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2화 (2/116)

〈 2화 〉 조금 거친 시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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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시당꺄?”

되도 안 되는 싸구려 사투리를 지껄이며 세면대에 선 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여인, 아니 소녀.

찰랑거리는 연한 핑크빛이 감도는 백색 장발의 소녀는 참으로 묘하게도 내가 하는 행동을 마치 쌍둥이처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볼을 꼬집으면 거울 속의 소녀도 볼을 꼬집고, 얼굴을 이리저리 구기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소녀도 부끄러움이 없는지 따라 한다.

뭐, 27세 취업준비생 백수 남정네와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귀엽고 깜찍하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해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난 세면대에 찬물을 틀어 받은 뒤, 잠시 물속에 얼굴을 박아 10초 정도 안면 잠수를 한 후 다시 고개를 들었다.

“후하~~~!!!”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냉찜질 겸 잠수까지 하니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그렇게 다시 바라보는 거울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소녀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현실을 부정해도 바뀌는 게 없으니 별 수 있나.

그래, 난 여자가 되었다.

흘러내리는 티셔츠와 잠옷바지를 더듬거리니 아니나 다를까 가랑이 사이 소중이는 모습을 감춘 뒤고, 굴곡이라고는 하나 없는 몸매라고는 해도 특유의 여성의 골격선은 남아 있다.

가슴도 뭐....... 조금 있기는 있네.

하루 아침에 TS장르라니.

아니 정확히는 TS + 게임 캐릭터 빙의인가.

도트라고 하지만 무려 11년을 보아왔던 캐릭터다, 내가 모를 수는 없지.

거기에 SD 캐릭터 디자인도 있고, 일러스트도 있으니까. 더더욱 확신할 수 있다.

난 [네크로멘서 위치 메이커]의 주인공 릴리가 되었다.

“아니 다 필요 없고 눈앞에 이게 증거잖아?”

허공에 떠있는 푸른 창은 이미 내 정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름 : 릴리 아스트레아스

레벨 : 257 ­ 전생 22회차

종족 : 견습마녀, 초급 마녀, 중급 마녀, 상급 마녀, 대마녀, 초?마녀

직업 : 네크로멘서

└인벤토리

└소환

└스킬

“인터페이스가 이렇게 다양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남들이 들으면 무슨 개소리냐 할 수 있지만, 엄연히 사실이다.

[네크로멘서 위치 메이커], 줄여서 대충 위치 메이커는 이렇게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게임이 아니다.

솔로 횡 스크롤 자동사냥 RPG

직업도 없다

종족도 없다

오로지 그 모두 주인공 릴리일 뿐.

사실 이름도 릴리 라는 것만 알았지 스토리도 없는 게임이라 아스트레아스라는 멋들어진 성이 있다는 것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사냥과 몬스터, 스킬 수집 뿐.

경험치가 있는 게임도 아니라서, 레벨 업을 하려면 사냥을 해서 모은 금화를 써야 하는데, 이 금화라는 놈이 그야말로 모든 곳에 쓰인다.

내 레벨 업은 기본에, 소환수 레벨 업, 스킬 습득, 스킬 레벨 업까지

결국 사냥 시간 = 금화 수급 = 강함으로 연결되는 게임,

여기에 스파이스로 정기 결제를 눌러 알아서 돈이 모이면 자동으로 금화를 설정에 따라 소비하게 해 두면 그야말로 할 것은 제로.

하등한 인간의 손가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동사냥 기능께서 모든 적을 쉬지 않고 화려하게 학살하는 걸 보다 잠드는 그런 게임이다.

말하고 보니 게임이 맞는지도 의심스럽군.

그야말로 전형적인 자동사냥에 특화된 구조

이걸 11년이나 잡고 있던 내 인생이 레전드 오브 레전드......

아! 확실히 할 게 하나 있기는 있었네.

“소환수”

사용방법을 몰라 일단 입으로 말을 했는데, 그게 정답이었는지 눈앞의 창은 자동으로 소환수 버튼을 클릭

내가 보고자 한 새로운 창을 열었다

소환수 목록

[리치 킹]

[스켈레톤 킹]

[데스나이트 로드]

[벤시 퀸]

.......

“역시 다시봐도 네이밍 센스 지렸다. 게임 만든 새끼 얼굴 좀 봤으면.”

아니 게임 만든다는 인간이 이딴 이름 써도 돼?

막, 그 뭐라 해야 하나. 멋들어진 이름 있잖아.

머......렉스라시온, 엘스타인, 카문라 같은 좀 특색있고 이름만 들어도 입에서 탁소리 나올 것 같은 이름들.

아니면 최소한 신화 서적이라도 뒤적거려서 오시리스, 제우스, 토르, 오딘 같은 이름이라도 가져오는 성의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그래도 소환수도 쓸 수 있기는 있나 보네. 이거 하나는 다행이다.”

레벨을 보았을 때 반쯤 짐작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소환수도 따라와 준 듯 싶었다.

게임의 이름에 네크로멘서가 들어가고 또 직업이 네크로멘서인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위치 메이커의 유저 손수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바로 소환수 수집이다.

컬렉션 도감이라고 해서 죽인 몬스터를 일정 확률로 수하로 만들고 이를 성장시켜 함께 싸우는 시스템.

장비나 아이템을 모으는 요소도 거의 없는 이 게임에 스킬 모으기와 함께 얼마 없는 수집 컨텐츠이며 동시에 이 게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자동사냥을 한다고 해도 소환수 수집은 사냥 도중에 확인 버튼을 눌러야 해서 사실상 유저가 직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부분이라. 컬렉션 모으는 동안에는 하루 종일 자동사냥 중인 게임만 처 보는 미친 짓도 했었지.

