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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66화 (66/112)

〈 66화 〉 2nd Episode Epilogue. 그리고 그 사람도 있었다 (3)

* * *

목소리들이 가득한 우울한 공간이었다.

교도관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어떤 미결수들이 울거나 웃는 소리.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

모든 것들이 뒤섞인 가운데 노인은 호흡에만 집중했다.

속으로 다섯을 세어가며 들이쉬고 그 배의 숫자를 헤아리며 내뱉는다.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만 윌리엄은 침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윌리엄은 그저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쌓아놓은 악업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윌리엄은 하루 7시간을 자고, 4시간을 재판받고, 10시간을 명상했으며 남은 3시간을 시체처럼 보냈다.

마지막 일과의 길이가 차츰 길어질 것이라고, 그렇게 느끼면서도 윌리엄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의아할 정도로 평온했다.

윌리엄은 자신보다도 자신을 가둬놓는 철문을 지키는 교도관들이 오히려 가엾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들어 문득 시선을 위로 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의 윌리엄에게는 시계가 없었다.

그러나 몇 미터 위에 트인 손바닥 크기의 창문을 통해 대략적인 시간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밤 10시 정도였다.

교도관들이 아직 교대할 시간이 아니었고, 재판을 비롯한 다른 일정도 없는 때였다.

윌리엄은 조금 의아해서 몇 시간만에 몸을 일으켜보았다. 그때, 창밖의 달빛이 조각조각 갈라지듯 산란했다.

랄, 라라랄, 라라라랄, 경쾌한 흥얼거림이 뒤를 이었고 그 다음에는 윌리엄이 쳐다보고 있던 철문에 달린 철창 사이로 얼굴이 “[반갑습니다☆]”

[무슨], 하고 반사적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철문이 드르륵 열려나갔다.

윌리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소리의 주인은 이런 표현은 윌리엄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지만 경망스럽고 음탕한 여자였다.

그녀는 새하얀 코트를 입고 있었고 그 안에는, 이번에도 윌리엄은 차마 눈뜨고 봐주기 어려웠지만 분명 그것을 입고 있었다.

바니걸이었다.

가감 없이, 망사스타킹과 레오타드를 착용한, 더불어 머리에는 토끼 귀 모양의 헤어밴드까지 달고서.

윌리엄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교도관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닫혀 있던 철문은 어째서 열리게 됐는가. 마지막으로 눈앞의 여성은 누구인가.

무엇인가라도 물어야 하는 그때 윌리엄은 마지막 질문만큼은 먼저 내뱉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윌리엄은 가라앉았으나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자네는 누구지?]”

그러자 바니걸은 대답했다.

“[큐티! 러블리! 프리티! 모두의 바니걸 소피입니다☆]”

***

“[기억에 없는 사람일세.]”

“[부부웁! 그 표현은 매우 불쾌합니다! 기억에 없는 사람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황망스럽군.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나가주게. 자네가 나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여태까지 이런저런 부탁을 하며 찾아온 이들은 모두 빈손으로 돌려보냈네.]”

“[호오? 빈손, 빈손이라 이겁니까? 그렇다면 가령 이런 일이 있었겠군요? 누군가가, 당신에게, 찾아와서, 부탁을 했을 겁니다! 흉물의 슈트를 어떻게 만들어낸 겁니까?! 하고. 파계종의 양팔은 도대체 어디서 구했으며 어떻게 융합시킨다는 발상을 했습니까?! 하고.]”

윌리엄의 얼굴에 가면이 덧씌워지듯 적개심과 경계가 떠올랐다.

윌리엄은 이를 부득 갈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네. 기억에도 없는 자네가 아니었더라도, 그 누구에게라도 그런 것들은 말해줄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바니걸은 갑자기 윌리엄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무시무시한 괴력이었다. 노인의 몸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억지로 버틴다고 하면 그가 입은 미결수복은 가볍게 찢어버리고도 남을 완력이었다.

억지로 끌려 나가며 윌리엄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에 비명은 반복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비명은 첫 번째 것과는 의미에서 차이가 있었다.

먼저 내뱉은 것이 끌려 나가는 자신에게 놀란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두 번째는 허공을 바라보는 채 미동도 없는 교도관들. 그들을 보고 놀란 것이었다.

“[기억에 없는 사람, 말씀이십니까!]”

바니걸이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그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반짝거렸다. 그것은 마치 루비 같았으며.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만들 수도 있다구요? 지금 당장, 여기서! 다른 사람 혹은 당신조차도!]”

그 루비의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생채기가 박혀 있었다.

“[저의 만사형통Almighty★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파계종이군.]”

“[핫! 핫핫핫! 물론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모습을 취했지?]”

