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불쾌한 소리
* * *
『다들 준비됐지?』
『예! 』
1일차, 본격적으로 연방에서의 훈련이 시작됐다.
쏴아아, 쏴아─!
코앞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그리고 살갗을 까맣게 태울 성싶은 햇살, 그리고 주변을 뒤덮은 모래사장, 이런 이색적인 환경에서 교육받는 건 처음이었다.
『그럼 기초 잠수 훈련에 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생도들은 평소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아스타라한에선 본 적 없는 발랄한 날씨에 다들 의욕이 북돋아진 성싶었다.
아름답네.
그리고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에서 보기만 하다 실제로 환경을 체감하니 무척 상쾌했다.
“흐아아, 따듯하다…….”
“좋아?”
“응, 이럴 때 바닷가에서 놀면 좋을 텐데!”
에리카말대로 생도 후보생 신분이 아닌 관광객으로 여행을 왔더라면 당장이라도 놀러 갔을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편도 나쁘지 않았다.
내겐 훈련이 곧 기쁨과 즐거움을 줄 유희 생활이었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훈련 장비에 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덜그럭─!
『이게 곧 너희들이 착용할 물건이다. 마력석으로 빚은 값비싼 장비지. 이번 훈련의 핵심은 이 물건을 얼마나 잘 다룰 수 있냐, 그 실력을 보기 위해서다.』
가르텔은 본인의 체형에 안성맞춤인 그 장비를 직접 착용하고선, 땅 위를 거닐며 움직이는 시범을 보였다.
철커덕, 철컥─!
관절이 단단한 강철 소재로 되어 삐거덕대는 가르텔의 모습이 마치 기계 인간같았다.
「지, 진짜 저걸 착용하는 거야?」
「대전쟁 전략 교본에서나 봤는데…….」
그런 생소한 외형에 생도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겐 매일 이론 수업이니 하는 따분한 교육을 이어가다, 처음으로 교육다운 교육인 셈이다.
오랜만이네.
난 아이들이 놀라움을 연속에 겪을 즈음, 홀로 향수에 젖었다.
지겹도록 저와 생김새가 비슷한 장비를 사용해본 만큼, 과거의 기억이 생생해짐과 동시에 반가움의 감정이 커졌다.
바다에 잠수하여 몰래 기밀 작전을 펼치거나 동료들과 함께 심해를 유영할 땐 엄청 재밌었지.
갈리아 공화국 앞바다에서였나.
연합군의 습격을 위해 몇 시간을 꼬박 바닷속에서 숨어있다가, 어둠 속에서 총탄이 빗발치는 교전을 치렀던 그때의 즐거움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럼 각자 이름표 보고 가방 가져가도록.』
『예엡──!』
난 가르텔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앞으로 다가가, 검은색으로 칠해진 가방 하나를 가지고 왔다.
끼이익, 철컥─!
역시 기억대로군.
예전의 지식을 살려 부위별로 차례차례 장치를 착용했다.
츠으으──
산소통과 연결되어 호흡을 도와주는 마스크까지 착용을 완료하자, 꽤 있어 보이는 외견이 되었다.
이제야 군인답네.
발바닥에 달린 엔진의 높이로 키도 커져 만족스러웠다. 비록 생도들과 키 차이가 줄어들진 않았지만, 윗공기를 마시니 왠지 모르게 쾌적하달까.
「오리발이 달려있네.」
「이쪽으로 마나가 나오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니 관련 설비를 하나씩 만질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생도들로 가득했다.
“예, 예나! 이거 봐.”
“응?”
“여기로 헤엄칠 수 있는 건가 봐!”
“반대로 꼈어, 에리카.”
“앗…….”
에리카도 그중 하나였고.
“이렇게 입으면 돼.”
“으응, 고마워!”
난 오리발이 앞으로 바르게 가도록 그녀를 도와주고, 준비를 끝낸 후보생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야, 붙지 마.”
투욱─
그렇게 조용히 가르텔이 오기까지 기다리려 했건만, 어디선가 나타나 어깨를 치고 가는 월프에 인상을 찌푸렸다.
“쯧.”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못 볼 걸 봤다는 듯 한쪽 눈살을 찌푸리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후보생 환영식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욕을 먹고, 대련에서 실력의 차이를 거하게 보여줬음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젠 예삿일 수준이었기에 무덤덤했지만, 마냥 무시하진 않았다. 놈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으니까.
오늘 잠수 훈련에서 또 돌발 행동을 할 수 있겠지.
긴장을 놓지 말아야겠어.
『다들 착용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차례대로 입수하도록. 어차피 들어가도 기초 훈련부터 할 거니까 욕심내서 달려가지 마라.』
난 월프를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교관의 조언을 따라 바닷가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쏴아, 쏴아아─!
해안가와 점차 가까워질수록 철썩이는 물결 소리가 커졌다. 짭짤한 바다내음도 선명해지는 것이, 괜히 이 세상이 현실임을 복기시켜줬다.
첨벙!
얼마 안 가 바닷가 바로 앞에 다다라 망설임 없이 뛰어들자, 차디찬 해수의 온도가 전신을 애워쌌다.
“푸하──!”
시원하네.
이 느낌이지. 게임으로 만끽할 수 없었던 파도의 시원함에 몸이 개운해졌다. 후덥지근한 열기에 심신이 나른해지던 바깥과는 다른 낙이었다.
최근 겪었던 교육 중에 오늘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단점만 없었다면 완벽한 하루였을 것이다.
