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세 가지 부탁
* * *
탁, 타악─
간헐적인 리듬이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그 인자한 웃음만을 짓던 가르텔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두드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심상치 않은 기류를 눈치챘는지.
잡일이나 가르텔의 후속 업무를 처리하던 전속 서기관은 조용히 질문을 건넸다.
“……무언가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말씀입니까?”
“예나가 물속에 있는 돌부리나 물고기 하나 모르고, 마구잡이로 이동하다 봉변을 당할 생도로 보이나?”
“매일 말씀해주시던 그 소녀군요.”
가르텔은 집필하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달칵─
옆에 놓여있던 찻잔을 들어 입에 대었다.
쌈싸름한 맛.
에스프레소 고유의 부드러운 풍미가 혀를 감돌았다.
그럴수록 머리는 차가워지고 눈빛은 날카로워져 갔다, 감미로운 커피의 향기가 정신을 일깨웠기에.
“그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예나가 죽을 뻔했다.
그것도 물속에 빠져 가장 고통스럽다던 익사를 당할 수도 있었다,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 만한 아이는 아니지 않나요? 엄청 완벽하고 되 바른 생도라고 행정관님께서 칭찬하시기도 했고요.”
“그렇지…….”
서기관의 말이 확신을 더해줬다.
절대 멍청한 짓을 할만한 아이가 아닌데 왜 그런 사고를 당했냔 말이지.
그저 우연히 발생한 상황이라고 하기에도 미심쩍은 정황들이 몇몇 있었기에 가벼운 일이라 치부할 수도 없었다.
망가졌으면 망가졌지…….
그 두터운 철골 덩어리가 왜 바다에 가라앉았단 말인가.
잠수복은 왜 찢긴 거냔 말인가.
만약 생선 따위에 걸렸다면 터빈이 멈추는 게 전부일 터, 그런 심한 상처가 생길 수가 없다.
예나가 장비 고장이라 이야기했어도 넘기지 않았다.
물을 들이켜 제대로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한 그녀의 기억은 신빙성이 떨어지니까.
“서기관.”
“예, 행정관님.”
가르텔은 커피를 한 모금하며 눈을 빛냈다.
만약 알지 못하는 원인이 있는 거라면.
그게 예나를 겨냥해 누군가가 수작을 부린 거라면,
타악─!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
그는 신경질적으로 찻잔을 탁상에 내려놓았다.
적격 심사에 탈락해도 후임으로 육성시킬 계획이었으며, 장교에 임관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후방으로 빼내고 싶은 소중한 예나를 의도해 살해하려 했다?
자신의 직위를 걸고.
사활을 걸고.
강하게 처벌하여 끝장을 볼 것이었다.
‘……아직은 가정에 불과하지마는.’
물론 그런 상황을 결단코 원하진 않았다.
그저 단순 사고이길 희망했다.
생도의 장비에 누가 손을 대었다는 건, 당시 훈련의 책임자인 자신도 처벌을 받을 게 자명했으니.
“바닷가에 조사팀 좀 파견해줄 수 있나?”
“무슨 이유로 그러십니까?”
“파손된 장비를 직접 두 눈으로 봐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밑선에다가 내 이름으로 직접 전달 좀 해주면 좋겠군.”
하지만 가르텔은 조사를 명령했다.
그만큼 예나를 아꼈으니까.
그 아이였기에 의뢰한 것이었다.
언젠가 행정실로 차출시키고 싶은 그녀였으니 속 시원하게 사건을 파악하고자 서기관에게 의견을 하달했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예상이 맞는다면,
예나를 적대시하는 존재가 있다는 뜻, 미리 싹을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손이 뻗는 데까지는 충분히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고맙군.”
가르텔은 서기관의 답에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후룹─
따스한 커피로 속을 데우며.
* * *
“헤헤…….”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입가를 손으로 가렸는지라 헬레나가 알지는 못했지만 멈출 수 없는 실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드디어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는데! 더이상 헬레나의 미행에 불편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드디어 본론에 들어서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어떤, 부탁입니까.”
헬레나는 힘없는 음성으로 질문을 건넸다.
이젠 도망을 포기한 성싶었다.
지붕에 걸터앉은 채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으니, 그래도 고양이 같은 사나운 눈매는 여전했다.
“총 세 가지입니다.”
그녀가 분노하거나 말거나, 난 일체 신경 쓰지 않고 할 말을 할 뿐이었지만.
스윽─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헬레나는 그 손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우선 그쪽이 저를 조사하던 자료, 전부 넘겨주세요. 뭘 파악하고 있었는지 대략 파악해야 할 거 같으니까.”
“…….”
“물론 부족하거나 숨기는 면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상, 바로 감사부에 이 상황에 대한 서술을 제출할 생각입니다. 편하게 넘기긴 힘드시겠죠.”
당연히 헬레나가 곧이곧대로 자료를 넘기리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지만, 일부 문서만으로도 이 여성이 지닌 정보력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요.”
다행히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긍정한다는 거겠지.
“그다음으로는.”
난 되묻기만 하는 헬레나에 싱긋 웃었다.
콰직─!
이내 입안에서 굴리던 사탕을 씹으며 무표정함을 되찾았다.
“월프 폰 슈트레만 아시죠?”
