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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약혼자가 로판 속 악녀다-23화 (23/40)

〈 23화 〉 23화 ­ 첫 수업, 첫 과제(3)

* * *

“마법이란 무엇인가. 본 강의는 이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네.”

제이스 교수의 강의가 시작됐다.

나는 종이와 펜을 꺼내 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같은 동작이었다.

양산되지 않아 비쌀 종이와 펜이나 아카데미에선 기본적으로 보급해주는 물품이다.

여기서만큼은 가격 상관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마법은 상상을 현실로 현현하게 만드는 도구다. 사람이 신이 되어 일으키는 기적이라고 마법을 숭앙하려는 이들도 있긴 하나 잘못된 믿음이지.”

엘프는 알려지기로 정령술과 마법의 대가다.

그러나 깊이 파고들자면 대가라 할 수 있는 분야는 마법 하나였다.

인간이 말하는 정령술과 그들이 다루는 정령술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엘프의 정령술은 정령이라는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는 개념이다.

정령을 제 영향력 아래 복속시켜 다루는 인간과는 확연한 차이였다.

반면 마법은 오로지 엘프라는 종족의 재능이다.

마나의 근원인 세계수에서 태어났다는 전설대로 엘프는 마나를 다루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어린 엘프가 제 몸을 가눌 때가 되면 초보 마법사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들에게 마법의 발현은 호흡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법을 선택받은 이의 힘이라 칭하는 인간과 달리 그들이 마법을 도구라 정의한 건 당연했다.

“마법은 기적이 아닐세. 바람을 부르고 불을 피우며 물을 샘솟게 하고 흙을 메우는 일이 기적인가? 그럴 리가. 같은 일은 다른 방법으로도 해낼 수 있네. 오히려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효율적이지.”

선풍기, 라이터, 수도, 굴착기 등.

과학보단 마법 문명이라 없는 물건도 있되 같은 목적으로 개발된 시제품은 존재했다.

제이스 교수의 말마따나 마법으로 같은 일을 해내는 것보단 다른 도구를 이용하는 편이 쉬웠다.

나만 해도 마법사의 능력을 거의 잃었으되 특정 상황을 제외하곤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자네들은 우선 마법사로서의 특권의식을 버려야 하네.”

쿵 책상을 내리치자 몇몇 학생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이는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았다.

불만스럽기는 할 것이다.

기사가 대우받듯 기술직인 마법사가 특권의식을 갖는 게 뭐가 나쁜가.

하지만 엘프가 하는 말이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재능 있는 마법사라도 평생 노력한들 성년이 된 엘프에게 격이 못 미치는데 고작 아카데미 학생이 뭔 배짱으로 반박하겠나.

본인이 특별하다 주장하고 싶다면 제이스 교수부터 넘어야 발언 자격이 주어졌다.

“흐아암.”

……유일하게 여기에 그럴 자격을 갖춘 놈이 하나 있긴 한데.

녀석은 만사가 태평한 성격답게 하품이나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법은 개인에게 주어진 도구의 일종이다. 마법사임을 특별하게 여기지 말게. 그래야만 비로소 마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야.”

그러면서 그는 학급의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했다.

……나랑은 좀 더 오래 마주친 것 같은데 아니겠지?

고작 1, 2초 차이니 내가 과민한 것이리라.

황태자 때문에 의심만 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법이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닐세. 정확히는 평범하되 특별해질 수가 있네. 마법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지.”

서론이 끝났다.

개념을 주입하였으니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강의였다.

“마법은 어떻게 발현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 학생 있나?”

“몸에 각인시킨 마나 서킷을 통해 마나를 변형시킨 뒤 발출해 발현시킵니다.”

“정확하군. 자네 이름이……토메르 밀런이었나?”

“그렇습니다.”

“첫 수업에 용기 내 발언하였으니 추가 점수 부여하지.”

“감사합니다.”

학습 태도 또한 엄연히 평가 대상이다.

이로 갑질하는 교수 숫자가 적진 않지만 제이스 교수는 안심 대상자였다.

태도 점수야 심심하면 퍼주는 온화한 성격인지라.

여담으로 엘프란 사실 다 저런 성격인 거 아닐까 싶어 엘프에게 접근했다 혼쭐이 나는 학생들을 양산하기도 했다.

“이 반의 학생들은 전부 마나 서킷을 몸에 각인시켰다 알고 있네. 다루는 재주도 또래에 비해 빼어나겠지. 그러하지 않고서야 A반에 배정되었을 리 없으니 말이네.”

이번엔 나 혼자 뜨끔했다.

……마나 서킷 부서졌는데.

대체할 방법이야 구상 중이고 만일의 수단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아카데미의 중점 교육 과목이 마법인 이상 내게는 걸림돌이 될 대목이었다.

“마나 서킷, 회로란 즉 마법이라는 현상을 결정짓는 도면일세. 몸을 도화지 삼아 마법진을 그리는 게지. 이를 어떻게 구성하여 마나를 변형시키느냐에 따라서 마법이 달라지네.”

제이스 교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우와.”

“어떻게 한 거야?”

“미쳤다.”

발출된 마나는 물이 되고 불이 되었으며 물질이 되었다 기체로 화했다.

하나하나 따로따로라면 쉬이 해낼 수 있어도 이를 연속으로 발현하게 만드는 건 고도의 기술이었다.

과연 엘프는 엘프였다.

원작에서 서술했을 때는 신기하다 정도였지만, 마법사의 눈으로 바라보니 감탄만 나왔다.

