들었나요?”

[ㅇㅇ]

“그럼 한국 길드의 의견은 어떻게 되죠?”

[모름]

“네?”

[예지도 졸라 바빠서 나만 들었음. 나중에 묻고 말해줌.]

함축적인 내용이 좀 있지만 알아 듣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예지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샨사스가 의견을 물어야 하는 걸 보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대표에 가까운 사람이겠지.

필시, 진천, 이클립스, 카이엔, 3명 중 하나일 것이다

다음으로 크리스가 마이크를 잡으려 했지만, 아멜리아는 그런 그에게 양해를 구하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의견은?”

[나?]

“네, 이터널의 최강자인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요? 최소한 노아는 당신에게 주목하고 있으니까요.”

[ㅈㄹ ㄴㄴ]

인터넷 줄임말에 순간 정상들은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를 이해한 몇몇, 그리고 뒤에서 무슨 뜻인지 실시간으로 안 사람들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거부의 의사를 비치다니....

이후 샨사스는 처음으로 약간 긴 문장으로 답을 보내왔다.

[다 포기하고 뭉치자? 니들끼리 뭉치셈. 우리는 싸울거임.]

“이건 인류의 중대사─”

[우리도 인류임]

“““..........”””

그저 문자의 나열에 불과한데도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확실한 의견 피력이 느껴지는 문장.

아멜리아는 결국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후는 수순 대로 크리스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에는 현재 전 세계의 탑랭커의 3분지 1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원을 요청합니다.”

[내 범위 밖, 나중에 예지한테 물으셈.]

“저 역시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당신도 한국에서 정상 중 한명이니.”

[졸라 귀찮......지만, 내용이 중요하니, 남쪽 제주나 북부가 해결되면 가능, 아니면 불가.]

“해결이란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게이트를 닫을 방법이 지금 나오지─”

[대빵 뒤지면 닫힘. 그럼 해결. OK?]

한순간에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던 방안을 꺼내버리자, 모든 국가의 정상들은 벙찐 얼굴로 왜 저들이 그렇게 한국이란 나라를 찾았는지 깨달았다.

저 발언의 의미

이미 한국은 게이트를 닫은 전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최강급이라고 불리는 괴수의 목을 쳐내서.

모든 국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을 때, 한국은 이미 반격의 봉화를 쏘아 올리는 중이었다.

다음으로 마지막 장첸이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오히려 샨사스가 먼저 문자를 보내오니

단어 하나하나에 사무치는 분노가 담긴 듯한 문장이 도착했다.

[사흉 똥 우리가 치우고 있음. 니들은 뒤질 준비하셈. 너희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릴리가 용제 멱따고 끝낼 수 있었는데!!]

“뭐? 그게 무슨 소리─ 설마?”

장첸은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는지 곧바로 뒤로 돌아 방금 화면에서 사라졌던 중국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첸의 눈에 비치는 건 마치 무언가를 숨기는 듯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

그는 이마를 부여잡고 당장 해명을 하기 위해 다시 마이크를 잡았지만, 안타깝게도 약속한 3분이 지났다.

샨사스의 화면은 이미 검게 물들었고 찌직 거리는 소리만이 샨사스가 조금 전까지는 있었다는 잔향으로 남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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