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32화 (32/40)

〈 32화 〉 드디어 만났다

* * *

“철저히 준비는 하셨겠죠.”

“실망하진 않으실 겁니다, 이거 성공하면 돈 더 주시는 건 맞지요?”

들어가기 까다로울뿐더러 햇빛조차 닿지 않는 골목 속, 월프와 장비 관리원은 사관학교에 이어 세비르폴 훈련지에서도 은밀히 만남을 가졌다.

“저 슈트레만 가문 장남입니다. 고작 그거 하나 못 지키겠습니까?”

“아, 아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머뭇거리기만 하던 관리원은 돈맛을 본 뒤로, 누구보다 적극적인 면모를 뽐내며 계획을 구상했다.

“프흐흐, 장난입니다.”

월프는 그 변화가 즐거웠다.

제일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포섭 작업도 원활히 진행되었잖아? 예나를 향한 복수가 실패할 거 같지 않았다. 이제 두려운 거 따윈 없었다.

‘발악해봤자 평민일 뿐이야.’

감히 슈트레만 가문의 장자를 욕보이는 평민이라니, 간덩이가 부었다 못해 없는 수준이었다.

“쯧.”

멍청한 년, 사관학교에 왔다고 같은 평민인 줄 알았나. 월프는 주제 파악도 못하는 예나를 떠올리며 비소하곤, 이어지는 관리원의 말에 귀 기울였다.

“우선 이 사진부터 보시죠.”

“뭡니까?”

“그 아이가 사용할 훈련 장비입니다. 의뢰하신 내용을 그대로 반영했지요. 한 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

타악─!

월프는 관리원이 건넨 사진을 눈을 가늘게 떠 내려다봤다.

‘이게 뭐지?’

오리발이 달린 철제 장화에. 그와 호스로 연결된 영문 모를 기계까지. 반짝거리는 필름지 위엔 언뜻 봐도 복잡해 보이는 물건이 흑백으로 나타나 있었다.

월프는 아리송한 표정을 잠깐 짓다가, 이내 사진의 정체를 깨닫고는 눈꺼풀을 활짝 열었다.

“이거……, 훈련 장비군요?”

눈앞에 있는 남자는 무려 사관학교의 교육을 장구류를 총괄하는 녀석 아닌가. 그렇다면 그가 보여주는 것들은 대부분 수업에 사용되는 거겠지.

“맞습니다.”

월프는 자신의 추리가 정확히 들어맞았단 점에서 입꼬리를 올렸다.

“곧 진행될 훈련에 사용할 잠수 장비입니다.”

“잠수 장비?”

“마나를 끌어올리면 여기 허리 부근에 매달린 기계가 응집하고, 호스를 통해 마력석을 배합한 특수합금 철갑이 그 힘을 흡수하고 여기,”

탁탁─!

“발바닥 주변에 달린 엔진으로 방출되는 구조입니다.”

“호오…….”

“대단하죠? 이게 제국의 기술력입니다!”

금화를 보며 히죽이죽 웃기만 하던 중년의 남성도 명색에 관리원이긴 한 건지, 잠수 장비를 설명할 때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가 어찌 된다는 겁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치 있게 들을 만한 내용은 아니지. 월프는 관리원의 설명이 끝났을 때, 팔짱을 끼고 사진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별로 흥미롭지 않다는 눈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프의 머릿속은 오로지 예나가 어떻게 하면 낭패를 보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욕망에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사진이! 의뢰하신 예나 프로이드가 사용한 물건입니다. 제가 미리 손을 봐뒀죠.”

“그렇다는 건……”

“예, 훈련 때 저걸 이용한다면 중간에 시동이 꺼져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겁니다. 물론 교관이 있기에 죽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운이 나쁘면?”

스윽─

“사고사로 처리되겠죠. 죽어도 문제없다고 하여 최대한 완벽하게! 실패할 일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그쪽이 발각될 위험은요?”

“푸하하, 괜찮습니다. 마력석을 질나쁜 거로 갈아끼운 게 다거든요. 도중에 깨져도 그저 ‘사고’입니다, 사고.”

