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013. 우는 토끼
* * *
명분 없이 다툰다니 이 무슨 괴이한 일이냐.
명분 없이 싸움을 피하신다니 이 무슨 망령된 일입니까.
그것은 또 무슨 무례한 말이냐.
다투고, 부숩니다. 그래서는 아니 될 이유가 나타나기까지는 언제까지고.
저들의 믿음도 그러할 것입니다. 가령, 제왕께서 명분 없이 손을 놓고 계신다면 그들이 믿어주겠습니까?
또한 그들이 제왕의 선한 은덕을 따라 주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있고 그들과 더불어 우리가 있다면, 그것들 중 하나는 없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말일 뿐이지, 도리가 아닌 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이 어찌 도리가 아니냐.
도리는 제왕께서 결정하시는 게 아니기에.
그렇더라도 나는 노력할 것이다. 나의 뜻이 닿게 할 것이다. 우리와 그들은 다르지 않다.
실로 그렇습니다. 우리와 그들은 이제 없고, 우리와 저들이 있지요.
노래가 이어졌다.
***
“우리가 뭘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말해.”
“간단하다. 그러나 잠시, 조금만 기다려다오.”
갈룸은 TV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TV에서는 파계종과의 전투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지상파 채널에서 이런 모습이 생중계되는 것은 매우 드문 풍경이었다.
파계지점이 발생하면 전파 장애가 극심해질뿐더러, 무엇보다도 촬영 도중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다. 편집해서 방송하는 게 일반적이다.
즉, 이번에는 아무런 전조 없이 곧바로 파계종부터 튀어 나왔다는 것.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는 신사복 차림의 하젠야크트가 포착됐다. 저쪽 상황이 얼마나 꼬여 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갈룸은 화면이 멈춰버리고 사과 메시지가 떠오를 때까지 TV만을 노려보았다.
더불어서 랑도. 그쪽은 명확하게 자기 언니만 쫓고 있었다.
다행히 다치는 장면은 송출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보기 싫은 생중계가 끝나버리고 갈룸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짐을 저곳으로 데려가거라.”
내 대답은 물론, ‘싫어.’ 였다.
“아직도 상황파악이 덜 된 것이냐?”
“덜 된 게 아니고 안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건 내 상황이 아니거든.”
“어리석은 자로군. 이것은 오롯한 그대 혹은 나의 상황이 아닌 우리 모두의 상황이다.”
“네가 저길 가서 어떻게 할 건데. 목적을 말해.”
“짐의 목적은 적절한 때에 죽는 것뿐이니라. 그 이상이 아니며 이하는 더더욱 아니다.”
“아니, 그러니까…….”
말문이 막혔다.
이 녀석의 사고회로는 자기가 죽는 것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인류를 위해 죽어주겠다는 것이다.
그 주장에 대해 아까부터 계속 태클을 걸어대고 있었지만,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지적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뒷골이 확 당기는 것 같은 안 좋은 느낌이 낫다.
잠시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랑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안 괜찮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갈룸은 등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녀석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그 굳어버린 의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죽어주겠다는 그 의지 말이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서 일단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야, 인마.”
“무엇이냐.”
“이제부터─── 어?”
이제부터 시작될 내 이야기는 ‘내가 한월이에게 네 입장을 전달해보겠다.’였다.
그러나 그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기도 전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등을 돌린 갈룸에게 슬그머니 다가가자, 녀석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
뚜렷했다. 붉게 상기된 얼굴과 다소 거칠어진 호흡. 아래를 가로질러 눈물이 흘러내려간 자욱이 돋아나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왜, 왜 울어?”
“누가 울었다는 것이냐.”
“울었다는 게 아니고 울고 있거든, 지금.”
내 말을 들은 갈룸은 한 차례 몸을 움찔 떨더니, 작은 손으로 자기 뺨과 눈가를 짚어보았다.그리고 무엇이 묻어났는지 확인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눈물이었다.
갈룸은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촉촉하게 젖은 손등을 내려 보았다.
“울지 않느니라.”
“아니, 거짓말을 하려면 좀 그럴싸하게 하든가.”
“거짓말이 아니다! 그저 몸에 익숙하지 못할 뿐이다!”
“몸에?”
갈룸은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녀는 모든 눈물을 닦아냈으나 달아오른 얼굴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갈룸은 갑자기 이쪽으로 우다다다 뛰어왔다.
이윽고는 한참이나 가까워진 거리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어떻게 이렇게 나약한 몸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무슨 말이야?”
“아주 조금만 겁을 먹고 놀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냐!”
갈룸이 떼를 쓰듯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절이 전혀 되지 않은 생목으로 말이다.
그러나 몇 초가 지나지 않아서 갈룸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간신히 깨달았다. 그녀는 울상을 지은 채 한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절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짐이 지나치게 흥분했다. 미안하다.”
“아니, 됐어. 그보다 뭐야. 왜 그러는 건데?”
“그대가 알 바가 아니다.”
“네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아야 내가 너를 믿어주지.”
그 말에 갈룸은 가만히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뚜렷하게 직시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나는 조심스레 눈을 피했다.
그런데도 갈룸은 한참이나 나만 바라보고 있다가, 체념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몸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몸을?”
