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사태 파악
* * *
“오...오벨리스크?!!”
“네!!”
소통을 담당하는 길드원이 전해준 소식에 길드장인 시연과 [페스나이트] 길드원들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기 시작했다.
“오...오벨리스크라니. 그걸 어떻게 잡아?!!”
“길드장, 이건....이건 무리에요! 한국, 아니 세계랭킹의 랭커가 없으면 무리라구요!!”
“그건 나도 알아!”
거신병 기간트 오벨리스크
월드 [판타지아]에서 악명 높은 최상위 보스 몬스터의 일각을 차지하는 괴물 중의 괴물로 골렘 계열 몬스터들의 끝판왕.
[페스나이트] 길드가 나름 한국에서 잘나가는 정예 길드라 하더라도 게임에서 공략을 시도해본 적 없는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다.
레벨 표시 자체는 판타지아의 최고레벨 1000lv으로 일반 여타 최종 보스나 만렙 유저와 동일하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1000lv이 레벨의 한계 표시이기 때문일 뿐.
진정한 레벨, 몬스터의 스탯이나 체력, 마력 혹은 유저의 경우는 장비로 인한 스펙으로 환산한 레벨은 그 격을 달리한다.
추정치 4000lv
정신 나간 괴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벨리스크가 가장 두려운 건 그 막대한 방어력과 체력 그리고 크기에 있다.
공략에 들어가면 사실상 전신을 눈에 담을 수조차 없기에 전투을 진행하는 내내 팀 단위로 분산해서 다리, 몸, 팔의 견제 등으로 임무를 나눠 차근차근 공략해 나가야 하는 놈이다.
레이드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몬스터.
하지만 그런 공략도 게임에서나 가능할 이야기일 뿐이다.
“만약 오벨리스크가 다른 놈들처럼 제멋대로 움직이면.......”
“상상하지마. 으....리트라이도 불가능한 지금 그런 보스를 누가 잡냐고!”
랭커가 온다고 해도 오벨리스크는 간단히 해결할 수는 없다.
으레 그렇듯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시도 끝에 패턴에 대한 분석을 모두 마치고 진행하는 것이 정석.
스펙이란 그 시도를 위한 준비일 뿐.
적게는 십수 번, 많게는 수백 번을 죽고 죽어가며 공략법을 숙달해 사냥하는 것이 바로 최상위 보스 레이드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단 하나의 목숨으로 리트라이가 가능할 리가 없지.
“그.....그치만 오벨리스크를 그냥 두면.”
“움직이는 것만으로 만 단위는 우습게 죽을 거야.”
산과 같은 크기를 지탱하는 발에 짓눌려 무수히 많은 생명이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사라지겠지.
차시연은 입술을 질근 깨물고는 눈을 감았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자신은 길드장이다.
일반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길드원들을 모아 행동하고 있지만, 엄연히 리더로서 길드원을 챙겨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잔혹하게 들리겠지만, 지금 전력으로 오벨리스크에 도전하는 건 자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결국, 마음을 굳힌 시연은 소식을 가져온 길드원에게 물었다.
“오벨리스크, 어디야?”
“노량진이라고 합니다.”
노량진
학생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어차피 공부에 집중한 이들일 뿐, 자신들처럼 VR게임에 생의 일부를 갈아 넣은 이들은 아니겠지.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고작 소수일 뿐.
오벨리스크의 권장 레이드 수는 300명
그 소수 모두가 기적적으로 한국의 랭커들이라고 해도 그들이 죽을 거라는 사실에 흔들림은 없다.
“노량진, 아니 동작구는 버린다.”
시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길드원들 사이로 울려 퍼졌지만, 이들은 모두 그저 고개를 숙일 뿐, 그 결정에 반문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시연에게 마치 사람들을 버린 짐을 지운 것이니.
그러나 그때 참으로 얄궂게도 마치 자신들을 채찍질 하는 듯한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통을 담당하는 또 다른 길드원이 가져온 전언.
“..........길드장, 지원 요청이에요.”
“지원?”
