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013. 우는 토끼 (5)
* * *
“오빠가 싸우시네요.”
뒤를 돌아보자 유가 서 있었다. 코를 부여잡고.
반사적으로 담배를 떨어뜨렸다. 꼭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다는 것처럼 신발 밑창으로 짓밟았다.
나는 유를 바라보는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오히려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혹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것은 아닌지, 고등학생과 싸우는 22살의 내 모습이 추하지는 않은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변명처럼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안 싸웠어.”
“무슨. 꼭 남자애들은 싸워 놓고 안 싸웠대요.”
“진짜 안 싸웠어!”
“네에, 네에.”
더 말해도 들어줄 기색은 없었다. 나도 관뒀다. 변명한다고 내가 싸웠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유가 먼저 옥상 밑으로 내려갔다. 나는 떨어뜨린 꽁초를 집어 들었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찰나, 문득 옥상 전체에 꽁초가 이리저리 버려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그것들이 모두 내가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모양이지.이 사무실과 이 건물은 내가 있거나 없거나 관계하지 않고 꽁초를 품을 터였다.
나는 집었던 꽁초를 아무데에나 도로 던져놓고 유를 따라 내려갔다.
사무실에서 유는 아까처럼 소파에 앉아 스타킹의 올이 나간 부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쪽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뜯어진 부분을 모두 정리한 유는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안 앉고 뭐하세요.”하고 말했다.
나는 B급 좀비영화의 좀비처럼 터덜터덜 주저앉았다.
“아니다, 앉을 시간도 없겠네요.”
“어, 그렇지.”
유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섰다.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을 생각했다.
통화를 했고, 도중에 쌓였던 감정을 참지 못하고 제멋대로 지껄이고 말았다.
대화는 일방적으로 중단되었고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한월이는 다소 어리둥절하게 느꼈을 테지만 이쪽에서 나름의 계획을 밀고 나가리라는 사실조차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월이는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종로구에 있는 관리국 본부에 갔어요. 여기가 인천 서쪽 끝이니까 30분 안에 올 거예요. 그 오빠 달리기 빠른 건 아시죠?”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좋겠네요, 잘 아셔서. 그런데 제가 더 잘 알거든요?”
유는 비꼬듯이 말하고는 잠가놓은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곳에 ‘바니걸’이 있음은 자명했다. 사정을 듣자하니 정신지배 능력을 역으로 걸어놓았다고.
현재는 완전히 무력화되어서 다음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활동을 정지했다고 한다.
그러니 간결하게 말해서,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나는 이미 클로까지 챙겨놓았다. 유도 지휘봉을 들고 있고.
유는 한 차례의 심호흡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정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동작은 각각 3초 안에 이루어졌다.
나는 잠시 유를 돌아보았다. 유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것을 본 듯했다.
그래서 나는 유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유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목소리로 말해줘야 했다.
“왜 알몸의 금발 여성이 구속당한 채 의식을 잃은 상태로 저기에 있어!”
“알몸은 아니었어요, 알몸은! 갸아악! 생각해보니 마베 꼬마 그 녀석이 무장해제가 어쩌니 자결 방지가 어쩌니 하면서 뭘 해놓는다고 했던 것 같고! 무난하게 결박하고 끝낼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안전주의적이었던 것 같고!”
“금발 여성은 맞았던 거야?! 그랬던 거야?!”
“앗, 그거 모르셨구나!”
아무래도 양자가 놀랐던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차이를 정리하기 전에 유는 후다닥 문 너머로 들어가 뭔가 작업을 개시했다.옷을 입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쪽은 도저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은 인공물도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사람이라는 인상을 내게 남겼다.
그래, 명확한 사람. 갈룸처럼 뿔이 달린 것조차 아니었고, 그냥 금발일 뿐인 사람.
그러나 모든 정황을 통틀어 말하건대 그 금발의 여성은 파계종이었다.
30분 안에 죽여야 하는 파계종 말이다.
여기까지 내적으로 파악할 무렵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그때 유는 그 파계종에게 하의를 다 입히고 상의를 입혀가고 있었다.
외간 남자가 이곳에 들어왔으니 뒤따라오는 유의 비명은 당연한 것이었다.
귀를 막고 그저 소리를 지르게 잠시 내버려두자, 유는 여전히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동자로 물었다.
“들어오면 어떡해요! 가슴 다 보인다구요!”
“아니…… 입히지 마. 그냥 대충 가리기만 해.”
“뭐예요, 지금?! 변태예요? 변태인 거죠?!”
“그런 의미가 아니고…….”
나는 거기서 ‘옷은 사람만 입는 거잖아.’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월이야말로 이 대목에서 옷은 사람이 입는 것이라고 말할 터였다.
나는 한월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연약한 인간이었지만 그 사실을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추한 제 모습이라고 해도 감추고 싶은 것이 내 본성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말했다.
“무슨 필요가 있어, 죽을 녀석한테.”
“아, 아?”