그마저도 다 모으고 할 일 없이 게임을 키고 있던 난 뭘까.

아무튼 대충 상황 파악 자체는 끝난 난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하지?”

부모님께 연락할까?

그러나 과연 이 모습을 보고 믿어는 주실까?

뭐,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니 어찌 저찌 납득시킬 자신은 있다만, 그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닐터.

거기에 이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단순한 중학생 정도의 소녀로 보이지만, 동시에 외모 자체가 너무나 이질적이다.

거의 창백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새하얀 백옥 피부.

갸름한 달걀형 얼굴에 확실한 이목구비, 매끄러운 입술, 보랏빛 눈동자.

알비노라도 걸린 듯 눈썹부터 눈꺼풀까지 전부 하얀색.

거울을 보며 판단하길 마네킹이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모습이다.

이런 얼굴로, 옷도 지금 다 작아져서 흘러내리는 터라 민망할 지경인데 나가긴 어딜 나가?

결국 난 화장실에서 나와 침대에 앉은 후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딱 TS장르 주인공 설정인데.....”

VR게임 외에 소설을 읽는 취미도 있는 터라 이런 류의 소설도 읽은 기억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다.

분명 먼치킨 TS 현대 판타지 장르였는데, 그 주인공이 처음에 뭘 했더라?

곰곰이 고민하며 다시 스마트 폰을 뒤적거리는데, 갑자기 붉은 확성기가 화면 모서리에 나타나며 이모티콘과 함께 알림 문자가 날아왔다.

“이게 뭐야? [계엄령 선포]? 어디보자. ‘금일 오전 3시경 신원 불명의 다수의 괴생명체 출현 및 이상 환경 징후 발생, 절대 다수의 시민의 변이 현상을 확인. 이에 따라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가에서 외출을 금지.....’”

요약하면

내가 퍼자고 있던 새벽 3시에 괴물이 나왔다 하더라.

이상 환경 징후는 뭔지 모르겠고, 그 다음은 시민들의 변이.

“이거 나 이야기하는 건가? 그럼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난 빠르게 문자 창을 닫고 튜브,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개판 오분 전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셀카로 엘프 사진을 찍어 인증하는 여자.

멀리서 건물보다 거대한 괴수가 일격에 빌딩을 무너트리는 동영상.

날아가는 미사일의 세례와 그를 피해 하늘을 비행하는 하피.

등등

그리고 거기에 적힌 사람들의 댓글

[나 판타지아 내 캐릭터 됨 ㅋㅋㅋ상태창도 열림]

└나도

└나도

└저도요

└님은 무슨 캐릭임? 나 엘프인데.

└ㅠㅠ부럽 난 미개한 인간

└오크 만세!! 근육 만세!

└응 다음 미개한 오크요.

........

[전 무검산 캐릭터 됐음! 검강 인증 샷!]

└응, 그래봐야 미개한 인간이죠

└응 꺼져, 우리 패시브로 환골탈태 있음. 엘프보다 오래살아.

└엘프 천년이거든

└우리 2차 전직하면 불로야

............

[마녀의 도시 부산으로 오세요!!]

[오크 전사여 집결하라!! 위치는 서울 이태원이다!!]

└이태원 ㅁㅊ ㅋㅋㅋㅋ

[셀레스티얼 교단 분들 모이세요! 세라핌 길드 집결 중! 위치링크]

“워매~~ 오늘 새벽이라고 했는데 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래도 일단 안심은 들었다.

몸이 변한 사람이 나 말고도 매우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어디 실험실에 잡혀가서 해부당하는 꼴은 면한 듯 싶으니까.

하지만, 이내 무언가 묘한 위화감을 느낀 난 계속해서 글을 읽으며 내려갔는데 그렇게 한 20분 정도 미칠 듯이 쏟아지는 글을 읽은 난 드디어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뭐야? 다들 VR게임 캐릭터가 됐잖아. 근데 왜 나만?”

모든 글이 말하는 공통점

그건 바로 [VR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가 되었다] 는 것.

예외의 글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나만.

잠시 고민하는 사이 난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감지했다.

가늘게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비명소리, 남자들의 고함 소리.

쿵쿵 거리는 진동과 울림.

“에이 설마.”

확실히 이런 소설 스타팅이 자취방 박살이라는 게 국룰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 시작인데.

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그렇게 드르륵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자.

“예?”

왜 아무것도 안 보일까요?

보이는 거라고는 새까만 어둠, 그리고 그 사이에 별빛처럼 반짝이는 무언가.

분명 창문을 열면 앞에 다른 자취 건물들이 보이는 위치였는데 어째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주변을 살피고 난 깨달았다.

‘아.......X됐다.’

이거 본적은 없지만 알 거 같아.

마치 허공이 유리처럼 깨진 모습.

그리고 그 깨진 가운데 틈.

“분명 막 게이트 어쩌고 하는─”

말이 씨가 된다고,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갈라진 틈, 어둠 속에서 거대한 돌로된 손이 문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한다.

이미 틈 자체가 우리 자취 건물 3배는 되어 보이는 데 나오는 놈은 허리를 구부린 채 겨우겨우 나오고 있다.

드러나는 모습

가장 처음, 손가락은 우선 돌

다음 손도 돌이고 발도 돌.

각진 사각형 머리도 돌.

그렇게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몸도 돌.

“골렘?”

[우오오오오!!!!]

내 말이 정답이라고 칭찬하는 건지, 아니면 틀렸다고 화내는 건지 놈은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서서히 올라가는 녀석의 거대한 한쪽 다리와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아......”

릴리가 된 첫 날

내가 한 일은 소환수 소환도 아니고, 아이템 확인도 아니며 심지어 스킬 시전도 아니었다.

소중한 내 첫 경험

그것은 맷집 테스트였다

콰아아아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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