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69화 (69/112)

〈 69화 〉 011. 첫 번째 토끼 (3)

* * *

그 남자의 이름은 백승도이며 연령은 내가 알기로는 34세이다.

국내에 몇 명 없는 S등급 지정능력자답게 어지간한 연예인이나 정치인보다 인지도가 높은 유명인사.

사적으로는 나와 같은 건물을 쓰던 새카만 칼날 팀의 일원이기도 하다.

막상 마주쳐서 대화를 나눈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에게서 ‘한월이 오빠를 합류시킨 건 그 아저씨 공이 크다니까요!’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

나에게 있어 어떤 인간인지 다 말했으므로 이제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할 시간이다.

그건 어렵지 않다. 그는 온갖 귀찮은 표현 대신 ‘곰같다’라는 한 문장으로 외관 묘사를 끝낼 수 있는 인간이다.

지정능력자가 아니었어도 현관문 정도는 찢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외관에 어울리게 그는 신체강화 계통의 지정능력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 부분에는 아무 흥미도 없어서 자세히 모른다. S등급이니까 뭐,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자잘한 사항보다 중요한 것은 그 S등급이 현관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는 건데.

“실례하겠다.”

무뢰한은 가볍게 목례했다.깜짝 놀라 뛰쳐나온 랑에게.

랑은 인사를 받은 와중에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무뢰한은 갑자기 나를 발견하고는, 그제야 조금 놀랐다는 것처럼 물어왔다.

“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그쪽은 누구지?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나?”

“인근에서 일하던 길앞잡이 팀원이었습니다.”

내가 조심스레 대답하자 무뢰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때 바롱을 처리했다는 그 친구로군. 머즐드독스로 자리를 옮겼다고 들었는데 이런 역할을 떠맡고 있었나?”

“그거에 관해서, 말인데요.”

나는 조금 울컥해서 말했다.

상황 상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아이 보호자입니다.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무례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무슨 뜻이지?”

“저거 고쳐놓고 당장 꺼지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무뢰한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새삼 깨달았는데 그의 신장은 못해도 190센티미터를 넘어선 듯했다.

나도 단신은 아니건만, 고개를 위로 쳐들어야 시선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무뢰한의 얼굴은 높은 위치에 달려 있었다.

간신히 쳐다보았을 때 느껴지는 위압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위압은 어지간한 고위 파계종의 위압을 무無로 돌릴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변을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곳이 나의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 집이었다면, 뭐, 변상은 분명히 받았을 테지만 ‘아, 예, 무슨 일인지 몰라도 실컷 조사하고 가세요.’라고 저자세로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렇게 행동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나의 집이 아니라 랑의 집이며, 나는 랑의 보호자이다.

어떤 경우에도 랑의 영역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S등급 지정능력자가 아니라 S등급 파계종이라고 해도 이 영역을 사수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했다는 선례를 남기는 순간 나는 영영 랑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 지금 이 아이 집의 문을 부수고 멋대로 들어왔습니다. 영장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없다는 확신을 얻은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이 잘 나간다는 S등급 지정능력자일지 모르겠는데, 여기 있는 꼬마 애는 머즐드독스 차기 총수입니다. 당신이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 아닙니다.”

어떻게, 말도 더듬지 않고 용케 쏘아붙이자 무뢰한은 무표정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조금 언짢은 소리를 들었다고 다짜고짜 사람을 때려눕히는 어떤 의미의 ‘무뢰한’이 아닌 줄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긴장하게 된다. 쓰러지지 않는다, 하고 마음을 먹는대서 정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까지 솟아날 정도로.

정말로 불굴이 제 역할을 하기 전에 무뢰한은 진중한 얼굴 그대로 대답했다.

“그쪽 말이 맞아. 내가 실례를 범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A등급 이상의 파계종이 인간 형태를 취하고 도주했는데, 이 부근에서 그 위압이 감지됐단 말이지. 만일 그 파계종이 날뛰기라도 한다면 인명피해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을 텐데, 그걸 막기까지 시간이 부족했다.”