“어차피 죽으면 먼지처럼 흩어지는 거잖아, 파계종은. 찝찝하게 벗은 시체 같은 거 볼일도 없다고.”
매우 멋있는 대사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유는 살며시 웃음을 머금고 다음과 같이 의표를 찔러댔다.
“오빠는 연약하군요.”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나를 조롱하거나 놀려먹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유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래서 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유는 직접 설명해주었다.
“저는 말이죠, 이 여자가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이 여자가 죽는 건요, 파계종이거나 인간이라서 죽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죽는 거예요.”
“나도 비슷하게 생각…… 하고 싶네.”
또 억지로 강한 척을 하려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갑자기 열이 확 치솟았다. 나는 내가 한월보다 나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냥 확고하지 못했던 것뿐일지도 몰랐다.
한월은 적어도 확고하게, 자신이 모든 것을 지켜낼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 이 파계종을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가능할 거라고 맹세했다.
한편으로 유는 이것이 파계종이 아니라 사람이라도 죽이는 게 가능할 거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중간에 서서 내 감정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당연한 거죠.”
“난 솔직히, 지금껏 너희가 좀 꽁으로 돈 받고 논다고 생각했다. 근데 진짜 아니네. 고등급 파계종하고 싸우고 죽이는 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고등학생들이 능력 좀 있다고 시키는 나라도 혐오스러워, 진짜.”
“탈락한 사람도 많은걸요.”
“탈락?”
“네에, 탈락. 아, 오빠는 모르시려나. 원래 국가기관에서 일하기 전에 테스트를 봐요. 모의 전투 같은 건데……. B등급 지정능력자부터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고등급 파계종과 싸우게 되잖아요? 그러면 전투력만큼이나 정신력도 강해야 한단 말이죠.”
유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어느새 주저앉아 있었다.
“관리국의 어떤 지정능력자가 조종하는 인형과 일주일 정도를 동고동락해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고…… 친해지죠. 그때까지는 사실 그 테스트의 진의를 알려주지도 않는데요, 일주일이 지나면 그 인형이 갑자기 저희를 공격하는 거예요.”
유는 내 머리 위에 손을 턱 얹었다.
“그러면 저희는 일주일간 함께 놀았던, 저희의 친구가 된 인형과 싸우는 거예요. 말이 통하고 감정에 호소할 줄 알고 공유하는 추억으로 저희를 설득하는 그 인형과. 30명 정도가 지원했는데 저희 셋만 붙었어요.”
“너흰 사람도 아니야.”
“사람이니까 붙었다고 생각해요.”
그 작은 손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왜냐하면 각자 내놓는 답이 다르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계속 말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쓰러뜨렸어요. 재인 언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쓰러뜨렸구요, 그리고 누구냐, 한월 오빠는…… 갑자기 인형 편에 섰어요.”
“하이고.”
“깜짝 놀랐죠. 관리국에서도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대요. 보통 ‘아, 이런 실험으로 날 자극하는구나!’하고 알아차리고는 자긴 지정능력자가 되지 못하겠다는 사실을 깨닫거나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식이거든요.
근데 그 오빠는 갑자기 막, 대검을 들고 ‘그럼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이런 거예요. 환장할 노릇이지. 웃긴 건 그러면서 또 인형을 설득시켰다는 거.
결국 싸우지 않고 무력화에 성공했다는 건데, 이것 때문에 관리국 내부에서도 논쟁이 많았어요. 이걸 합격으로 치느냐 마느냐.
뭐, 결국은 승도 아저씨가 테스트 목적인 ‘무력화’에 성공했으니 합격이라는 논리로 통과시켰지만 말이죠?
그렇지만 전 그때부터 그 오빠가 엇나가지 않게 옆에서 도와야겠다고 맘을 먹었어요.”
짧은 어루만짐이 끝나고 유는 일어섰다.
그녀는 여전히 지휘봉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면 지금의 너는 도와주겠다는 맘을 내던진 건가?
그러나 목소리로 내어 묻기도 전에 유는 스스로 답했다.
“저는 한월 오빠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렇지만 그건 지금 이대로의 한월 오빠는 아니겠죠. 설득시킬 수 없고 관철시킬 수 없는 선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럴 때에는, 과감하게 내어줄 것을 내어줘야 한다고. 그건 결코 수치스러운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유가 지휘봉을 들어 올렸다.그녀의 위압이 빠르게 움직였다. [무구지정]이라는 울림이 온몸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나는 유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란 유가 뒤로 주저앉았다.
위압이 흩어졌고, 나는 클로를 부여잡고 있던 오른손을 휘둘렀다.
짧은 동작 끝에 클로는 금발 여성 아니면 파계종인 무언가의 몸을 꿰뚫었다.핏물은 튀지 않았고 바니걸은 마치 식물처럼 죽어갔다
분산되는 잿가루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주저앉아 있던 유를 향해 나는 물었다.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라도, 그래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유는 화사하게 웃어 주었다.
“얼마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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