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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59화 (59/112)

〈 59화 〉 010.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3)

* * *

윌리엄은 할 말과 할 수 있었던 말 모두를 잃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끝나야 할 지점이었다.

그럴 예정이었다.

윌리엄은 그 각오를 하고 헬기를 추락시켰다.

윌리엄을 막겠다고 선포한 사내. 그에게 무게라는 벌이 주어진다.

그 징벌법은 사람이 견디지 못하도록 철저히 고안됐다. 작동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대상이었다.

저 사내가 어떤 경우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소를 외경심으로 바꾸며 윌리엄은 멜라니를 돌아보았다.

그녀도 눈만 방긋 뜬 채로 헬기를 떠받치는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윌리엄은 멜라니에게 더듬더듬 설명을 요구했다.

멜라니는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했다. [무슨 원리죠, 저건?] 멜라니는 그렇게 되물었다.

윌리엄은 몇 걸음을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정지했다.

더 들어서면 이제는 헬기가 떨어졌을 때 그 자신조차 다칠 영역이었다.

윌리엄은 아직까지도 사내가 벌이고 있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 있게 헬기 근처로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다.

간신히, 그저 목소리만 들릴 지점에 다다르자 윌리엄은 물었다.

“[버틸 수 있는 건가?]”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윌리엄은 납득했다.

지금 이 모습은 뭐랄까, 오류로 뒤엉킨 게임 속에서 그래픽이 깨진 것 같았다.

싸구려 액션 영화에서 CG작업이 실패한 것처럼 어딘가 치명적으로 잘못돼 있었다.

사내의 몸이 헬기를 들어 올리는 건,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굳이 현실적인 뭔가에 비유를 하자면 떨어뜨린 못 하나가 세로로 서서 짐이 잔뜩 실린 장롱을 들어 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윌리엄은 다시 말했다. 다소 감정적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네.]”

윌리엄은 호소했다.

“[자네들이 이렇게 나설 필요 없어! 이건 세상 어디선가 일어났을 일에 불과해! 자네들은 이 유라시아 대륙 끄트머리에서 다른 끄트머리로 찾아와 참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일세! 오늘밤 일이 무사히 끝나면, 그러면 나는 자네들을 무사히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사내는 고개를 슬쩍 들었다. 그제야 괴로움에 가득 찬 그의 얼굴이 윌리엄의 시야에 잡혔다.

그러나 윌리엄은 그 고통을 생각하기 이전에 사내가 자신의 말에 반응했다는 사실을 먼저 감각했다.

그리고 사내가 뭔가,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뭔가 좋은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윌리엄은 마음 어딘가에서는 사내가 자신을 설득해줄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했다.

아니, 최소한 개소리 지껄이지 말라며 성질이라도 부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사내는 짧게 답했다.

“[경찰은 이미 불렀다.]”

사내는 이제 대화를 포기했다.

“[내가 여기 없었더라면 이 헬기에 들어있는 꼬마는 죽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죽인 것이다. 이제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지났다.]”

“[어째서…….]”

윌리엄의 울대가 번뜩 섰다.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네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실들을 모조리 자네에게 털어놓았는데! 내가 이렇게 괴롭다고, 힘들다고 언제 언론에 대고 하소연한 적이 있던가?

그 모든 걸 내가 반추해서 위장 깊숙한 곳에 쑤셔 박았는데! 소화액에 뒤범벅이 된 찌꺼기를 자네들에게 남김없이 보여주었는데!

자네는 이제 나를 위해 반박조차 해줄 수 없다는 것인가?]”

“[그게…… 헬기를 사람한테 꽂아놓고 할 소리인가………!]”

나진이 클로를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공간이 절단 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위력은 지정능력자로서는 형편없었고, 아마 권총보다도 낮은 살상력을 지니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못 위에 올려놓은 장롱을 뒤흔들어 떨어뜨리기에는 충분했다.

딱 나진의 키만큼 떠 있던 헬기는 별다른 문제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진은 다짜고짜 헬기 문을 열어젖히고 안에서 소녀를 꺼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이것저것 말할 여유가 없어서 일단 팔을 묶어놓은 끈만 날을 이용해 잘라냈다.

뒤늦게 랑이 목소리를 냈다.

“너무 늦었어!”

“엄청 일렀거든!”

둘 다 텐션이 높은 상태였다.

그러나 장난기는 섞여 있었다.

윌리엄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사내와 소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일종의 활극으로 보이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나진은 랑을 지켜냈고 둘은 다시 만났다.

이보다 좋은 엔딩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둘에게 있어서 세상은 다시 의미를 찾았다.

“[아직 아닐세.]”

윌리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세상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있다.

지옥 밑바닥에는 있겠지. 아마 그 지옥이 런던일 것이다.

윌리엄은 자신을 향한 모멸감을 느끼며 양손으로 얼굴을 거머쥐었다.

아직까지도 투닥이고 있던 랑과 나진이 똑같이 입술을 깨물고 윌리엄을 돌아보았다.

윌리엄은 돌연 코트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이네.]”

