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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8화 (8/116)

〈 8화 〉 커밍 아웃

* * *

추정 상 아마 내가 초마녀가 되면서 받은 것 같은 두 개의 신화급 무장

[생과 사의 단절자]

[태초의 마녀의 포옹]

이 두 가지 존재 덕분에 난 예지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오벨리스크라는 놈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라지만, 그리 어렵게 잡은 것도 아니기에 굳이 급하게 갈 필요는 없다는 확신에서 나온 선택.

내심 상의, 하의. 장신구 등등 머리부터 발끝까지라는 말에 흔들린 건 사실이지만, 신중하게 판단했을 때, 설령 마정석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도 내 오벨리스크의 마정석 가치가 떨어질 일은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거래를 해도 나중에 하는 것이 이득이겠지.

“히잉~~~”

예지는 아쉬움, 실망, 슬픔, 귀여움, 깜찍─ 아, 마지막 두 개는 빼자, 아무튼 여러 감성이 뒤섞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갔다.

마지막까지, 그럼 길드라도 들어올 생각 없느냐? 세례 별거 없다. 잘 해주겠다는 말을 얼굴을 들이밀며 하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뭐, 예지와의 시간은 분명 유익한 시간이었다.

여러 정보를 얻었고, 또 어떻게 보면 인맥을 만든 셈이니.

단지, 아직 어딘가에 소속되기에는 조심스러워 거절했지, 세라핌이라는 선택지는 확실하게 입력해 두었다.

떠나간 그녀를 뒤로하고 남은 사람은 나와 찬석.

찬석은 내게 잠깐의 시간을 부탁했다.

“아까 같은 제안이면 거절입니다만?”

“그런 이야기는 아닐세.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거니.”

할 말?

기껏해야 오늘 만난 사이에 따로 할 말이라니, 영 의심스럽긴 했지만, 아까 듣기로는 내가 없을 때 마정석이 내 소유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기도 해서 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시 같은 호텔의 어느 방.

찬석은 길드원들을 물리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들의 원수를 갚아줘서 고맙네.”

“에?”

“아가씨가 아니었으면 그 녀석을 잡는 건 먼 훗날이 되었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어도 수많은 희생을 짊어지고 쓰러트렸을 거야. 아가씨 덕분이다.”

아들의 원수?

그녀석? 이건 뭐 오벨리스크겠지.

하지만 원수라니 이게 대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자, 찬석은 차분히 자리에 앉고는 사건의 전말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이번 일이 터진 새벽 시간

강찬과 그의 아내 그리고 딸은 함께 VR게임 속에서 레이드를 뛰는 중이었다고 한다.

가족 전부가 함께 하는 모습이 화목하기는 하다만 왜 그런 늦은 시간에 하냐고 하니, 막상 사회 생활하는 길드원까지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이 그 시간대 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한창 레이드를 뛰는 도중, 이변이 발생.

모두가 게임에서 튕겨 나왔고, 변한 스스로의 모습과 가족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 그들 역시도 이런 일이 자신들의 가족들에게만 일어난 줄 알았기에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혹감과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나 밖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베란다로 나가니 게이트를 넘어 침공하는 몬스터들의 존재를 발견.

이후 이어지는 길드원들의 연락을 통해 자신들뿐만 아닌 모든 사람이 이 일을 겪었다는 사실이 깨달았다.

“운이 좋았지. 게임 속의 힘을 쓸 수 있다니. 행운이었어. 나랑 가족 모두 제법 하는 플레이어였으니까.”

그의 말로는 아내가 길드장, 딸아이가 자신과 같은 부 길드장이라고 한다.

원랜 길드장이 자신이었는데, 과거 사기를 하도 많이 당해서 아내가 자리를 넘겨받았다고.

딸아이 경우는 재능이 워낙 넘쳐서 조금 거들어 주는 것만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와 상위 랭커 말석을 차지해 아니마의 서브 마스터가 되었다고 한다.

“헤~~~ 가족 모두가 판타지아 하셨구나? 직장은요?”

“아가씨는 정말 VR게임에 관심이 없었구만. 판타지아 물가 아나?”

“물가?”

