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29화 (29/40)

〈 29화 〉 합동훈련

* * *

그는 도넛과 시가를 다 해치워 여유로워진 두 손에 분필과 종이를 대신하여 잡곤, 어디 구석엔가 처박혀있었을 이동식 칠판을 끌고 왔다.

『1학년들, 내일이 합동 훈련 맞지?』

『몇 주 정도가 소요되는 거대한 훈련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그동안 학교에 오지 못할 거다. 그래서 미리 과제를 내주려고 거창하게 준비했지.』

『기간은 총 합동 훈련 종료 뒤 한 달, 그러니 한 달 하고도 몇 일정도 남아있다고 보면 편할 거다.』

그렇게 꺼낸 이야기는 부서 계획도, 조 편성 따위도 아닌, 간단명료하게 평가에 대한 일정이었다.

『자, 그리고 이게 바로 너희가 해결해야 할 주제다.』

툭, 투둑, 툭─!

데리안은 왁스를 치덕치덕 발라 빛나는 가르마를 달고, 칠판을 서슴없이 활자로 빼곡히 채웠다.

【독자 전술 연구발표】

그리고 위 세 어절의 제국어가 칠판 최상단에 적혀 설명을 최종적으로 장식했다.

「저, 저게 뭐야?」

「들어오자마자 바로 연구하라는 거야?」

생소하고도 의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말이었기에 후보생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임명식으로 느슨했던 공간은 데리안의 폭탄선언으로 쌀쌀함을 되찾았다.

『독자적으로 전술을 연구하고 발표해야 하는거다. 참고로 이건 선배인 2학년 너희들도 해당하니 숙지하도록.』

담당관의 추가적인 이야기에 부서실을 더욱 냉랭해졌다.

「예, 예?」

「아…….」

이트리트와 베르토 외에 앉아있던 소수의 선배는 데리안의 말을 듣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낙담했다.

지긋지긋한 과제가 하나 추가된 거니까.

『당연히 완성도 따위는 기대하지 않아. 의지와 노력, 조사하는 데 얼마나 열정적으로 임했는지, 이런 태도를 중점적으로 심사할 계획이다.』

데리안은 이런 축축한 공기에도 굴하지 않고 공표를 지속했다. 아니, 굴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생도들의 당황을 즐기는 듯,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그……, 적격 심사에도 상당 부분 반영되니 그냥 넘길 각오는 하지 않는 게 좋을거야. 이 사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으면 말이지.』

『2학년들도 예외는 없다. 전부 졸업 심사과정 중 하나니까, 적어도, 한 학년 아래 아이들보단 우수한 면모를 보여.』

장장 십 분에 걸친 연설이 끝나고, 데리안은 마지막으로,

『……아.』

쿵쿵─!

『참고로 오스발트 루츠 교관님의 공석은 합동 훈련이 끝나는 날에 맞춰, 다른 담당관이 오셔서 채울 예정이니, 만나면 경건한 박수로 맞이하도록 해라. 그만큼 예우를 받을 분이시니까.』

칠판을 두드림으로써 이야기의 막을 내렸다.

*

「여, 여기 맞나요?」

「응, 거기에 앉으면 돼.」

데리안의 과제 발표가 성공 리에 끝난 이후로, 1학년들에게 부서실 내부 자리를 배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답게, 처음으로 자신의 업무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1학년 후보생들은 표정과 몸짓으로 기쁨을 표출했다.

「드, 드디어…….」

「이거로 집필하는 건가 봐!」

아무리 정숙하려 자제하는 듯싶어도, 마도전술 계획부의 정식 일원이 됐다는 희열을 주체하긴 어려웠으니까.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예나!”

“응.”

에리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바로 옆에 있으니까!”

그녀는 새로운 탁상을 맞아 열정적으로 자리를 정리하다 말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표출했다. 우연히도 자리를 붙어 앉게 되어, 그 표정을 남들보다 면밀히 살필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대신하여 뿌듯하달까. 에리카가 저리 즐거워하니, 가르쳤던 입장으로서 흐뭇했다.

“어쨌든 기한 안에 연구과제를 제출해야 한다라…….”

오늘부터 시작해야 하겠는데.

난 의자에 기대듯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말고, 슬쩍 고개를 내려 책상 위 물품들을 훑어봤다.

참나무 향이 올라오는 사각의 책상 위 탑처럼 쌓여있는 군사 교본, 그리고 문서 집필을 위한 검은색의 타자기까지, 부서에서 제공되는 건 이게 전부였다.

기존 선배들이 제출했던 예시 따윈 없고, 오직 내 머리만을 이용해 데리안을 만족시킬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뭐, 뭐부터 해야 하지?」

「일단 교본부터 훑어볼까…….」

작업의 갈피조차 잡지 못하여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을 보듯, 보기보다 난이도 있는 작업이었다.

추천서를 받은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다른 후보생들과 차별점을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학생들의 열정만 확인한다고 했지만, 단순히 이 목적만을 달성하여 과제를 해결하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완벽한 보고서를 생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주제를 무얼 정하냐는 건데.

툭툭,

“예나는 뭐할지 정했어?”

마침 에리카가 한 손으로는 턱을 받치고, 반대쪽 손가락으로 어깨를 건드리며 거리를 좁혀왔다.

“너는 결정했어?”

“응! 원래 생각해둔 게 있었거든.”

그녀는 이미 주제의 가닥을 잡은 성싶었다.

“어떤 건데?”

“제국군이 추위를 버티기 위한 방법!”

“……추위?”