“[특성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의 특성은 아닙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겠습니까? 중요한 건 당신입니다! 윌리엄 맥걸린!]”

“[돌아가 주게.]”

윌리엄은 나지막이 내뱉었다.그 목소리에 쓴웃음이 섞여 있었다.

“[죽인다고 해도 나는 두렵지 않네. 차라리 누군가가, 흉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었네. 파계종인 자네라면 나 같은 인간에게서 무엇인가를 갈취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안 그런가?]”

바니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특유의 쾌활한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당신 같은 인간은 고문한다고 해도 불지 않고, 또 죽인다고 겁박해도 두려워하지 않지요!]”

“[이해해줘서 고맙군, 그렇다면 부디 이만──]”

“[그것은.]”

바니걸이 손을 뻗었다.

도망칠 틈도, 혹은 벗어날 공간도 없다. 이곳은 독방. 그저 갇혀있는 곳. 발걸음이 움직이고 고개가 돌아서기 전에 바니걸의 손아귀는 노인의 머리를 낚아챘다.

루비에 난 생채기들 사이로 월광이 반사되어 번뜩였다.

“[그것은 당신에게 생명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자들의 방식입니다!]”

윌리엄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 여자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일까.

“[핫! 핫핫핫! 그렇군요! 그렇군요! 역시, 파계종들 중에서도 그런 자들이 있었군요! 압니다, 알아요, 그런 포지션☆ ‘너에게 힘을 줄 테니 미쳐 날뛰도록, 크큭.’ 하는 느낌이지요!

뭐, 힘이라고 부르기에는 상당히 미지뜨끈한 데다가 정석적인 사용법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뭐, 그런 건 상관없지요! 어쨌거나 필요한 건 전부 취했습니다!]”

바니걸이 취한 동작은 단순했다. 그저 손으로 윌리엄의 머리를 부여잡았다가 떼어내는 것.

그 동작만으로 바니걸은 윌리엄에게 있었던 일들을 알아냈다.

기억을 취했다, 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기억을 조작하는 지정능력자와 파계종은 극히 드물고, 그들조차도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 그친다.

다소간의 암시를 가하거나 있던 기억을 삭제하는 정도만 해도 대단한 수준이다.

반면 구체적인 사실을 추출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왔다.

파계종에 대응하는 군수업체의 사장이자 개인적으로도 파계종을 연구했던 그로서는 확신할 수 있는 사실들이었다.

그러나 그 상식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눈앞에는 적안의 바니걸이 서 있다

윌리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자네들 파계종 사이에서도 의견의 차이가 있고, 드문 경우지만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들었네.]”

“[흐응. 대화 시도입니까? 핫핫핫. 가엾습니다.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입장에서는, 아이구 아이구 에그머니나! 정말 딱하단 말입니다!]”

“[이 노인의 푸념 같은 거라고 생각해 듣고 답해주게.]”

바니걸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뭐가 궁금합니까?]”

“[자네도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파계종과 마찰을 겪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 애초에 협력하고 있다면 내 머릿속을 뒤질 필요도 없이 당사자에게 찾아가 물어봤을 테니까.]”

“[그건 별로 전략적인 두뇌에서 나올 발상이 아니군요☆ 당신 머릿속을 뒤지는 건 이렇게 간단한데, 아군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가며 물어볼 필요는 없었지요.]”

“[그런가.]”

윌리엄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그 말은 우선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내는군.

자네들이 일단은 아군일지라도 어쨌거나 약점이 잡혀선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생각할 정도로, 영원히 협력 상태에 있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자네가 다른 파계종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는 것.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그게 ‘부탁’이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흐응.]”

붉은 눈동자가 잠시, 허공에서 정지했다.

“[핫.]”

바니걸은 천천히, 마치 잠수부가 물 바깥으로 나와 간만에 들이키는 신선한 산소를 찾듯 그렇게 가빠오는 듯한 소리를 훅 내뱉고는.

“[핫핫핫! 아핫! 아하하하하핫! 핫핫핫핫!]”

바니걸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재밌군요, 당신! 정말로 재미 있습니다! 뭡니까, 상당히 영특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마지막 결론을 말하자면, 자네는 내가 무슨 생각에 다다를지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던 거지. 이런 결론이 도출될 줄 알았다면, 자네는 내게 괜한 정보를 넘기지 않았을 테니까.]”

바니걸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이런이런, 그건 어떻게 보면 말장난이라구요? 애초에 제가 이 상황까지 예측해놓고 말을 해줬던 것일 수도 있지요. 가위바위보, 같은 겁니다.

상대방이 바위를 낼지 모르니까 보자기를 낸다고 하면, 으음 그 시점에서 ‘어쩌면 상대방은 내가 이런 생각으로 보자기를 낼 걸 알아챘을지도 몰라!’ 하면서 또 보자기를 이기는 가위에 대응하는 바위를 내지요.

