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009. 그래서는 안 되는데
* * *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환영받을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정의가 도대체 뭐냐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린에버라는 유명한 환경운동 단체가 있었다. 멸종위기의 희귀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밀렵으로 죽어나가는 고래를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밀렵꾼을 비롯한 몇몇 범법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린피스가 정의로운 단체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린에버가 미국과 소련의 포경선 사이를 요트 하나로 주파하며 난장판을 만들었을 때, 또 해양생물에게조차 해로울지 모르는 썩은 버터를 포경선과 바다 위로 던져댔을 때,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누군가가 말했다.
고래를 지키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지만 사람이 다칠지 모르지 않으냐.
또 누군가는 대답했다.
고래를 해쳐 자연을 망가뜨리는 사람보다 멸종위기의 고래가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반박했다.
그것이 말이 되느냐. 만물 위에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끼어들었다. 그보다도 자기들은 바다에 해로운 버터를 던져대며 무슨 고래를 보호하겠다는 것인가.
누군가는 받아쳤다.
우리의 목적은 그저 지구를 지켜서 사람들까지 지키는 것뿐이며, 그보다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
“흉물을 돕는다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영어가 아니라서 윌리엄에게 들리지 않는 문장이라는 것은 나중에 깨달았다.
그러나 같은 말을 영어로 다시 말한다고 해서 별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윌리엄도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제 자네들에게 대답을 듣고 싶군. 내가 내 노력으로 만든 여유자금으로 흉물을 돕는다고 밝히면, 좋아, 내일 영국 일간지 대문에 이런 기사가 난다고 쳐보지.
‘윌리엄 머즐드독스 영국지사장, 충격, 그간 흉물을 지원하고 있었어 선언.’ 이러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전 세계 만민이 벌떡 일어나 런던의 고아들을 살린 머즐드독스 영국지사를 찬양할 것 같은가?]”
내가 한국어로 전하기도 전에, 윌리엄은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런던은 흉물이 아니라 누구라도 살릴 수 있었네.]”
윌리엄은 그가 안내한 나와 랑의 방에, 안방에까지 들어왔다.
구두조차 벗지 않은 그는 침대에 살짝 걸터앉고 허탈하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자네도 지정능력자이니 알겠군. 런던에만 많은 파계종이 나타난다는 것은 옛날이야기에 불과해.
런던은 그저 한번 무너졌고 런던의 원래 주인들이 반기지 못할 자들이 그들의 본래 자리를 꿰찼지.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복잡한 문제를 마주할 테고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국세를 낭비하게 될 테니까, 라는 정의롭고 합당한, 이윤에 근거한 원리에 의해 버려진 것이야.]”
윌리엄은 그러더니 정장 주머니 안에서 자기 휴대폰을 꺼냈다.
구글에 들어가 ‘the London Abomination’이라고 검색했다.
그러자 흉물을 칭찬하는 게시글들이 흉물을 비난하는 기사 사이에 파묻힌 채 나타났다.
윌리엄은 김빠지듯 피식 웃었다.
“[보게, 흉물은 하룻밤 사이에도 수백 수천의 사람을 구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분쟁을 조장하고 법리를 거스르는 불법자경단일세.
그는, 흉물은, 국제사회의 관점에서 보자면 버리기로 합의한 도시와 죽이기로 결탁한 시민들을 구하고 살리는 범법자일 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공익, 전해.”
아까부터 억지 통역을 듣고만 있던 랑이 문득 입을 열었다.
“당신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당신이 대단한 일, 하고 있다는 것도 이제 알아. 그렇지만 어쩌라는 거야.”
랑은 이어서 말했다.
“우리, 말했지만 애초에는 당신 도와주려 했어.
그런데 듣고 보니 이제 아니야. 당신은 그냥 당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러니 우리도 우리가 해야 하는 방식으로 당신을 처벌하겠어. 또 혹시 말해두는데, 이거 당신이 싫어하는 국제사회니 세간의 시선으로 처벌하는 거 아냐.”
