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30화 조별 과제 준비(7)
* * *
“그러니까, 마나를 받아들이고 서킷을 통해 변형시켜서 배출…….”
“아니잖아.”
나는 시에라의 말을 끊었다.
“서킷을 통한 변형 과정을 언제 거쳤는데?”
원작의 서술을 떠올릴 것도 없었다.
직접 보니 일목요연했다.
“아무리 빨리 변형을 거쳐도 네 마법 발현 속도는 못 따라가.”
정확히 눈 감았다 뜨니 마법이 발현됐다.
원숙한 트리플인 아이린조차 십 초가량 걸린 것과 비교하면 비정상적 빠르기였다.
“제어에 실패한 걸 보니 메모라이즈도 아니었고.”
메모라이즈는 더블 캐스팅처럼 마법사가 익히는 일종의 잡기다.
같은 마법을 수천수만 번 연습하여 마나 서킷의 변형 과정을 머리가 아닌 몸에 인식시키는 게 요지였다.
피를 토할 노가다를 거쳐야 하긴 해도 발현이 빠르고 실패가 없었다.
그러니 시에라가 메모라이즈 한 마법을 발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마법을 발현시키는 사람은 마탑에서도 본 적 없어.”
마법은 공식이다.
중간 과정을 하나라도 건너뛰면 마법은 발현되지 않았다.
고로 시에라의 행위는 엄밀히 따져 마법이 아니었다.
“그건 차라리…….”
정령술이나 신성력에 가깝지.
말하려다 꾹 참았다.
이는 지금 꺼냈다간 위화감만 조성할 발언이었다.
“그치만 마법이 발현되긴 하잖아…….”
“제어도 못 하고 사고만 쳤으면서?”
“미, 미안.”
어딜 전문가한테 대들어.
시에라는 항변했다 본전도 못 찾았다.
“아무튼 이러면 실력 체크를 하려 했던 의미가 없네.”
기본 전제부터가 달랐다.
마나 서킷을 활용 안 하는데 마법의 조합이 되겠나.
이럴 줄 모르고 시킨 건 아니나 직접 보니 더 기가 찼다.
“골치 아프네요.”
아이린도 심각성을 안 듯 미간을 지그시 짓눌렀다.
“마나의 변형 과정은 무의식중에 처리한 거라 치더라도, 기본이 안 되어 있으니 협력이 안 되잖아요.”
마법의 조합이란 하나와 하나를 더해 둘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합체 로봇에 가까웠다.
합체 로봇의 팔다리가 따로 기동 가능한 하나의 개체이지만, 끼워 맞추면 최종 완성품으로 합쳐지는 그런 느낌.
그렇기에 마나 서킷의 정교한 활용이 필요했다.
조합에 사용되는 마법의 서킷 구조를 본인이 새로 짜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저런 제어 능력이면 실수 없이 마법을 발현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아이린은 마침내 헛수고 했다는 내 말을 가슴으로 깨우쳤다.
일반적으로 기사님의 캐리력보단 트롤의 역캐리력이 한 수 위였다.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진리였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군요.”
시에라는 아이린의 싸늘한 눈초리를 버텨내지 못하고 푹 고개를 숙였다.
“남의 발목만 붙잡는 조별 과제란 걸 대체 왜 만들었는지……이해가 안 되네요.”
나도 공감했다.
조별 과제 삭제 좀.
완벽히 마쳐도 성취감보단 스트레스가 컸다.
교수들이란 대외적으로 협력의 가치를 주창하며 내심 학부생의 절망을 즐기는 악질들임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군요. 과제 발표는 케일과 저를 주축으로 하고 시에라는 적당히 묻어가는 식으로 가죠.”
“……네에, 그렇게 해요.”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원래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자료 정리 같은 단순 작업이나 시키는 법이지.
촌철살인에 너덜너덜해진 시에라도 대승적으로 수긍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반대표를 던졌다.
“그래도 되겠어?”
“왜요?”