“그래. 그래서 조절되지 않는 행동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핑계를 댄다고 해도 제왕이라는 자가 이렇게 무도하게 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미안하다.”
윽박을 지른 당사자가 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까닭에 나는 별다른 질책을 할 수도 없었다.
그보다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녀가 갑자기 흥분한 이유였다.
아주 조금만 겁을 먹고 놀라도 눈물을 흘린다는데, 그렇게 허들이 낮은 것치고는 지금까지 항상 근엄하고 진지한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내가 갈룸에게 묻자, 갈룸은 한동안 대답을 꺼렸다. 전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중간에 끼어서 자기 언니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있던 랑까지 내게 돌아왔고, 갈룸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인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그 옆에 앉았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는데, 갈룸은 그보다도 더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갈룸이 내 손을 확 낚아채서 자기 품으로 끌고 가 꽉 껴안은 것이었다. 이번에도 한 박자 늦게 갈룸은 스스로가 저지른 일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갈룸은 아까와는 다르게, 놀라는 기색도 역성을 내는 일도 없이…… 그저 지친 얼굴을 하고는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안하다.”
갈룸이 중얼거렸다.
“심장이 너무 뛰어댄다. 아파서 미칠 것 같다.”
“이유를 말해. 대체 왜 그래?”
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지만, 그녀가 갑자기 사악한 파계종으로 각성한다든지 하는 전개를 막아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랑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곤란해 하고 있는 나를 개의치도 않고, 그저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던 갈룸은 머지않아서 대답했다.
“하나가 죽었다.”
“하나가?”
“신사가 죽었다.”
“신사? 그 연미복?”
갈룸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내 어깨에 후우 하고 입김을 내불었다.
어떤 다른 뉘앙스도 없이 안정을 찾으려는 의도로만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비를 잔뜩 얻어맞은 어린 강아지가 온기를 느끼면 우선 달라붙고 보는 것과 같다.갈룸은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줄줄 눈물이 흘렀다.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솔직히 그녀가 왜 이러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사가, 즉 자신이 막아 세우겠다는 또 다른 형태가 죽었다는 것인데…… 결국 사람들을 위해 죽어주겠다는 그녀의 목표에 가까워져가는 것인데도 갈룸은 괴로워하고 있다.
나는 랑에게 눈짓으로 허가를 받고 갈룸의 등을 두드려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갈룸은 토해내듯 물었다.
“왜 사라지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냐.”
그 물음에 나는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짐은 지금껏 존재해본 적조차 없다. 지금이 처음이니라. 분명히 그럴진대도…… 사라진다고 하니 두렵다. 심장이 뛰어대고 땀이 흘러 미칠 것 같다.
고작 그대가 곁에 있어주는 것뿐인데도 고맙다고 생각해버릴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너는 네가 직접 죽겠다고 했잖아?”
“그렇다. 그렇게 해야 하니까.”
“그럼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왜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사람들을 돕겠다는 건데.”
“그러면 그대는 왜 그랬느냐.”
갈룸의 말이 나를 관통했다. 관통한 단어의 조각은 서서히 나를 돌아보았다.
“왜 저 아이를 도왔느냐. 그대에게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인가? 도망치지 못해 생기는 당장의 고통을 눈앞에 두고도, 어째서? 삶을 구걸해야만 한다면 왜 그대는 남을 구했느냐.”
“그거야, 나는…….”
“천성이 이렇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 그보다는 그저, 나서지 않았을 때의 괴로움을 알기 때문에. 그대는 그대가 일어서지 못해 저 아이가 죽는 것이 자신이 죽는 것보다 괴로운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 너는 그 마음을 어떻게 알았다는 건데.”
갈룸은 씹어뱉듯이 웃음을 흘렸다.
“독일은 아름다운 나라더구나.”
나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너는 파계종이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대는 인간이지 않으냐.”
갈룸은 물었다.
“인간이라고 남이 죽는 것을 자신이 죽는 것보다 슬퍼하는 천성을 가진 종이었더냐.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져 평화와 번성을 이룩한 것이더냐.
아니면 그저, 몇몇 안 되는 그대와 같은 외도들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더냐.”
어렵사리 거기까지 말한 갈룸은 여전히 호흡을 떨어대고 있었다. 그것은 난생 처음 육식동물을 마주한 새끼 사슴처럼 가엾고 원초적인 공포였다.
그래서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아마 굴욕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처절하게 내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어서 갈룸을 꼭 안아주자, 녀석은 끌어안긴 주제에 참으로 건방지게도 이렇게 말했다.
“짐은 너에게 아무런 믿음을 줄 수도 없다. 그런 수단은 짐에게 없다. 짐은 그대처럼…… 어울리지도 않는 변덕을 부리고 있을 뿐인지라.”
“그렇다면, 차라리 한월이에게 가는 편이…….”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느냐. 그 소년에게는 변덕이라는 것이 없다. 그에게는 원칙이 있을 뿐이다.그자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으나, 자신이 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대는 다르지 않으냐. 그대는 짐의 마음을 알지 않으냐. 그대는 짐과 같이, 어울리지도 않는 변덕을 부려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려 하지 않았더냐…….”
품에 안긴 토끼는 처량하게 물었다.
“부디 나를 도와다오.”
나는 대답했다.
“해보기는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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