이런 생각이 이어지고 이어지면…… 끝도 없습니다. 모르시는 겁니까?]”

“[모르지 않네. 어차피 망령된 말에 불과하니 귀담아 듣지 말아주게. 내가 자네에 관한 것들을 알아낸다고 해도, 이곳에 갇힌 몸으로 무얼 하겠는가. 나는 여기서 천천히 썩어 없어질 뿐이네.]”

“[뭐어어, 그런 태도는 마음에 듭니다만.]”

웃음 같지 않은 웃음과 함께, 바니걸은 뒤를 돌아섰다.

어느 순간 바니걸이 입고 있던 코트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안에 들어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줄어든 것이었다.

안에는 바니걸보다는 훨씬 작은, 다른 사람이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은 아스페르의 가족, 그녀보다 오빠라는 아흐마르였다.

이곳에 나진이나 폴트가 있었다면 아흐마르는 말 그대로 아스페르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없어졌다는 아흐마르가 다시 나타났으니 다행이라고 외쳐댔을 것이다.

엄밀히 따져서 지금의 아흐마르가 진짜 아흐마르는 아니었을 테지만, 아무튼 그런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 아흐마르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나 윌리엄에게는 달랐다.

윌리엄에게 있어 그 소년은.

“[내가 준 십자가, 아직 갖고 있어요?]”

소년은 십자가였다.

십자가의 애원하는 얼굴 사이로 비틀린 웃음이 흘러나왔다.

“[가위바위보? 생각을 읽는 상대에게?]”

“[자네가 정말로 그때 그 아이인가? 그 얼굴을 하고서…… 날 속인 건가?]”

“[그건 모릅니다!]”

“[뭐라고?]”

“[모르는 편이 더 재밌지 않습니까☆]”

하핫하핫 하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아흐마르는 주절거렸다.

“[그런 겁니다. 이대로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 넘어가면, 당신은 그대로 평생을 부정당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자신의 의지로 벌인 일이라 믿어왔던 일이 어쩌면 누군가의 의도로 잉태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하고 말입니다!

나는 이 거대한 대서사시의 중심축에 의해 강제로 굴려진, 조그마한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흥행대박, 완전판매, 매출증진, 그야말로 만사형통! 아닙니까?]”

“[자네는…… 내가 보아왔던 괴물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군.]”

“[마음을 지배한다는 것은 그러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흐마르는 다시 뒤를 돌아섰다.

이윽고 코트 안에는 바니걸이 있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윌리엄은 이를 부득 갈았다.

바니걸이 지껄인 모든 말은 사실이었다.

윌리엄은 어쩌면 누군가의 연출과 장치 위에서 놀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랬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하고 윌리엄은 생각을 끊어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굳이 달라지는 게 있다면 저 바니걸이 얼마나 기뻐하느냐 정도에 불과하다.

“[재미없군요. 당신, 수도승입니까?! 실망입니다, 실망이얏!]”

“[사과하지.]”

윌리엄은 그렇게 말하며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바니걸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흐으응, 뭡니까. 수감된 주제에 제 자리로 돌아가다니……. 교도관들 기절해 있다구요? 도망쳐도 아무도 붙잡지 못한다구요?]”

“[그것은 그릇된 일일세.]”

“[그네에 태워서 확, 밀어버리고 싶은 소리를 하는군요! 뭐, 정절과 지조가 있다 이런 의미로 알아듣겠습니다! 실상은 바깥에 나돌아다녀봤자 다시 체포될 뿐이니 얌전히 재판을 기다리겠다, 라는 의미겠습니다만!]”

“[멋대로 생각하게.]”

“[생각은 당신이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읽어내리고.]”

바니걸은 큿큿 웃어댔다.

윌리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튼 자네는 원하던 걸 취했으니 돌아가 주게. 아니면 나를 죽여도 좋고. 아마 자네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둘뿐인 것 같군.]”

“[흐음, 싱거운 인간이군요! 이래 뵈도 A등급 파계종입니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당신의 머릿속을 무단점거한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대가라고 해야 할까, 질문 하나 정도는 받아줄 수 있습니다만?]”

“[질문을 좀 던져달라는 뜻으로 들리는군. 원하는 질문이 있겠지. 무엇인가?]”

“[이름, 같은 걸 좀 물으셨으면 하고!]”

“[그게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건가?]”

“[당신과의 인연을 소중히 한다는 증거입니다! 짝짝! 당신에게 두 번째 히로인이 생겼을지도 모르겠군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상관없네. 자네 부탁대로 하지. 자네에게 이름이 있다면 들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바니걸은 뒤를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아무런 감흥도 없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신사가 있었다.

