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6화 (6/112)

〈 6화 〉 001. 세상은 니네끼리 좀 구해 (5)

* * *

새카만 칼날들의 모두가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는 아니었다. 새카만 칼날들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본래 다섯 명이다.

그러나 주로 활동하는 것은 박한월, 제갈유 그리고 이재인 이렇게 셋.

나머지 둘은 어쩌다가 몇 번 마주친 것을 빼면 거의 모르는 사이나 다름이 없다.

어쨌거나 그들은 셋만으로도 충분히 유지가 된다.

셋이 협공한다는 전제 하에 A등급 파계종에 대응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각자는 B등급 파계종에 맞서 볼만 하다.

주로 없는 두 사람은 각각 S등급과 A­등급이라 들었다. 인천의 인구규모를 감안해보면 그 정도 인재들은 서울로 파견을 나가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잠시 한월과 인사를 나눴다.

유한테 우리 팀의 새 멤버에 관한 소식을 들었는지 흘끗 우리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더라.

하지만 랑은 아까부터 히스테리가 발동해서, 대합실 안쪽에 틀어박혀 있었다.

“지저분해.”

“확실히 지저분하군요.”

주인과 메이드는 그렇게 떠들었다.

“남자 혼자 쓰던 사무실이니 이렇게 더러운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는 이런 환경에서 살지 못하십니다.”

“청소라도 할까요?”

“해야지요. 이건 당위입니다.”

……그렇게까지 강조할 것은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해서, 폴트와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가구 위치를 재배열했다. 아니면 폴트가 어디선가 공수해온 고풍스러운 가구를 새로 들여다 놓는 식으로.

혹은 기존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잡동사니들을 치우며.

본래는 사무실의 업무기능에 애착이 없던 편이라서 보통은 이곳을 숙소로만 사용했다.소파가 있었으니까.

월세의 지출도 아끼고, 각종 전기세와 수도세도 절약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이용방식이었다.

폴트가 눈치를 주지 않는다면 계속 그러고 살 계획이다.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아가씨께서 계실 때는 주무시거나 하실 수 없습니다. 좋지 않은 습관이 밸 수 있으니까요.”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는 마치, 집값을 떨어뜨리는 혐오시설이 된 기분이었다.

……각설하고.

이윽고 한월과 재인은 자기네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묘한 생각을 했다.

저쪽 사무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안정하다. 재인은 한월에게 착 달라붙어 다닐 정도로 한월을 좋아하고, 한월은 그걸 어느 정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추가로, 유는 재인과 친하다. 동시에 유와 한월의 관계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좋은 친구인지, 아니면 호감의 대상인지.

여러 단계로 꼬여 있다.

여기에 주로 부재하는 다른 두 명의 지정자들을 포함시키면 그들의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해질 것이다.

정리하려면 공책 몇 페이지를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중에라도 요약을 해놓아야 하는가, 하고 생각을 하던 나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남녀관계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은 좋지 않다.

오랫동안 여자친구 없었던 남자의 비극적인 특징이다.

덧붙여서 걔네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좋아하고 싫어하고 데면데면하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거의 피우지 않는 담배가 갑자기 절실하게 느껴졌다.

우리 건물에 흡연실은 따로 없었기에, 향할 곳은 옥상뿐이었다.

그곳에는 보통 아무도 없기 때문에, 혼자 분위기 잡고 담배를 태우기 편하다.

“………아.”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난간을 붙잡고 이쪽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여자아이는, 늘 입고 다니는 교복만 봐도 유였다.

혹은 밝은 갈색 머리카락만 봐도 그랬다.

노을 때문이었다.

노을이, 별로 티 나지 않는 흑갈색이었던 그 머리카락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묻자, 유가 나를 돌아본다.

나는 꺼낼까 말까 하던 담배를 주머니 안으로 깊숙이 숨긴다.

“아, 오빠. ……또 담배죠?”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쑤셔 넣었는데.

“아, 아니, 아냐.”

얼버무리자, 유가 눈을 가늘게 떴다.

“거짓말 못하는 체질인 거 아세요?”

솔직한 성격이라고 순화해서 표현할 수도 있지 않나.