“그래, 비록 최상위 랭커들의 무장은 거래 불가여도 그 아래는 전부 거래 가능이지. 랭커 중에 따로 직업 가진 인간 별로 없을 거다. 워낙에 벌이가 좋아서.”

애초부터 전투를 제외하도 즐길 거리가 너무나 넘치는 게 VR월드다.

상단을 꾸리는 길드도 있고.

그저 돌아다니며 여행을 즐기는 사람

누군가는 취미 생활인 요리, 재봉, 낚시 등등

하지만 이런 이들도 몬스터는 위험하고 방해되는 존재이며 또한 길드간의 항쟁에서도 전투는 필수.

그렇기에 판타지아에서 전투계열 길드는 항상 많은 재화를 손에 쥔다.

본인도 원래 직업이 있고, 그냥 취미 삼아서 시작했다가 이쪽 벌이 덕분에 갈아탔다고 하며, 아내도 비슷한 루트, 딸아이는 공부에 하도 재능이 없어서 처음부터 이쪽으로 나갔다고 한다.

보니 튜브라는 곳에서 방송도 따로 하는데, 거기서 나오는 수입도 장난이 아니라고,

일가족 모두가 겜창인 것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기에 그저 ‘하하....’ 거리고 있는데, 그 순간 의문이 들었다.

“그럼 아들분도 한 가닥 하는 플레이어 아닌가요? 운이 나쁘셨나?”

“운이 나빴고, 또 플레이어도 아니었지.”

“에? 가족 전부가 하는데 왜?”

“자식 자랑이 아니라, 아들은 공부를 잘했거든.”

그 아들이란 분도 사실 VR게임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딸아이까지 이쪽 길로 접어든 와중에 차마 그 꼴은 볼 수 없었던 찬석과 아내는 아들이 VR에 빠지는 것을 결사반대하며 오만가지 수단을 동원.

재능이 없다고 동생을 시켜 기를 죽이는 건 물론

게임 자체에 손을 못 대게 하는 것까지.

일가족이 합심해서 아들만큼은 공부쪽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딸아이 시켜서 이것도 못하냐, 저것도 못하냐 하며 엄청 갈구니. 재 스스로가 재능 없다 생각하며 떨어져 나가더군. 사실 당연히 못 하는 걸 시켰거든. 오히려 마법사 계열 쪽으로는 아들놈도 워낙 재능이 넘쳐서 그쪽 길 피하게 하느라 소라가 진땀을 흘렸지.”

“소라?”

“아, 딸내미 이름이야. 강소라라고 하지.”

“........”

이야기는 계속된다.

하지만 아들을 못 하게 했으면서 정작 가족 전부가 VR로 먹고 산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니, 대학 입학과 함께 출가를 할 때까지 가족들은 철저하게 비밀 생활을 유지했야만 했다.

자신은 계속 직장을 다닌다고 하고, 아내도 여전히 회계사로 일한다 말하며 출근과 동시에 따로 사둔 거처에서 VR에 접속해 판타지아 생활을 하고, 딸도 학교가 끝나면 학원이 아닌 VR월드로 들어오는 생활을 시작했다.

오직 아들 하나만 진짜 학교, 학원을 돌며 공부에 매진 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잘하는 건가 할 수준이지만, 최소한 답도 없는 딸아이보다는 월등한 두뇌의 소유자였던 아들은 간단히 서울권 대학에 진학.

이후 잠깐 방황의 시간을 가지긴 했지만, 제법 괜찮은 학점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노량진으로 자취방을 옮겨 취업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들이 대학가면서 본격적으로 자유를 만끽한 세 사람은 판타지아에 정열을 쏟았고, 아니마를 랭킹 2위 길드까지 끌어올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찬석은 눈을 감으며 후회했다.

차라리 하고 싶어했던 VR을 시켜줬으면, 넌 사실 몸 쓰는 쪽보다는 마법 쪽에 재능이 있다 말해 주며 숨기지 말고 제대로 키워줬다면.

자신들과 떨어져 노량진으로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애초에 강한 플레이어였을테니 오벨리스크를 만나도 쉽게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깊은 슬픔에 젖은 얼굴로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묘한 느낌을 받은 난 그런 그의 눈물을 무시하며 말했다.

“.........저기요.”

“응? 왜 그러는가?”

“질문 몇 가지만 해도 될까요?”

