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화 병약한 공자(2)
* * *
“담배?”
“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냐. 지금 나 손절하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걸 벌써 다 피웠다는 거야?”
노엘이 크게 뜬 눈을 깜빡거렸다.
“그럼 거의 다 피웠으니까 달라고 하겠지.”
“…….”
평소대로 주기나 하지 뭘 이리 뜸을 들여.
나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빵을 한 입 뜯어먹었다.
맛있네, 이거.
역시 고위 귀족 가문의 조리장이다.
밀가루를 굽는 게 다인 간단한 빵의 맛에서부터 표현하기 오묘한 다름이 느껴졌다.
“……그러면 안 되는데.”
“응?”
“그걸 벌써 다 피울 수가 없다고.”
나는 크게 한 아름 뜯은 빵을 꿀떡 삼켰다.
나를 쳐다보는 노엘의 눈매가 가늘어져 있었다.
“주기적으로 흡연한 것 외엔 머리 아플 때만 피운 거 맞지?”
“맞아, 독한 약인 거 아는데 그걸 왜 과복용하겠어.”
아무리 내 몸이 독한 약성을 필요로 한대도 정도가 있다.
나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복약한 주제에 부작용을 호소하는 진상이 아니었다.
“거기 시녀 양?”
“네?”
“얘 흡연 주기가 달라지지 않았어?”
“아, 주기는 지키셨는데 불시에 피우실 일이 많아지시긴 했어요.”
“흐음…….”
노엘이 검지로 제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생각할 거리가 생겼을 때 보이는 그녀의 버릇이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라 하면 대체적으로는 골칫거리였다.
나는 퉁명스레 말했다.
“사람 불안하게 뭘 그리 무게를 잡아.”
“……아무래도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은데.”
“뭐라고?”
진짜 불안한 이야기였다.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가 현상 유지는 된다면서.”
“그럴 거라고 추측만 한 거지. 네 상태가 오죽 특이해?”
노엘은 팔짱을 낀 채 끌끌 혀를 찼다.
“사실 마나 서킷이 깨진 사람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기적이잖아.”
마나 서킷, 마법사가 가진 힘의 원천.
마나 서킷을 몸에 새김으로써 일반인은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마나 서킷이 존재하여야 마법을 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마법 발현 과정은 이러하다.
대자연의 마나를 받아들여 회로를 타고 이동시키고, 변형된 마나를 발출하여 마법을 발현시킨다.
제 몸에 마나를 쌓는 기사와는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점이었다.
이처럼 초인적인 힘을 가져다주는 마나 서킷은 그만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깨어졌을 때 마법사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죽는다.
몸은 평소대로 마나를 받아들였는데 그를 변형시키지 못하여 마나가 폭주한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정설과는 달리 숨이 붙어있었다.
목숨만 부지한 대가로 일반적인 상황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자체가 행운이요 기적이었다.
“내 물건이 네 몸에 듣는 원리는 과한 약성을 통해 억지로 깨진 회로를 복구시키는 거야. 그래서 약효가 다했을 때쯤 네 몸이 내 물건을 원하는 거지.”
몸이 약을 원하는 징조는 하나다.
머리가 깨질 듯한 편두통, 심할 때는 호흡곤란.
이는 주기가 비정기적이라 신경 쓰질 못했는데, 노엘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근데 몸이 자꾸 내 물건을 원한다고 하면 원인은 뻔하지 않을까.”
“……내 몸이 망가지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커. 거의 확실해.”
노엘의 목소리는 담담하여 농담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런 화제에 농담을 할 인성 파탄자도 아니었고.
“다른 이유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확인하겠어.”
“해부라도 해보면 알 수 있을까?”
내 몸을 실험체로 제공하는 게 불안하긴 해도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보단 나았다.
나아질 수만 있다면야 뭔 짓을 못 할까.
그러나 통 큰 내 제안에 노엘은 부정적이었다.
“그게 통하면 내가 미리 해봤겠지. 근데 내가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그건 싫지.”
“그치? 그니까 손도 못 대고 입으로 추측이나 떠들 수밖에 없는 거야.”
노엘도 나만큼이나 퍽 골치가 아프다는 눈치였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랬어. 그 공작가 아가씨는 너 아니어도 가문에서 알아서 잘 지켜주고 보호했을 텐데.”
“……그러게나 말이다.”
어떤 선택을 했던 다 내 잘못이지.
혀끝에 감겨오는 쓴맛을 되새김질하고 있자 노엘이 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판단하기가 어렵네. 여기서 약성을 더 세게 제조했다간 진짜 중독될 수도 있어서.”
“어느 정도는 참아낼 수 있다. 마법사잖아.”
괜히 마탑 소속 마법사가 죄다 머리 한 군데서 나사 빠진 인간들이 된 게 아니다.
마법의 연구란 고독한 길이다.
발현은 또 온갖 수식을 계산하며 마법진을 그려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만큼 마법사의 정신력은 단단하게 단련되었다.
지금 있는 금단증세보다 조금 강화된 정도라면 참아낼 만했다.
“어느 정도가 아니니까 그러지.”
노엘은 한심한 소리 말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얼마나 심하길래 그래?”
“이거 다 피웠을 때쯤엔 환각도 보일걸. 환청이야 세트고.”
