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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6화 (6/116)

〈 6화 〉 좀 쎈 듯?

* * *

“““...........”””

“..........”

싸늘한 적막의 바람이 분다.

보스 몬스터로 추정되는 거대한 본 드래곤과 함께 나타나 지금 현재 바닥에 자신의 얼굴로 판화를 새기고 있는 소녀를 본 모든 사람은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일단 평범한 소녀는 아니겠지.

상당한 높이에서 떨어져 안전하게 착지한 것도 아니고 저렇게 얼굴부터 땅에 박았는데, 만약 평범한 소녀였다면 지금쯤 납작해진 끔찍한 몰골이 되어 주변을 피바다로 물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저 소녀는 그저 죽은 듯이 바닥에 엎드려 있을 뿐, 몸에는 딱히 상처 하나 없어 보인다.

방금 전처럼 조금씩 몸을 움찔거리는 걸로 보아 의식을 잃은 것도 아닌 거 같고.

아마 부끄러워서 저러는 거겠지.

이해한다.

누가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친구나 부모님 앞에서 망신 한 번쯤 당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리라.

여기서 괜히 위로한답시고 다가가면 더 부끄럽겠지.

따뜻한 마음으로 가만히 있어 주자,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그렇게 다짐할 때. 드디어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우두두 떨어지는 흙먼지와 함께 가느다란 팔로 땅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는 어린 소녀.

“아........”

소녀는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한동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팔을 쭉 늘어트린 모습을 보니 절로 지금 소녀가 무슨 기분인지 알 것만 같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소녀는 무릎과 로브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서 마녀 모자를 꺼내 푹 눌러쓴 뒤 찬석과 예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제꺼에요. 빨리 주세요.”

예지와 찬석을 빠르게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 * *

고백할 게 있습니다.

사실 전 VR게임 별로 안 좋아해요.

슈퍼 아싸에서 일반 아싸까지는 가기 위해 주기적으로 접속해 플레이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거의 의무처럼 한 거에요.

이유가 뭐냐면 재능이 없거든요.

키보드나 마우스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게임도 컨트롤이 요구되기 시작하면 재능을 따지는데, 하물며 풀 다이브 VR게임은 오죽하겠나요.

여동생이 딱 1년만에 절 따라잡은 걸 봤을 때 얼마나 자괴감이 들던지, 정이 확 떨어지더라구요.

사람들은 전투는 못 해도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놀라운 풍경을 감상한다던지, 아니면 소소한 취미,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다지만, 전 그게 쉽지 않았어요.

아마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나 봐요.

나도 튜브 영상에 나오는 탑 플레이어처럼 게임 속의 괴수와 싸우고, 레이드를 뛰는 걸 상상했는데, 정작 그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하니 허탈했겠죠.

그래서 릴리가 되었을 때, 정확히는 오벨리스크라는 괴물과 싸운 후에 내심 엄청 기뻤어요.

거대한 낫을 마치 수족처럼 다루는 기교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과 발걸음

청각만으로도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

그리고 이 모든 걸 통제하고 다룰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강해졌다는 사실보다도 내게도 드디어 재능이 생겼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기뻤어요.

그래서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록 용용이가 사라졌지만, 고작해야 착지만 남은 상황

몸은 초거대 골렘에 밟혀도 상처 하나 없을 정도로 튼튼하니 아플 염려도 없고.

히어로 랜딩이라고 하나?

한쪽 무릎과 주먹을 바닥에 붙이며 멋지게 착지해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었는데.....

“빠....빨리주세요. 나 갈 거에요.”

““.......””

넓은 챙의 마녀 모자를 한 손으로 누르며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얼굴을 가린 난 반대편 손을 흔들며 두 사람에게 얼른 마정석을 내놓을 것을 재촉했다.

사라질 거다.

마정석 팔아서 성형외과부터 찾아야지.

어디 하나 손댈 곳 없는 예쁜 얼굴이란 건 알지만, 원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싹 다 갈아엎을 거다.

절대! 그 누구도! 날 떠올릴 수 없게!! 전부!!

“빨리 달라니까요!! 시....시간 없으니까 쫌!!”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난 독촉의 의미로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내가 소리칠 줄은 몰랐는지, 움찔한 강찬과 예지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오벨리스크의 잘린 머리를 가리킨 후 이내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난 그걸 듣기도 전에 후다닥 잘린 머리 쪽으로 달려갔다.

앞에는 당연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표 두 사람이 동시에 길을 가르쳐준 터라 내가 가니 즉각 비켜섰다.

“그거 엄청 단단해서 못 빼고─”

─꽈득!!

응? 방금 뭐라고 했지?

건장한 남자들이 무슨 말을 하며 곡괭이와 비슷한 도구들을 가져왔지만, 내 손은 이미 돌머리의 이마를 관통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을 감싼 검은 막이 보이는데,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마력은 두른 듯 싶었다.