“어떤 경우에라도 용납할 수 없는 건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정말 다급했다면 먼저 그렇게 사정부터 밝혔어야죠.”

“아까도 말했지만 이곳에 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B등급 정도의 위압이 같이 확인되어서 말이지. 이제 와서 보니 그쪽의 위압이었지만.

유가 있었다면 아마 납득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만…… 하지만 멋대로 착각해서 결과적으로는 피해를 입혔군.

내 잘못이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지만 차후 제대로 사과하고 변상하겠다.”

무례한 동시에 다른 의미에서 예의바른 인간이었다.

더 항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도 하고, 당사자도 저자세로 나오기에 이쯤하기로 했다.

랑도 무뢰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으니까.

물론, 내 등 뒤에 숨은 상태에서 그렇게 했다. 무뢰한의 비주얼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소간의 실랑이 끝에 상황이 정리됐다.

무뢰한은 다시 눈빛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어쨌거나, 이곳에 파계종이 있는 것은 틀림없겠지?”

그 물음 하나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여기서부터 화제가 바뀌고 공수가 전환한다.

이곳에 파계종이 있냐는 물음에 답할 바는 당연히 예스다. 갈룸은 벌써 베란다 쪽에 숨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솔직하게 대답하면 무뢰한은 깔끔하게 갈룸을 끌고 나가겠지.

그걸 말릴 명분은 더 이상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지정능력자가 위험한 파계종을 잡아가겠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말린단 말인가.

그렇지만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둘 수는 없다. 갈룸이 찝찝한 소리를 남겼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하고 싶으면 자길 도우라니. 근거 하나도 대지 못한 주제에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푸념하면서도 일단은 시간을 끌기로 결심했다.

물론 나는 무뢰한이나 한월을 포함한 몇몇 인물들이 참가하는 스펙타클한 대서사시에 뛰어들 마음은 조금도 없다.

아마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여기서 그냥 랑과 노가리만 까고 있는다고 해도 세상은 그들이 알아서 구하거나 못 구하거나 할 것이다.

내가 끼어든다고 해서 더 쉽게 구할 것도 아니다. 내가 빠진대서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도 않다.

그쪽 운명이랑 이쪽 운명은 별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내 신조였고, 그 신조를 따르자면 결국 갈룸을 내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만 더 상황을 판단하고 싶었다.

본래라면 안 했을 행동이지만 그럴 기회가 눈앞에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묻게 되는 것이었다.

“영장부터 보여주세요.”

무뢰한은 잠시 이해가 안 간다는 것처럼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영장이라면, 내가 아는 그 영장 말인가?”

“당연하죠. 그런 절차도 모릅니까?”

“아니, 안다. 그렇지만 지금껏 요구받은 적이 없어서 말이지. 챙겨올 것을 그랬군. 늘 필요가 없었는데.”

S등급 지정능력자인 무뢰한이 파계종을 잡겠다고 달려든다.

거기에 항변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거겠지.

상황이 너무 초월적이라 그런 실없는 농담까지 떠올리고 앉았다.

무뢰한은 잠시간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부와 협력하는 지정능력자가 파계종과 전투하는 도중 발생하는 손해에 관해서는 정부가 그 신분을 보증하고 변상하는 법률이 있다. 나는 분명, 지금 이 상황을 파계종과의 전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 파계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되지 않았잖아요.”

“정황 상 이곳에 있다. 내 말이 틀린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황만으로 증언을 하면 불리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무뢰한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무례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파계종을 잡아 분쇄하는 건 온당 나의 몫이다. 국가에 소속된 지정능력자조차 아닌 그쪽에게 일일이 허가를 받을 필요는 느끼지 못하는데.”

“내 허가가 아니고, 여기 있는 이 제갈랑이라는 사람의 허가인데요.”