볼에 넣은 바람도 좀 빼시고.

“백해무익한 걸 왜 피우는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요즘에는 표지에 징그러운 그림도 붙어 있다면서요?”

“그래서 케이스를 따로 사지.”

“으엑, 돈 낭비에요!”

그럴 리가. 케이스를 산다는 것은 남들 얘기다.나는 그 몇 천원이 아까워서 그냥 갖고 다닌다.

이렇게 말하니 또 우울하군. 정작 돈을 아끼려면 담배를 끊어야하는데.

문제는 돈이 없다는 우울감을 달래주려면 담배가 유용하다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구절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어린왕자가 술주정뱅이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왜 술을 마시나요?’

‘부끄러워서 그런단다.’

‘무엇이 부끄러워요?’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우울하군.

나는 내면의 목소리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여길 올라오고.”

“글쎄요.”

유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리지만, 여자를 대하는 것은 이렇게 까다롭다.

어쩌면 이 까다로움이 싫어서 애인이 거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응, 그렇게 생각하자. 그래야 조금은 안심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바보는 아니다.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는 대강 알 것 같았다.

“동생 때문에?”

“일단은요.”

나는 잠깐 랑에 관해 생각해봤다.

“쌀쌀맞은 성격이던데.”

“그죠? 걔가 어렸을 때부터 버릇이 없었어요.

예전에 에버랜드에 놀러갔을 때만 해도 티켓팅하는 직원한테 돈다발을 주면서 자기가 혼자 탈 수 있게 해달라고 하질 않나. 엄마라는 인간은 옆에서 박수 치면서 웃고 있고.

제가 정말이지…….”

유는 뭐랄까, 억압받던 것을 쏟아내는 것처럼 마구 말하다가 뚝 멈췄다.

그리고 얼굴을 붉혔다.

이어서 유는 고개를 돌려 노을 속에 숨었다

하지만 노을은 어둠이 아니고 빛이다. 빛이 표정을 감춰주길 바라는 것은 별로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내가 실실 웃자 유가 내 허리를 쿡쿡 찔렀다.

다만 입은 끝까지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히 침묵할 수는 없다. 유는 갑작스레 내게 말했다.

“저기,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아니, 어지간하면 하지 마.”

“왜요, 일단 들어 보기라도 하세요!”

“들어서 해결이 되는 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되잖아…….”

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른 사람들이 바쁘니까 그렇죠. 주말을 통째로 내어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네 말을 들어보니, 일단 주말을 소모해야 하는 부탁이라는 건 알겠는데.”

“맞아요. 한가하지 않으신가요?”

어째서 네 주변 고등학생들이 바쁜 와중에 대학생은 한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물론 한가한 것은 맞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학적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고, 나는 휴학생이다.

내 명함이나 블로그 직업란에 작성하기 적합한 명사는 ‘대학생’이 아니라 ‘지정능력 대체복무자’일 것이다.

따라서 주말에 한가하다.

대체복무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동시에, 그렇다고 주말에까지 업무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는 지나치게 남의 사정에 밝다. 좋게 말하자면 타인에게 관심이 많다고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타인을 나쁘게 말하는 편이다.

지적해주자니 너무 아저씨 같아서 관두게 되지만.

“정확히 어떤 일인데?”

“……맛집탐방이요.”

네 글자로 퉁치려고 하지 마라. 조금도 이해가 안 가니까.

더 길게 설명을 요구하자 유는 축 쳐져서 말을 이었다.

“제 동생이, 갈랑이 그 녀석이 여기 오기 전에 편지를 보냈어요.”

유가 주머니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냈다. 편지지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유가 제 동생을 부르는 방식에 더 관심이 갔다. 자기는 이름 부를 때 ‘갈’ 자를 붙이면 화내면서, 동생한테는 또 붙이는군.

아마 성과 이름을 섞어서 부르면 멸칭이 되는 것이 제갈 가문의 가풍인가 보다.

유치한 녀석들.

어쨌거나 나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조만간 찾아갈 예정이고.

­엄마에게는 언니가 필요해. 물론 나에게도.