“응, 제국이랑 연방이랑 날씨 차이가 엄청나더라고! 근데 연방군보다 방한 장비가 부족한 거 같아서, 이런 날씨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도 없고.”

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혹한기 대비라니.

연구용으로 전혀 부족할 게 없었다. 아니, 따지자면 에리카한테 기대하지 않았을 정도의 훌륭한 주제였다.

추위로 인한 지형 변화, 그로 제한되는 기계화 장비 운용, 폭설에 대한 대비 등, 제국이 보완해야 할 허점을 총망라하는 문젯거리였으니까.

에리카가 이와 관련해서 전문적인 수준으로 조사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쁜 점수를 받지는 않겠지.

“어때!”

“좋은데.”

“헤헤, 그치?”

그녀 또한 이 연구에 대한 진가를 아는지 몰라도, 가슴을 활짝 펴고, 팡팡 두드리는 것이 자신감에 가득 차 보였다.

“이를테면 연방의 극지방에서 하는 혹한기 훈련 같은 걸 만드는 거지! 엄청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눈 내리는 숲속에서 따듯한 돼지고기 뜯고!”

“……좋네.”

“맞지, 맞지? 예나라면 알아줄 거라 믿었어!”

무언가 단단히 오해한 부분이 있는 거 같지만 굳이 바로잡을 필요는 없겠지. 의지로 가득 찬 에리카가 훌륭한 질의 보고서를 도출하길 바라며,

“그럼 파이팅.”

“응!”

가볍게 눈으로 웃어주어 격려할 뿐이었다.

차작, 차자작─!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에리카는 타자기를 두드렸다. 하얗기만 하던 그녀의 종이는 점차 흑색의 잉크로 뒤덮였다.

이제는 정해야 한다.

난 그제야 깊이 고뇌했다. 아직 합동 훈련을 하기 전인만큼, 길이라도 정하고 떠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의 수많은 지식을 되짚어봤다.

달칵, 촤르르륵!

그것으로도 부족함을 느끼고, 탁상 구석에 꽂혀있던 전술 교본 몇 권을 꺼내 나란히 펼쳐봤다.

[중세 전술에 대한 이해]

[참호전과 후장식 소총의 등장]

[마도 장교에 대한 정립]

.

.

.

“으음…….”

탁.

이건 아니야.

투욱.

이거도 부족해.

본래 목적인 데리안과 관계 형성을 도모할 수 있음과 동시에, 그 말고도 다른 교관들의 시선을 끌고, 이목을 집중시킬 능력이 있는 거로 해야만 한다.

난 수없이 책을 뒤적이고, 몇 번이나 그 안의 개요를 훑었다.

“이거다.”

그렇게 책상이 교본들의 향연으로 되었을 때쯤, 마침내 좌우로 움직이던 두 손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전차의 등장으로 인한 전술의 변화]

그리고 홀린 듯이 소제목이 가리키는 페이지로 책을 펼쳤다.

사락, 사라락─

이 부서실에 처박힌 지 얼마나 오래됐을까.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뭉치고 뭉쳐 만들어진 회색의 먼짓덩어리가 이곳저곳에서 속출했다.

고대의 문서라도 되는 양싶었다. 그러나 내용은 그 무엇보다 가장 진보됐으며 최신식일 테다.

“이 부분인가.”

후우!

바람을 세차게 불어 주변을 깨끗이 하곤, 소제목 아래로 끝없이 이어진 장문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이거로 해야겠군.

그렇게 한 가지 주제를 떠올리며 마음을 굳혔다.

시대상으로 세상에 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차의 개념이 어떻게 확립됐는지 확인할수록, 정말 구식이구나, 라는 의견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최근까지의 전투가 모두 참호전의 양상이었기에, 집필된 전술들이 과거 대전기에 국한되어 있었다. 기갑이라는 희대의 무기가 등장했어도 말이다.

마도 장교를 전선을 채우는 특별한 보병 정도로 인식하는 게, 현재 제국 전술의 수준이었다.

“……좋은데.”

그래서 이 주제를 연구하기로 했다.

일종의 전술의 선봉장이 되는 셈이잖는가. 미래의 발전된 전술 개념들이 이 두개골 안에 가득히 있는 입장에서는 노다지를 발견한 경우와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기갑전의 아버지……, 아니 어머니가 바로 내가 될 수 있다. 이같은 상상을 하자 지레 입꼬리가 올라가고, 볼이 붉게 상기됐다.

“예나, 무슨 일 있어?”

“아, 그냥 내일 훈련이 기대돼서.”

난 표면에 기분이 드러났을까, 다시금 표정을 고쳐 냉정함을 되찾았다.

“하아.”

전보단 정리된 머리로 상념을 이어갔다.

만약 보병에 관한 관념밖에 없는 이 시기에 기갑 운용체계를 세우고, 그 보고서가 사관학교에서 극찬을 받게끔 하여 수도의 사람들까지 보게 만든다면?

대전쟁이 벌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타국에 비교했을 때 월등한 전술을 군대에 보급이 가능하다.

그에 이어서, 기존에 기갑 관련 병법을 연구하던 루츠와 데리안에게 거하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 단번에 위상을 드높일 기회인 거다.

차작, 차자작!

길을 잃었던 손가락은 한데 모여, 웅장한 활자들의 집합을 형성했다.

“됐어.”

마침내 마침표까지 찍고 나서야, 입술을 혀로 핥으며 웃었다.

【마도 부대와 기계화 장비를 활용한 돌파 전술】

발음하기도 어려운 보고서의 이름 아래,

《 폭풍과 번개의 전술, 통칭; 전격전 》

소제목을 바라보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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