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34화 (34/40)

〈 34화 〉 살려줘서 고맙다

* * *

“다들 준비됐지?”

“예!”

가르텔은 물속에서 머리를 들며 대답하는 생도들을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이제 볼 수 있겠군.’

그는 생도들의 움직임을 일시에 볼 수 있는 절벽 위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봤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드디어 예나의 실력을 확인할 기회다.

‘아버지가 마도 장교랬지.’

그렇다면 그녀가 대련 당시에 보였던 움직임 만큼이나, 다른 기술들도 기대 이상의 모습을 자랑할 터다.

“준비!”

가르텔은 기대감을 품고 손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부표 주변에서 둥둥 떠다니던 생도들은 하나둘씩 출발하려 자세를 고쳐잡았다.

과연 예상대로 예나와 월프, 리나 중에서 1등이 나올지, 아니면 또다시 이변이 일어날지.

“출발해라!”

가르텔은 호쾌하게 소리쳐 훈련의 시작을 알렸다.

첨벙!

“음?”

하지만 곧이어 발생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 표정을 굳혔다.

“……예나 프로이드!”

멀쩡히 수면 위를 질주하던 예나가 밑에서 누가 잡아끈 양, 채 반도 못 가 수중으로 사라졌다.

자의적으로 잠수했다기엔 이상했다. 생도 대부분이 반환점을 찍고 돌아올 때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는 건, 지금 예나가 착용한 장비에 문제가 생겼거나 그에 준하는 위기가 닥쳐왔다는 것.

“젠장!”

가르텔은 외투를 던지듯 벗었다. 잠안경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옆에 있던 의자가 뒤로 밀려날 정도로 거칠게 달려 절벽 아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 * *

“흐, 흐흡…!”

숨이 턱 막힌다. 입가로 연결된 산소통의 호스가 끊어져, 해수가 폐를 향해 끊임없이 쏟아졌다.

콰직, 콰지직!

발아래의 터빈은 박살이 났다. 귓가에 꽂히던 엔진의 소음도, 주위에서 피어오르던 거품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심해로 천천히 가라앉을 뿐이었다.

“후읍!”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미 정신적으로 붕괴하였을 상황이지만, 난 숨을 참으며 애써 의식을 붙잡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엔진이 마나에 반응하지 않는다. 발바닥을 더듬어보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마력석이 조각조각 나뉘어 물살을 따라 주변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발목을 뒤덮어 수영하는 데 도움을 줬던, 거대한 철골 구조가 이제는 단순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잠수 장비가 고장 난 건가.

하지만 이상했다. 제국 최고의 군사학교라 할 수 있는 아스트라한에서 장비 검수를 못 할 리가 있나?

찌직, 콰드득!

이상한 점이 많았지만 우선 살아남아야 뭐라도 하지 않겠는가? 난 즉시 손가락 끝으로 마나를 모아, 단단하다고 소문 난 철판을 찢어발겼다.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선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렇기에 본래의 힘을 꺼내 들었다.

“으브브…….”

워낙 급하게 힘을 써서 그런지 손바닥이 찢겨 고통이 느껴졌지만 괘념치 않았다. 지금은 오로지 밖으로 나간다는 일념뿐이었으니까.

사아아!

두 발이 자유로워지자 햇살에 반짝이는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곧이어 숨겨웠던 마나를 전부 끌어올렸다.

부들부들!

마나를 겹치고 또 겹쳤다. 아직은 신체가 감당할 수 없는지 살갗에 소름이 돋고 전신이 경련했지만,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온몸을 마나로 뒤덮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힘을 자제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관학교가 장비 검수를 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돼. 결국 누가 수작을 부렸다는 거잖아?

살의가 치솟았다.

도저히 가만둘 수 없다.

“꼬르르….”

당장 나가서 치욕을 안긴 녀석을 기필코 찾아내리라, 난 모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마나 덩어리가 일렁이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했다.

콰지직, 퍼엉!

그렇게 모았던 힘을 터뜨리며 물살을 가로질렀다.

“으, 으그극.”

재빠른 속도에 볼살이 밀려났다. 지나온 길은 빙결 마법의 영향으로 하얗게 얼어붙었다. 멀리서 보면 손 주위에서 제트 기류를 내뿜는 성싶었다.

콰르륵!

바닷물을 단단한 얼음으로 만들며 올라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연파랑으로 빛나는 해수면에 가까워졌다.

『……!』

그리고 그에 맞춰 무언가가 섬뜩한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사람인가? 뜬금없는 인영에 마법 사용을 중지하고, 눈을 가늘게 떠 일렁이는 검은 그것을 바라봤다.

언뜻 보이는 그림자의 형태로 유추하건대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직 난 수압이 강하게 짓누르는 심해에 있는데 이렇게나 빨리 다가온다고?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예나 프로이드으──!』

가르텔 교관, 그가 나를 감싸 안고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정신 좀 차려보게!”

숨이 쉬어져 눈을 떠보니 쨍쨍한 빛과 몽글몽글한 구름이 맞이했다. 가르텔은 어느새 모래사장에 당도하여 내 어깨를 잡고 뒤흔드는 중이었다.

“교관님.”

“괘, 괜찮나?”

덕분에 해수면까지 올라가야 할 수고를 덜었군. 난 몇 번 심호흡하다 살며시 가르텔의 눈을 마주 봤다.

