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87화 (87/112)

〈 87화 〉 014. 두 마리의 자라 (5)

* * *

“오빠, 작전 변경이에요!”

조종간을 붙잡은 유가 소리쳤다. 그 표정이 완전히 바뀌어 지금은 나보다도 더 투지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헬기와 택시들 모두 부평IC를 지나쳤다. 당초 한월 쪽에서 구상했던 계획까지 3시간 40분이 남았다.

바니걸이 우리에 의해 제거된 것을 생각하면 남은 시간을 정확히 계측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중요한 변화였다.

거기에 더해, 랑과 폴트가 교전 상태에 들어갔다. 이것 역시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부천으로 진입하기 전에! 우리는 갈룸을 죽입니다! 무조건이에요!”

“말은 쉽지만 어떻게? 우린 둘이야! 아니, 저쪽도 둘이긴 하지만 그 둘은 클래스가 전혀 다른 둘이라고.”

이쪽의 둘이 힘을 합쳐도 저쪽의 하나를 제압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더군다나 2대 1의 구도조차 이상적인 청사진에 불과하고,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은 없다.

두 택시는 딱 안전거리만큼만 벌어진 채 연달아 질주하고 있었다.

“아뇨, 가능해요.”

“2대 1로 몰아갈 수 있다는 거야?”

“1대 1로 몰아갈 거예요!”

유가 조종간의 몇몇 장치를 건드리자 헬기가 전방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두 택시 사이의 공중에 해당하는 위치를 점거했다. 정체불명의 조종을 끝마친 유가 이쪽을 흘끗 돌아봤다.동생을 전쟁터에 내보낸 언니란 실로 무시무시해서, 결코 적으로 돌려선 안 될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유는 말했다.

“이대로 내리 꽂을 거예요.”

“뭐라고요?”

“세 번 말하지는 않겠어요! 우리는 이대로 헬기를 내리 꽂을 거예요!”

“우리라고 말하지 말아주시겠어요?!”

벌떡 일어나 그렇게 소리쳤지만 유는 들을 기색이 없었다.

나는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유는 그걸 설명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숨 가쁘게 자신의 새로운 사상을 전파했다.

“위압을 보면 아시겠지만, 앞 차량에 갈룸과 한월 오빠가 있고 뒤 차량에 마베 꼬마가 있어요. 제가 이대로 헬기를 앞쪽 대각선으로 내리 꽂아서 순식간에 뒤 차량을 정지시킬 거예요. 그리고 다시 내려서 마베 꼬마를 저지하겠어요.”

“이보세요, 야!”

못 참고 그렇게 소리쳤지만 유는 이어나갔다.

“제가 경로를 설정해놓고 내릴 테니까 오빠는 다시 한월 오빠를 추격하세요!”

“지적할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눈앞이 팽팽 도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하게 돌고 있다.

그래도 뭔가 말해야만 했다.

“뭐냐, 첫째로는! 일단 도로 사이를 내리꽂는 건 누가 죽거나 다치기 딱 좋잖아! 우리들이야 지정능력이 있다고 해도 기사님은?!”

“마베 꼬마가 실드를 걸어주겠죠. 오히려 다행이라구요. 그 꼬마의 마법 스택이 깎이게 해야 해요. 한방 한방이 A등급을 능가하는 수준이지만 회수가 적으니까.”

“좋아,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이번에는 내가 헬기를 몰게 되는 상황에 대해 항의하고 싶은데?!”

“자동 장치가 있어요! 오빠는 그냥 내리 꽂는 것만 조종하시면 되구요! 뭐 막아내는 건 한월 오빠가 더 잘 하니까 걱정 마시고! 나진 오빠는 아예 안 다치잖아요!”

“이론상으로는 완벽한데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그런 거잖아, 그거!”

조별과제 할 때 불쑥 튀어나오는 그거!

그러거나 말거나 이론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실전에서도 가능하다는 불굴의 의지로 유는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본래는 자동차들을 색으로만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지만, 몇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번호판이 보이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유가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그녀를 말릴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반박을 내놓아야 했다.

“우리가 그 인간들을 어떻게 이겨!”

조종간을 돌리던 유가 움찔 떨었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묻기를 멈출 수 없었다.

“네가 말했잖아. 네가 너희 팀에서 제일 약하다고. 그리고 동시에 너도 당연히 알겠지만, 나는 한월이 앞에서는 버티는 게 고작이야. 버티는 것 이상의 무엇도 할 수 없어. 너나 나 자신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를 이기려면 스스로가 어떤지 알아야 해.”

“틀렸어요.”

유는 고개를 저었다.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에요.”

그 말에 나는 굳어버렸다.

유는 이어나갔다.

