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별 거 없어요
* * *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헬레나는 저 소녀를 뒤따라가며 더욱 의심을 증폭시켰다.
‘……이런 곳이 있었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지역이었다.
그 속에서 예나는, 따로 목적지라도 있는 양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어찌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에야말로 뭔가를 얻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녀장의 생활로 터득한 직감이 정신을 일깨웠다.
으슥하디 으슥한 공간.
보이는 거라곤 성급히 움직이는 예나 뿐,
헬레나는 마침내 확실한 소득을 챙길 수 있으리란 생각에 입술을 핥으며, 섬뜩하게 눈을 빛냈다.
“후우…….”
그러면서도 심장과 머리는 차갑게 했다.
흥분한다고 좋을 게 없었으니.
지금은 저 예나를 쫓는 것에 모든 힘을 쏟아 집중해야 될 때──
타닥, 타다닥!
헬레나는 지붕의 벽돌을 밟으며 나아갔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그녀의 그림자가 나풀거리며 허공을 쏘다녔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지?’
헬레나는 발을 내디디며 미간을 찌푸렸다.
의구심이 계속해서 커졌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어디론가로 향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건물 따위가 있는 지역도 아니었다.
이미 폐쇄됐으리라 추정되는 오래된 건물.
엘프나 드워프 같은, 흔히 보였던 이종족 하나 없는 흙길…….
뭘 할만한 데가 아니었다.
심지어 사관학교가 아닌 합동 훈련지였기에 더욱더 이상했다.
어떤 목적이 있길래 저리 바삐 움직이냔 말인가.
터벅─ 터벅─
예나의 걸음 소리가 이쪽까지 울려 퍼졌다.
인적 하나 없는 황망한 공간인지라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은 마나를 이용해 기척을 죽이고 있는 터라 걱정하진 않았지만, 조급한 것 같은 예나의 움직임이 신경 쓰였다.
‘설마.’
순간 머릿속을 채운 하나의 가정.
저 아이가 내 존재를 눈치챈 거라면?
혹여 그런 이유로 인적 하나 없는 이곳을 돌고 있는 거라면?
……아니, 그럴 일은 없다.
헬레나는 잠깐의 상상을 즉시 관두고 고개를 절레 저었다.
절대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다.
가능할 리가 없다.
어찌 평민임과 동시에 종합 능력치도 7등급을 웃도는 생도에게, 미행을 간파당할 수 있겠는가.
“하.”
허무맹랑한 상상이겠지.
헬레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짧은 실소를 내뱉었다.
확실히 긴장한 것 같았으니.
처음으로 예나를 놓치지 않아서 각종 상념이 떠오르는 것 같달까, 괜히 없는 걱정도 하게 됐다.
‘그럴 일은 없다.’
어떻게 시녀장인 나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겠는가.
그저 불안감이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리라.
헬레나는 흑색의 머릿결을 휘날리고, 치마 밑단을 나풀거리며 움직이는 소녀를 바라보며 강하게 다짐했다.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고,
뒷조사에 집중하기로.
“음?”
터억─!
하지만 그 마음가짐은 이내 끝이 났다.
“갑자기 또 어디로…….”
잘만 보이던 예나가 종적을 감췄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술을 처음 접한 사람의 반응이 이러할까.
체내의 마나를 끌어올린 채로 뒤를 밟고 있었건만, 그 노력이 우습게도 다시금 놓치고 말았다.
‘이럴 일이 없을 텐데.’
그렇기에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이번엔 철저히 준비했다.
당연히 사관학교에서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다,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허무하게 떠나보내고 말았다.
‘혹시 정말로…….’
이쯤 되니 조금 전의 가정이 마음에 걸렸다.
이미 날 가지고 놀고 있는 거라면?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자부했던 게 며칠인데, 가슴속으로는 부정을 외치면서도 이성은 혼란에 휩싸였다.
상한선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아무리 실력이 쇠퇴했다 하더라도 수십 번 평민의 생도, 그것도 하위권의 아이를 놓치는 건 어딘가 이상했다.
공식적인 성적이 거짓으로 기재되지 않고서야…….
콰드득─!
“읏!”
헬레나는 느닷없는 통증에 입술을 깨물었다.
더 고민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팔다리에서 느껴지는 시큰거리는 아픔이 집중을 흩트려 놓았으니까.
그리고,
“……어, 어떻게?”
그토록 찾고 있던 예나가,
“안녕하세요?”
뒷짐을 진 채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오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건물의 옥상──
올라오는 것부터가 힘든 지붕에서.
* * *
경악이라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혹자는 추상적인 표현이라 말하며 제대로 특징을 이야기할 수 없을지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앞에서 헬레나의 표정을 확인한다면 경악을 품었다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으리라 믿었다.
“예, 예나 프로이드?”