탁, 타악─!
왜 머리끝까지 물이 차는 거야? 난 바닥을 밟아 점프하며 잠수했다가 수면 위로 나왔다가를 수없이 반복하여 앞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산소통 덕분에 호흡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자꾸만 잠안경이 물에 잠겨 시야확보가 어려웠다.
젠장.
다른 남자 생도는 가슴 위로는 공간이 확보된다면, 원체 몸이 왜소한 나로서는 신발 덕택에 키가 조금 커졌다고 해도 무리인 수위였다.
“흐으으, 예나 안녕!”
“수영하는 거야?”
“으, 으응!”
같은 처지의 친구가 있다는 점에 만족해야하는 걸까.
꼬르르─
난 마치 개가 수영을 치듯, 허공으로 고개를 내빼고 손발을 바삐 움직이는 그녀를 바라봤다.
“에리카, 잠수 장비를 이용해봐.”
“헥헥, 응?”
“발을 뻗는다는 듯이 마나를 사용해.”
너무나 애처로워 보여 보다 못해 조언을 건넸다. 마나를 이용하는 건 각성자만의 특권 아니겠는가, 굳이 피로하게 손을 까닥일 이유가 없었다.
오리발 밑 부분에 연결된 엔진을 마나로 발진시킨다면, 바다를 자유롭게 수영하는 건 일도 아니다.
“우, 우오오……!”
콰르르─
내 말을 듣고 에리카도 균형 잡기를 시도하려는지, 불현듯 그녀 주변에서 하얀 기포가 미친듯이 올라왔다.
“돼, 된다!”
“그치?
그럴수록 위태위태하던 에리카는 안정을 찾아갔다. 간단하게 한마디했을 뿐인데 바로 방법을 터득하다니, 에리카도 한 재능 하는구나.
”그럼 파이팅.“
”예나도 힘내!“
난 비로소 그녀가 바다에 둥둥 떠다니게 됐음을 확인했을 때, 마찬가지로 발바닥의 엔진을 통해 힘들게 점프를 뛰는 고생을 멈추었다.
『다들 주목, 장비 이용법에 대해 교육하도록 하겠다.』
뒤이어 수업을 재개하는 가르텔에 집중하려 고개를 돌렸다.
『우선 발바닥에 엔진은 마력석의 마나 증폭 원리를 이용한…….』
따분하군.
그러나 얼마 안 가 관심을 끄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다. 교관이 알려주는 기본적인 운용 방법따윈, 내게는 복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미 지겹도록 숙지했지.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사용하는 무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이지 않은가. 배우다 못해 달달 암기한 내용이었다.
”으음…….“
그 때문에 본격적으로 몸을 쓰기 전까지 지루한 심정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단체 질주 훈련을 진행 할 테니, 호명된 생도들은 순서에 따라 질서를 맞춰 따라오도록.』
드디어인가.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는지, 몇 분을 기다린 끝에 기초 강의를 끝낸 가르텔이 호명을 시작했다.
『월프 폰 슈트레만, 예나 프로이드, 조르고 빌헬름 안토초레스키, 리나 빅토어 빌헬름 호엔촐레른, 에리카 폰…….』
”읏차.“
기다림 끝에 보상이 온다더니, 난 마침내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허공에서 눈을 떼고 상체를 일으켰다.
”같이 가자.“
”그래!“
어느새 장비를 다루는 데에 상당히 능숙해졌는지, 안정된 자세로 수면을 활보하는 에리카를 데리고 교관이 이끄는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넓네.“
”그러게…….“
그렇게 도착한 지점은 광활한 바다였다. 여태까지는 안전을 위해 얕은 수면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여기부터는 진정한 의미의 바다였다.
쏴아, 쏴아아──!
파도의 세기부터 남달랐으니까.
대충 봐도 물색이 남색과 검은색은 넘나드는 게 절대 낮은 높이가 아니었다. 발은 당연히 닿지 않았다.
교관의 비호와 안전 장치 덕에 죽진 않겠지만 자칫하면 휩쓸릴 강도였다. 이동이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여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거겠지.
촥, 촤륵!
난 거친 파도를 헤쳐 부표로 표시된 자리에안착했다.
“안녕, 리나.”
“…….”
그러자 오른편에서 리나가 입을 꾹 닫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반대 멀찍한 곳엔 월프까지 있었다.
또 임의로 조를 편성한 건가.
누가봐도 가르텔의 의도가 다분한 배정이었다. 저번 대련에 이어서 이번 훈련도 조원 모두가 동시에 참가하게 된다니, 우연도 이러진 않을거다.
뭐, 어쨌거나 판을 깔아줬으니 마음껏 활개 칠 심산이었다. 이들과 간접적으로 대련을 하는 셈이었으니까.
가진 힘을 드러내어 눈높이를 체감시켜 줘야지.
특히 월프한테 말이야.
“예나, 내가 이기면 볼살 만지게 해줄 수 있어?”
“응.”
“오, 오오! 열심히 해볼게!.”
난 왼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리카와 실없는 수다를 떨며, 금방이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다량의 마나를 응집했다.
『다들 준비됐지?』
『예!』
곧이어,
『……출발해라!』
교관의 말이 들린 그 순간,
퍼엉─!
마나를 폭발시키듯 방출하여 허기진 상어가 물고기를 본 거처럼, 괴멸적인 속도로 질주하였다.
콰직!
불쾌한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