전하자, 윌리엄은 코웃음을 쳤다.
“[그럼 뭐지? 무슨 연유로 우리를 막겠다는 건가? 총수께서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전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 전하니, 랑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자네들은 마치 이곳에 뭔가 도움을 주려 왔다는 듯하지만 그건 자네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국제사회니 뭐니 하는 것들이 지껄이는 도움에 불과하다네.
레드카펫 위에서 100만 파운드 기부증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그 순간에, 런던에서는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어.]”
그 지점에서는 나도 랑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일단 우리에게는 윌리엄의 뜻을 따르거나 그에 반하는 것 양자가 동시에 불가능했다.
흉물을 돕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특별히 유와의 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번 사안 자체를 엄청 꼬이게 만들 수도 있고.
그러나 동시에, 윌리엄이 자금을 제멋대로 운용했을지언정 나쁜 일을 했다고 쉽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 사리사욕을 채운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줬다는 것이다.
물론 미화해봤자 자금을 빼돌린 것은 빼돌린 것이다. 랑의 말마따나 ‘해야 하는 방식’으로 처벌할 수는 있겠지.
찝찝함이 남을 뿐이다. 그것은 윌리엄이 말하는 그대로 세간의 사정에 따르는 처벌일뿐더러 유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 같았다.
복잡한 시선과 짧은 한국어가 오가는 우리를 보며, 윌리엄은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원래보다도 더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네들에게 어려운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야. 내가 받을 처벌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야. 어쨌거나 형법상 이건 횡령이고, 자네들에게는 나를 신고하고 또 고소할 권한이 있어.
그러니 자네들에게 내 입장을 이해해주고 동조해달라고 하지 않겠네.일정이 끝나고 귀국해서 이 사실들을 낱낱이 총수에게 고발해도 좋아.]”
내가 전하자 랑은 별로 말이 없었다. 내가 대신 물었다.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대로 처벌 자체를 부정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당신은 잘못을 저질렀고, 총수에 거스를 수단조차 없다.
만일 당신에게 그러한 종류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돈인데, 총수는 당신을 훨씬 능가하는 재력가가 아닌가.
나는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들어는 봐야겠다. 이대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아까 말했지 않은가. 시간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고.]”
“[시간을 벌면 뭐가 달라지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네는 참으로 어리군.]”
나는 어쩌면 이 인간이 나와 랑을 죽이겠다고 선언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당장 랑을 끌어안고 ‘쓰러지지 않는 상태’에 돌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윌리엄은 머무르는 동안 편히 쉬라며 짧게 전하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그 직전, 마지막으로 그가 내뱉은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
노신사는 편히 움직일 수 있는 왼손만을 이용해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았다.외투를 벗기 전의 일이었다.
이곳은 그의 사무실이었다. 어떤 사치스러운 장식품도 없이 하얀 벽지와 원목 테이블, 서가와 컴퓨터 한 대만이 가구로서 존재하는 장소.
그곳에서 윌리엄은 벽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시선이 올라 맨 먼저 벽면에 못으로 박힌 십자가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된 것이었다. 어느 아이가 선물로 주었지.
그 아이는 시리아의 난민들이 버려놓고 떠난 아라비아인 남자아이였다. 런던 내부의 범죄조직에 억지로 끌려 다니며 좀도둑질을 일삼는.
어쩌다가 들킨 도둑질에 다른 부랑자들에게 흠씬 얻어맞고 쓰러져 있던 것을 흉물이 구해주었다.
흉물은 그 아이에게 도시로 나와 살아갈 것을 권했지만, 아이는 거절했다.바깥으로 나가더라도 똑같다고 하면서.
피부 같은 사람에게서 도둑질하다가 피부 다른 사람에게서 도둑질하게 될 뿐이라고.