­하지만 정작 언니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걸 위주로 계획을 짰어. 주말에 만나도록.

­동봉한 것들 봐줘.

편지지를 다시 접었다.

뭐랄까, 사회성의 결여가 느껴진다.

재벌가에서는 자식이 뭐 하나 뒤떨어지는 것 없도록 사회성을 포함한 교양 수업을 시킨다고 들었는데. 미디어의 환상인가.

마침 눈앞에 진위여부를 확인할 만한 재벌 집 딸이 있다만, 물어보면 욕만 들어먹겠지. 자기 처지가 싫어서 뛰쳐나온 신세니까.

“툭 까놓고 말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는데.”

“같이 식사를 하자는 거예요. 거기, 편지에 나온 대로 동봉된 것들 좀 보세요.”

딸려 나온 표 같은 것들이 몇 장 있었다.

전부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시공좋아협곡싫어 할 때 그 레스토랑 말고, 진짜 레스토랑.

총 일곱 장이 붙어 있었는데, 각 식당마다 주제가 달랐다. 양식과 일식, 중식, 한식 그리고 디저트를 중심으로 한 뷔페 등등.

혹은 ‘이런 데서도 굳이 예약을 받는 건가?’ 싶은 분식집도 있었다.

“그 아이, 대식가거든요. 음식 취향이 까다롭기도 하고. 그래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이런 모양이에요. 물론 저는 거기 있는 거 다 먹지도 못하고요.”

“잠깐, 다 먹지 못한다는 건 무슨 말이야. 그럼 걔는 이걸 다 먹는다는 거야?”

“네, 그것도 한 끼에요.”

나는 일곱 장의 표를 팔랑거려 보았다.

그러나 유는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

“먹어도 전혀 안 찌는 체질이에요. 같이 다니는 메이드는, 제 기억으로는 하루에 세 시간씩 운동을 하고요.

보통 둘이서 여기저기 맛집을 돌아다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저도 먹을 걸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죠.”

“……혹시 너도 그래?”

“미쳤어요?”

아니, 미안하다.

그렇지만 둘이 워낙 외모가 닮기도 했고.혹시 그런 의외의 분야에서 겹치지 않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빈약한 상상력의 탓이다.

“어쨌거나, 이게 나한테 한다는 부탁이랑 무슨 상관이야?”

유는 말하기 창피하다는 것처럼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말했다.

“같이 좀 가주세요.”

“예?”

나는 진심으로 당황해서, 아니 당황했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렇게 되물었다.

“그 아이, 올 거면 메이드랑 같이 올 텐데 그러면 제 쪽은 혼자라서 기싸움에서 밀리잖아요.”

“아니, 그래도 내가 가는 건 이상하잖아.”

“만나면 분명 본가로 돌아오라고 할 거예요. 그런 말에 설득당하고 싶지 않아요. 부탁해요, 오빠, 네?”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식사를 하려는 거라면 물론 껴줄 수 있다. 유와는 개인적으로 친해서, 주말 내내는 아니었을지라도 가끔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내게는 결혼식 들러리 경험까지 몇 번 있으니 부탁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유가 말한 것과 같이 랑이 주선하는 식사는 오로지 먹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메인 참석자 중 하나는 부모의 뜻에 거슬러 출가한 큰딸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의 뜻을 받들어 언니를 붙잡으러 온 작은딸이다.

그들이 웃는 얼굴을 맞댄 채 얌전히 밥만 먹고 돌아설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난국 속에 제삼자가 끼어드는 것은 터무니없다.

좋다고 승낙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부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손사래까지 쳐가며 안 된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행스럽게도 유는 부탁이 거절당했을 때 앙탈을 부르며 조르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토라진 얼굴을 하고 한숨만 땅이 꺼져라 쉬어댈 뿐이었다.

나는 유가 만류하던 담배를 꺼내들었다. 끝까지 내 눈치를 살피고 있던 유도 담배연기가 솟아나자 체념한 것 같았다.

땋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유는 나를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차츰 멀어졌다.

그러나 그 반대 방향으로 내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도 있었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유가 돌아오는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메이드였다.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난간에 기대고 섰다.

