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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화 아카데미 입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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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이래야만 하는 것이냐?”
한숨을 담은 무거운 목소리였다.
소리친 것도 아닌데 웅웅 메아리치는 목소리에 절로 혀를 내둘렀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아저씨가 호탕하기도 해라.
나는 진정하기 위해 마력초를 우린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아쉬워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내 눈이 아버지, 크레인 알베지아 남작의 손에 쥐어진 종이로 향했다.
[마탑 추천 입문 철회 요청서]
마탑.
세계에서 가장 권위 높은 마법사 단체다.
마탑의 입문은 오직 재능과 실적만을 두고 판단하여 이행된다.
그렇기에 마탑의 입문은 개인으로도, 가문으로서도 무궁한 영예가 보장됐다.
그중에서도 추천 입문이란 십 년에 한 번 성사될까 말까 한 드문 일이었다.
황제에 비견될 만큼 자존심 높고 깐깐한 마탑의 장로들이 직접 인재를 초빙하기 때문이다.
“마탑에서는 비록 연구직이라도 초빙할 생각이 굳건하다고 했다. 마탑에서 개인에게 이리 목매는 일은 흔치 않아. 그런데도 거절할 셈이냐?”
“예.”
나는 한순간의 고민조차 없이 대답했다.
내가 단호히 결심을 표명하자 아버지는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아쉬울 만했다.
애초에 마탑의 제안을 거절한다는 것 자체가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으로 세 번의 거절이니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 게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벌써 마탑의 추천 입문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
연구직 제안은 두 번의 거절 끝에 나온 통 큰 양보였다.
마탑이 개인에게 이만큼 배려를 보인 건 유례가 없었다.
아버지의 말마따나 상식적으로 이번이 마지막 제안이었다.
세 번의 거절을 용납할 만큼 마탑의 자존심이 싸구려는 아니었으니까.
“후회 안 합니다.”
그럼에도 내 결심은 굳건했다.
“아이린이 들으면 실망할 거다.”
“…….”
아이린 레오나드.
내 약혼녀.
나는 동요를 참아냈다.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닌데요, 뭐.”
약혼자이긴 했으되 전(?) 약혼자다.
합의 아래 파혼하였으니 이제는 남남이었다.
“……그래, 알았다.”
아버지는 긴 침묵 끝에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라도 처넣고 싶지만…….”
고깝게 나를 훑어보더니 이내 그 눈이 지그시 감겼다.
“……마탑에 가서 추태라도 부리면 그게 더 문제겠지. 내 자식이기 이전에 마법사란 족속이 워낙 유난스러우니.”
“잘 아시니 다행입니다.”
“자랑이다, 이놈아.”
저런 놈도 자식이라고.
아버지는 작게 궁시렁거리시곤 말했다.
“이만 나가봐. 답장은 내가 보내마.”
“네.”
나는 예를 표하곤 방에서 나왔다.
“후아.”
바깥으로 나온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크게 두방망이질 쳤다.
떨리는 팔을 들어 이마를 훑자 손등에 식은땀이 묻어났다.
“하여간 성질도 고약하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한테 살기를 쏟는 부모가 어디 있어.
그렇게 날 압박해서 말실수로라도 언질을 받아내려는 수작이었다.
신체를 단련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퇴역한 전쟁 영웅의 기운을 받아내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오직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귀족의 작위를 얻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사실 억지로 내 처우를 결정하더라도 내가 반항할 방법은 없었다.
……물론 그랬다면 진짜로 마탑에서 깽판을 칠 각오도 했지만.
“수고하셨어요.”
벽에 기대 몸을 추스르던 중.
차갑게 적신 수건이 다가와 내 이마를 닦았다.
“괜찮으세요?”
흐린 눈동자가 나를 걱정스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리 줘, 내가 닦을게.”
“아니에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수건을 잡은 내 손을 밀어낸 그녀가 부드럽게 내 얼굴을 닦았다.
나는 고작 땀 닦는 데 온갖 열성을 다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나이.
타오르듯 붉은 머리카락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딱 붙어 몸의 선을 드러내는 가문의 하녀복은 주름 한 점 없이 단정했다.
“후, 다 됐다.”
“고마워, 루나.”
“아니에요. 전속 시녀인데 당연한 일이죠.”
루나가 두 손을 허리에 대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똑 부러지게 행동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행동에서 이렇게 어린 티가 났다.
내 키의 반도 안 되는 어릴 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더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얘기는 잘 되셨어요?”
“그럼. 내가 싫다는데 아버지가 어쩌겠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들 하니까요.”
루나가 쿡쿡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애초에 내가 마탑에 갈 수도 없지.”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원하는 대로 마법도 못 쓰는 놈이 무슨 마탑 소속 마법사야.”