“……그건 진짜 약쟁이잖아.”
환각에 환청.
마약에 중독된 약쟁이들의 전형적인 말로였다.
“아닐 수도 있긴 해. 썩어도 준치라고 넌 마탑에서 세 번이나 입문을 제의한 천재니까.”
긍정적으로 예상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두자니 나중에 더 독한 약이 필요할 할 수도 있어서 문제야.”
“그럼 그냥 지금 더 센 걸로 줘.”
“괜찮겠어?”
“방법이 없잖아.”
정말 내 몸이 나빠지고 있는 거라면 지금이 분기점이었다.
이 상태를 더 유지 시킬지, 급격하게 나빠질지의 양자 선택.
그리고 나는 성향상 도박을 즐기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없지도 않지.”
내가 몸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노엘이 효과적인 치료제를 만들면 베스트다.
그게 안 되어도 차선책이 존재했다.
엘릭서.
죽은 사람마저 되살린다는 고대 연금술의 비약.
이 세계엔 그 물건이 존재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시에라를 따라다니면 그를 손에 넣을 기회가 올 터였다.
담담한 나와 달리 노엘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결정한 거니까 나중에 잘못돼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도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너 없었으면 끔찍했어.”
“그래, 그래. 평생 감사히 알고 살아. 내가 내 연구하면서 네 몸까지 관리해주느라 시간이 남아나질 않는단 말이야.”
노엘의 눈가에 푹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보기 안쓰러웠다.
저 중에 절반을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양심까지 쿡쿡 찔려왔다.
“그래도 공짜로 부탁하는 건 아니잖아……?”
내가 할 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정당히 대가를 치렀다.
내 몸 상태만 특이하지 않았어도 오히려 내가 잔금을 받을 거래였다.
“거 완성했다는 논문 좀 줘봐.”
“자.”
나는 건네받은 그녀의 논문을 확인했다.
[중급 포션과 허브를 비롯한 약재의 배합에 따른 성질 변화 연구]
포션 연구학 박사답게 포션과 관련된 주제였다.
이 주제라면 내가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노엘이 물건을 조제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논문을 훑었다.
한 단어 한 단어 곱씹지 않아도 무방했다.
그녀가 추론과 연구를 통해 결과를 보이는 거라면.
나는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니까.
“해독 효과를 강화하고 싶으면 달맞이꽃이랑 블랙 허브를 이용해봐.”
“……달맞이꽃이랑 블랙 허브?”
“네가 지금 연구한 재료도 괜찮긴 한데 내가 말한 쪽이 효과가 더 좋을걸.”
짧게 단상을 준 것으로 내 할 일을 끝났다.
고작 이걸로 대가를 치른 게 맞나?
그런 질문 자체가 뭘 모르는 소리였다.
수많은 재료를 배합하며 시행착오 끝에 알아내야 할 정답을 알려줬으니 값은 톡톡히 했지.
이건 원작에 나온 재료 배합이다.
성공이 보장된 연구라는 소리다.
조교들을 굴리지 않고 홀로 연구하는 마법사로서는 눈물을 흘려도 당연한 도움이었다.
“……하아, 그건 내가 생각 못 했는데.”
노엘은 잠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더니 마른 세수를 했다.
“넌 대체 그런 발상을 어떻게 하는 거야?”
처음엔 당연히 미친 소리 다 듣겠다는 반응이던 그녀였다.
그러나 내 말이 몇 번이나 사실로 드러나자 이제는 의심하지 않고 궁금증만 표했다.
“그건 내 밑천이라 못 알려줘.”
정보의 출처가 원작이니만큼 안 알려주는 게 아니라 못 알려줬다.
“쩝, 진짜 마탑 들어와서 나랑 공동 연구했으면 딱인데.”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길가에 떨어진 금덩이 보듯 탐욕스럽기 짝이 없었다.
“예전에 개인 조수로 고용하겠다는 제안 아직 유효해. 생각 잘 해봐.”
“날 얼마나 쥐어짤지 불 보듯 뻔한데 하겠냐? 성과 내기도 전에 과로로 돌아가시겠다.”
나는 한자리에 앉아서 며칠 밤을 꼬박 새며 하나에 집중하는 건 불가능했다.
부모 보기엔 속 썩이는 딸이겠지만 노엘의 진득함 또한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완성은 언제 될 것 같아?”
“넉넉히 잡아서 일주일. 방으로 배달해줄 테니까 귀찮게 찾아오진 마.”
“알았어.”
그렇게 문밖을 나서려는데, 노엘이 작은 목소리로 붙잡았다.
“……만약에 아카데미에 가서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으면 말해.”
“배달이라도 보내주려고?”
“내용물 다 검사할 텐데 무슨 수로 그러겠어.”
생각해 보니 이것도 문제였다.
수량 계산에 실패해서 중간에 약이 다 떨어지면 어쩌지.
노엘은 금방 연락이 되는 사람이 아니고, 외출 신청이나 물품 배달도 각자 고충이 있었다.
“아무튼 방법이 있어.”
“뭔데 말을 안 해줘?”
“아직 얘기만 나오는 정도고 결정 난 게 아니니까 그러지.”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 재촉에 이야기를 토해냈다.
“아마 내가 아카데미 교수직으로 갈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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