좌우로 세차게 떨리는 눈동자.
흔들리는 사지.
침이 흐를 것 같이 커다랗게 벌린 입 등.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게 어떤 말인지 그녀가 잘 설명해주고 있었으니까.
콰르륵─!
하지만 그 찰나의 침묵도 잠시,
헬레나는 거칠게 뒤로 몸을 날리며 거리를 벌렸다.
그녀의 팔다리는 새하얀 빙결체로 가득했다.
전부 내가 쏘아 보낸 마법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미리 깔아둔 장치랄까.
도망치기라도 하면 곤란했으니.
헬레나로선 저 얼음덩어리를 깨부수는 건 일도 아니었기에 길게 시간을 끌지 못하겠지만…….
내 말을 들을 잠시 정도는 잡을 수 있었다.
만약 대화를 만약 시작한다면──
헬레나가 도망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있으리라 자신했기에, 이렇게까지 발을 묶었기도 하고.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걸 저에게 물을 입장은 아니지 않나요? 걸리신 건 시녀장 님이신데요.”
“…….”
“아 그리고 무척 반가운 만남인데 바로 끝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리나가 힘들어지는 건 싫으시잖아요.”
역시나인가.
그녀의 이름을 꺼내자 헬레나가 움찔했다.
가히 능청스러운 태도로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했던 시녀장이,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무슨 말입니까.”
살기가 그득그득한 눈빛이었다.
우지직─!
시녀장은 손발에 붙은 빙결체들을 사납게 박살을 내며 성큼성큼 발을 내디뎌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난,
“생도들에게 개인적인 위해를 가하는 게 분명 중죄였죠? 그것도 제 3자에게 사주한다면 더 큰 처벌을 받을 테고.”
스륵─
품속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먹으며 입을 열었다.
태연자약한 기분으로.
헬레나가 저리 위협을 하며 다가와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리나라는 소중한 인질이 있었으니.
혹여라도 싸움을 건다면?
마땅히 응해주며 달아나면 될 뿐이었다.
이젠 6등급에 다다르는 마나였기에 그 정도의 힘은 있었다.
“심지어 그 사람이 황가의 시녀장이라면, 더 큰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겠네요.”
“증거가 없을 텐데요.”
“지금 여기에 서 계시는 게 증거같은데…….”
불행 중 다행일까.
그나마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분위기만큼은 언제 난투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험악함이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우려하지 않았다.
헬레나가 리나를 끔찍이 아끼고 있는 건 잘 알고 있었으니까.
황녀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 이상, 그녀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게 자명했다.
상황 자체도 갑과 을이 명확하고 말이지.
“냠.”
입안에서 사탕의 달콤함이 퍼졌다.
난 맛 난 설탕 덩어리를 입안에서 굴려 가며 조소를 지었다.
너무나 완벽한 관계이지 않은가.
결론만 따져본다면 헬레나는 나를 쫓다가 발각됐다.
그녀는 리나의 시녀장이었다.
이 두 마디의 문장만으로도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리나가 헬레나에게 내 뒷조사를 하라 한 것으로 판별날 게 뻔했으니.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군부에서는 그렇게 결론지을 것이 명백했다.
워낙 중대 사항이었으니까.
오전 수업의 사고와는 아주 달랐다.
헬레나는 공식적으로 외부인이었으며 리나는 전직 황녀라는 가히 엄청난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생도 하나를 사적으로 위협하고 조사했다라?
리나가 사관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중대한 교칙 위반사항이었다.
“뭐, 이게 증거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그렇게 믿으시면 됩니다. 사관학교 교관들이 그리 허술할까에 대해 의문이지만요.”
“…….”
그러니 헬레나가 잠자코 듣고만 있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비록 눈매는 험하며 무섭고 표정은 억세 보여도, 난 저것이 단지 당황을 숨기기 위한 외면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머리가 복잡할 테니까.
어떻게 평민인 생도에게 걸렸는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겠지.
안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헬레나의 작전은 완벽했다.
기척을 지우고 뒤를 따라오는 와중엔, 평범한 이라면 눈 뜨고 코가 베여도 이상하지 않았던 민첩한 움직임을 보였으니까.
내가 보통의 생도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
“도대체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드디어 헬레나가 의지를 굽혔다.
그녀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선 밑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파르르─
얼마나 심란한 걸까.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진동에 헬레나의 단발머리는 이리저리 찰랑거렸다.
……이렇게 나와야지.
난 그 반응들에 속으로 더욱더 환하게 웃었다.
이런 걸 원했다.
그동안 그녀가 귀찮게 따라붙음으로 인해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여태까지 분에 넘친 행동을 보였으니 그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별 거 없어요.”
그런 이유로,
보다 상쾌해진 표정과 함께 손을 건넸다.
“자그마한 부탁 몇 개 정도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새초롬하게 웃으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