이런 재능이면서 왜 하필이면 그런 실수를 해서!!

손을 빼자 서서히 금이 벌어지며 무너지는 거대한 머리를 뒤로하고 난 손에 쥔 검붉은 마정석을 확인.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으나, 그런 내 앞을 커다란 날개를 가진 천사님, 한예지가 막아섰다.

“자.....잠깐!! 우리 이야기 좀”

“비켜요!!”

“부끄러운 건 아는데”

“알면 비켜요!!”

“엄청 중요한 이야기라서 그래!!”

“그래도 비켜요!!”

마정석이 필요하면 나중에 내가 성형 수술한 후에 오던지!

아니다

그러면 성형한 얼굴도 들키겠구나.

아! 몰라, 니들이 알아서 해!!

마치 가로막기 게임이라도 하려는 건지 예지는 지나가려는 내 앞을 막아서고 난 그런 그녀를 피해 옆으로 이동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날 따라와 앞을 막았다.

─휙! ─휙!

좌좌우좌

옆으로 스텝을 밟으며 예지를 뚫으려 시도하지만, 무슨 재주를 부리는 지 나랑 똑같은 스텝을 밟으면서 막아서는 예지는 아예 날개까지 활짝 펼쳐 철통같은 방어선을 구축했다.

“아~~!! 진짜!! 성형하고 올 게!! 내 소중이를 걸고 반드시 온다!!”

“소중이? X? 너 없잖아!!”

“이게 사람을 팩트로 후리네, 정정당당한 날조와 궤변도 모르는 녀석 같으니!! 아무튼 비키라고!! 제발 쫌!!”

“본인이 날조와 궤변이라고 하네!! 아니, 쪼끔, 쪼끔이면 된다고! 사람 말 좀 들어봐!”

한창 실랑이를 하며 결국에는 이성을 잃으며 낫까지 꺼내려는 찰나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번에는 대체 누구냐 싶어 고개를 돌리니 아까 천사님과 함께 마정석의 위치를 가르쳐준 큰 덩치의 형....이제 오빠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찬석은 다 이해한다는 듯한 얼굴을 하며 나를 향해 말했다.

“아가씨, 괜찮아. 그런 일 다 한 번쯤 겪는 거지. 나도 어린 시절 태권도 배울 때, 집에 돌아가면서 엄마한테 발차기 배운 거 자랑하다가 넘어졌는데, 귀가 버스 타고 있던 친구들이 그걸 다 봤었던 적이 있거든.”

“.......어떻게 됐는데요?”

“다음 날 하루종일 놀림 받았지. 근데 한 이틀 지나니까 아무도 기억 안 하더라. 실수란 건 다 그런 거야. 누구나 하는 거지. 고작 그런 일로 예쁜 얼굴에 칼 대면 아가씨 나중에 후회해.”

“흐흑!”

그 말에 복받쳐 울컥한 난 얼굴을 팔소매로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따뜻한 사람 같으니

찬석은 훌쩍거리는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심심한 위로를 전했고, 그렇게 점점 분위기가 훈훈해져 가자, 예지도 겨우 안도했는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때 찬석은 뭔가를 떠올랐는지 아! 하는 감탄사를 터트리고는 피식 웃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인터넷에 얼굴 다 팔려있어서 의미 없어. 마누라 성형한 거 봤는데, 별로 인상은 안 바뀌더라고”

예지와 난 이 순간 일심동체가 되어 동시에 찬석을 향해 소리쳤다.

““니가 제일 나빠!!!””

* * *

장소를 옮겨 어느 호텔 건물 안.

당연히 사람이 없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의외로 피난, 집을 잃은 것 등을 이유로 자리를 잡은 사람이 많았던 호텔에 들어선 우리는 적당한 최고급 빈방을 잡은 후 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저랑 이 사람은 소개할 필요 없을 테니 생략하고, 당신은 누구죠? 랭커 중에 당신 같은 분은 처음 보는데. 혹, 무슨 게임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님 뉴슈?”

“........”

한예지 탈락!

내 말에 흑백컬러로 그림체가 변한 그녀는 허공에다 대고 ‘뉴슈’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넋이 나갔다.

뒤에 있던 부 길드장은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찬석도 무슨 그따위 자기소개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예지를 바라본 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판타지아 아니마 길드에서 부 길드장을 맡고 있는 강찬석이라고 하네. 저 여자는 한예지라고 판타지아 세라핌 길드의 장이지. 음.....이렇게 게임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군.”

목 뒤를 긁으며 시선을 피하는 찬석은 정말로 어색하다는 분위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확인 겸 명함 대신인지 그는 상태창을 오픈해 내게 보여주었다.