“슈트레만 가문의 장남 아닙니까.”
“그 생도와 그쪽이 보필하는 리나와 어떤 관계입니까?”
진짜 ‘본론’으로 들어섰으니.
직전까지와는 다르게 이번엔 순전히 호기심으로 인한 질문이었다.
도대체 가문 간의 사이가 어떻길래, 서로가 내치지 않으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지 확실하게 알아볼 생각이었다.
“선대부터 친목을 도모하는 사이입니다.”
“중세 시기부터 말인가요?”
“……그쪽이라면 아실 텐데요. 호엔촐레른과 슈트레만 가문은 과거부터 대대로 내려져 오던 신실하고도, 위엄 넘치는 귀족 가문이라는 걸.”
헬레나는 자신이 섬기는 황녀는 너와는 차원이 다른 높이 위치했다는 듯, 유독 후자의 문장에만 강하게 발음하며 눈을 치켜세웠다.
난 그런 자존심이 우스웠다.
아니 애초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흐음."
눈길 하나 주지않고 과거의 추측을 되내일 뿐.
'새롭게 만들어진 가문은 확실한가.'
월프의 가문이 과거 황가였던 곳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이라면,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게 부탁입니까.”
“그럴 리가 있나요.”
일단 월프가 새롭게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건 확인했겠다, 난 눈을 부라리는 헬레나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아직 부탁할 내용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잠깐의 확인 절차였을 뿐 본격적인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그 월프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시죠?”
이게 진짜 주문이었다.
“인적사항을 의미하는 겁니까.”
“그것도 포함이지만 세비르폴 훈련지에서 뭘 하는지 자세하게 알아봐 줘요. 저한테 했던 것처럼, 미행해서.”
월프의 발자취.
그걸 철저하게 알아볼 심산이었다.
오전에 발생한 사고.
그 배후를 그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에게 악의를 품었을 만한 녀석은 놈밖에 없었다, 리나를 의심했었으나 이젠 아니라고 확신했다.
날 죽이고 싶은 거 같지는 않았으니까.
장비에 음모를 꾸밀 정도로 분노에 가득 찬 인물은 월프밖에 없지 않은가.
아직은 추측이었다.
그래서 녀석이 무얼하는 지 캐낼 계획이었다.
헬레나의 민첩함이라면…….
다른 생도들에겐 걸리지 않고 잘만 뒤쫓을 수 있을 테니.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저희 쪽에서도 알아보고 있으니까, 교차 검증을 위한 부탁이에요.”
보험도 깔아놓는 게 좋겠지.
“……역시 뒷배가 있군요.”
난 살벌한 표정으로 묻는 그녀에게 조용히 어깨를 으쓱였다.
저 여성이 품는 오해를 이용하리라.
따로 협력하는 사람 따위라고는 없었다, 단지 헬레나가 양질의 자료를 가져오길 희망하며 건네는 말이었다.
그로 인해 더 큰 오해를 품을 수 있으나 뭔들 어떠하리.
일단은 눈앞의 실타래를 푸는 게 중요했다.
어차피 그녀가 주장하는 위장 생도도 아니고, 내가 평민임이밝혀질 때 즈음이면 함부로 건들지 못할 위치까지 성장하리라 자신했에 겁먹지 않았다.
헬레나만 머리가 아플 뿐이지.
“그래서, 마지막은 뭡니까.”
그녀는 입술을 곱씹으며 물었다.
이젠 체념한 걸까.
배후가 있다고 인정하자마자 헬레나의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온몸은 힘이 빠진 듯 지붕 위에 기댄 채였다.
자신이 잡혔다는 사실에 절망이라도 한 건가.
어쨌든 낯빛이 어두웠다.
그럴수록,
내 얼굴은 밝아져 갔다.
어찌 즐겁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낙담이라도 한 듯한 몸짓을 내보이는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를 인식한 뒤로 좌절해가는 이를 보는 건,
“하하…….”
너무나 만족스러운 감각을 선사했다.
그렇기에 재차 해맑게 웃었다.
얼굴을 가리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저리 슬픈 얼굴을 짓는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웃을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남의 불행을 좋아하는 놈이니까.
난 절대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그동안 헬레나가 가져다줬던 짜증이 상당했기에, 그로 인해 터져 나오는 행복일 뿐이었다.
정말로.
“나머지 하나는 합동 훈련이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난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지금 여기서 할 말은 아니었으니.
훈련 일정이 끝나고 느긋할 때 건네야 좋은 제안이라 생각하는 만큼, 여기서 꺼내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쪽이 열심히 한다면 리나에게 피해는 가지 않을 거예요. 정상적으로 졸업을 할 수도 있겠고.”
헬레나는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다.
타악─!
얼마 안 가 왔던 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찌나 빠른지,
그녀의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 매서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거래겠지.
여태껏 헬레나와 쌓이고 쌓인 관계를 청산함과 함께, 월프에 대한 사찰을 요구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길었던 대화의 시간이 끝이 났다.
하지만,
난 아직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할 일 하나가 남았으니.
“……슬슬 가봐야지.”
난 성큼 발을 내디뎠다.
또각─! 또각─!
괴수 대항 단련장.
그 거대한 건물에서 색다른 훈련을 즐기기 위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