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세비르폴 해안 도시
* * *
“으, 으으.”
에리카의 곡소리가 들려온다.
“예나, 나 속이 안 좋아…….”
그녀는 좌우로 의자가 마련되어 있는 수송 트럭에서 눕다시피 벽에 기대어 멀미를 호소했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도착했어.”
별 효과가 없을 테지만, 난 에리카의 등이라도 토닥여줬다.
거의 백 번은 넘게 덜컹거린 거 같네.
하루 넘게 포장조차 제대로 안된 흙길을 달렸으니 어지러울 만했다. 나도 마나로 균형 감각을 제어하지 않았으면 토를 거하게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지금쯤이면 훈련 장소에 도착이 임박했겠지.
세비르폴에 말이야.
쿵, 쿠웅─!
훈련지가 그 유명한 해안 도시였다니, 처음 들었을 땐 굉장히 놀랐어. 난 덜컹거리는 차량 안에서 과거 세비르폴의 풍경을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과거에 즐겨 가던 휴양지가 바로 세비르폴이었다. 연방이 얼마 없는 부동항 중 하나인 만큼 볼거리가 많았으니까.
연방과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몇 년 정도 가지 못했으나…….
수 어번의 패전 끝에 대전쟁의 판세를 제국으로 잡는데 성공하고, 끝내 세비르폴을 점령했을 이후엔, 다시금 피로를 풀기 위해 놀러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이젠 그 멋진 바닷가를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건가.
과거라고 해봤자 결국 게임 속의 경험이지 않은가. 이제야 비로소 ‘진짜’ 세비르폴을 구경한다고 생각하니, 두근거림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흐으…….”
덤으로 연방 최고의 ‘각성자 훈련소’도 보기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 찼다.
굳이 세비르폴에서 합동 훈련을 시행한다는 건, 전문적으로 수 십의 괴수가 관리되고, 넓은 영토를 활용하여 거대한 대련장을 구비한 그 곳으로 가는 거겠지.
전쟁 중에 연방 전력에 대한 조사를 명목으로 한 번 잠입해봤던 터라, 내부 시설과 명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대됐다.
조사만 하여 어떠한 전력이 있구나, 만 대략적으로 파악했을 뿐, 직접 세비르폴 훈련지에 가서 교육을 받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분명 아스트라한 사관학교와 색다른 기능이 갖춰져 있을 거야. 괴수 대항 훈련도 예정대로 진행되겠지?
부르르─
.
고양감에 온몸이 떨렸다, 얕은 미소가 얼굴에 자리했다.
조원들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번 대규모 훈련에서 기대해볼 점은 교육과정 이외에도 많았다.
그 유명한 월프와 리나가 같은 조로 배정되었지 않는가. 아무렴 이번 합동 훈련이 적격 심사에 영향을 끼칠 텐데, 좋게 좋게 협력해줄지 궁금했다.
월프의 자존심이라면 그의 입장에서 평민 따위에 불과한 나한테 굽히려고 할 거 같진 않은데 말이야.
뭐, 어떻게 되든 간에 지루하진 않을 거 같네.
“흐으으──!”
난 길고 길었던 상념을 마치며 기지개를 켰다.
「쟤, 쟤가 예나라는데?」
「눈 마주치지 마. 보기엔 순하게 생겨도 사람 패는 거 좋아하는 사이코패스라고 하니까…….」
그러자 의식하지 않았던 수군거림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히익, 여기 본다!」
「누, 눈 돌려.」
월프와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만연하게 퍼져있다는 이트리트의 말이 사실인 듯, 아이들은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지레 겁을 먹고 고개를 돌려댔다.
이 잘못된 인식도 하루빨리 바꿔야 겠군.
얕보는 것보단 이처럼 두려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이 훨 나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었다.
언젠가 이들을 이끌 위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공포심으로 명령을 따르게끔 하는 건 의미가 없었으니까. 이들의 근심을 경외로 바꿔야겠지.
그렇게 나를 우러러보도록 만드는 게 최종적인 목표다.
『도착이다, 하차해라!』
파삭─!
교관의 외침을 끝으로 굳게 닫혀있던 트럭 입구 부분의 커튼이 열렸다. 녹초색 밖에 보이지 않던 시야는 곧 푸르스름한 대지와 하늘로 가득 채워졌다.
“도착했어, 에리카.”
“으, 으브브, 드디어 다 왔구나…….”
“바닥 조심해.”
난 비몽사몽한 에리카를 어깨에 들쳐메고 천천히 지상에 착지했다.
“와, 와아. 예쁘다.”
“그러게.”
바깥은 아름다웠다.