“그렇게 되면 고득점은 못 노려.”
조원끼리 협력하지 못하면 감점 사안이다.
A반 내에서조차 수준이 천차만별이거늘 억지 아닌가 싶지만, 그게 채점 기준이었다.
“…….”
거북한 침묵이 맴돌았다.
아이린도 시에라도 고득점을 노려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한쪽은 공작가의 압박.
한쪽은 장학금.
나 또한 고득점을 노리는 편이 아닌 것보단 나았다.
“그래도 방법이 없잖아요.”
어쩔 수 없이 현실에 타협해야만 하는 때가 존재했다.
대신 그 원인 제공자에겐 원망이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기왕 내가 두 사람과 같은 조원이 됐는데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건 용납 못 했다.
친하게 지내진 못해도 원망은 안 쌓여야지.
“그거 알아?”
“뭔가요?”
“영 못 미더운 녀석도 굴리면 다 해내.”
아이린은 길가의 벌레 보듯 싸늘한 눈초리를 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니, 진짜로.”
머리가 안 따라간다고?
그럼 몸으로 해내면 되는 일이다.
내가 해본 바 그랬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시키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그랬고, 아버지의 기사단 훈련이 그랬다.
사람의 능력은 생각보다 위대했다.
“일단 시에라의 저 이상한 마법이 꼭 단점이기만 한 건 아니야.”
“억지로 포장하려 들지 마요.”
“마법에 관해선 내가 그런 짓 안 하는 성격인 거 알잖아.”
“그거야 그렇지만……본인마저 모르는 장점이 있다는 게 포장이 아니면 뭐예요?”
“…….”
시에라는 씁쓸한 웃음만 띠었다.
본인이 반박을 포기하였음에도 나는 주장을 이어갔다.
“과정이야 개판을 쳐놨어도 마법이 발현은 되잖아.”
속사정 아는 내게는 마법이 아니지만, 겉으로 보이기로는 마법이었다.
그러니 남들을 속일 수 있었다.
“본인과 색이 안 맞는 마법이면 아예 발현도 안 되는 거 알지? 진짜 다중 속성 사용자일 수도 있어.”
“……그래서요?”
“일반적으로 어려운 마법이란 마나 서킷의 구성이 어려운 걸 이르지만, 타고나지 않으면 못 쓰는 마법도 어려운 마법이라고 부르지.”
쉽게 말해 핏줄이나 재능의 영역.
“후자에 속하는 마법을 시에라가 쓸 수 있다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거 아니겠어?”
스토리 구성마저 가능했다.
팀원들과의 협력을 통해 성적 하위권자로서의 단점을 극복한 모범 사례.
성공하기만 하면 베스트다.
“방금 우리 조 스펙을 확인하고 내가 생각한 마법 조합식이 하나 있어.”
정확히는 내가 7조에 속했음을 확인하고 염두에 둔 것이긴 했다.
“그걸 밝히기 전에…….”
미리 설명해둬야 할 배경이 있었다.
“2주 후 신입생 환영 연회가 있는 건 들었지?”
“네.”
“……아, 그런 게 있구나.”
“귀족 자제들이 주축인 파티라 시에라 너는 모를 수 있긴 해.”
나 말곤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원작에서도 시에라가 이를 안 건 황태자와의 잡담에서였다.
“연회는 아마 조별 과제가 끝난 후에 열릴 거야. 시기적으로 겹쳐 있으니 조별 과제에서 발표한 내용이 연회의 이야기 주제가 되겠지.”
“그렇구나. 조별 과제 열심히 해야겠네.”
“그게 무슨 얼빠진 소린가요.”
아이린이 시에라에게 핀잔을 주었다.
나도 말만 안 했지 동감을 표했다.
저건 사교계의 생리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무식한 발언이었다.
“그런 상투적인 말로 정리하자고 케일이 말을 돌린 게 아니에요.”
“조별 과제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공격당할 빌미를 주면 안 된다는 뜻으로 꺼낸 이야기지.”
