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012. 두 번째 토끼 (4)
* * *
한월은 화장실을 나서며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베 꼬마에게서 문자 몇 통이 수신되었다. 관리국 본부의 해킹 건과 관련해서 수상한 정황을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그 문자를 받고 한월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우선은 해킹 건에 대해서 기억은 났다. 관리국 데이터가 대부분 소실되거나 복제되어 유출됐고 사라진 데이터가 있던 자리에는 플레이보이 마크의 이미지 파일만 남겨져 있었다.
한월조차 열람 불가능한 기밀까지 잃어버린 초유의 사태였기에 관리국은 최근 난리도 아니다. 그래서 하젠야크트 사안을 맡을 인원도 줄어들었고.
여기까지가 지금까지의 정황.
그리고 새로 알게 된 것은…… 바니걸 소피가 그 해킹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한월은 어마어마한 두통을 느꼈다.
객관적인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해킹을 주도했다고, 그 사실 자체는 확실하게 머릿속에 입력됐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못하겠다.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아주 기초적인 판단도, 다른 사실들과의 연결도 못하겠다. 그저 해킹을 당했다는 지식만이 무슨 영어단어처럼 머릿속에서 떠돌았다.
그런 찰나에 마베 꼬마의 문자를 보게 된 것이다.
한월은 관자놀이를 짚고 가만히 섰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아주 얄팍하게 알 것 같았다. 마베 꼬마는 해킹의 범인을 찾고 있다.
그리고 해킹은…… 바니걸 소피가 주도했다.
그 사실들 사이에 도대체 무슨 관련이?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이 위화감은 대체 뭐지?
뭔가, 답을…….
“앗……!”
돌연, 한월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주 당연한 사실이었다. 해킹범은 그 바니걸이었고, 한월은 당장에 그녀를 잡아 관리국 본부로 이송시켜야만 했다
아니, 일단 깨닫고 보니 애초부터 이상한 것들로 가득했다.
한월은 그 바니걸에게서 파계종의 위압을 느꼈다.그런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녀가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것도, 관리국에 소속된 정식 지정능력자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째서?
한월은 당장 마베 꼬마의 문자를 다시 켜고 답장 버튼을 눌렀다.
[당장 여기로 와야 해. 여기 주안역 카페베네, 역 근처에 있는 거. 얼른. 무장해서. 그리고 바니걸 차림 금발 보면 바로 제압해. 정신 공격 주의.]
마베 꼬마는 근거리 워프도 가능하다. 늦어도 10분 안에는 도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안심…….
안심?
문득, 마지막으로 한월은 놓쳐버린 사실을 깨달았다.
한월은 대검을 뽑아들었다. 젠장, 하고 한월은 자기 자신을 힐난하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늦었다. 한월의 대검에 새카만 위압이 감돌기 직전, 카페의 온갖 가구가 한월에게 날아들었다.
한월은 그것들을 허공에 띄운 위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유!”
소녀는 불러도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기물을 다시 집어던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신을 조종하는 건가? 한월은 이를 악 물었다.
유 정도라면 제압할 수 있었다. 문제는 상처 입히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러나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거대한 가시가 한월의 대검과 팔 사이를 후비고 들어왔다.야성적인 칼날이 한월의 목옆을 스쳐지나갔다. 한월은 그 이빨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젠야크트……!”
“유감스럽게도 하젠야크트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연미복의 토끼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원컨대 이 보잘것없는 허물을, 신사라고 불러주길.”
소박한 바람과 함께 무수히 많은 가시가 날아들었다.
***
[영역지정: 쇄도대지]
공간 전체가 검은 위압에 잠겼다.
땅바닥으로부터 솟구치던 가시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염동력에 의해 날아들던 의자와 탁상이 우주비행선 안에서의 물체들처럼 느릿하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대검이 박살 냈다.
그러나 신사는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신사는 허공에 불러낸 기다란 가시 하나를 붙잡아 한월에게 다가갔다. 그가 걷는 걸음마다 검은 안개가 피어났다.
한 사람과 한 괴물의 같은 색 위압이 뒤섞이며 사방이 끝도 없이 어두워졌다. 그때, 갈라놓듯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안개 너머에서 밝게 빛나는 백색 가시가 한월의 어깨를 가로질렀다.