“질문? 뭐........아가씨는 우리 아들 원수를 갚아준 은인일세. 뭔들 말 못 하겠나. 편히 이야기하게.”

떨떠름한 얼굴로 볼을 긁적이며 난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왜 아들이 죽었다 생각하세요. 그것도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오벨리스크 손에.”

“오벨리스크가 나온 게이트가 아들놈이 사는 자취방 바로 앞이였네. 나오자마자 그 건물부터 짓밟았다는 소식을 들었지.”

“자리를 피했을 수도 있잖아요? 운 좋게 다른 곳에 있다던가.”

“그 녀석 생활반경은 아네. 아쉽게도........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아.....뭐라고 해야할까.

난 목 아래에서 슬금슬금 기어오는 알 수 없는 짜증을 느끼며 목을 박박 긁고는, 바로 다음 질문을 했다.

“아내분은 지금?”

“.........노량진에 오자마자 실신했네. 소라는 바로 병원에 데려간다고 갔고. 난 길드원들을 책임져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켰지만.”

“........아내분 함자가?”

“왜 그걸 묻는지 모르겠군. 혹시 나랑 아는 사이인가? 일단, 윤영희라고 하네만.”

“..........”

이쯤되면 더 이상 부정하기도 그렇겠지?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기뻐서 방방 뛰어도 부족한 상황인데 왜 난 인벤토리에서 시퍼런 칼날이 번뜩이는 낫을 꺼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이번에 새로 얻어 포장지도 뜯지 않은 신품, 신화급 낫을.

“자네......지금.....”

갑자기 무기를 꺼내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란 찬석은 의자를 넘어트리며 뒤로 물러나 등에 메고 있는 도끼의 손잡이를 잡았다.

마치 약이라도 한사발 들이킨 사람처럼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과 낫을 잡는 순간 방출되는 진득하고 농밀한 마력에 식은 땀을 흘렸지만, 그는 그래도 아직 도끼를 뽑지 않았다.

살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감정

그래, 분노, 지금 눈앞의 소녀는 화가 나 있는 것이다.

물론 소녀 입장에서 화일 뿐, 당하는 입장에서는 온몸이 떨려와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지만.

일단 찬석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유를 물었다.

“대체 왜 그러는가......내가 무슨 잘못─”

“시X, 중학교 때 VR게임 한 번 몰래 했다고 뒤지도록 팬 인간이 사실을 그 게임으로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때 뭐라 했지? 이런 쓰잘대기 없는 거에 시간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한 거 같은데?”

“뭐?”

“그럼 소라 취업도 구라란 거 아냐? 내가 고년 취업 선물 사준다고 알바를 얼마나 뛰었는데.........거기다 엄마가 길드장에 나 못하게 하려고 소라 시켜서 갈궈?”

“지...지금 무슨 말을 하는─ ”

단 한 줌의 빛도 반사하지 않는 칠흑의 날에 붉은 보석과 금무늬가 수놓아진 배틀 사이드

[생과 사의 단절자]를 난 바닥에 내리꽂았다.

낫대 부분 아래에도 뾰족한 창처럼 된 터라 간단히 바닥에 꽂히며 세워졌고, 그 뒤 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은 뒤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했다.

“주님, 오늘 하루만 정의로운 후래자식이 되는 걸 용서해 주세요.”

“서....설마 시혁이니? 아니, 그래도 어떻게 여자가─ 훅!!”

찬석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퍼억

시야에서 사라지는 소녀의 모습과 동시에 복부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충격.

다행히 이성을 잃은 건 아닌지 살상력이 없는 낫의 대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레벨에 따라오는 근력은 무시할 수 없는 법.

목에서 역류하는 무언가에 헛구역질를 하는 찬석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자 했지만, 그때는 이미 머리 위로 날아드는 검은 막대가 도착하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아버지, 딱 1시간만 때릴게요.”

중학교 현장 체험학습 때 배웠던 난타를 꺼낼 날이 드디어 찾아왔다.

북 대신 아버지를 쳐야 하고 막대기가 배웠을 때보다 좀 길어지기는 했지만, 소리야 비슷하게 나겠지.

─퍼억!!

“꾸에에엑!!!”

거봐 비슷하네.

참고로 난 음악을 더럽게 못했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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