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001. 세상은 니네끼리 좀 구해 (3)
* * *
사람은 말조심을 해야 한다.
특별히 말에 신비력이 있어 내뱉어진 것이 실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무심코 지껄인 것이 정말로 실현돼 버리면 꼭 내 탓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급습을 당했을 때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편이 낫겠다는 얘기는 실로 말실수였다.
“씹어 먹을……!”
곧바로 클로를 들어 스컬터 하나를 꿰뚫어버린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한 마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황이 없어 장담은 못 하겠지만 최소한 네 마리다. 아까 도망친 개체가 무리를 소집한 것이다.
[행동지정: 인근와해]
클로를 허공에 휘두르는 동시에 행동지정.
인근와해의 왜곡력이 발생하며 뭉쳐있던 스컬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인근와해는 모여 있던 대상들을 흩어놓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지 못한다.
스컬터들과 나 사이의 거리는 각각 5미터 내외.
가장 먼저 달려드는 개체는 물론 있을 수밖에 없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좌측에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더 짙은 검은색의 스컬터가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나는 클로를 꽂아 넣는다.
동시에 후면을 향해 다른 클로를 내밀고, 행동지정.
[행동지정: 주변왜곡]
주변왜곡이 발생한 클로에서 강한 섬광이 뿜어져 나온다.
이윽고 국소적인 규모로 공간이 뒤틀린다.
돌아보지 않은 채 내민 클로에 걸린 것을 집어던진다.
한 마리의 처리가 끝나고서야 등 뒤를 확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왜곡에 의해 신체기관이 뒤틀린 스컬터가 널브러져 있다.
여유가 있었다면 얼른 발톱을 뽑아냈겠지만, 다른 스컬터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무슨 한가한 소리인가.
나는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스컬터의 생리와 외견 모두가 개와 유사하다.
무리를 짓고 협동할 지능을, 약자를 멸시하고 강자에게 수그릴 지혜를 갖추고 있다.
그것을 이용해야만 한다.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대체복무자가 되지 못했더라면 연병장에서 이따위로 기합을 지르고 있었겠지.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는 것조차 꾹 억누른다.
두 마리의 스컬터는 당황한 것처럼 서로를 마주본다.
무슨 의견을 나누는 것일까. 내용이 어떻든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언제나, 지적호기심보다 앞서는 것은 생존욕구다. 나는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적절한 타이밍을 잡고, 등을 보여야 한다.
등을 보이고 도망쳐야 한다.
그러면 놈들은 달려들 것이고.
나는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해, 더 많은 발톱을 뽑아버릴 것이다.
다섯 걸음을 뒤로 향했다.
스컬터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정면에서 승부해 결판을 내기에 눈앞의 인간은 기본적인 기술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존에 있어 욕구를 느끼듯, 스컬터들도 그들 나름의 욕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더 많은 우리를 죽이고자 한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탈무드에서 이르길, 올바른 자는 자기 욕망을 조정하나, 그렇지 않은 자는 욕망에 의해 조정 당한다.
나는 등을 돌렸고, 온힘을 다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키르르륵.
새벽에 튼 라디오의 잡음 같은 울음소리.
턱 끝까지 공포가 밀려온다.
얼마나 가까이 붙었을까. 뒤를 돌아볼 겨를은 없다
돌아보고 나서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고정시킨 뒤 달릴 틈이 없는 것이다.
돌아봤다면 무조건 일격을 날려야 한다.
감각에 의지해서.
아무것도 잘난 바 없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감각에 모든 것을 건다.
도박꾼이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을 겜블링이다.
기업체가 내 지원서를 받고 ‘철학과는 좀…….’이라며 거부하는 것과 같이, 어떤 도박사도 한나진의 감각이라는 패에 베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방금 망가뜨린 무전기 가격을 위해, 고작 그런 것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입장에 있으니까.
입장은 이미 나의 것이고, 포기할 수도 눈을 돌려 회피할 수도 없다.
그런 짓은 고등학생 때에나 용납 받는다.
나는 이미 지나치게 어른이다.
돌아선다.
무엇이 있을지, 얼마나 가까이 있을지 모르는 채로.
행동지정.
[행동지정: 주변왜곡]
클로로 후방을 할퀴며, 공간을 비틀어버린다.
적중했다. 심장이 금세라도 터질 듯 요동치며 사지에 혈액을 보급한다.
스컬터의 안면이 네 가닥으로 찢어지며 왜곡된 공간에 압박을 받아 산산이 갈라진다.
“흐으으읍………!”
하지만 아니다.
틀렸다.
연거푸 세 번의 행동지정을 사용했다.
자각할 수 없는 사이에 호흡의 양이 동난다.
보충되지 않으며, 재생되지도 않는다.
입을 열어 들이쉬려고 해도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다.