“크윽!”
아슬아슬하게 스쳐가는 순간 한월의 몸이 가속했다.넓은 카페 끝에서 끝을 1초보다도 짧은 시간에 내달릴 수 있을 만한 속도였다.
뒤로 빠지며 벽면을 밟은 한월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며 다시 신사를 향했다. 신사는 다시 안개 속으로 숨어버렸다.
한월이 그 안개 너머를 들여다볼 틈도 없이 무수히 많은 식기와 머그컵들이 날아들었다.
속도는 느렸으나 양은 지나치게 많았다. 위압을 모아 방패의 형상을 취해도 회전해서 달려드는 몇 조각은 한월의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 정신 차려!”
상투적인 대사를 내뱉어봤자 정신이 돌아올 리는 없었다. 유는 완전히 조종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가 없는 채로, 혼자서 신사에 맞설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유를 먼저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놓고 함께 응전해야만 했다.
따라서 우선적인 목표는…… 조종자를 없애 조종을 중단시키는 게 상책이다.
바니걸은 어디로 갔지? 한월이 안개 속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나는 이곳에 있다, 신사가 번뜩이는 흰색 가시로 대답했다.
치잉──! 대검과 가시가 맞부딪쳤다.
한월은 곧바로 반격을 준비했다. 신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월의 반격은 성립될 수 없었다. 그의 대검을 무엇인가가 끌어당겼다.
염동력이. 거기까지 깨달았을 때 가시는 이미 대검을 쥔 손을 꿰뚫은 뒤였다.
한월이 비명을 내질렀다.
“여기까지라니.”
신사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이어서 “이런 자를 경계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구나.” 하는 말을 입에 담는 찰나였다.
신사는 물풍선 따위가 터져 나가는 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시선을 조금 아래로 돌렸을 때, 신사는 자신의 잘려나간 오른팔을 알아차렸다.
신사는 잠시, 무엇인가에 경도된 눈빛으로 소년을 내려 보았다. 소년의 손은 분명 망가져 있었다. 십자가에 꿰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손등 하나가 새하얀 가시에 관통당해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검을 쥐고 있었다.
그 검이 전에 없을 정도로 검게 빛났다. 뿐만 아니었다. 검은 위압이 뱀처럼 기어가 서서히 가시의 표면을 감싸더니, 이윽고 소화를 끝내버리듯 가시를 통째로 지워버렸다.
마지막으로 뻥 뚫린 소년의 손등을 대신하듯 그 구멍에 위압이 가득 찼다.
“왜 이걸 감추고 있었지?”
신사는 침착하게 물었다.
“지난 전투에서 너는 내게 패배했다. 어쩔 도리도 없이 져버렸다. 너희가 무뢰한이라 부르는 그 자만 아니었더라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왜 이런 것을 감추고 당하고만 있었지?”
신사는 머지않아 답을 알아차렸다.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래.”
한월은 말했다.
“마음가짐의 문제 같은 거지.”
“지키고 싶다는 소망 같은 것인가?”
“비슷해.”
“하지만 지난번에는?”
“지난번에는 재인이가 있었지.”
“이해하기 어렵군. 그 아이를 아끼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녀석은 이미 울음을 그쳤으니까.”
“……아하.”
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소망을 이끌어 자신을 강하게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아. 지금은 누구의 소망을 빌리고 있는 거지?”
“너를 막기 위해 죽겠다고 자처하는 녀석이 있어. 그 녀석 거라고 해둘게.”
신사는 웃음을 머금었다.
“아아, 그렇군. 미련한 것들.”
공중에서 무수히 많은 가시가 솟아났다.
하나의 위로 다른 하나가 솟아났다. 겹치고 겹쳤다. 누군가를 가둘 감옥의 창살처럼, 혹은 벌어진 상어의 아가리 속처럼 천지가 솟구치는 가시로 가득했다.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 한월은 방패를 전개하는 것을 포기했다. 뚫고 나아간다.
그게 그의 자기지정. 자기 자신에게 내건 맹세.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 각오를 목소리로 내어 부른다면───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미련하다.”
