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5화 첫 만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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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선 교복을 입는 것이 기본이다.
이프린 아카데미 또한 교육기관으로서 학생의 통일성을 원하는 만큼 교복이 존재했다.
그러나 교복을 양산하는 현대와 달리 이곳은 판타지 세계였다.
물건 제작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소리다.
고로 교복이 주문 제작이라는 정신 나간 소리가 이곳에선 상식으로 통했다.
봄이 되면 수도의 부티크는 물 밀듯 밀려오는 교복 제작 의뢰로 바쁜 시기를 보냈다.
그중에서도 솜씨 좋기로 유명한 부티크는 일손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교복인 만큼 디자인은 같다.
하지만 같은 교복이라도 부티크마다 원단, 마감과 박음질 등에서 차이를 보였다.
아주 자잘한 차이라도 귀족의 허영심은 이를 용납지 않았다.
제 것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물건이길 바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반젤은 그 보편적인 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마담 레옹의 부티크는 수도 제일의 솜씨를 자랑합니다. 제품에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부티크로 향하는 길.
수행원이자 안내인으로서 동행한 백작가 시녀의 설명이었다.
“제품의 질은 어찌 됐든 괜찮아.”
귀족의 의뢰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겠지.
그보단 다른 부분이 궁금했다.
“혹시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가주님께서는 공자께 드리는 선물이니 괘념치 말라 하셨습니다.”
시녀는 예상했다는 듯 기계처럼 답변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 반품은 안 할 테니까 말해줄 수 있지 않아?”
“가주님이 공자께 보내는 호의에 부끄럽지 않은 가격입니다.”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니 괜히 관심 가지지 말란 소리였다.
뒤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는데, 백작가 시종답게 참으로 깐깐했다.
뭐, 정확한 액수를 꼭 들어야만 했던 건 아니다.
무지막지하게 비싸다는 건 확인하였으니 소정의 목표는 달성했다.
“나는 분명 적당히 준비해줘도 충분하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내 입가에 쓴웃음이 묻어났다.
숙식 제공만 해도 고마움이 큰데 이런 선물까지 준비했다니.
부티크 예약만 따져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터다.
염치를 아는 사람으로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크라운 백작가에서는 손님 대접에 있어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습니다.”
말이 그렇단 얘기다.
무상으로 제공하는 듯 보여도 속내에 타산이 없진 않았다.
이는 후원자로서 피후원인에게 제공하는 투자의 일종이기도 했다.
나쁜 물건 준다는 것도 아닌데 내가 굳이 손사래 칠 필요까지는 없었다.
“…….”
나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디쯤 왔나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수도의 지리를 알 리 없으나 어느 구역인지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수도는 구획이 잘 나뉜 만큼 옷가게가 보이기 시작하면 거의 다 도착한 것이었다.
“아직 멀었나.”
그리 가깝지는 않다고 하더니 진짜네.
마차는 아직 평민 상권을 지나는 중이었다.
부티크는 귀족 상권이다.
평민 상권을 지나 깊이 들어가야만 도착할 수 있었다.
“피곤하실 텐데 잠시 눈을 붙이시지요. 도착하면 깨워드리겠습니다.”
“배려해줘서 고맙지만 졸립지가 않네.”
피곤하긴 해도 수면욕은 없었다.
수도까지 오며 마차에서 할 게 뭐가 있었겠는가.
꾸준한 수면이 내 활동의 전부였으니 또 잠들긴 무리였다.
“괜찮다면 거리의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기숙사에 입주한다고 천년만년 아카데미 내부에서만 생활하진 않는다.
어느 상권이든 외출 시 이용할 일이 있을 터.
마침 심심하기도 했으니 시간 죽이기로는 딱이었다.
“예, 그럼. 으흠.”
안내인의 일에는 이런 업무도 포함되어 있었던 걸까.
시녀는 목을 풀더니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이쪽은 평민들이 이용하는 상권입니다. 취급하는 상품의 질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방문하실 일은 드물 테지만, 가격이 높지 않은 만큼 기억해두신다면 도움이 되실…….”
시녀의 설명은 간결하면서도 놓치는 부분이 없었다.
진짜 안내인으로서의 업무에 포함되어 있었던 건가.
그녀의 열성적인 설명 덕에 나는 지루한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잠깐만.”
그러던 어느 순간.
내 시야에 심상찮은 광경이 포착됐다.
“마차 멈춰봐.”
마차는 즉각적으로 멈추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쟤가 왜 여기에 있지?”
내가 잘못 본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착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저거 주인공이잖아.”
교복만 회수하려는 가벼운 외출이었는데.
의외의 인물을 발견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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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삽화와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표지에 여주인공이 그려져 있었어도 현실에서 여주인공의 외모가 그와 똑같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주인공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순금을 녹여 바른 듯 찬란히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
순하게 꼬리 내린 눈매는 부드러운 성품을 드러내는 듯하고, 화장기 없이도 싱그러운 피부는 수수한 듯 화려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평민의 후줄근한 옷을 걸쳤음에도 그녀의 미모엔 흠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면이 그녀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돋보였다.
화려하고 세련된 아이린 레오나드와는 상반되는 매력의 미모였다.
저런 미모를 가지고 주인공이 아니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놓아주세요!”
의외의 장소에서 그녀를 발견한 놀라움도 잠시.