관리원은 위풍당당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으로 목을 그었다.

“좋네요.”

월프는 자신감 있게 단언하는 남자의 면모에 음음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이놈 말대로라면…….’

완벽하다. 예나가 절대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짜였어. 훈련 장비에 장난질을 쳐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니 얼마나 참신한 계획인가.

“성공하면 바로 추가 비용 지불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비싼 값을 하는군. 월프는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는 남성에게 악수하면서,

“아뇨, 별말씀을요, 하하.”

눈매를 둥글게 말아 올렸다.

* * *

“하아암.”

따스한 햇볕에 잠이 솔솔 몰려왔다. 아스트라한보다 온난한 기후의 지역이라 몸이 지레 노곤해졌다.

슬슬 움직여야겠지.

한숨 푹 자니 어느새 오후가 됐다. 오전과는 달리 조원 간의 만남, 그리고 훈련 세부 계획을 공지 받는 일정이 있었기에 빨리 나갈 준비를 마쳐야 했다.

“읏차.”

난 목덜미를 감싸는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쏴아아─

평소대로 간단히 씻고, 부드러운 양털로 짜인 속옷을 입은 뒤 제복을 걸쳐 나갈 채비를 마쳤다.

얼마나 대단한 걸 준비했을까?

샤워하여 얼굴에 물줄기를 맞고, 옷을 갈아입으려 몸을 움직임으로 인해 정신이 선명해지니, 문득 세비르폴 훈련 시설들의 수준이 궁금해졌다.

에리카와 함께 둘러봤다지만 겉에서 돌기만 한 거잖아?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괴수도 못 봤고.

“하하…….”

얼마 안 가 상대하게 될 수많은 괴수를 상기하자 심장이 콩닥거렸다. 이종족을 마주쳤을 때처럼, 괴생명체를 현실에서 맞닥뜨린다 하니 설레었다.

연방에서밖에 볼 수 없는 녀석들이기도 하잖아? 어떤 국가에서 괴수를 무기화시킬 수 있겠는가.

원래 괴수란 국토가 황폐한 개발도상국에서나 등장하는 생물체다. 당연히 국토가 개발되고 군대를 지닌 제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선 보기 힘들다.

하지만 오랜 내전으로 국가가 개판이 된 연방은 다르지. 자연스레 괴물들을 보존한 셈이 된 거다.

어떻게 생겼을지 기대되네.

풀썩─!

난 마지막으로 벽걸이에 걸려있던 정모를 써 준비를 끝마쳤다. 꽤 오랫동안 이 몸으로 지낸만큼, 더는 옷 갈아입겠다고 낑낑거리지 않았다.

기숙사 밖으로 나오고선, 곧바로 주변 흙길을 따라 이동했다.

뚜벅, 뚜벅.

조끼리 약속을 잡아 원하는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기에 목적지는 비교적 가까운 위치였다.

도착하면 리나가 안내하겠지. 황녀라는 사회적 위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조장이 되었으니까.

또각─! 또각─!

난 조금이라도 일찍 조원들을 대면하고자 하는 마음에 경쾌한 군홧발의 소리를 내며 걸음을 재촉했다. 머리카락은 그 걸음걸이에 따라 찰랑거렸다.

『예나, 여기야!』

그렇게 얼마 간을 걷자, 드디어 멀리서 손을 크게 흔드는 에리카가 보였다.

목소리 하난 정말 크네. 난 해맑은 얼굴로 팔을 흔드는 에리카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답하곤, 조금씩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쯧.』

『 …….』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히자, 혀를 차는 월프와 언제나 그랬듯이 쌀쌀맞은 눈빛을 보이는 리나도 보였다.

“예나, 여기로 오면 돼!”

“응, 알았…….”

그렇게 저들의 곁으로 당도하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탁, 타닥!

난 돌연 두 발을 땅바닥에 붙였다.

“거기서 뭐 해요?”