“[그간 기다려온 노고를 치하하겠다.]”

그 신사는 토끼였다.

“[하젠야크트, 진실로서 네 앞에 나타났다.]”

“[하젠야크트! 들은 기억이 있네. 꽤 예전에 독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가 최근에야 한국에서 다시 나타났다는 그 자로군.]”

“[그대가 알아주니 이를 고맙게 생각한다.]”

신사는 벌어질 것 같은 여섯 갈래의 입을 꿈틀거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윌리엄은 옅게 웃었다.

“[그렇지만 의외로군. 하젠야크트라면 다소 파괴적인 힘을 휘두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던가?]”

“[그런 것은 그대가 알 바가 아니며, 알더라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하고 하젠야크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그대에게 많은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대가 선지자가 되길 권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선지자.]”

“[그렇다. 선지자다.]”

“[어째서 그런 망령된 생각을 했는가?]”

“[그대가 보인 바가 내가 보일 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윌리엄은 다시 옅게 웃었다.

“[저울에 세상을 매달아 가벼운 쪽을 도려내는 일을 말하는 것이군.]”

“[횡액을 맞아 그대의 일이 망쳐졌으나 언제까지고 그러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보여줄 것이고, 그대 세상의 만인에게 비추어줄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저울의 가벼운 쪽을, 조금이나마 더 가볍게 해다오.]”

“[자네가 나타날 것을 세상에 알려 달라? 그래서 이름이 선지자로군.]”

“[진실로 그러하다.]”

윌리엄은 잠시 생각을 해보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성서에는 거짓선지자라는 말이 있네. 나는 거짓선지자가 되고 싶지 않아.]”

“[거울 한편의 거짓은 거울 너머의 세상에서는 진실이다. 거울 너머의 세상이야말로 저울의 무거운 쪽이다. 그대는 알지 않았나.]”

“[그리고 나는 틀렸던 거지.]”

“[실망스럽군.]”

“[자네도 실망을 겪게 될 거야. 머지않아서.]”

하젠야크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호흡했다.

그럴 때마다 여섯 개로 갈라지는 입이 간헐적으로 움찔거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 그 입을 쫙 벌렸다가 닫은(사람으로 치면 하품하거나 한숨 쉬는 동작으로 보였다.) 하젠야크트는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는 한국을 파괴할 것이다.]”

“[말했지만, 나는 선지자가 되지 않아.]”

“[그러나 너는 이미 나중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게 되었다. 네가 거짓이건 진실이건, 저울의 어느 쪽에 내려앉건 너는 이미 선지자(??者)다.]”

윌리엄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로 자신 앞의 흉물을 내려다보았다. 그 또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윌리엄은 말했다.

“[자네도 그 청년을 높게 보는가?]”

“[그렇다. 그 소년이야말로, 운명의 중심에 서서 그것을 앞당기는 자다. 이 세상의 극이 그 소년을 가운데에 놓고 흘러가고 있다.]”

“[한ㄴ─]” “[박한월.]”

윌리엄의 말이 끊겼다.

윌리엄의 얼굴에 이번에도 가면 같은 것이 떠올랐다. 혼란과 공포였다.

그러나 그 가면을 마치 뱀의 허물처럼 순식간에 벗겨낸 윌리엄은 잠자코 하젠야크트의 말을 들었다.

“[쇄도라 불리는 그 남자는 운명을 가속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이곳에서 끝낼 것이다.]”

“[그렇군.]”

“[그대가 이러한 사실을 만인에게 퍼뜨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이곳에서 내가 선언한 찰나에, 운명은 이미 매듭지어진 것이다. 모든 것은, 진짜 주인께서 꿈꾸시는 대로 흘러간다.]”

대답이 오랫동안 없었다.

하젠야크트는 이제 시간이 되었다며 일어섰다.

그 말마따나 창문으로 은은하게 들어오던 월광이 사라져 있었다.

먼지로 이루어진 인형이 바람을 맞아 흩어지듯 사라져가는 하젠야크트를 보며 윌리엄은 말했다.

“[그래. 하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지. 자네가 말한 선지자라는 거.]”

그리고 마침내 하젠야크트가 온전히 사라졌을 때, 윌리엄은 그제야 비로소 하려던 생각을 이어나갔다.

“[생각을 숨겨야 하는 가위바위보, 인가.]”

무대의 주역으로서 극을 이끌어나가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무대의 모든 것을 비틀어놓는 존재 또한 있어야 한다.

스트레이트를 완성시키는 것은 완성된 다섯 장의 카드가 아니라, 불완전한 카드 네 장과 제멋대로 끼어든 조커.

이것 하나 숨겨 품고 있대서 심판받을 정도로 인류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 다짐 끝에 윌리엄은 눈을 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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