“망할.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 등 뒤에 숨는 격이군.”

무뢰한은 들리라는 것처럼 욕지거리를 했다.

그러나 그로서는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영장은 분명 받았을 테지만 어쨌든 소지하지 않은 채였다. 파계종이 이곳에 있다고 선언해 모두를 납득시킬 증거가 확보된 것도 아니다.

아마도 위압을 추적해 이곳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로는 갈룸은 아까 현관문이 박살 난 직후부터 위압을 극도로 축소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무뢰한이 이 이상 조사를 펼치려면 집 주인인 랑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S등급 지정능력자가 움직인다는데 그 앞을 가로막는 것부터 시작해서 파계종의 편을 드는 것까지 어째 우리가 악당이 된 것 같지만 별 상관은 없다.

우리가 잠시 깐깐한 악당 역할을 맡는다고 세상을 구하지 못할 녀석들이었으면 어차피 끝장날 세상이었으니.

그러니, 따라서, 나와 랑의 주장은.

“날더러 사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시간이 없다. 위압이 끊겼는데 어쩌면 벌써 도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지금 그쪽의 행동이 차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 조금이라도 고려하고 있는 건가?”

“아뇨, 안 합니다. 보신주의자라서.”

“미쳐버리겠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나?”

“교육 목적입니다.”

나는 어느새 앞으로 나와 있는 랑의 어깨를 두드렸다.

굳어있던 랑은 질겁했지만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우리 모습을 한번 쓱 쳐다본 무뢰한이 패색이 짙은 한숨을 흘렸다.

상대방의 크기를 재고 있는 것 같았다. 한쪽은 B등급 지정능력자이고, 다른 한쪽은 차기 재벌총수.

S등급 지정능력자라고 해도 귀찮은 상대들이겠지.

재벌총수를 ‘귀찮은’ 수준까지 격하시킨다는 점에서 무시무시한 남자였다.

그럼에도 귀찮은 것은 그냥 귀찮은 것이었다.

무뢰한은 입을 열었다.

“그쪽이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B등급이라니 B등급에 허가된 수준까지 말하겠다. 그 파계종은 하젠야크트의 파편이며, 한월에 의해 회수되었다.”

“그 정도는 압니다.”

“대단하시군. 그럼 그 꼬마 형태의 파계종이 자살을 바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고?”

“타인에 의한 자살, 말이죠.”

“그렇다.”

무뢰한은 잠시 헛기침을 했다.

“그녀가 말하길, 하젠야크트라는 개념은 총 네 가지 형태로 분화가 가능한데, 현재까지 분리된 세 가지 형태는 그렇게까지 큰 위험은 되지 않는다는군. 대화나 협력이 가능하다, 라고 해야 할까. 원활하지 못하겠지만.”

분화되는 가짓수는 처음 듣는 것 같다.

세 가지 형태라.

정황을 파악하고 있는 가운데 무뢰한은 말을 이어나갔다.

“문제는 아직 분화되지 않은 네 번째 형태다. 그 형태는 다른 의식을 비롯한 주변 세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인간의 말살만 부르짖는다는군. 절제된 적의와 통제를 벗어난 파괴는 완전히 다르다, 라는 게 그 어린아이 형태의 파계종이 설명한 바였다.”

“잘 알아듣고 있습니다만, 참언하자면 갈룸에게서 인간을 향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는데요.”

“제대로 봤다. 그게 우리가 곤란하다고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무뢰한은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처럼 침착하면서도 뜨겁게 말해나갔다.

“그쪽이 말한 그 파계종, 갈룸이라고 불리는 형태는 한월에게 네 번째 형태를 영원히 끄집어내지 않을 방도를 알려줬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네 번째 형태는 다른 개체를 ‘파괴’하는 것을 조건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데, 그 전에 남은 세 형태를 모조리 죽여 버리면 된다는 거지.”

“다른 형태를, 모조리?”