“……?”
순박한 시골 소녀 시에라는 역시나 이해하지 못했다.
“위험하게 이용될 수 있는 마법 조합은 지양해야 한다는 말이야. 예를 들자면 저거 마법 쓰는 성향을 보니 성정이 호전적이라 졸업하면 전쟁광이 될 놈이라고 음해당할 수도 있는 거거든.”
“말도 안 돼.”
이세계 문화와 접한 시에라는 문화충격에 입을 떡 벌렸다.
“설마 축하 자리인 환영회에서 그런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겠어?”
“많아요. 아주 개미 떼처럼 득시글거리죠.”
아이린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었다.
“사교계가 원래 그래.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칼을 품고 다니지.”
과장하자면 측근을 제외한 모두가 잠재적 적이다.
공작가 영애인 아이린은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였다.
귀족 사교계의 풍운아가 될 시에라도 마찬가지고.
조심해서 나쁠 거 하나 없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하면 마법 조합의 선택지가 한정적이겠군요.”
“괜찮아, 내가 그래서 생각해둔 게 있다고 했잖아.”
공격받을 빌미를 주지 않고 대단함만 뽐낼 수 있는 마법이었다.
“불꽃놀이. 이러면 겉보기에도 좋고 트집 잡힐 일도 없겠지.”
“……불꽃놀이? 수수하지 않나요?”
당연히 불꽃놀이가 수수하진 않다.
아이린의 말뜻은 이를 마법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수수하다는 의미였다.
“폭발, 색상 변화, 이런 식으로 구현하면 수수하겠지.”
“그래요.”
“근데 어렵게 구성하자면 얼마든지 어렵게 만들 수 있어.”
마법의 세계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만큼 심오해졌다.
“아이린 네가 폭발, 형상 변화. 시에라가 환영, 분열. 내가 공간 좌표 이동. 이래도 수수해?”
“…….”
아이린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조합하니 무슨 마탑에서 시연할 법한 마법이 된 것이다.
“우리 수준에 그게 가능해요? 아니, 서킷 구조를 짤 수나 있겠어요?”
“가능해.”
나는 즉답했다.
“내가 해낼 거니까.”
마나 서킷이 박살 났지 머리가 박살 난 게 아니다.
나는 내가 천재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탑에서 삼고초려까지 한 인재가 이를 해내지 못한다는 건 자존심에 금 갈 일이었다.
“불만 없으면 이렇게 진행할 테니까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굳이 이를 택한 이유가 있기도 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신명나게 불꽃축제를 벌일 쥐새끼들.
그놈들을 엿 먹일 준비이기도 했다.
“문제라면 시에라지. 환영에 분열. 전자는 정신계 작용 마법이라 까다롭잖아.”
정신계 마법 또한 적성으로 판가름 나는 타고난 자의 영역이다.
다행히 시에라의 머릿속에 이론은 없어도 재능만큼은 차고 넘쳤다.
“나, 내가 할 수 있을까……?”
확장된 스케일에 시에라는 겁먹어 움츠러들었다.
“내가 말했잖아.”
나는 확신이 있었다.
“굴리면 다 돼.”
주인공은 원래 구르면서 성장하는 거다.
“다음 주에는 수업 끝나면 시간 비워놔.”
“……응?”
“직접 가르쳐줄게.”
귀찮긴 했다.
그래도 어려운 일 시켜놓고 나 몰라라 할 만큼 내가 양심에 털 난 놈은 아니었다.
“……지, 진짜?”
“잠……!”
한데 좌중의 반응이 기이했다.
시에라가 내 말이 바뀔세라 반색하며 손을 붙잡았다.
“고마워, 잘 부탁해.”
“…….”
아이린이 황망히 나를 응시했다.
“뭐 할 말 있어?”
“……아니에요.”
치마 위에 단정히 내려놓은 아이린의 손 모양이 꼭 주먹을 쥐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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