트럭 안에서 언뜻 보이는 주변의 모습도 매력적이었지만, 내려 맞이한 공간은 더욱이 경탄스러웠다.
쏴아아아!
아스트라한에선 절대 듣지 못할 파도의 철썩이는 소리, 그리고 그 안에 화음을 불러넣듯 온갖 허공에서 울리는 갈매기의 끼룩거림까지.
“지, 진짜 파래.”
“에리카 네 머리 색깔같네.”
어느새 어지러움을 잊고, 감탄하는 에리카의 반응대로 세비르폴의 모습은 자연의 빛으로 찬란했다.
“갈까?”
“으, 으응!”
때문에 더욱 기대됐다. 이 찬연한 지역 아래서 무슨 사건들이 벌어지고, 어떤 즐거움을 얻게 될지,
터벅, 터벅─!
난 에리카와 함께 발을 내디뎠다.
“날씨 엄청 좋다, 예나….”
“응, 그러게.”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세비르폴의 어느 해변이었다.
파라솔 아래에서 시원한 티 한 잔을 먹기 어울리는 쨍쨍한 햇빛 아래, 생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다들 오랫동안 차를 타고 온 만큼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다. 오늘은 별다른 일정이 없으니 푹 쉬어도 좋다.』
그들은 사관학교보다 몇 배는 더 웅장한 공터 안에서 루스테트의 장엄한 연설을 집중 중이었다.
한층 장교다운 모습을 갖췄달까, 후보생들은 입학식 때와는 달리 긴장하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 침착한 얼굴로 단상 위 교장을 바라봤다.
『아, 오후에는 조원별로 훈련 일정을 알 수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게. 강요하지는 않겠다만은, 미리 훈련 내용을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될 거야.』
터억─
루스테트는 생도들의 몸 상태를 생각하는 건지, 평소보다 십여 분 일찍 마이크를 입에서 뗐다.
『그럼 이만 끝내도록 하지, 다들 피곤해 보이니까 말이야.』
그가 콧수염이 씰룩이는 인자한 웃음을 내보이자, 생도들을 이에 발맞춰 이구동성으로 구령을 외쳤다.
『다들 교장님께──, 경례!』
『제국을 위하여!』
수천의 아이들이 동시에 이마에 손을 뻗으니, 과연 절도가 느껴지는 장엄한 광경이었다.
“음, 제국을 위하여.”
루스테트는 원수봉을 들어 올려 그 인사에 답하고 단상을 내려갔다.
『해산!』
드디어 환영식이 끝났다. 교관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마자, 생도들을 각자 할 일을 하러 광장을 떠났다.
“우리도 가자.”
“응!”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더 있을 이유는 없어. 한 시라도 빨리 세비르폴 훈련지에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구경하고 싶었기에, 에리카를 데리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뚜벅, 뚜벅
나쁘지 않네.
그렇게 몇 분간을 나다니며 내린 평가는 생각보다 괜찮다, 였다.
연방이란 자고로 탄생한 지 얼마 안됐기도 하고, 내전으로 국토가 피폐함의 극치를 달리는 만큼 타국에 비해 부족한 기술력을 지닌 국가 아닌가.
그런 수준을 고려하면 세비르폴 합동 훈련지는 예상했던 것보다 훌륭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 꽃 봐! 엄청 예쁘다.”
“그러게.”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아기자기한 꽃밭처럼, 생도들의 복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 각종 여가 시설이 관내의 삭막함을 덜어주고 있었으니까.
“예나! 우리 저거 먹자.”
에리카가 입술 사이로 침을 흘리며 달려가는 저 상점도,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 일환일 거다.
“오늘은 내가 예나 거까지 사줄게!”
“……그래. 고마워.”
“에이, 뭘. 안녕하세요. 저 숯불 꼬치 두 개 주세요!”
에리카는 은은하게 풍겨오는 달콤한 양념 냄새를 따라가선, 계산대에 쏘옥 고개를 내빼고 음식을 주문했다.
벌써 정신을 차린 건가.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멀미가 가시지 않았는지 축 처진 채로 다니더만, 먹을 걸 발견하니 금세 발랄함을 되찾았다.
고기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피로를 이겨냈다는 거겠지. 참으로 해맑은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알았다.”
불판을 묵묵히 지키고 있던 가게 주인은 짧게 답한 뒤, 그릴에 불을 켜곤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치이이─
살코기 겉면이 밤색으로 먹음직스럽게 변해갔다. 그릴에서부터 은은하게 풍기는 소스의 향기와 육즙의 냄새가 입 안에 침이 고이도록 했다.
“…….”
