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7화 왜 하필(2)
* * *
“왠지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
마차에 타고 부티크로 향하는 길.
침묵하던 세실리아가 맥락도 없이 말했다.
아이린은 뜬금없는 호위기사의 발언에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요?”
“예, 웃고 계시는군요.”
아이린이 제 입가를 매만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웃음을 잃은 그녀의 표정은 오늘도 어김없이 딱딱하고 무감각했다.
손의 감촉만이 아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 또한 웃음기는커녕 얼음장 같은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린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제 호위기사가 자신의 뭘 보고 발언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네, 네에. 아가씨. 제가 보기에도 오늘은 얼굴이 환하세요.”
오늘 하루 아이린을 수행하게 된 시녀가 말했다.
내뱉은 발언과는 달리 그녀 또한 세실리아의 발언에 동의하지 못했다.
대체 아이린의 얼굴이 어디가 어떻게 좋아 보인단 말인가.
평소랑 다를 것 없이 누구 하나 잡아매달까 고민하는 듯 악독하게만 비치는데.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앗, 예, 예?!”
“……흐음.”
낮게 새어 나온 음성에 시녀가 벌벌 몸을 떨었다.
실수했다.
차라리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걸.
괜히 관심을 끌어 아가씨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말았다.
시녀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덜덜 손을 떨었다.
자신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 걸까.
머릿속으로 아이린에 대해 퍼진 온갖 악소문들이 스쳐 지나갔다.
대답을 못 한 시녀의 혀를 잘랐다더라.
제게 예를 갖추지 못한 기사를 매질하길 명하였다더라.
심기를 어지럽힌 시종을 그 자리에서 해고하여 내쫓았더라.
뭐가 됐든 앞으로의 제 인생은 망하기 딱 좋았다.
시녀가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
“……다음은 없어요.”
“네, 네!”
시녀는 아이린의 관대한 처사에 감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련의 과정이 벌어지는 데 도화선 역할을 한 세실리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오늘은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시녀에게 또 한 차례 공포를 심어준 아이린이 아무런 감흥 없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세실리아가 갑자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 싶었는데.
시종에게 죄를 묻고 싶지 않은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별것도 아닌 트집을 잡아 시종을 처벌하고 교체한 것만 15회다.
제게 집중하지 못하고 반문한 것은 명백한 처벌 사유였다.
그런데도 오늘은 전혀 불쾌감이 들지 않았다.
기분이 좋으니 이런 일도 생기는 거겠지.
아이린은 제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멈추어 있던 것만 같던 심장의 박동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우중충하게만 보였던 하늘도 맑고 푸르렀다.
시끄럽게 귀를 찌르는 거리의 소음도 자장가처럼 나긋나긋했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과연 제가 언제 이리 평온했을까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곧 받아볼 교복이 기대되시는 모양입니다.”
“……그런 걸까요.”
“마담 레옹의 부티크에 의뢰하기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습니까. 노력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하긴 까다로운 분이시긴 했죠.”
아이린이 세실리아의 정연한 설명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으로 향한 시선에 마담 레옹의 부티크에 의뢰하기 위해 했던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레오나드 공작가는 제국에 단 셋뿐인 공작 가문이다.
그리고 아이린은 현 가주의 슬하에 있는 세 자식 중 둘째이자 장녀였다.
고위 귀족이란 일거수일투족이 곧 평가의 대상이다.
내뱉는 단어 하나가 정치적인 공세의 빌미가 되고, 작은 손짓 하나에 큰 파문이 일었다.
입고 있는 옷과 장신구란 그중에서도 쉬이 입에 오르내리는 평가의 대상이었다.
소모품인 교복이라 하여 허투루 고를 수 없었다.
혹여나 공작가의 급에 미치지 못하는 부티크에서 교복을 제작했다?
밝혀지는 즉시 사교계에서는 손가락질받을 일이었다.
평상시라도 문제지만, 아카데미 입학 후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도는 그녀의 평가가 공작가의 미래를 결정짓게 만들 테니 말이다.
이러한 사정을 제하더라도 그녀 또한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한 명의 귀족 영애였다.
수도 제일의 마담에게 옷을 받게 됨에 따라 기대감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에도 오늘과 같은 기분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실리아가 진심을 담았다.
당장 저 입가의 옅은 웃음기조차 얼마 만에 본 표정 변화인가.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은 크게 들떴다.
세간의 평가 중엔 아이린의 세련된 미모가 차가운 인상으로 변했기에 완성되었다는 말이 있었다.
모르는 소리.
지금의 아이린에게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은 생명 없는 조각상에 감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제가 모시는 아가씨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따로 있었다.
세실리아는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길 마음속 깊이 바라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아이린은 씁쓸히 중얼거렸다.
“제 기분이 어찌 될지는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께 달려있기도 하니까요.”
이건 그녀 나름의 농담이기도 했다.
“히익!”
그러나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일도 있는 법이다.
시종이 군기가 바짝 든 채 목이 떨어질 기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아가씨.”
마담 레옹의 부티크는 명성에 비하면 초라한 외관이었다.
디자이너로서 직접 일하는 인원은 본인 하나.
제자를 키우지 않고 소수의 직원만 보조로서 일하기에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잠시 둘러본 아이린이 무심하게 관심을 거두었다.
사실 크기가 뭔 상관이겠는가.