“…멀쩡합니다.”

곧이어 축쳐진 팔을 들어, 엄지를 들고 희미하게 웃었다.

*

“슬슬 일어나도 괜찮을…….”

“안돼! 교관님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에리카의 눈망울에 맺힌 투명한 이슬을 보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회를 엿보려 해도 그녀는 진득히 곁을 지켰다.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은 또 처음이네.

평소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에리카의 성격을 생각하면 새로운 면모였다. 그만큼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스윽─

팔을 들자 아까 철골 덩어리를 부수며 찢긴 손바닥이 붕대로 감겨 있었다. 이외에도 신체 곳곳에 난 상처마다 거즈나 솜이 부위를 막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것들은 전부 에리카가 도맡아 해준 치료였다.

「어, 어떡하죠, 교관님!」

「우선 지혈부터 한다, 가방 가져와!」

「네, 네!」

가르텔이 물속에서 날 꺼내 들자마자 훈련을 내팽개치고 달려왔었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그러니 마음을 졸이는 거다. 에리카는 내가 어떤 험한 꼴을 당했는지 생도 중 제일 가까이에서 확인하고, 직접 그 부상을 다스린 아이였으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안된다. 오늘은 쉬어라. 예나 넌 이미 훈련하기에 무리인 몸이야.』

그래서가르텔에게 직접 허락을 받으려고 했건만, 왼편에서 의자에 앉아 생도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그 역시도 끝내 보내주지 않았다.

“손바닥의 출혈은 괜찮나?”

“예, 명색에 아스트라한 후보생인걸요.”

“후우…….”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몰골은 흉하다 못해 요사스러웠다.

신체에 상처가 났다시피 겉을 보호하던 잠수복도 군데군데가 찢겨 있었으니까. 허벅지는 고사하고, 가슴 위쪽 부분의 맨살이 보일 정도였다.

“곧 정복을 가져다줄 터이니 코트라고 걸치고 있어라. 그런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겠지?”

그나마 가르텔이 외투를 건네줘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와 신체 차이는 상당했기 때문에 코트 한 벌로도 전신을 감싸기엔 충분했다.

“……감사히 입도록 하겠습니다.”

뭐, 어쩔 수 없겠군. 결국 체념하고 추위나 날려 보낼 겸, 인형을 감싸듯이 코트를 껴안았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맞아, 예나. 갑자기 왜 밑으로 빠진 거야?”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걱정만 하던 에리카와 가르텔이 동시에 질문을 던져왔다.

두 사람의 어조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에리카는 두 손을 입술에 모은 채 우려 섞인 물음이었던 반면, 가르텔은 냉랭함을 풍기는 눈빛을 짓고 있었다.

단순 생도에 불과한 에리카는 모르겠지만 교관의 직책을 수행하는 가르텔로선 중대한 사안이었으니까.

무려 ‘교육 도중’ 에 장비가 고장 난 거잖는가.

제조자를 시작으로 장비 관리원, 검수원 등 수많은 사람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감찰을 받게 될 터였다. 모든 건 내 답변에 달려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짚이는 점이 아예 없나?”

“예,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내놓은 대답은 아는 건 없다, 였다.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사실 누군가가 사주했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큰 물고기를 위해 던진 미끼랄까.

연방과 제국의 감시를 동시에 받는 세비르폴 훈련지에서 장난질을 칠만한 놈은 보통 인물이 아닐 터다. 그러니 지금 교관에게 일러봤자 소득이 없을 거다.

미꾸라지처럼 수사망에서 빠져나가겠지. 혹은 꼬리만 잡고 정작 중요한 몸통은 놓칠 확률이 높았다.

“쯧, 우선 알겠다. 일단 수업을 마치도록 할 테니 저 앞 공터에 먼저 가 있도록, 에리카 너도.”

그걸 용납할 마음은 없었다.

“네! 예나, 가자!”

“응.”

치욕을 맛보면 그 백 배를 되돌려준다는 가치관처럼, 평범한 생도로 착각하고 이따위 짓을 벌인 놈을 무슨 수를 써서든 붙잡아서 죄를 물어야지.

가르텔 몰래 다양한 정보를 조사하여 진상을 밝힐 계획이었다.

혹자는 이런 주장을 보고 위와 같은 말을 할 거다. 평민이면서 하위권 성적에 인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네가 어찌 고위직일 범인을 찾을 수 있겠냐고.

원래였다면 나도 인정했을 발언이다.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이런 쪽은 힘보단 인맥이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저기, 때마침 쓸만한 녀석이 있잖아?

『오늘 다양한 일들이 있었고, 중간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지만 괜히 불안해하지 말고 말고 내일까지 푹 쉬도록 해라. 다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난 수업을 마치는 가르텔에게 경례로 대답하는 한편, 모래사장 근처 바위 뒤에서 미미하게 흘러나오는 마나의 기류를 느끼며 눈꼬리를 휘었다.

황녀를 보필하는 시녀장이라면 꽤 쓸모 있을 터, 멀리서 미행이나 하는 그녀를 이용하기로 했다.

“예나, 보건실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하루도 빠짐없이 귀찮게 한 업보를 낭낭하게 되돌려줘야지.

“옷부터 입고.”

“아하.”

난 코트 밑단 사이로 이따금 보이는 맨살에 단추를 잘 옭아매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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