“그래. 갈룸의 능력 탓에 세 형태 중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나머지는 곧 부활한다는군. 따라서 세 형태를 거의 같은 시기에 제압하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 선수를 쳐 ‘파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그 말을 듣자 갈룸이 왜 자신을 죽여주길 바랐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선수를 친다는 말 그대로였다. 그녀는 하젠야크트의 네 번째 형태가 형성되지 않길 바랐고, 그래서 네 번째 형태의 형성조건이 아예 성립하지 못하도록 먼저 죽어버리는 것을 택한 것이다.

즉,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은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죽여줘.’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의문점은 남는다.

“그래.”

무뢰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갈룸은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네 번째 형태의 탄생을 막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파계종이 순수하게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필시 나쁜 의도를 숨기고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게 우리의 추정이다.”

나도 동감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적인 선의, 하물며 그들 입장에서 명백히 적이라고 규정해 마땅한 인간까지 돕는 손길 같은 것은 없다.

그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박애주의적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적어도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못한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에 잠기고 있는데, 무뢰한은 낮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이상의 사실은 갈룸 스스로가 한월에게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놈의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한월에게 내던졌지. 당연히 한월은 그 부탁을 거절했다. 대신 한월은 자신이 갈룸을 보호하고 설득해보겠다는 의사를 지정능력 관리국에 전했다.

그래서 이틀 전, 관리국이 회의 끝에 한월의 요청에 대한 대답을 내놓으려 했는데 망할 파계종이 도망을 쳐버렸단 말이지.”

무뢰한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쳤다.

이어지는 스토리를 알고 있는 나로서 말하자면, 갈룸은 그렇게 이틀을 어디에선가 보내다가 오늘 늦저녁이 되어서야 이곳에 당도했다.

그래서 한월이가 거부했던 요구를 나에게 되풀이했다.

그 요구의 정당성을 논하던 도중…… 무뢰한이 들이닥친 것이다.

“자, 이제 사정을 다 들려줬으니 그 보답을 받을 차례로군.”

“아뇨, 아직 못 들은 게 남아 있는데요.”

“망할, 또 뭐지?”

“관리국이 내놓은 대답이라는 거,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무뢰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짐승처럼 날카롭고 벼려진 눈매로 나를 쏘아보았다.

자기지정이 없었다면, 맨몸인 그를 상대로 지정능력을 써도 이기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묻는 것만큼은 해야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수 없다고 해도 직접 듣고 생각해서 그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사실을 랑이 배우길 바랐다.

그 이기적인 마음에 무뢰한은 분명 질렸을 테지. 그는 우선 말을 돌리기로 했다.

“B등급에게 공개된 사안이 아니다.”

“이 집은 S등급에게도 미개방입니다.”

“시건방떨지 말았으면 좋겠군.”

“때리면 마음껏 얻어맞고 고소하는 타입입니다. 위협하지 마세요.”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애송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무뢰한은 다시 나와 랑의 크기를 쟀다.

그 측정의 결과는 물론 ‘귀찮음’이었다.

B등급의 지정능력자는 S등급에게 있어서 보잘것없지만 성가시다. 아마 방어 타입이라는 것을 파악해서였겠지.

곁에 있는 차기 재벌총수는 정부에게 징계를 강권하는 것을 비롯해 온갖 짜증나는 장난질을 쳐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성가시고 짜증난다고 해도 꼭 필요한 것을 쟁취한다는 목적이 걸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뢰한에게 있어 눈앞의 두 상대는 목숨을 걸고 맞서야만 하는 무시무시한 적이 아니다.

밟고 지나가길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밟고, 대신 신발밑창에 달라붙는 더러운 껌 자국 정도만 어떻게 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한참을, 그러나 결코 시간낭비가 되지 않도록 절제된 순간을 사용한 무뢰한은 이를 부득 갈았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을 대변하듯 억눌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 파계종을 죽일 거다.”

말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