그런 내용의 거절을 수천 번이나 들어온 흉물이 거기서 체념하고 돌아서는 순간, 소년은 평생 갖고 있던 나무 십자가를 선물로 흉물에게 주었다.
소년은 야지디교를 믿는다고 했다.
“[야지디교는 십자가를 쓰지 않는 것으로 안다.]”
“[그래요? 처음 알았어요. 아무튼 그 근처 신이라서 비슷한 걸 쓰지 않을까 싶었어요. 뭐, 야지디 신의 것도 아니라면 이제는 아무 필요도 없겠네요. 가지세요.]”
소년은 소년의 민족이 살던 땅에 살아본 경험조차 없었다. 흉물은 납득했고 소년의 보답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흉물이 얻은 것은 당연히 윌리엄에게 전해졌다.
윌리엄은 프랑스지사의 지사장과 교류할 때 선물로 받은 백금 십자가를 금은방에 팔아 그 돈을 기부함에 넣은 뒤, 백금 십자가가 있던 자리에 소년의 십자가를 걸었다.
그렇게 한다면, 아마 회사의 돈을 훔쳐 쓰지 말라 하셨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지언정 지옥에서 그렇게까지 뜨겁게 보내지는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에게 환멸감을 느낀 윌리엄은 다시 고개를 내렸다.
없는 가족사진 대신에 어린아이들과 찍은 사진이 하나 걸려 있었다.
매우 낡은, 아마 10년도 넘게 세월을 견뎌온 듯한 사진이었다. 사진의 중심에 아직 중년이었던 윌리엄이 서 있었다.
그 주변에 며칠 씻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윌리엄은 시선을 조금만 더 아래로 해서, 사진 좌측 하단의 흑발 여자를 찾아냈다.
“[외투는 제게 주셔요.]”
문득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자 윌리엄은 흠칫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사진 속의 여자가 열 살을 조금 더 먹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멜라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윌리엄은 당황해서 늘 하던 말도 잊고 외투를 벗어줬다.
그 뒤에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가 내 시중을 들 필요 없다고 몇 번을 말하나.]”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게다가 빌, 손도 다쳤잖아요.]”
차곡차곡 코트를 개는 멜라니를 보며 윌리엄은 한숨을 흘렸다.
“[이보게, 바렐라,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자네가 내 곁에서 시녀 노릇하는 것보다 번듯한 직장을 잡고 좋은 남편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게 더 기뻐.
여기 사진만 해도, 여기서 다섯 명이 저번에는 귀여운 자식까지 데리고 와서 나를 만났는데, 자네가 아직도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니 내가 얼마나 곤혹스러운가.]”
“[저는 이제 열아홉인걸요.]”
멜라니 바렐라는 짧게 대꾸했다.
“[근데 어머, 그 사진을 보고 계셨군요?]”
이런. 완전 낭패로군.
윌리엄은 자기가 생각 없이 뱉은 말들을 후회했다.
그러나 일단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 보고 있었지.]”
“[다행이에요. 저는 빌이 그 사진을 버린 줄 알았어요. 그런 걸 보면, 빌은 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느니 하지만 실제로는 저를 많이 필요로 하죠.
오늘만 해도 제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그분들을 모셔 왔을까요?]”
“[젠장, 솔직히 이런 말해서 미안하지만 자네가 일을 꼬아 놓았을세. 난 그 자들이 거기서 파계종한테 죽었으면 싶었다고.]”
멜라니는 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죽일 수 있어요. 빌이 하려고 하면.]”
“[그건 말도 되지 않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럴 수가 없어. 그들에겐 아무 잘못도 없지 않은가.
무고한 자들을 내 손으로 그들을 심판한다니, 나는 오늘 무서운 척하고 협박하는 것조차 손이 떨리고 혀가 꼬여서 몇 차례나 연습을 하고 겨우 저질렀단 말일세!