“이처럼 회로를 어찌 조작하느냐에 따라 여러 마법을 동시에 발현시킬 수도 있지.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 등 칭하는 명칭이 있긴 하다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나 싶네. 감을 잡을 수만 있다면 결국 요령의 영역이니.”

제이스 교수는 별거 아니라며 껄껄 웃었다.

대비되듯 학생들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더블 캐스팅을 요령이라 말하는 건 엘프니까 가능한 말이다.

대학 교수가 암산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냈단 얘기 들어본 적 있지 않나?

저 발언은 그런 종류였다.

엘프한텐 요령이라도 인간한텐 재능이다.

“어흠, 잡설이었군.”

열기가 식었음을 눈치챈 제이스 교수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여하튼 본 강의의 최종적인 도달점은 본 강의를 이수한 학생들이 방금 전 본 교수가 해냈듯 마나 서킷을 능숙하게 다루며 마법의 본질을 깨우치게 되는 걸세.”

학생들은 다시 흥분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학년 기초 과목치고는 높은 이상.

그러나 A반 소속 학생쯤 되면 재능으로는 마탑에도 꿇리지 않는다고 자화자찬하는 영재들이다.

말한 대로 되기를 바랐고, 될 수 있다 자신했다.

“이 경지에 이른다면 인간이라도 마법사의 역량에서 엘프에게 뒤지지 않겠지.”

결정타였다.

인간 마법사로서 선천적 천재 마법사인 엘프와 비견된다는 건 그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이를 엘프가 직접 공언해주자 다들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근데 얘네는 아는지 모르겠다.

원래 처음 품은 포부와 결과물이 일치하는 일은 없다는 걸.

제이스 교수는 강단에 처음 서본 초보 교수였다.

학습 계획대로 다 이룬다면 그게 기계지 사람일까.

내 가슴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방금 전 보여주었던 마법을 해부해보며 서킷의 활용 방법을 설명하겠네. 처음은 물이었지. 물의 변환 회로는…….”

이어진 것은 끝을 모르는 설명이었다.

칠판이 제이스 교수의 글씨로 꽉 찼다.

경험에 비춘 재밌는 비유나 숨 돌릴 시간 따위 없었다.

오로지 이론과 원론적 접근으로 이루어진, 시간을 꽉 채운 강의.

좀 버릴 부분이라도 있으면 딴짓도 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한 파트 한 파트가 안계를 넓힐 이론의 총체다.

“이게 기초 강의……?”

“이 파트는 어떻게 풀어 적어야 하는 거야?”

“별수 있냐. 그대로 베껴.”

“아, 설명 놓쳤다.”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가 터졌다.

첫 수업부터 넋이 나간 학생들이 많았다.

심지어 금방 끝나는 것도 아니라 오전 3시간 강의.

점심시간 있으니 그때 알아서 뻗으라는 소리였다.

“…….”

여유를 가지고 있는 건 나를 포함해 두 명밖에 없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나는 딱히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핵심을 이해하면 그 외는 곁가지다.

굳이 통째로 외우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나머지 한 명은……이론을 외울 필요가 없는 놈이지.

미래의 대마법사는 기초 이론 따위 무의식에서 체화한 지 오래였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다행인 점은 제이스 교수가 수업 시간은 칼같이 지킨다는 점이었다.

“오늘의 수업은 여기까지일세.”

점심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는 칼같이 칠판에서 분필을 뗐다.

동시에 지옥에서 벗어난 학생들이 긴장이 풀린 듯 우르르 무너졌다.

“다들 잘 이해했길 바라네.”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보통은 오늘 설명한 것에서 50%나 이해했음 다행이었다.

“다음 수업에선 활용과 응용에 관해 강의할 테니 예습을 해오면 학습에 도움이 될 걸세.”

권유의 탈을 쓴 강제였다.

예습 안 하면 못 따라간다.

학생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복습은 당연히 철저히 해야 하고…….”

구태여 사람 손으로 칠판을 닦을 필요는 없었다.

제이스 교수는 발 구름을 트리거로 마법을 사용해 칠판을 말끔히 닦아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지루한 복습을 즐겁게 느끼도록 도움이 될 과제를 내줄 생각이네.”

탄식이 터졌다.

강의 첫날부터 과제?

“기간은 넉넉하게 삼 주 주지. 또한 같은 반 학생끼리 친목을 다질 겸 조별로 진행하겠네.”

심지어 조별과제다.

그 악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었다.

판타지 아카데미에 와서도 조별 과제라니.

인간의 악의가 느껴진다.

원작의 전개를 알아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침음을 삼켰다.

“조원은 지금 공지할 테니 참고하게.”

제이스 교수는 폭탄을 투하하고도 태연했다.

예비용 분필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칠판에 조별 인원을 공지했다.

딱! 딱!

교실 내에 분필 소리만이 울렸다.

주요 인물의 인원 배치는 원작을 통해 대강 알고 있었다.

아이린과 시에라, 황태자가 한 조.

미래의 대마법사께서는 어중이떠중이 둘과 한 조.

악역인 토메르 밀런은 평민 하나에 자작가 영애와 한 조다.

나는 어디에 포함되게 될까.

엑스트라가 채울 한 자리를 쟁취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 포함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호기심을 담아 분필의 움직임을 살피던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과제 내용은 마법의 조합일세.”

제이스 교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조원이 된 두 명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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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

아이린 레오나드

시에라 벨리안트

케일 알베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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