하지만 난 애써 음식에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맛있는 고기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요리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주인장을 주시했다. 정확하게 짚자면, 남들에 비교해서 조금 특별한 외형인 남성의 정수리 부분을 주시했다.
“여기 있다.”
“헤헤, 감사합니다! 예나 꺼는 여기 있어!”
에리카가 조리가 끝나 새빨간 양념으로 가득한 꼬치를 건네주는 때가 되어서야 눈길을 돌렸다.
“아, 고마워.”
인간의 세 배는 커보이는 귀에 백인보다 더 연한 피부색을 지니기까지. 그 남자 분명 그거겠지?
터벅, 터벅.
“아음.”
난 귓가 옆으로 머리카락을 치우며 고기를 입에 넣는 한편, 인간 이외에 이 세상에 존립한 집단, 즉 이종족이 지닌 각각의 특징들을 상기했다.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직전의 주인장은 엘프였을 것이다. 쉽게 말해 인간이 아니라는 거지.
지금 보니 여기 이종족이 많네?
「이번 연구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망했어요.」
「아, 아앗.」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계시겠죠? 하아.」
난 귓가에 드문드문 꽂히는 말소리에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그러자 대규모 훈련 시설이라는 명성답게, 부지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종족들이 눈에 띄었다.
연구원 차림의 엘프, 연방군 특유의 털모자를 쓰고 주변을 지키는 드워프 경비까지, 이들을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인간 이외의 지적 생명체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과거 삶에서 외계인을 용접한다면 딱 지금 이 기분일 테다.
부러운 광경이야.
“예나 므해?”
난 넋 놓다시피 주변을 구경하다, 에리카의 부름이 들려서야 정신 차렸다. 그녀는 볼이 빵빵하리만치 고기를 잔뜩 머금고서 머리를 갸웃했다.
“므슨 아조은 일 이서?”
다시 봐도 다람쥐 같았다. 저 청발의 머리카락과 바닷빛의 눈동자를 제외하면 그 포유류와 똑같은 생김새였다.
“그냥 잔디가 예뻐서.”
“아항.”
“그건 먹을 만해?”
“우음, 학교 급식이랑 색다른 맛이야!”
“그렇구나.”
난 에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을 무마했다. 그녀를 안심시킨 뒤론, 다시금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표정이 곱진 않았다.
까드득─!
난 엘프와 드워프를 번갈아 둘러보면서 치아로 입술을 곱씹었다. 다양한 생물의 융합으로 활기찬 세비르폴을 보니 제국 수뇌부들이 더욱 한심해졌다.
도대체 왜 이종족을 배척하는 거야?
총리, 그러니까 훗날 제국을 휘어잡는 총통에 오를 에르도프의 이념은 생각할수록 아둔했다. 고작 권력을 얻겠다고 이종족을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했다.
“냐암, 냠”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정치인가. 고기를 뜯어 입안 가득한 육즙을 음미하여 찌푸렸던 미간은 풀렸지만, 가슴을 뒤덮는 짜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전쟁의 패배도 이 때문이었지.
손재주가 좋은 드워프와 인간보다 월등한 마나량과 활용력을 지니고 있는 엘프를 2등 시민으로 취급한 탓에 그들은 적국의 협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끝내 제국의 수도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뒤집어 엎어야겠지.
결국 조국이 멸망의 길을 걷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이종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반(反)종족주의 사상을 지닌 수뇌부를 몰아내야 한다.
분명 힘들 거다, 앞길도 막막할 거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툭─
그래야만 지금 빈 꼬치를 버린 음식물 쓰레기와 엇비슷한 제국의 상태를 고칠 수 있을 테니까.
과거엔 게임으로서 주어지는 상태창 따위의 특성을 이용하였기에 굳이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상이 아닌 현실이잖아?
더구나 개정판인 만큼 어떠한 설정이 바뀌었으며 추가되었는지 모르는 상태, 이종족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했다.
평등? 종족의 권리? 차별?
그딴 허례허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종족을 도우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나의 안위를 위해서였다.
“에리카, 잘 먹었어.”
“응, 헤헤….”
앞날이 어두운 만큼이나 밝히는 즐거움도 높겠지. 난 근미래에 펼쳐질 여러 사건을 떠올리면서, 양념이 묻은 입가로 희미하게 호선을 그렸다.
즐겁겠어.
“이번엔 이쪽으로 가볼까?”
“좋아!‘
하지만 무슨 선택을 하든지 간에 지금 당장 할 일이 우선, 난 더 이상의 복잡한 고민은 치우고 걸었다.
터벅, 터벅.
곧 있으면 시작할 리나와 월프, 두 조원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