리나가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이쪽으로 오라 재촉했지만, 그럼에도 발자국 하나 떼지 않았다. 아니 못한다는 표현이 알맞다고 해야 할까.

“저 사람은……?”

“아, 예나도 처음 보겠구나?”

난 애써 손가락을 들어 올려 에리카 왼편을 가리켰다.

“헬레나라는 분이시래. 리나를 보호해주고 각종 일 처리를 돕는 역할을 하신대. 일주일 동안 훈련을 한다니까 잠깐 인사를 하고 싶다고 오셨어.”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헬레나라는 여성을 훑어봤다.

까득!

도대체 왜 저 사람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질까. 난 남모르게 입술을 피가 새어 나올 강도로 씹었다.

사관학교에서 매일같이 날 미행하던 정체 모를 녀석 특유의 인기척, 그러니까 항상 주변을 멤돌던 퀘퀘한 마나의 향이 이 자리에서 풍겼으니까.

헬레나, 정확히는 리나의 조력자라고 하는 놈한테서.

* * *

드디어 코앞에서 볼 수 있다. 베일에 싸인 예나 프로이드를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꽈악─

헬레나는 눈을 서늘하게 치켜뜨며 예나를 응시했다. 항상 희미하게 인영만 보이던 거리에서 포동포동한 볼살까지 살필 수 있는 간격에 오니 손이 떨렸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시녀장의 기조는 차분함, 예나가 이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평온함을 유지했다.

황녀님께 해가 될 순 없지.

“거기 서 있지 말고 빨리 오는 건 어때?”

“……그래.”

당장 정보를 캐란 명령을 내린 당사자인 사람조차 저리 태연하게 예나와 대화를 나누는데 시녀장으로 교육받은 내가 흥분할 순 없었다.

‘이제 비밀을 밝히는 데 한 발자국 더 다가간 거다.’

그동안의 수모를 만회해야 겠어. 헬레나는 아랫배에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로 리나 옆에 서 있는 조신한 외관과는 달리 속에서 칼을 갈았다.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미행, 수십 년의 시녀장 경력을 살려 조사했건만 밝히지 못한 비밀 등,

빠드득─!

망신과 모욕이라고 해도 될 고달팠던 과거가 가슴을 후벼팠다.

고작해야 평민의 아이에게 시녀장으로 지냈던 경력 전체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지나칠 수 없었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조사를 이어나간다.’

리나님께까지 부탁하며 이 자리에 나선 게 그 이유였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뒷조사로만 비밀을 밝히는 건 무리라 생각되어, 시녀장이라는 명목으로 예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정보를 캐낼 심산이었다.

‘교장이 생도들과 접촉을 자제하라 그랬지만…….’

어쩔 수 없다.

더는 방법이 없어. 이번 합동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총력을 다해 예나와 얽히고설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나는 무엇 하나 모르는 혼자만의 대결이었지만 진심을 다하리라. 헬레나는 그리 다짐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처음엔 당황.

두 번째엔 분노.

마지막으로는 허무함.

“거기 서 있지 말고 빨리 오는 건 어때요?”

“……그래.”

난 다양한 감정에 휩싸인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의 수족이리란 예상은 했어. 월프의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녀석인가 지레짐작도 했고. 그런데 리나의 시녀장이 범인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또각─! 또각─!

이리 멀지도 않은 곳에, 아니 같은 조에 있었는데 몰랐다니, 난 분노를 담아 거칠게 군홧발을 내디뎠다.

내 자존심과 긍지에 상처가 갔다.

미약한 마나에 감응하여 누군가가 미행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칭송받을 일이긴 했지만, 내 처지에서는 아니었다.

완전무결.

대전쟁이라는 고비를 넘어왔음에도 미행자 한 놈 파악하지 못한 건, 생각 이상의 분노를 불러왔다.

젠장.

지금 당장이라도 여태까지 벌레처럼 달라붙었던 헬레나라는 놈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금세 차분함을 되찾았다.

흥분한다고 좋을 건 없으니까. 이성적인 판단으로 상황을 이끌어가지 않으면 비극밖에 없어.