곤혹에 물든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그녀가 처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제 물건이에요! 부탁이니 놓아주세요!”
불량해 보이는 일단의 남성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 이 계집애 봐라. 생긴 건 세상 순하면서 앙칼지게 구네.”
그녀가 손에 쥔 물건을 우악스레 붙잡은 대머리 남성이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이 물건 내놔. 그럼 곱게 보내준다니까?”
“제발 이러지 마세요!”
“어허, 참 내. 이 아가씨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나.”
“읏!”
대머리가 눈짓하자 망을 보던 남자들이 다가와 둘러 싸며 위협했다.
“이렇게 고집부려 좋을 것 없잖아. 경비대에게 잡혀서 조사라도 받게 되면 서로 곤란해지지 않겠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이 왔다.
“이거 아무래도 소설 도입부에 있는 에피소드 같은데……?”
불량배에게 시비가 걸린다는 심플한 에피소드.
그로 인해 귀한 교복이 찢어지고 만다는 내용이었다.
“저게 이 시기에 일어나는 일이었나.”
내용을 알긴 알지만 일이 벌어지는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했다.
보통 소설에서는 대략적인 시기만 서술하지 않나.
내가 멍청해서 이 사건을 잊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주인공을 일찍 발견하게 된 건 좋지만, 이 사건에 얽힐 계획은 없었다.
어차피 내가 무시하고 지나간들 대세엔 아무 영향 없었다.
지나치면 남주 후보 중 하나가 이를 목격하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었다.
개인적인 감상이긴 하나 그녀가 별로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내가 도움을 줘야 하나 싶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후우.”
나는 갈등하다 결정을 내렸다.
“저쪽으로 이동해서 마차 세워줘.”
개입해야겠다.
“일 나기 전에 수습하자.”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저 교복이 찢어짐으로 인해 추후 아이린에게 닥칠 여파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모른 척 지나갈 수가 없었다.
******
시에라 벨리안트는 곤경에 처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기분은 날아갈 듯 기뻤다.
유명 부티크에 맡겼던 교복의 제작이 끝났다 하여 회수해 돌아오는 길.
교복을 손에 넣자 드디어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실감이 났던 것이다.
아카데미 입학은 평민인 그녀로서는 일생 한 번 잡기 힘든 기회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어려운 형편에 그녀를 위해 의뢰해준 교복이었기에 더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하나 옛말에 새옹지마라 했다.
값비싼 물건을 너무 티 내며 들고 다닌 탓일까.
질 나쁜 불량배들이 얽히고 말았다.
기실 그녀가 가진 능력에 불량배들을 물리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라면 아직 본인의 능력을 완벽히 조절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잘못하면 그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었다.
실랑이 중에 자칫 교복이 상할 수도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그렇다고 도움을 청하기도 힘들었다.
제 앞가림에 허덕이는 평민들은 제게 피해가 올까 얽히길 피하였고.
귀족들은 품위가 없다며 무시하고 지나가기 바빴으니.
최선은 경비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하, 나 참. 이년이 진짜 맞아봐야 주제를 알려나…….”
불행히도 경비대의 도착보단 불량배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는 것이 빨랐다.
대머리 남성의 이마에 혈관이 두드러지더니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시에라는 교복을 품에 안으며 질끈 눈을 감았다.
아픈 건 싫었다.
그치만 교복이 망가지는 것보단 몸이 다치는 편이 나았다.
그녀의 반응에 대머리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치며 주먹을 올렸다.
“그쯤 하고 멈추지?”
대머리의 주먹이 시에라에게 닿기 직전전.
일동은 홀린 듯 뒤를 돌아보았다.
또각! 또각!
신기하면서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추잡한 다툼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귀족이거늘.
귀족가의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마차에서 한 남성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봐줄 수가 없더군.”
마차에 새겨진 귀족가의 문양이 없었더라도 그는 타고난 귀족이었다.
몸에 두른 고급스러운 옷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작은 손짓, 발걸음 하나마다 풍기는 고귀한 기품이 곧 그가 귀족임을 증명했다.
“특별히 한 번의 기회를 주마. 하던 짓거리 멈추고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이래서 귀족은 귀족인 걸까.
고압적인 명령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명령하는 그의 눈은 심드렁했음에도 불량배들은 넋이 나간 듯 뒤로 물러났다.
“머리가 나쁘다고 해서 눈치가 없지는 않을 텐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아쉽게도 그들의 소극적인 반응은 귀족의 성에 차지 않았다.
스릉!
그가 손짓하자 호위하듯 선 기사들이 검을 뽑아 겨누었다.
불량배들은 그제야 바짝 정신이 들었다.
“젠장!”
한껏 패악질을 부렸어도 고작 불량배 따위가 기사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이대로 목이 베이면 귀족의 행사이니만큼 경비대가 죄를 묻지도 않을 것이었다.
불리함을 깨달은 그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황급히 줄행랑을 쳤다.
“후아아.”
상황이 종결되자 시에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뜻밖이지만, 진정 시의적절한 도움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상황.
시에라는 정체 모를 그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뭐 하고 있어?”
그러나 몸을 추스르고 감사를 전하기 전.
선수를 친 그의 발언에 시에라는 영문을 알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너도 가야지.”
그가 말을 마치자 시에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앞에서 꺼져라.
그 명령의 대상엔 시에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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