그것은 바롱의 눈알이었다.

나진이 기겁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 보면, 아직 누구도 저걸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저것을 꺼냈다는 건, 다시 말해서…….

“[그거,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이야.]”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바렐라의 양팔이 도대체 무엇으로 보이는가?]”

그 말마따나 멜라니의 양팔은 분명 파계종의 것으로 대체돼 있었다.

그렇다면 윌리엄은 저 눈알의 기능과 위험성, 사용법을 모조리 알고 있으리란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나진은 저 쓰레기 같은 물건을 들고 온 스스로를 원망했다.

또한 이유는 달랐지만, 멜라니도 나진을 원망했다.

멜라니는 윌리엄을 향해 소리쳤다.

“[빌, 안돼요! 당신까지 그걸 받아들이게 만들 수는 없어요!]”

“[자네에게 그런 것을 허가한 건 나였어! 이제 그 죗값을 치룰 때야!]”

“[제가 혼자서 처리할 수 있어요. 저들 정도는 쓰러뜨릴 수 있다니까요!]”

윌리엄은 팔을 파고드는 거대한 뱀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손바닥 위의 유리병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윌리엄은 곧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아니야. 경찰을 불렀다지 않는가. 너무 늦어. 다른 상대면 몰라도 저 자는 쓰러지지 않아.]”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 상대는 없어요!]”

“[이보게 바렐라! 중요한 건 시간과 경찰이야. 다른 지정능력자들까지 몰려오면 아무것도 지켜낼 수가 없어!]”

그러자 멜라니는 증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나진에게 두었다.

그 불꽃같은 시선에 나진이 꿀꺽 침을 삼켰다. 언제 싸움이 재개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등 뒤에 달라붙은 랑을 재차 확인하며 나진은 클로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멜라니는 곧바로 윌리엄에게 돌아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게 주세요. 제가 할게요! 그것까지 제게 있으면 저들을 압도할 수 있어요!]”

“[뭐라고?]”

“[빌, 저는 이미 신체의 두 군데가 파계종이에요.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자네도 언젠가는 새로 시작해야지! 영웅놀이는 내 일이었잖아. 내 일이었다고. 모든 처벌은 내가 받을 테니까, 자네는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좋은 남편 만나서, 그러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란 말이네!]”

멜라니는 한쪽 눈을 가렸다.

“[이미 늦었어요.]”

멜라니는 다정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빌, 당신이 나에게 손을 뻗어줬던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늦은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은혜에 보답해야만 하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흉물에서 은퇴한 당신이 새로운 흉물을 필요할 때, 제가 있었어요. 당신이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파계종의 양팔을 폐기처분하려 할 때, 제가 있었어요.]”

멜라니는 마치 신도가 신에게 그러하듯 윌리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멜라니는 기도했다.

“[흉물이 제 눈앞에 있으니까.]”

어서요, 하고 멜라니는 부탁했다.

그것은 정말로 기도였다. 윌리엄은 살면서 수많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지금의 멜라니와 같이 고결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영웅을 위해서, 자신을 구해줬다는 그 사실에 보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멜라니는 저 기도를 통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윌리엄의 마음을 쥐어뜯는 듯했다.

아아, 윌리엄은 신음했다.

그 신음이 끊어지지 못했다. 심장이,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아아아아아…….]”

그 목소리에, 부드러움에, 다정함에, 윌리엄은 무너져 내렸다.

그는 비로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 이제야 진상이 자신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는 죄를 지었다. 그는 잘못을 범했다. 그는 항상 올바른 일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이런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그가 구해낸 모든 것들은 동시에 그가 망가뜨리고 말았고, 그가 손을 뻗은 것들은 그 손에 얽매이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낼지라도 이 일은 반복되고 말겠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이를 지켜주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행위는 상대방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적정선과 안전지대를 파괴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느새 그 손에 도살자의 칼을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일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 모든 일에서 벗어나려면.

아아.

그래.

그랬던 것이지.

이제야 알겠다. 그렇다면, 만일 이 모든 위선적인 자신이 반복되고 만다면───

“[다른 이를 위해 구한다는 것은 헛소리였군.]”

이 모든 것을 스스로가 짊어지는 수밖에 없다.

윌리엄은 유리병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와장창! 파열음과 함께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붉은 동공을 지닌 눈알이 떨어져 있었다.

나진은 그것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땅을 박차고 나아가는 순간, 그때 멜라니가 오른쪽 팔을 들었다.

나진의 심장이 멎어버리는 듯한 박동이 찾아왔다. 영역지정이었다.

앞서 설명했던 그대로, 나진의 몸은 일순간 굳었다가 풀어졌다.

가까스로 다시 움직이는 클로가 윌리엄의 오른쪽 안구에 닿기 직전 멈춰버렸다.

점멸, 환멸.

그렇게 말하듯 검은 클로를 마주한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오래간만이군.”

윌리엄은 분명하게, 번역과정 없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했다.

“[그리고 여기까지다.]”

억겁을 견딜 염동력이 나진을 짓눌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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