……황녀의 시녀장이 미행을 했다라.

마침내 머리를 깔끔히 비우고 정신을 차갑게 갈무리한 뒤로는, 크게 심호흡하며 냉철히 상황을 되돌아봤다.

이용하기에 제격이야.

그러자 머리를 답답하게 하던 화는 가라앉고 낯빛이 점차 밝아졌다.

구태여 분노할 이유가 없잖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행자를 언젠가 밝혀내 이용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에서, 드디어 누군지 알아낸 거다.

더군다나 그 주인공이 쓸모있는 황녀의 최측근이다. 이건 내게 찾아온 둘도 없는 기회였다

승전을 위해서, 혹은 제국 정치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황제를 꼭 만나야 했던 나로서는, 헬레나가 그 목적을 달성할 실마리로 여겨졌다.

헬레나가 내 뒤를 캔 건 리나가 사주했기 때문일 터, 사적으로 생도를 뒷조사, 즉 위협하는 행위는 퇴학까지 당할 수 있는 중대사항인데 이걸 이용한다면?

리나를 끔찍이 아끼는 헬레나로선 어떻게든 그녀를 보호하려고 하겠지.

“예나! 얼굴에 베개 자국 있어!”

“아, 고마워.”

“응! 헤헤.”

리나의 안위를 보호할 수 있다면 무슨 거래든지 하려고 할 거다. 이 얼마나 기쁜 현실인가.

“소개할게요. 나이는 어려 보여도 유년 시절부터 절 보필해주신 분이에요, 지금은 시녀장을 맡는 분이시고. 편하게 헬레나라고 부르면 돼요.”

난 리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헬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상기된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 처음엔 귀찮은 쓰레기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사실 쓰레기봉투 안에 금이 가득 담겼던 소중한 보따리로 느껴졌다.

“리나님을 보좌하는 헬레나라고 합니다.”

“예나 프로이드입니다.”

그렇게 그녀와 악수를 하고 난 뒤,

“그럼 일정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할게요”

“그래.”

난 리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평민 년이랑 같은 조원이라는 게…….”

“월프 넌 조용히 해. 뭐가 어찌 됐든 이번 합동 훈련에서 협력해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으니까.

“음, 네가 말하면 어쩔 수 없지.”

월프를 제지하고서 다시금 열린 리나에 입에서 나온 말들은 간단했다.

2일 차까지는 기초 적응 훈련, 3일 차부터 괴수 대항 훈련 및 조별 대전, 5일 차부터는 개별 대전이라는 둥, 앞서 공지됐던 소식보다 조금 세부적일 뿐이었다.

“후우, 다 알아들었죠?”

“그래.”

“응!”

난 속사포로 말을 마친 후, 크게 심호흡하는 리나에게 머리를 주억거리는 한편 손가락으로 일정을 세어봤다.

기회는 2일 차까지인가.

괴수 대항 훈련이나 조별 대전부터는 전문 시설에 들어가 교육을 받을 테니, 드넓은 훈련지를 마음껏 거닐 수 있는 기간은 2일차가 마지노선이었다.

만약 이 시기가 지나 전문 교육시설에 들어가게 된다면 외부인인 헬레나는 들어오지 못할 거고, 나도 더는 그녀와 마주치지 못한다.

속전속결로 끝내야겠군.

“그럼 이만 해산하도록 할게요.”

덜컹─!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나는 지체하지 않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헬레나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보통의 조들처럼 추가적인 만담을 한다든지 등의 화기애애한 시간은 없었다. 그럴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큭.”

월프도 리나와 마찬가지로 짧게 혀를 차면서 본인 갈 길을 갔다. 결국 마지막까지 이곳에 남은 사람은 단 한 명,

“근데 슬슬 점심인데 뭐 먹으러 안 갈래? 아까 오다가 맛있는 고기구이 집을 본 거 같은데…….”

에리카였다.

“그래. 오늘은 내가 사줄게.”

“지, 진짜? 가자, 헤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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