“예, 강남의 [아니마]가 오벨리스크를 잡아야 한다고 지원을 요청했어요.”
“.......”
소연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말하는 거냐고 전언을 가져온 길드원에게 따지고 싶어졌다.
“아니마 길드장, 랭커였나?”
“아뇨, 정확히는 부 길드장이 세계 랭커에요. 이상하게 길드장보다 부 길드장이 더 순위가 높아서.”
“[세라핌]은?”
“아마 연락했겠죠?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세라핌] [아니마]
한국 VR게임 점유율 45%를 넘는 [판타지아]의 한국 1, 2 위의 길드들.
분명 길드장 급의 사람이라면 세계랭킹에서도 이름을 올린 탑랭커일 것이다.
한국은 기묘할 정도로 우수한 게임 강국이니, 장비, 실력 및 그 밖에 특수 직업까지 가진 이들이겠지.
그런 두 길드가 연합하여 오벨리스크의 토벌에 들어간다면 분명 성공할 것이다.
게임에서 없던 공략 인원수 제약이 사라졌으니까 수로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동시에
“몇 명이 죽을지.”
결국, 한숨을 내쉰 시연은 이내 조심스럽게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세라핌과 아니마가 합류하면 우리도 합류하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시연은 기대하지 않았다.
게임에서의 일을 여기까지 가져오는 게 맞는지는 모르지만, 1, 2위 답게 둘의 사이는 차마 좋다고는 못하니까.
인명의 이유로 의외로 바로 의견을 모을 수도 있겠지만, 글쌔
사람이란 게 그리 바르기만 할지.
차라리 다른 VR월드 게임. 무검산이나 이터널의 최상위 길드가 합류하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약 20분 뒤.
한 소녀에 의해 거대한 거신이 참혹하게 파괴되는 모습이 찍힌 영상이 올라올 때까지 차시연과 길드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현대 시대 정보의 창구라 하면 당연히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만 있으면 이제 무엇이든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작금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찾은 곳은 바로 PC방이었다.
“실례합니다.”
맑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이곳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평소와 다르게 적막이 감도는 장소.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PC방을 방문한 난 다행히 이미 열린 유리문을 열고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하긴, 지금 시국에 밖에서 그만큼 큰일이 났는데 누가 PC방에 방문을 한다고.
그나마 24시로 여는게 PC방이라 이렇게 문이 열려있었던 것이지.
덕분에 문을 따고 들어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서 난 다행이지만.
“후~~~ 편하다. 전기 들어오려나?”
커다란 게임용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댄 난 전기가 들어올지 조금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건 내 기우였다.
전원은 문제없이 연결되어 있었고, 난 전원 버튼을 누른 뒤 후불 결제를 클릭
PC게임 따위에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바로 인터넷에 들어갔다.
검색 키워드는 [네크로맨스 위치 메이커]
검색 순위에 판타지아, 무검산, 이터널 등 한국을 넘어 세계를 주름 잡고 있는 유명 VR게임의 이름이 줄줄이 올라와 있지만, 내 우선순위는 일단 이거다.
필요한 건 업데이트의 내용.
이딴 게임을 공략처럼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 따위가 있을 리가 없고, 유명 게임처럼 카페나 전용사이트가 있지도 않으니 어플이 올라온 스토어의 공지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원하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이런 미친? 5년 전? 게임 나오고 7년동안 안 하던 업데이트를 5년 전에 했다고?”
2029년 2월
초 대규모 업데이트
장비 아이템 추가
고유 소환수 추가
전생 특전 추가
스킬 인터페이스 개선
.......
그야말로 게임을 완전히 뒤집어 다른 게임으로 만들려고 작정한 듯한 시도의 향연.
그리고 그런 내 추측이 사실이라 증명하는 화룡점정, 마지막 패치 내용.
자동사냥 기능 폐지.
“와~~~패치 했으면 내가 X될 뻔했구나. 운 진짜 좋네.”
이 모든 걸 본 난 우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동사냥을 지우다니. 진짜 게임을 아예 바꾸려고 했었구나.”