적은 아직 한 마리가 남았고.
이 감각은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익숙하다.
우울증 환자는 보통 숨을 갈구하게 되고, 그래서 들이마신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산소는 이미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산소 공급을 멈춰야 한다.
과다하게 축적된 산소는 되레 신체를 잡아먹는 법이니까.
즉, 과호흡이다.
몸을 지탱하는 감각이 녹아내린다.
신체의 균형이 무너진다.
스컬터의 새빨간 안광이 정면을 달린다. D급 파계종.
소수의 D급 지정자로 처리가 가능하며, 고등급 지정자의 경우 위압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사살할 수 있다.
그들은 약골이고.
그런 약골에게, 나는───.
“한심.”
무엇인가가 코트 뒷덜미를 낚아챘다.
저항할 틈도 없이 지면을 구른다.
콘크리트 구조와 부딪힌 등을 타고 격통이 솟아오른다.
가시가 박힌 것과 같은 불쾌한 감각. 상처는 사실 낫지 않았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그러다가 그만두었다. 목소리는 끊어졌다.
그 아이였다.
아까 복도 끝에서 움직이던 사람의 형상.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소녀의 행색.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드레스와 뾰족코 구두.
열다섯이나 간신히 될까. 나를 밀쳐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였고.
그녀의 주먹은 스컬터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것은 무리한 행동이었다.
방금까지 일반인이 스컬터를 제압했다는 뉴스를 떠올리긴 했지만, 그것은 건장한 스포츠맨이 저지른 일이다.
그마저도 전신에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었다.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지, 때려눕혔다는 것이 아니다.
소녀에게 스컬터를 어떻게 할 정도의 힘은 없다.
없을 것이다.
그녀의 주먹에 채워진, 커다란 건틀릿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무엇인가가 부러지는 소음.
이어서 달려들었던 스컬터는 수십 미터를 부유해 벽면까지 내던져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스컬터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몇 번을 겨우겨우 키륵키륵 울어대다가 결국 절명했다.
“등급이 뭐야.”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내게 소녀가 물었다.
“무슨…….”
“등급. 등급 몰라?”
나는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벌린 채로 말했다.
“그게, C등급…….”
“설마, 그쪽 한나진?”
소녀는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직후, 그녀의 주먹을 감싸고 있던 건틀릿이 자동기계처럼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몇 차례의 조작을 거듭하더니, 조그마한 큐브 모양으로 합쳐졌다.
소녀는 큐브를 주워들어 허리에 매고 있던 가방에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그 덕분에 빈손을 나에게 뻗었다.
맞잡기 직전에야, 나는 깨닫는다.
“잠깐, 혹시 성씨가?”
“제갈.”
갈 길을 잃은 손을 낚아챈 소녀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망연히 중얼거린다.
“무슨 팀장이 이래. 실망.”
그러냐.
절망감에, 그리고 자괴감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다.
그렇지. 이게 네 팀장의 꼬락서니다. 네가 주먹으로 때려눕힐 괴물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그마저도 너에게 도움 받아 기사회생한 잡졸이다.
남들이 B등급 A등급 파계종과 아름다운 결판을 벌이는 동안, 나는 이곳에서 길을 튼다.
나보다 나은 자들을 위해.
“그러니 제발, 어울리는 놈들끼리 놀게 해줘…….”
나도 모르게 소리친다.
“뭐래?”
그쪽에서 이상하게 생각해도, 이제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쪽팔릴 뿐이다.
***
새카만 세단의 뒷자리에 올라탄 여자아이는 제갈랑이라고 한다.
앞좌석에서 얌전히 운전하고 있는 금발의 서양인 메이드는 제니퍼 더 폴트(Jennifer the Fault), 약칭 폴트라고 한다.
랑 옆에 앉은 남자는 한나진이라고 하는데, 그의 정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C등급의 길앞잡이라는 굴욕적인 칭호가 있긴 하지.
그렇지만 재벌후계자와 그녀의 전속메이드 앞에 내밀 만한 명함은 못 될 것이다.
………슬프게도.
세단은 스퀘어원 주차장을 돌아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부터, 길앞잡이들에게 후퇴 명령이 내려졌다. B등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파계종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단 스컬터 발톱을 뽑고 있었다.
내가 직접 잡은 세 마리와, 랑이 건틀릿으로 때려눕힌 한 마리.
랑은 반달처럼 눈을 뜨고, 경멸을 담아 물었다.
“더러워. 그건 왜 주워?”
“무전기가 고장 났거든.”
여러 과정이 생략된 말이었다.
하지만 랑은 깊게 알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그저 아래층으로 향했다.
나도 뒤를 따랐다. 일단 랑이 내 팀원이기도 했고, 스컬터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까지 하니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빠르게 후퇴했다.