신사는 필사의 각오를 일축했다.
“경계할 가치는 있었으나 결국에는 우둔했던 것이다. 참으로 우둔한 것들. 운명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고, 가치란 타인의 인정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랑스러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늘.”
“알 게 뭐야. 울고 있는 녀석이 있었고…… 버리고 도망칠 수 없을 뿐이야.”
“그런가.”
일제히 가시는 꿰뚫고 나아갈 적을 향했다.
“그런 거야.”
가지런히 대검은 헤쳐 나아갈 벽을 마주했다.
“그렇다면, 그 우둔함의 대가”“그러니, 그 누구도”“죽음으로 돌려받겠다!” “주저앉게 두지 않아!”
***
마베 꼬마는 스태프를 휘둘렀다.
아마 주변에 지정능력자가 있었더라면[행동지정: 마법: 단거리 워프!Se téléporter!]라는 감각이 간할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그녀의 속력을 따라잡을 만한 지정능력자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현재 정확히 초당 100미터의 속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출발지는 송도 인근 유원지였고, 목적지는 주안역의 카페베네였다.
본래는 그녀 특유의 지정능력인 ‘마법’을 이용해 매우 독단적인 방법으로 갈룸을 추적하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은 했고, 어쩌면 오늘 안에 생포에 성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전을 포기했다.
한월에게서 SOS문자가 오질 않나, 그러고 나서는 통화도 받지 않는다.
유도 마찬가지이고 아마 그들과 무관한 상태에 있을 무뢰한조차 연락이 안 된다.
간신히 재인이 받긴 했으나 그녀는 사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워프 좌표를 계속해서 수정해가며 주안역까지 도달할 시간은 대략 10분 정도.
어지간한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다. 그러나 마베 꼬마는 그 속도조차 불안했다. 한월이 긴급문자를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보냈을 때는 나중에 꼭 다치고 돌아왔다. 그런 것을 마베 꼬마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마베 꼬마는 한월이 다치느니 자신이 다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몇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한 5분 정도 흐른 시점에서 좌표를 확인하는 도중 관리국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관리국에서는 파견을 거부했다. 인근에 지정능력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근래 관리국의 행정이 이상했다
무뢰한이 그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니 조만간 해결이 나기는 하겠지. 하지만 마베 꼬마는 당장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렇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살아만 있어 주시오……!”
그렇게 단신으로, 마침내 역 인근에 도착했다.
그러나 마베 꼬마는 혼란스러웠다.
인근에 파계종은…… 분명히 존재했다. 아주 강한, 못해도 B등급인 파계종의 위압이 느껴졌다.
그러나 위압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쪽으로 향하면 좋을지 마베 꼬마는 알 수 없었다.
물어보려 전화를 다시 걸어도 대답은 없었다.
결국 마베 꼬마는 일단 더 가까운 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마주쳐버리고 만 것이다.
“아핫핫핫…….”
토끼를.
아니, 토끼라고 하면 다소 비유적인 표현이었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자면 바니걸이었다.더불어서 금발이었다.
마베 꼬마는 그런 존재를 확인한다면 제압해야 한다고 이미 한월에게 문자까지 받아둔 뒤였다.
마베 꼬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눈앞의 파계종을 불러보았다.
“그대, 한월 공께 무슨 짓을 했소.”
“아이고, 히로인 2번 등장 입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조롱을 마베 꼬마는 가뿐히 무시했다.
“한월 공을 어떻게 했냐고 물었소.”
“글쎄요?”
휑한 대낮에 아무렇지도 않게 바니걸의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그 변태 같은 파계종은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대답에 열이 받은 마베 꼬마가 스태프를 쳐들었다. 그 위로 수많은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람? 바니걸은 태평하게 말했다.
“귀여운 금발로리 아가씨, 제 앞에 무릎을 꿇으세요!”
그것은 단순한 권유가 아니었다.
“이거, 명령입니다☆”
***
“싫소만?”
정적이 찾아왔다.
바니걸은 몇 초 정도 지나서 찌뿌둥한 얼굴로 뒷목을 긁적거렸다.아무래도 최근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바니걸이니까.