내가 대충 소환수, 스킬을 다 모으고 게임을 방치한 건 약 게임 시작 3년
즉, 패치 2년 전이다.
사실 3년이나 걸린 것도 엄청난 거지.
왜 이 게임이 시간 죽이기, 킬링 타임용 게임인지 절절히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만약 내가 업데이트를 받았다면?
“바로 게임 접었지.”
이런 게임 업데이트 한 번 따위로 어떻게 될 게 아니다.
근본 뿌리를 대충 만들었는데, 무슨 업데이트
결국, 결론은 업데이트 미실시로 난 계속 11년 동안 자동사냥을 돌릴 수 있었고, 이런 몸이 되어서야 업데이트가 진행된 것이라 난 추측할 수 있었다.
“와~~~어떻게 이런 기막힌 행운이.”
천운이 따랐다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비록 릴리라는 소녀가 되어 내 소중이를 잃어버렸지만, 이번 소식은 내게 있어 그야말로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래도 소중이는 돌려주시면 안 되나요?
* * *
비록 사람들이 올린 추측성의 글들이지만 그 밖의 다양한 정보들도 구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정보들이 많아 놀랐지.
“VR게임 회사 증발, 몬스터 잡으면 마정석이라. 이쯤 되면 소설이 예언서 아니냐?”
판타지아 등의 통합서버를 중심으로 게임을 운영하던 게임사는 모습을 감췄다.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이 사태를 일으킨 누군가의 소행인지 지금은 그 누구도 모른다.
정보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위의 인물들은 전부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남은 건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말단 직원들 뿐.
그리고 마정석
몬스터를 잡으면 마정석이 나온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좋겠다고 다들 생각하는 중.
적힌 글에 의하면 이미 제작 계열 직업을 가진 사람이 활용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고.
그다음 정부
비록 이쪽도 공식적인 정보는 아니지만, 길드 사람들이 올린 글로는 정부는 기능을 상실했다.
아바타로 변해 서로가 누구인지 증명조차 힘든 상황
[계엄령]과 경보가 떨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니 그 심각함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내게 있어 가장 심각한, 발등에 떨어진 불.
“설마 내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을 줄이야. 그걸 찍은 놈이 있었다고?”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처럼 얼굴을 쓸어내리는 난 방금 본 하나의 영상을 떠올리며 탄식했다.
여러글들을 뒤적거리며 읽는 도중에 발견한 [오벨리스크 사냥 영상]이라는 제목의 글.
스마트폰으로 찍었는지 이리저리 흔들리는 화면 속에는 거대한 낫을 든 소녀가 미친 듯한 광소를 터트리며 발아래의 거대한 무언가를 마법들을 난사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뭔 미친놈인가 싶었지만, 영상을 틀어 확인한 결과 그게 나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지.
마녀모자, 백색머리, 낫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거대한 거신병의 모습까지.
나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정도의 빼박인 증거물이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긴 했구나. 설마 찍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니.”
요즘 카메라 성능이 죽여준다는 건 알았지만, 그 사실을 이렇게 체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동시에 그걸 찍은 놈의 담력에 경의를 표했고.
내가 본 내 모습이지만, 정말 소름 끼칠 정도의 모습이라 나라면 못했을테니까.
덕분에 얼굴이 제대로 팔렸다는 걸 자각한 난 이대로 다니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소름 끼치는 모습이든, 엄청난 위용을 과시하는 모습이든 얼굴이 팔린 건 사실이니까.
다행히 아까 보았던 장비 아이템 업데이트가 내게도 적용된 건지 인벤토리는 빈깡통이 아니었다.
“인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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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마녀 로브
하급마녀의 배틀 사이드
하급마녀 로브
.......
마치 전직하면 주는 기본 장비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가장 필요한 로브가 있는데.
후드티보다는 좀 어색한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사이즈가 적당히 큰 로브는 내가 원하는 얼굴 가림 기능에 충분한 성능을 보였다.
거기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도 게임속 장비를 입은 이가 제법 보여 어색한 티도 안나고.
그렇게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난 거리를 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거신병을 죽인 그곳으로
“마정석, 남아있으려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