마침 새카만 칼날들 팀도 진입하고 있었다.
본래 그들은 다섯 명이지만, 보통 활동하는 것은 한월과 유, 재인뿐이다.
그들만으로도 B등급 파계종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느니, 곧 텅텅 비게 될 내 통장을 걱정하는 게 나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은 있었다.
유와 랑의 행동거지였다.
몇 시간 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자매였다. 그리고 유의 말을 들었을 때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혈연이니 만큼 (심지어 서로 상당히 닮았다.)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나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먼저 랑을 알아차린 것은 유였고.
유는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구기고 동생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랑은 태연자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니랑 인사는 안 해?”
“너는 신경 쓰지 말 것.”
자기보다 못해도 다섯 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에게 간단히 반말로 대꾸.
아무래도 그녀의 인식 안에서, 나는 그냥 한심한 놈으로 낙인찍힌 것 같았다.
***
그리고 그렇게 바로 사무실 혹은 자택으로 복귀할 줄 알았다.
랑의 태도가 솔직히 말해 만사가 따분하다는 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새카만 칼날들 팀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 언니를 보고 싶은 것일까 했는데, 랑은 한월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물론 한월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A등급 지정자는 자기 권역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인근 도시로 파견되기도 한다. 간단히말해 유명인사인 것이다.
물론, 사무실 위치를 알고 있는 나야 찾아가면 만날 수 있겠지만, 지금 한월은 임무에 임하고 있다.
결국 구구절절한 설득 끝에 나는 한월이 파계종들을 제압하는 모습만 관람할 수 있게 해주었다.
관람이라는 표현은 적절했다.
마침 한월은 의료매장 중심부에서 B등급 파계종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랑을 위할 자리가 되어줄 위층 복도에는 난간이 너무 높게 솟아나 있었다.
몇 번의 다툼 끝에, 내가 랑을 안아 올려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흘끗, 위를 쳐다보니 랑은 내 품에 바싹 안겨 있다는 게 불쾌하다는 것처럼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안아 달라고 한 주제에 무슨 성희롱꾼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네.
그러나 나는 성인이고, 이 녀석은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다.
성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피부가 너무 뽀얗고, 젖살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무시하기로 하고 한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월과 맞서고 있는 파계종은 두억시니로, 한국에서 처음 발견돼 명명된 종이었다.
사실 두억시니 같은 마이너한 이름보다야 오크 내지 오우거가 더 어울릴 것이다.
사람보다 몇 배는 커다란 키와, 주변의 기물을 아무렇게나 뽑아 둔기로 휘두르는 본성.
괴수처럼 포효하는 두억시니는 나로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위압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월의 위압은 그 이상이다.
[행동지정: 속도전]
한월의 움직임은 마치 위에서 아래로 덮쳐오는 짐승의 그것과 같고.
[행동지정: 난타]
그의 타격은 두억시니가 휘두르는 둔기를 가볍게 막아낼 정도로 묵직하며.
[행동지정: 월광회귀]
틈을 노릴 수 없이 빠른데.
[행동지정: 강속타]
그런 동시에 압도적이다.
[행동지정: 표리부동] [행동지정: 전광석화] [행동지정: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행동지정: 강속타] [행동지정: 홀랜드의 무덤] ──────────
빛을 잠식하는 검은빛의 위압.
나는 괜한 부러움을 더 느끼고 싶지 않아, 한월의 움직임을 쫓는 대신 랑을 올려다보았다.
랑은 방금까지만 해도 떠올라 있던 나쁜 표정을 완전히 지운 뒤였다.
“………굉장해.”
이 녀석도 제 언니나 다른 몇몇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감탄한다.
묘한 느낌이다.그녀가 보기에도 한월은 대단한 것일까.
하긴, 유가 한월을 영웅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 동생이 고평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어쨌거나 랑이 더 확실히 한월을 구경할 수 있도록 나는 그녀의 허리를 고쳐 들었다.
때마침 저 아래에서부터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월이 두억시니를 쓰러뜨린 것이다.
한월의 묵빛 대검이 두억시니의 복부를 꿰뚫었다.
B등급 파계종은 그곳에 원래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사라졌다.
이어서 한월 또한 털썩 주저앉았다. 많이 지친 모양이다.
다행히, 다른 파계종이 달려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수건을 들고 있던 재인이 달려와 한월의 이마를 쿡쿡 찍어준다.
이쪽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둘은 아무래도 웃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내려놔.”
랑이 툭툭, 내 어깨를 건드리며 말한다.
“아, 응.”
분부대로 해놓고, 나는 뒤를 돌아선다. 길앞잡이의 역할은 아까 전에 끝났다.
만일 끝나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의 광경은 내게서 너무나도 멀어서.
아무리 넓게 손을 뻗어도 닿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아주 오래전부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