음, 아마 신사가 이 얘기를 듣는다면 ‘네년은 그냥 남의 내장을 끄집어내는 창부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셰익스피어 번역체의 일침을 가할지도 모르겠지만, 진짜다?바니걸은 상당히 열심히 일했다.
가령, 그래, 서울지부를 비롯한 관리국에서 정보를 빼낸 것은 그녀다.그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바니걸과 신사가 네 번째 형태를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지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현재는 한월과 유를 궁지에 몰아넣기까지 했다. 취할 것을 취하고 부술 것을 부순다. 그야말로 전략의 천재! 바니걸은 그렇게 자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사는 바니걸을 인정해주는 법이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도 신사는 별로 거론하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런 파트너와 일을 하다 보니(아마 존재론적으로 같은 개체마저 아니었다면 바니걸이 먼저 뒤통수를 갈겼겠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헛것이 보이고 들리고…….
“싫다고 했소.”
“흐으으음.”
아무래도 헛것도 헛소리도 아닌 모양이지? 바니걸은 멍한 얼굴로 마베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꼬마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서 있었다. 당초의 명령대로 무릎을 꿇는 일 따위 결코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바니걸은 인상을 팍 구겼다. 과연, 스트레스 덕분에 이제는 능력의 효율까지 떨어진 거지.
게다가 이제 와서 위압을 관찰해보니 눈앞의 꼬마는 A등급에 간신히 미칠 정도는 된다. 명령으로 완전히 지배할 수가 없는 타입이다, 이런 것이지.
그래도 괜찮다. 암시 정도는 가능하다.
“거기 계신 금발로리, 오늘은 그냥 물러가시는 게 어떨까요?”
“무슨 개소리요?”
“흐으으으응?”
바니걸은 눈을 깜빡거렸다.
“아아, 젠장, 인간 생활을 너무 만끽했더니 인간의 의학적인 도움까지 필요해졌다 이런 겁니까? 내 귀가 이상한 거죠? 아니면 정신입니까? 정신지배 능력자가 정신이 이상해졌다 이런 거군요?”
“여전히 개소리를 하는군.”
“그러니까……. 내 말더러 개소리라는 거죠? 그런 겁니까아?”
“그럼 달리 누구한테.”
바니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의 미간이 더없을 정도로 좁아졌다.
“이거, 뭡니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누가 설명충 역할을 좀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아, 인터넷 유행어로군. 그 설명충 내가 하겠소.”
“와, 간만에 호응받았단 말이지요.”
“흠흠.”
그 빈정거림을 개의치 않고 마베 꼬마는 말했다.
“그대는 두 가지 착각을 했소.”
“착각, 이라니?”
“한월 공이 그대에게 정신지배 능력이 있다고 미리 알려줬지.”
바니걸은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보세요, 나는 그런 3류 정신지배 능력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미리 안다고 해서 ‘헉! 이 자식! 내 능력을 파악하고 있어?!’ 같은 클리셰적인 대사를 내뱉게 해주는 그런 말랑말랑한 파계종이 아니란 말이지요, 저는!”
“끝까지 들으시오. 두 가지 착각이라고 하지 않았소?”
“이번엔 그쪽이 개소리를 하는 것 같은데?”
“뭐, 듣고 보면 아실 거요. 그러니까 즉, 이런 얘기요.”
마녀는 스태프를 휘둘렀다. 그 위로 조그마한 마법진이 떠올라 회전하고 있었다.
“마녀에게 디스펠(Dispel)은 기본 소양이라는 것이지.”
바니걸은 처음에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냥 자신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계속해서 믿기로 했다.
그러나 바니걸은 지금의 모습을 얻은 뒤로 다소 많은 양의 일본산 양산형 RPG게임을 플레이 해왔고, 그 과정에서 디스펠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차, 하고 깨달은 바니걸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거 이러면 완전 나가리인데.”
“나가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들으시오. 이제부터 마녀의 두 번째 소양을 알려줄 테니.”
“또 있습니까?”
그때, 바니걸은 하나의 파계종으로서 다음과 같은 강한 위압을 느낄 수 있었다.
[행동지정: 마법: 유성낙하!Un mété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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