옛날의 나는 마탑이 눈독 들일 천재적인 마법사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괴팍한 노인네들 비위 맞춰줄 자신 없어.”
단 한 번 만나봤을 뿐인데 아주 치를 떨게 하는 만남이었다.
그런 인간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평생 얼굴 마주하고 살라고?
명예고 뭐고 내가 제 명에 못 살 거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대로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누워 낮잠이나 자고 싶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오늘 내 앞으로 편지 온 거 있지 않아?”
“네, 여기요.”
루나가 내 책상 위에 널브러진 잡동사니 뭉치 속에서 정확히 편지를 꺼내 건넸다.
나는 편지지에 찍힌 황실의 직인을 확인하곤 펼쳤다.
[이프린 아카데미 입학 확인서]
편지를 펼친 순간 보인 첫 문장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뭐라고 쓰여있는 건데요, 주인님?”
“입학 확정되었으니 입학식 날 까먹지 말고 오래.”
“와! 축하드려요!”
루나가 반색하며 방방 뛰었다.
반면 난 이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어 씁쓸했다.
“마탑 대신 가는 건데 축하하긴 뭘.”
이프린 아카데미.
수도에 자리하며 황실이 후원하는 아카데미다.
풍족한 재정을 바탕으로 한 최고급 시설과 화려한 교수진은 전 세계 아카데미 중에서도 제일로 꼽히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이프린 아카데미가 마탑과 견줄 수준이 되냐?
그건 아니었다.
황실이 후원하는 기관과 황실이 권위를 인정하는 기관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아카데미 입학만으로도 나름 어깨 펴고 다닐 정도는 됐다.
그렇다고 하여 마탑 입문을 거절하고 아카데미를 택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알면 경을 치겠지.”
그래서 몰래 입학시험을 쳤다.
알면 기를 쓰고 막을 게 뻔했으니까.
“이번엔 오랜만에 두들겨 맞는 거 아닌지 몰라.”
지금은 얌전해지셨지만 나 어릴 적엔 화끈하기론 제국 제일이셨으니.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그때는 제가 같이 있어 드릴게요.”
루나가 주먹을 움켜쥐며 선언했다.
“말만으로도 고맙네.”
“에헤헤.”
나는 웃으며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저지른 일이었다.
내 일에는 내가 책임을 져야지.
귀족 중에는 잘못을 저지를 시 귀한 몸이 상할까 저어되어 시종에게 대신 책임을 묻기도 한다지만 나는 그런 못난 귀족이 아니었다.
이 작은 몸에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차라리 내가 잠깐 아픈 게 나았다.
“편지는 이걸로 끝이야?”
기다린 건 입학 통지서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오는 편지도 많았다.
귀족 사회란 게 원래 그랬다.
특별한 결격 사항이 없으면 하루건너 하루 다른 가문에서 편지를 받는 게 일상이었다.
“그게…….”
“응?”
루나가 주저하며 내 눈치를 보았다.
갑자기 왜 저러지.
내가 어리둥절 쳐다보자 그녀는 조심스레 편지를 꺼내 건넸다.
“여기요.”
“…….”
편지에 찍힌 가문의 문장을 확인한 내 얼굴이 굳어졌다.
창공으로 비상하는 매의 문양.
이는 곧 황제의 오른팔.
레오나드 공작가를 의미했다.
“……됐어, 안 볼 테니 나중에 책상 정리하면서 같이 치워.”
나는 건네받은 편지를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괜찮으시겠어요?”
“편지 안 읽은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 뻔히 아는 내용 뭐하러 읽어야 하겠어.”
레오나드 공작가에서 알베지아 남작가에 용건이 있다면 아버지께 보냈을 것이다.
내게 보냈다는 건 개인적인 연락이었다.
그리고 공작가에서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내 전 약혼자.
아이린 레오나드.
“그치만 무시만 할 게 아니라 주인님도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아서…….”
“왜 그래야 하는데?”
“공녀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어요.악랄한 성격을 못 견딘 시종이 몇 번이고 떨어져 나갔다던가, 또래의 영식과 영애를 상습적으로 모욕하신다든가, 사치를 일삼으신다던가…….”
“정상이네.”
“네?”
오히려 그런 소문이 나지 않으면 곤란했다.
“원래 그런 사람이야.”
반대로 선행이 들려왔다면 도리어 기겁했을 것이다.
“그보단 아카데미에서 만나게 됐을 때가 걱정이다.”
“공녀님께서도 아카데미에 입학하세요?”
“그럴걸.”
말은 흐렸으나 내심 확정적이라 봤다.
“그렇게 설정된 사람이거든.”
내 전 약혼자는.
로판 속 악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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