그 금발 여자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또한 왜 나타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그러자 폴트는 가볍게 웃으며 앞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담배였다.

너까지 그러냐.

그보다도, 이제 갓 스물 아니었던가.

“큰 아가씨와 작은 아가씨께서 만나는 일이라면 도울 수밖에요.”

“저까지 아가씨라고 하지 마세요. 불쾌해요.”

“실례했습니다.”

나가다 만 유가 툭 쏘아붙이자 폴트는 여유롭게 받아쳤다. 나이에 비해 완숙한 태도였다.

이윽고 폴트는 다시금 나를 돌아봤다.

“두 아가씨의 관계가 진전되고 시제품을 확인할 때까지 못해도 한 달은 걸릴 겁니다.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된 만큼, 한나진 씨께서도 아가씨와 친해질 필요가 있는 줄로 압니다.”

“예, 그건 분명히 그렇긴 해요.”

“그러면 동의하신 걸로 알아도 되겠습니까?”

부탁이 쉬운 여자로군. 나 같으면 처음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지는 못할 거다.

물론 유가 먼저 나서줬다는 상황에 힘입은 것이겠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다짜고짜는 좀…….”

내가 머뭇거리자, 곁에 있던 유는 폴트에게 따지듯 말했다.

“됐어요, 금발. 오빠가 곤란해 하시잖아요. 됐어요. 그냥 한월 오빠한테 조를게요.”

그 말을 듣자 울컥, 무엇인가가 목구멍 안쪽으로 차올랐다.

한월이 이 현장에 있었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쓸모없는 생각이다. 길게 고민할 것도 없다. 한월은 승낙했을 것이다.

그 녀석은 항상 그렇다. 본인은 의지가 박약한데 주변에서 자꾸만 동력을 불어넣어준다.

한월의 삶은 작위적이다. 그리고 작위와 타율로 얼룩진 상황 속에서 한월은 무엇인가를 성취해낸다.

한월은 그런 사람이다.

“글쎄요. 저도 큰 아가씨께서 신뢰하신다는 박한월 씨를 더 만나보고 싶기는 합니다. 하지만 주말에 시간을 내기에는 너무 바쁘신 분 아닙니까?”

“그러니까 조른다잖아요. 그 오빠 바쁜 건 아까도 얘기했으니까 금발은 빠지세요.”

티격태격.

한월과 늘 함께 하는 재인도 아마 이런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골목길을 걸으면 불량배에게 희롱당하는 소녀를 마주한다. 그렇게 만난 소녀 손에 이끌려 지정능력 검사를 받으면 의외의 소질이 발견되된다…….

편의주의적이다.

나는 이 이름 없고 졸렬한 감정이 열등감이라는 사실을 안다.

“아니…….”

나는 유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그냥 내가 갈게.”

“정말이요?”

“한월이한테 부탁해봤자 되겠냐. 워낙 바쁜 녀석이어야지.”

허어어.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린아이라도 될 수 있을까.

모른다.

나는 한월에게 주어지는 상황들보다도 작위적인 웃음을 지었다.

메이드에게 돌아섰다.

“뭐, 그쪽 아가씨께서도 괜찮으시다면.”

“랑 아가씨를 말씀하시는지요?”

“예. 작은 아가씨요.”

폴트는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은 꽤나 매력적이었으나, 아무래도 폴트는 남을 배려하는 성품은 모자란 것 같았다.

“한나진 씨까지 아가씨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당신 알아듣기 편하라고 그렇게 부른 건데…….

***

그래서 결국 나와 폴트는 맞담배를 하게 됐는데, 폴트는 여러 의미에서 신기한 여자였다.

한국어를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쓰게 됐는지, 담배는 왜 배웠는지, 어쩌다가 전속 메이드 같은 직업을 갖게 됐는지.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에서 생략된 설정 같은 것을 상세하게 듣게 된 기분이다.

의외로 평범한 인생이었다. 눈에 띄는 사연은 많지 않았다.

둘이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당장 상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보다 독한 담배를 피우는 연하의 외국인 여성을 보며, 묘한 창피함을 느꼈다고만 해두고 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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