그러니 부디 그들을 내 손으로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말아주게. 만일 다르게 생각했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조차 못했을 걸세.]”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빌.]”
멜라니가 윌리엄의 등을 툭툭 두드리자 윌리엄은 아까 벗어놓은 안경으로 다시 손을 뻗었다.
그는 마음이 안정될 때에는 사물을 흐릿하게 보곤 했다.반대로 심리적으로 동요할 때에는 안경까지 써서 앞을 뚜렷하게 응시하는 습관이 있었다.
윌리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자네 눈에는 아직 내가 괜찮게 보이나?]”
“[네. 늘 그랬어요.]”
“[하지만 나는 이제 모르겠네. 오늘만 해도 선량한 두 사람을 모질게 대했어. 그들은, 그들은 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거야. 어쩌면 그들이 나의 이웃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젠장, 이런 식으로만 만나지 않았으면 자네와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모두 필요한 일이었어요.]”
“[필요한 일이라고?]”
윌리엄은 절망적으로 중얼댔다.
“[암만, 암만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다고 해도, 그게 진실로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우리가 앞으로 저지를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걸까? 하나님께 맹세하고 우리가 선하다고 확신할 수 있겠나?]”
윌리엄이 의자에 몸을 뉘이고 절망적으로 중얼거리자 멜라니는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윌리엄의 손을 맞잡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단 한 번도 빌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보게 바렐라.]”
“[빌은 내 삶을 구원해줬어요.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아이들도 빌이 있어서 구해낼 수 있었어요.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빌과 저를 위선자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리 직접 노력해서 더 얻어낸 자금이라고 해도 본사에 보내야 할 것을 어떻게 우리끼리 쓸 수 있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빌, 하나님께서 아실 거예요. 빌, 헐뜯는 자들이 암만 큰 목소리로 빌을 모함해도, 빌이 구해낸 수많은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 빌이 얼마나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고할 거예요.]”
“[바렐라.]”
“[윌리엄 맥걸린. 스스로를 믿으세요. 제가 저를 믿는 것처럼요.]”
윌리엄은 멜라니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토파즈를 닮은 황갈색 눈동자가 마찬가지로 윌리엄을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문득 멜라니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웃었다.
윌리엄은 김빠지듯 피식거리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나도 자네처럼 용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빌, 세상에 당신처럼 용기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지 않아. 언젠가는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너무 늙었네.]”
그렇게 대꾸하고 윌리엄은 일어섰다.
“[그래도 도와줘서 고맙네, 바렐라.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어차피 처벌 같은 걸 두려워하는 시기는 끝났어. 감옥에 떨어져도 런던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러면 된 거야. 그렇겠지?]”
“[감옥에 떨어지지 않아요.]”
“[바렐라, 자네는 용기 있지만 현실적이지 못해. 그리고 이기적이야. 이번 일이 끝나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총수께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으신다 해도 나는 자수할 거야.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아.]”
“[빌, 감옥은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 난민들 사이에서도 범죄를 일삼고 다른 난민을 괴롭히는, 그런 인간들이 갇힐 곳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그 감옥이 되겠지. 그러나 바렐라, 감옥이 된 사람은 더는 사람이 아닐세. 나와 자네는 어쩌면 벌써 절반은 감옥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고. 남은 절반은 며칠 남지지도 않았지.]”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그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말은 여러 의미로 갈라졌다.
일단은 남은 며칠 동안 벌어질 일을 돕겠다는 것.
혹은 윌리엄이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것.
그것도 아니면 앞으로도 윌리엄 곁에 직접 나타나 이런저런 시녀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것.
앞의 것은 몰라도 뒤의 두 것은 실로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윌리엄은 말할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말하고 말았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전에 건실한 일자리를 찾고 좋은 가정을 꾸려주게.]”
“[빌과 함께 아이들을 돕는 게, 그게 내 일자리인걸요.]”
언제나처럼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고 윌리엄은 노인처럼 푸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