“한월 오빠와 대면하게 되면, 무시하세요. 그 오빠가 무얼 해도 그냥 지나쳐가세요.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가능하잖아요. 그리고 갈룸을 죽이고 도망쳐요. 저도 그럴게요. 저도 마베 꼬마가 오빠를 방해하지 않도록 할 테니까…….”

유는 다시 조종간을 붙잡았다.

“이기겠다느니 쓰러뜨리겠다느니 그런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는.”

길지 않은, 길 수 없는 침묵이 기내를 지배했다. 그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는 소리 없는 웃음을 흘리며 조종간을 비틀었다.

“자, 그럼! 갑니다아아아아아앗!”

“잠깐, 조종법은 알려줘야지!”

짧은 설명 직후 헬기는 지면까지 내리 앉았다.

***

[행동지정: 마법: 매직 프로텍터!]

마베 꼬마가 타고 있던 흰색 택시의 전면부에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택시기사가 그대로 비명을 내질렀으나, 그가 머릿속에서 생각하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택시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지면에 자리 잡은 헬기에 충돌했으나, 박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법진의 앞에서 만물의 생리가 정지한 듯 고요함이 피어났다.

그러는 동안 마베 꼬마는 운전시트 밑에 내려놓았던 스태프를 꺼내들고,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도망치시오.”

사극톤인지 정극톤인지 알 바 아니었다. 이제 별로 받을 마음조차 없는 택시비까지 선불로 받아둔 뒤였으므로 택시기사는 다짜고짜 줄행랑을 쳤다.

마베 꼬마는 그가 충분히 멀리 달아나는 것을 확인한 이후 차에서 내렸다.

그때, 헬기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베 꼬마는 운석을 내리꽂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낭비할 지정력이 없었다.

저 앞으로부터, 지휘봉을 잡은 소녀가 걸어 나왔다.

여기저기 찢어진 교복과 올이 나간 스타킹하며 매직으로 이름을 써놓은 삼선슬리퍼가 누구의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베 꼬마는 나지막이 물었다.

“왜 이러시는 것이오?”

“이래야만 하니까.”

도로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베 꼬마는 다시 말했다.

“팀 내에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미명 하에 민간인이 다칠지도 모르는 상황을 몇 번씩이나 연출하고, 또 같은 팀의 멤버를 공격한 것이오. 곧 관리국이 이곳에 도착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이오?”

“알아, 중징계가 발판처럼 느껴지겠지.”

“돌이키기에 늦지 않았소. 지금부터라도 공격을 중단하시오.”

“그거 알아?”

[무구지정: 서곡Overture]

유가 지휘봉을 날렵하게 휘둘렀다. 녹색 바람이 마베 꼬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마베 꼬마는 받아치지도 방어하지도 않았다. 칼날 같은 바람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가도, 그래서 비명이 터져나와도 아직 스태프를 휘두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는 말했다.

“다른 방식으로 설득했어야 했어.”

유는 말했다.

“한월 오빠가 주장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이러이러하니까. 그런 식으로 말해야만 했어. 징계가 떨어질 테니 그만하라고 하는 게 아니고. 그야, 우리는 자기 자신이 징계를 받는지 어떤지부터 따지는 공무원이 아니라…… 지정능력자이니까.”

그 말에, 마베 꼬마가 스태프를 움켜잡았다.

“사과하겠소. 하지만 유 양, 한월 공의 말을 믿을 수도 있잖소. 나도 재인 양처럼 한월 공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다고,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오. 다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따르겠다는 것이지.”

“나는 해야 하는 데까지 따를 거야.”

유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이게 한월 오빠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걸 알아. 그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말해줬으니까.

그런 사람에게 ‘나는 해야 하는 지점까지만 따라갈게.’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생각인지 알아.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 때문에 평생 갇혀있을 수 없어.”

유가 지휘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법이 염동력을 막아냈다. 마법사는 말했다.

“이해하겠소.”

마녀는 슬픈 눈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 양의 길이지, 나의 길은 아닌 것 같소. 아직 나는 할 수 있으니까.”

그러자 염동력자는 대답했다.

“그래, 그러니 나도 싸울 거야. 나도 해야만 하니까.”

누가 더 강하느냐는 상관없다. 누가 누구의 상위에 있고, 그 반대로 누가 누구의 하위에 있는지─ 그런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이곳에서 싸우는 것은 그저 싸워야만 하기 때문에.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에 맞서, 결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가고 싶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싸움에서의 승패와 무관하게 자신으로서 이기는 길이기에.

염동력자는 지휘봉을 횡으로 베었다.

마법사는 스태프를 종으로 휘둘렀다.

결과는 가까워도 결말은 아직 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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