이름 : 강찬석(LionHeart)

국적 : 판타지아 , 대한민국

길드 : Anima ­ 서브 마스터

레벨 : 1000lv(비공개)

비공개

내게는 없는 신기한 구석이 많아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식 이름 옆에 있는 거야 추측상 판타지아에서 쓰던 닉네임인 것 같고, 소속이야 말 그대로 무슨 게임을 했는지, 그리고 길드도 방금 말했던 길드겠고, 서브 마스터라는 건 부 길드장이라고 했으니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비공개?

국적, 소속?

아, 근데 우리 아빠랑 동명이인이네.

‘나랑 너무 다른데? 그리고 레벨 옆의 비공개는 뭐야?’

그 아래야 어차피 상세 정보가 있겠구나 싶은데, 레벨 옆에 건 뭐지?

상태창을 곰곰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이상한지 찬석은 살짝 의문을 가지고며 잠시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가 계속 상태창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결국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돌렸다.

그제서야 난 내가 정신이 팔렸다는 걸 자각하고 고개를 숙여 사죄를 전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네. 그보다 나만 자기소개하기는 무안하니 그쪽도 부탁해도 되겠나?”

“아, 잠시만요.”

내 상태창이 어디 보자

이름 : 릴리 아스트레아스(강시혁)

국적 : 아리아스타 하트, 대한민국

길드 : 무

레벨 : 712lv ­ 전생 22회차(6212lv)

종족 : 초?마녀

직업 : [네크로멘서] [흑마술사] [워록]

└인벤토리

└소환수

└스킬

“이야 너네 아주 그냥 일을 막 한다? 인터페이스 또 바뀌냐?”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아....그냥 혼잣말이에요.“

놀란 찬석에게 손을 흔들며 아니라는 듯한 부정의 의사를 전하면서 난 뚫어지게 내 상태창을 바라봤다.

아리아스타 하트는 또 뭐야? 그딴 나라있음?

길드랑 국적 같은 거 전에는 없었잖아?

그리고 레벨은 갑자기 왜 또 두 배로 뛰는 건데? 옆에 6212lv이라는 괴랄한 수는 또 뭐고?

이번에도 자기 멋대로 바뀐 상태창의 모습에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찬석은 그런 날 보며 무엇인가 알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상태창 별로 안 열어봤나?”

“네?”

“막 레벨이 변동하고 없던 부분이 생기고, 있던 부분이 없어지고 하는 게 아니냔 말일세.”

“그걸 어떻게?”

마치 내 상태창을 그동안 봐왔던 것 마냥 이야기하는 찬석의 말에 놀란 표정을 보이니, 그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나를 향해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도 그랬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니 일종의 상태창이 통합되는 과정 같다고 하더군.”

“통합이요?”

“그래, 레벨의 기준은 판타지아인지, 난 변하지 않았네만, 무검산이나 이터널 쪽 사람들은 딱히 강해지거나 약해진 것도 없이 숫자가 변했다고 하더군.”

이어진 찬석의 말을 정리하면 상태창은 켤 때마다 조금씩 변화했다고 한다.

국적이란 부분도 없었는데 이번에 생긴 것이며 판타지아 측에서 있던 칭호와 스텟란이 사라졌으며, 동시에 무검산이나 이터널 쪽에서는 없던 종족이 생겼다고.

변한 건 없지만, 상태창이 통일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추측하고 있다,

“전 레벨이 두 배로 올랐는데.”

“최고레벨이 500lv이었나 보군.”

찬석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크로멘서 위치 메이커]의 최고 레벨은 그의 말대로 500lv

단지, 전생이란 시스템으로 레벨을 초기화시켜가며 그 이상의 강함을 손에 쥘 수 있었을 뿐.

그러한 생각이 맞물리자 난 왜 자꾸 상태창이 변했는지 이해가 가면서, 난 왜 내 진짜 이름이 괄호 안에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동시에 레벨 옆의 숫자의 의미를 깨달았다.

‘전생 특전 스탯......’

위치 메이커는 전생을 통해 레벨을 초기화시키면 일정량의 스탯을 남겨준다.

딱 그 양이 처음 500을 찍었을 때의 4분지 1이었지.

복리인 줄 알고 좋아했었지만, 결국 단리였었고 그렇게 되면 얼추 계산이 맞아 떨어진다.

‘최고레벨을 1000lv으로 했을 때 전생 1회당 보너스를 레벨로 환산하면 250lv, 그리고 전생을 22회 했으니, 추가 스탯의 레벨은 5500lv. 그리고 원래 레벨인 712를 더하면 딱, 6212’

레벨 옆의 괄호가 의미하는 건

그건 바로 능력치으로 환산한 진짜 레벨이다.

판타지아 만렙이 1000lv이라고 했으니까.

‘나 쫌 쎈 건가?’

찬석은 갑자기 소녀의 콧대와 어깨 뽕이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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