내부가 깨끗하고 실력만 좋으면 됐지.
딸랑딸랑!
문이 열리자 종소리가 울렸다.
“마담?”
누구도 그녀를 맞이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소리 내어 부르자 안쪽에서 마담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죄송해요,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직 전 예약자분의 업무가 안 끝나서요.”
의외였다.
방문을 예약한 시간에도 일을 마치지 못했을 줄이야.
본인도 특수한 상황임을 알고 있는지 마담은 정말 미안하다며 눈을 내리깔고 사과했다.
“……괜찮아요. 마담이 바쁜 거야 잘 아니까요.”
아이린은 대범히 넘어가 주었다.
조금 늦어지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오차 범위 내였다.
모처럼 기분 좋은 날 아닌가.
굳이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호호, 고마워요. 특별히 다음엔 영애에게만 내 비밀 카탈로그를 보여드릴게요.”
“네, 기대하고 있겠어요.”
비밀 카탈로그까지 보여준다고 하지 않나.
마담의 비밀 카탈로그는 그녀의 마음에 든 VIP 고객에게만 내놓는다는 소문의 물건이었다.
이만하면 기다림의 보상으로는 차고 넘쳤다.
“케일 공자님……?”
그때 문득 아이린의 귀에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
속삭이듯 고막에 달라붙는 목소리.
아이린이 귀를 기울인 것은 음색이 아닌 말의 내용이었다.
케일.
어째서 그 이름이 여기서 들리는 걸까.
“……케일?”
아이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치 눌어붙은 설탕처럼 달콤하면서도 쓰디쓰게 입에 달라붙는 발음이었다.
멍하니 가게의 안쪽으로 향한 시선에 상이 맺혔다.
“아이린.”
제 뒤에 선 세실리아도, 시종도, 마담도, 화려한 드레스도.
시야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지워지고 그 남자 혼자만이 남았다.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가슴을 넘어 귀로 들려왔다.
바깥으로 제 심장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닐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케일.”
아이린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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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난 탓일까.
눈을 감아도 선연히 떠오를 만큼 익숙했던 아이린의 외모는 기억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어색하지만 수줍게 감정을 표현하던 표정은 얼음장보다 차갑게.
제 가슴께에 닿았던 키는 목덜미에 이를 만큼 자랐고.
나긋하게 올라와 입가를 가리는 손동작은 귀부인을 보는 듯 우아하고 자연스러웠다.
달라지지 않은 점은 하나였다.
거미줄처럼 사지를 결박한 듯 눈이 떼어지지 않는 치명적인 미모.
“…….”
나는 울컥 솟구치는 뭇 감정들을 마른침과 함께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감정에 몸을 맡긴 발언은 서로에게 곤란하게 작용할 따름이었다.
이제는 전 약혼자인 사이니까.
“아는 분이세요?”
시에라의 물음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머리가 식었다.
이렇게 멍청히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오랜만이네.”
혹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뒤집히진 않을까.
걱정과 달리 내뱉은 목소리는 듣기 편안했다.
“……응, 오랜만이야.”
아이린의 반응은 나보다 한 호흡 늦어있었다.
나는 굳이 그를 지적하며 무안 주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전 약혼자를 만났으니 혼란스럽겠지.
기실 나도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죽할까.
“교복 찾으러 온 거야?”
“아, 응.”
역시 그녀보단 내가 나았다.
먼저 화두를 던지자 그녀의 시선이 시종의 손에 들린 교복으로 향했다.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
“소문?”
“아카데미에 입학한다고 들었어.”
“어, 그렇게 됐다.”
“……솔직히 아니길 바랐는데.”
아이린은 눈매를 좁혔다.
“마탑의 제안은 거절해놓고서 아카데미 입학이라니. 제정신이야?”
“안 그래도 그거 관련해선 이미 아버지한테 많이 혼났다.”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같이 있었으면……!”
쏘아붙이려던 그녀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같이 있었으면.
이제 와선 부질없는 말이었다.
“아무튼, 후회할 거야.”
“내 선택이니까 후회는 안 해.”
“……어째서?”
내가 듣기를 바란 건 아닌 듯 아주 작은 소리였다.
“나랑 있을 때는 그런 기미 보이지도 않았으면서.”
“생각이 달라진 거야.”
안타깝게도 내겐 그녀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귀에 박히듯 각인되었다.
“바뀐 우리 사이처럼.”
아이린이 떨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진정된 것은 잠시 후였다.
“……그래, 이제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
그녀는 생각보다 깔끔히 바뀐 우리의 관계를 인정했다.
“제가 무례했어요, 케일 공자.”
존댓말을 들은 건 오랜만이다.
그립다기보다는 낯설었다.
이제 진짜 전 약혼자로서 대해주겠다는 뜻이지.
내가 저질러놓고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치만 무례를 무릅쓰고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아니, 진짜 남처럼 대하겠다는 건 아닌가?
푸른 눈동자엔 잔잔한 호수가 아니라 타오르는 불꽃이 담겨있었다.
"제가 보낸 편지에 답장 한 번 않은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그건…….”
“그리고.”
그녀가 내 말을 끊었다.
새초롬히 가늘어진 눈초리.
본론은 이거라는 듯 다음 발언의 한 글자 한 글자가 강조되었다.
“그 여자는 또 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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